이곳에서의 대학원 수업은 당시만 해도 맨하튼 소호(Soho)에 있었다(지금은 지하철로 약 10분 거리의 맨하튼 다른곳으로 이전됨). 구건물 바로 길건너 맞은편에는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팝샵(Pop Shop)이 있었는데 난 언제나 그곳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다니기 일쑤였다.

왜냐하면 정신 사납다는 이유로.

샵 내부는 온통 키이스 하링(Keith Haring)의 네오 팝아트(Neo-Pop Art)적인 스타일답게 바닥을 비롯하여 벽과 천정 온통 그의 이미지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 터라 가뜩이나 학교 과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내게는 그 샵을 들여다 보는 것은 더욱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에 좀 여유가 생긴지라 수 년 전 기억이 그리 좋지 않았던 그곳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다시 찾았다.

팝아트란 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풍속이나 기성 이미지를 대중예술로 승화시킨 미술의 한 경향인데(리포트 8/28일자 'Pop Art의 또다른 테스트 Screen Tests' 참조)네오 팝아트는 이러한 팝아트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새로운 테크닉으로 표현하는 새 장르의 예술이라 하겠다.

31세의 젊운 나이로 요절한 미국 네오 팝아트의 선두주자였던 키이스 하링(1958-1990)은 1981년도에 뉴욕 지하철 광고판에 통근자들의 모습을 간결한 색채와 선으로 표현하며 그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캐릭터의 특징은 마치 만화처럼 우리눈에 친숙한 이미지의 밝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주로 원색 위주의 아이콘이나 심볼과 같이 눈 코 입이 없는 극히 단순한 형태에 굵은 라인을 사용해 마치 누구나 종이에 낙서할 때 그리는 것 같은 것들이다.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나도 그릴 수 있겠다 혹은 이런 그림들이 왜 이토록 유명해 졌고 또 어떻게 그의 이름으로 된 재단까지 설립되었을까를 살펴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만의 작품활동 배후에 사회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남다른 신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성연애자로서 자신 스스로 에이즈에 감염되어 짧은 생을 마감하기는 하였지만, 그는 사회 사업가로 활동하면서 에이즈 퇴치운동이나 어린이들을 위한 사업을 하였다. 그는 언제든지 어린이들이 재능을 개발하며 이 사회가 질병이나 빈곤에서 벗어나 더 살기좋은 곳이 될 수 있도록 헌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또한 워싱턴과 암스테르담 길거리에서 피닉스의 어린이들과 함께 외벽화 작업을 공동으로 했으며, 대도시에서의 마약 확산 그리고 방탕한 사회풍조 등에 대해 하링은 그림으로서 경고를 보내고 사회사업으로 행동으로 옮겼다.

1986년도에 하링은 작품활동의 연장으로 그의 작품을 누구나 살 수 있는 재미난 공간으로의 이 팝샵(Pop Shop)을 오픈했다. 실내는 위에 언급한대로 바닥에서부터 진열대, 천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의 특징을 그대로 살리는 굵은 라인의 흑백이미지로 페인팅 되어 있어 진열된 하나 하나의 상품들과 잘 짜여진 아이덴티티(Identity)로 샵 밖에서부터 시선을 확실히 끈다. 상품으로는 티셔츠를 비롯해 가방, 모자, 쿠션, 열쇠고리 그리고 각종 문방구 용품에 이르기까지 조그만 장소에 구색을 잘 갖추어 놓아 선물용으로 간단한 것을 구입하기에도 편리하다. 하링이 이와같은 샵을 연 이유는 작품 소유의 제한성을 막고 모든 대중들이 작품을 저가로 구입할 수 있게 하면서 미술작품이 단 하나여야 한다는 관습을 깨기 위한 것이라니 젊은 한 작가의 작품에 대한 그만의 철학에 존경심 마저 든다. 비록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기는 했지만 그의 왕성한 작품욕과 사회 사업가로서 이룬 그의 공헌은 미국에서, 특히 뉴욕에서 길이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