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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넘어선 가치, Richard Sapper

 

학교를 나와 산업디자이너로 활동한 지 어느새 햇수로 16년을 넘어섰다. 그 중 15년 가까운 시간을 독일에서 보냈으니, 학창시절부터 이어진 독일 디자인의 팬이었던 필자는 어쩌면 진정한 성덕이 아닐까 한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독일 디자인이 가진 힘은 산업디자인이 사용될 수 있는 분야가 많은 제조업 기반의 사회 구조가 있지만, 필요에 의해서 무차별적으로 적용된 것이 아니라 (어찌보면 너무나 보수적으로 보일 정도의) 확고한 디자인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보여준 앞선 세대의 디자인 명장들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독일을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마스터피스들을 남겼는데, 그 작업들은 현세대에도 고스란히 전해져서 여전히 사용되고, 훌륭한 교보재로 활용되어 왔다. Timeless 독일 디자인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이 단어는 후세에도 이어졌다. 큰 노력없이도 보고 만질 수 있었던,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아있는 이 수많은 양질의 Reference들은 후대의 디자이너들에게 최고의 영감을 주었고, 셀 수 없는 성공사례를 통해 디자인의 힘을 인정하는 기업들의 신뢰와 투자가 이어졌기에 지금도 여전히, 독일의 디자인은 지속되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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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디자이너? 디터 람스지!”

이렇게 정의하고 넘어가는 건, 독일 맥주는 파울라너지!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일과 후에 맥주 너머로 열변을 토하던 옛 동료의 취기 섞인 말을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독일 맥주 중에서 한국에서도 유명한 파울라너가 가장 맛없다고 여기는 필자는 무릎을 치며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독일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맥주들이 존재하듯, 반드시 알아야 할 독일 디자이너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디터 람스는 필자도 가장 존경하는 선대의 디자이너다. 람스와는 다른 결로, 필자를 포함한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존경받는 선배 중 한 분, 리차드 사퍼 (Richard Sapper)는 1932년에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다. (축구도 디자인도 역시 뮌헨)


뮌헨에서 철학, 해부학, 공학과 경영 분야 대학 공부를 마친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정보의 출처는 wikipedia와 그의 공식 bio) 리차드 사퍼는 Mercedes-Benz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디자인을 시작했고, 이후 1958년에 밀라노를 거점으로 활동해온 이탈리아의 거장 Gio Ponti (지오반니 폰티)의 디자인 오피스에서 커리어를 이어갔다. 이때부터 순수 독일 디자이너 리차드 사퍼는 고국이 아닌 밀라노에 정착하게 된다. 지극히 직선적이고 명료한 독일 디자인과 특유의 위트가 돋보이는 감각적인 이탈리아 디자인의 두가지 모습을 스위치 히터 (야구에서 왼쪽과 오른쪽 타석을 모두 설 수 있는 타자)처럼 구사하는 그의 작업 세계가 설명되는 부분이다. 


리차드 사퍼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의 디자인 단짝 Marco Zanuso (마르코 자누소)를 만나게 되면서 부터인데, 밀라노로 이주한 다음해부터 무려 18년간, 독일-이태리 디자이너 듀오는 수많은 디자인 작업을 후대에 남기게 된다. 



01. 지멘스 Grillo Phone (1965)

가장 먼저 살펴볼 디자인은 1965년에 지멘스 (Siemens)를 위해 디자인한 전세계 최초의 폴더블 전화기이다. 공학에 능통했던 사퍼의 초기 디자인 세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작업이다. 접힌 상태에서 지면에 안정적으로 놓이면서도 완전히 펼쳐질 때 유려한 연결선을 만드는 형태를 보고 있으면 황홀감에 빠진다. 




 

Grillo 전화기 (이미지 출처:richardsapperdesign.com/products/grillo/)




02. 브리온베가 Cubo Radio (1963)

다음으로 소개할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오래된 음향/영상 가전 브랜드인 Brionvega (브리온베가)의 TS 502 "Cubo" Series II 포터블 라디오이다. 선명한 오렌지색 큐브는 너무도 완벽한 비율로 시선을 사로 잡는데, 이 큐브가 절반으로 쪼개지면서 숨겨져있던 라디오의 인터페이스가 가슴을 철렁이게 한다. 닫힌 모습부터 서서히 열리는 어느 각도에서도 완벽한 디자인의 이 라디오는 1963년 처음 양산이 시작되어, 인터페이스와 하우징의 컬러 변화 외에는 큰 변화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된 Radio.Cubo가 궁금하다면 이리로: https://www.brionvega.com/radiocubo/ 

 


 

 

 

 Radio cubo (이미지 출처:en.wikipedia.org/wiki/Brionvega)

 

 

 

 

 

   고인이 되기 전 Radio cubo 앞에서 만난 자누소(좌)와 사퍼(우) (이미지 출처:ad-italia.it/gallery/la-radio-cubo-di-brionvega-icona-intramontabile-storia/)





03. 브리온베가 Algol TV (1964)

브리온베가를 위한 자누소-사퍼 디자인 듀오의 역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세계 대부분의 디자인 뮤지엄들이 소장 전시하고 있는 브리온베가의 8인치 TV 알골 (Algol) 는 휴대성에 촛점을 두어 디자인 되었고, 무려 60여 년 전 (1964년)에 디자인된 것이 지금도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다. 작은 강아지가 주인을 바라보는 동작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후문이 있으며, 이 시대의 TV 디자인 중 가장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Algol TV (이미지 출처:brionvega.com/prodotto/algol/)





04. 알레시 9091 Kettle (1983)

사퍼의 모든 디자인 작업을 본 리포트에 소개하려면, 스크롤이 한없이 내려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리차드 사퍼가 디자인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전자제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각종 조명과 생활용품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는 (당시 많은 스타 디자이너들이 그랬듯) 많은 기업들이 디자인 의뢰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알레시 (Alessi)를 위해 디자인한 주전자이다. 1983년에 공개된 이 주전자는 특이한 주둥이의 형상으로 인해서 물이 끓고 있는 상태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 비교적 낮은 온도로 끓고 있는 중간 단계에서는 낮은 음으로 시작해서 완전히 끓는 상태가 되면 가장 높은 음계로 이제 제발 찻잔에 따라달라 소리친다. 

 

 

 


 

   Alessi 9091 kettle (이미지 출처:richardsapperdesign.com/products/9091-2/)



 


05. 아르테미데 Tizio Lamp (1972)

디자이너가 공학 배경을 지닐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사퍼는 여러차례 증명한다. 제임스 다이슨도 사퍼의 디자인을 존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믿는다. 1972년 아르테미데 (Artemide)를 위해 디자인한 Tizio 데스크 램프를 보자. 360도로 회전하는 실린더형 받침 에 연결된 램프의 팔은 두개의 관절을 축으로 다양한 각도로 변형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서 가장 최적의 상태에 광원이 놓이게 된다. 현대의 산업용 로봇팔을 연상시키는 이 램프의 디자인에는 무게 중심의 배분을 공학적으로 설계한 사퍼의 진심이 담겨있다. 또한 비슷한 형태의 많은 관절형 램프에서 발견되는 전선이 없는 것은 실로 놀라운 시도이다. 광원까지 연결되느라 공중에 늘어지는 전선이 없기에 회전과 각도변화에 제약이 없다. 그럼 도대체 광원까지 연결되는 전력은 어떻게 공급된단 말인가? 110-220 볼트로 입력되는 전압은 12 볼트의 저압으로 바뀌어서 램프의 팔과 관절을 통해 광원까지 전달된다. 램프의 팔에 흐르는 저압의 전기는 사람의 손으로는 느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는 전혀 없다.  

 

 

 


 

  Artemide Tizio 램프 (이미지 출처:artemide.com/en/subfamily/18869/tizio)

 

 

 

 

  Artemide Tizio 램프의 초기 스케치와 움직임 촬영 이미지 (이미지 출처:richardsapperdesign.com/products/tizio/)






06. IBM Thinkpad 700C / 701 (1992 / 1995)

과거의 이름이지만 애플이 맥북을 출시하기 전, 가장 아이코닉한 랩탑 브랜드는 IBM이라는 것은 비단 필자의 사견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레노버 (Lenovo)가 되어버린 IBM의 영광의 시절을 만든 디자이너는 사퍼라고 생각한다. 1992년 사퍼가 일본의 카즈 야마사키와 공동으로 디자인한 ThinkPad 700C는 IBM의 랩탑 외관의 퀄리티를 혁신적으로 높이는데 기여했다. 완전히 닫힌 상태의 700C는 오래된 시가 박스의 비율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어떠한 돌출도 없이 정직한 사각형의 박스가 열리는 순간 힌지의 정확한 접합부가 드러나는 장관을 연출한다. 새로운 비율 (16:9)의 디스플레이가 랩탑에 적용되기 전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멋스러운 올타임레전드 랩탑 중 하나다. 

 

 

 


 

  IBM ThinkPad 700C (이미지 출처:richardsapperdesign.com/products/thinkpad-700c/)

 




사퍼가 IBM에 남긴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랩탑은 바로 ThinkPAd 701이다. 1995년에 만들어진 이 초소형 랩탑은 닫힌 스크린은 여는 순간 키보드가 좌우로 열리면서 숨겨져 있던 대각선 한 줄의 자판이 드러난다. 완벽하게 열리는 순간 모든 좌우 그리고 숨겨진 모든 키보드의 배열과 높이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원래 하나의 키보드 구성인 것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반대로 다시 스크린이 닫히면 좌우로 넓어졌던 키보드가 좁아지면서 사각형 박스 안으로 그 모습을 감춘다. 

 



 

  IBM Thinkpad 701 (이미지 출처:richardsapperdesign.com/products/thinkpad-701/)





다시 한번 최첨단 전자제품의 공학적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퍼의 작업들은 산업디자인의 황금기 1990년대 수많은 디자인들 중에서도 가장 높이 평가 받는 브랜드 IBM의 디자인 역사에 큰 공헌을 했다.    

 

 

 

 

2015년의 마지막 날,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 리차드 사퍼가 후대에 남긴 수많은 디자인 작업들은 여전히 그의 공식 웹사이트에 잘 정리 되어있다. 절제미와 세련미, 기능성과 구조적 혁신까지 모두 완벽한 교보재인 그의 작품 세계 둘러보자. 만약 디자인의 능력치를 육각형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의 그래프는 모든 꼭지점에 고르게 가까운 도형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83세의 나이로, 엄청난 양의 디자인 마스터피스들을 후대에 남겨준 리차드 사퍼. 연도별로 구성된 그의 작업 Archive를 둘러 보는 만으로도 엄청난 디자인 공부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꼭! 링크를 눌러서 확인하길 추천한다.  

 



 

 

 

 

 

참고 사이트 / 자료 

wikipedia

brionvega.com

richardsapperdesign.com

ad-italia.it/gallery/la-radio-cubo-di-brionvega-icona-intramontabile-storia/





 

양성철(독일)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 학사 졸업
(현)Phoenix Design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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