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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인터뷰] 싱가포르 부부의 스튜디오, 레켈 아키텍츠 Lekker Architects

 

레켈 아키텍츠가 싱가플루라에서 선보인 작품 스코프SCOPE / 이미지© PLUS Collaboratives, 콘텐츠 copy; Lekker Architects

 

 

레켈 아키텍츠Lekker Architects는 부부가 운영하는 싱가포르의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이름이 낯설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들의 작업물을 SNS에서 이미 접했을 수도 있다. 얼마 전에 싱가포르 디자인위크의 행사로 꾸려진 싱가플루라SingaPlural(http://www.designdb.com/dreport/dblogView.asp?gubun=1&oDm=3&page=1&bbsPKID=21589#heads)를 방문한 사람이 SNS에 올린 레켈 아키텍츠의 작품 사진(https://www.instagram.com/p/BDPQSiCBQXf/)이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레켈 아키텍츠는 싱가포르의 놀이터 디자인에 관한 리포트(http://www.designdb.com/dreport/dblogView.asp?gubun=1&oDm=3&page=1&bbsPKID=21451#heads)에서 소개된 유치원 프로젝트로, 싱가포르 디자이너들에게는 굉장한 영예로 여겨지는 대통령 배 디자인상을 받았다. 최근 들어 활동이 더욱 활발해진 레켈 아키텍츠의 두 사람, 조슈아 코마로프Joshua Comaroff(이하 조쉬Josh), 옹 켈싱Ong Ker-Shing(이하 싱Shing)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레켈 아키텍츠의 조슈아 코마로프Joshua Comaroff와 옹 켈싱Ong Ker-Shing / 이미지© Shunann Chen

 

 

레켈 아키텍츠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싱Shing: 레켈 아키텍츠는 저희 두 사람의 관계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어요. 1990년도에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http://www.gsd.harvard.edu)에서 학생으로 만나고, 디자인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를 해왔어요. 같이 여행하면서 건축물들을 보고 다른 사무소에 소속되어서도 협업을 했죠. 그러다가 더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보고 싶어 2002년에 레켈 디자인Lekker Design이라는 스튜디오를 열었어요.

 

상하이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스튜디오를 싱가포르로 옮겼어요. 괜찮은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비록 사무실 자체는 디자인 공모에 참여하고 인테리어 일을 맡는 수단이었지만 말이에요. 그 시절에 저는 WOHA(http://www.world-architects.com)에서 일하고, 조쉬는 지리학 박사 논문을 쓰는데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지요.

 

2006년부터 프로젝트를 활발히 진행하게 되면서 직원도 채용하고, 사무실도 확장했어요. 제가 건축가로 공식 등록되고, 2014년에 레켈 아키텍츠(http://lekker.sg)가 되었죠.

 

레켈 아키텍츠는 건축,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인테리어, 이벤트 기획, 가구 디자인 외 쇼윈도우 디자인 등 다양한 종류의 프로젝트를 다루고 있어요. 가족을 위한 주거공간, 어린이를 위한 공간 디자인 외 기관 연계 프로젝트가 주된 작업이고, 그 외에는 독자적으로 디자인과 자연 생태계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대통령 배 디자인상을 받은 레켈 아키텍츠의 애벌레 꼬리 어린이 발달 학습 센터 / 이미지© Darren Soh / Fullframephotos

 

 

레켈 아키텍츠가 ‘애벌레 꼬리 어린이 발달 학습 센터the Caterpillar"s Cove Child Development and Study Centre’프로젝트로 2015년 대통령 배 디자인상President*s Design Awards Singapore 2015(https://www.designsingapore.org/PDA_PUBLIC/gallery.aspx?sid=1117)을 받았지요?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애벌레 꼬리 어린이 발달 학습 센터(http://www.thecaterpillarscove.com.sg)’는 유치원 디자인의 중요성을 싱가포르 안에 각인시키겠다는 심정으로 진행했던 작업이에요. 어린이를 위한 공간의 중요성은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이미 공론화되고 있어요. 한국도 그러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싱가포르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어린이들을 위한 디자인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이케아Ikea에서 산 가구들로 무채색의 공간을 채울 뿐이지요.

 

이 프로젝트를 맡던 해에 저희 딸이 세 살이 되었어요. 어린이를 위한 공간 디자인이 왜 싱가포르에서는 주요 이슈가 되지 않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어린이들의 창의성이나 인터랙션을 키워줄 수 있는 환경이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우리 가족도 대충 디자인된 별로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어요. 그러던 중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디자인이 어린이들의 놀이를 위한 영감을 주고, 성장을 북돋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는 클라이언트의 신념에 저희도 뜻을 같이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작업에 주어진 공간은 대부분의 싱가포르 유치원이 세워지는 삭막한 사무실 터였어요. 생기있고 매력적인 교육 공간을 실현하기는 좀 어려워 보였지요. 유치원 어린이들의 눈 높이를 넘어서는 위치에 창문이 나 있고, 기둥들만 가득한 특징과 강약이 없는 공간이었지요.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학교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주어진 공간 안에 대입시켜봤어요. 교직원 실과 유아실은 ‘건축물 안의 건축물’로, 삼각 지붕에 창문을 듬성듬성 배치해서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집’과 같은 구조물의 주변 자리는 ‘나무가 있는 운동장’으로 연상해봤지요. 나무 형상으로 재주조한 기둥 아래에, 네 개의 개방형 교육 공간을 두었지요. 머리 위에는 변화하는 형상의 곡선 격자로 천장 구조물들을 가리는 동시에 구름을 떠올리게 했어요.

 

 

애벌레 꼬리 어린이 발달 학습 센터 / 이미지© Darren Soh, Fullframephotos:

(위) 나무 형상으로 재주조한 기둥과 개방형 교육 공간

(아래) 특수 제작된 가구들

 

 

가구들은 어린이들의 신체에 잘 맞고, 선생님들이 쓰임에 따라 재배치할 수 있도록 모두 주문 제작했어요. 좌석들은 전형적인 의자 모양이 아닌 부드러운 등고선이 겹쳐진 형태로 만들었지요. 미술교실처럼 탁자와 의자가 꼭 필요한 곳의 경우, 연령대에 맞춰 가구들의 크기에 변화를 줬고요.

 

건축물의 창문이 어린이들의 눈높이보다 위에 있어 창문 밖을 내다볼 수 없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잠망경을 설치했지요. 혼자만의 휴식이나 비밀 장소가 필요한 어린이들과 교사 연수생들을 위해서 ‘정원 안의 그늘’과 같은 관찰 부스도 만들었어요.

 

 

애벌레 꼬리 어린이 발달 학습 센터 / 이미지© Darren Soh, Fullframephotos:

(위) 공장 같기도, 극장 같기도, 악어 모양처럼 보이기도 하는 조그만 집

(아래) 추상적인 덩어리들로 이루어진 상상놀이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 하다 보니 외부 공간까지 디자인하게 되었지요. 전형적인 넓은 운동장을 만들 수는 없지만, 상상놀이를 위한 작은 공간들을 시리즈로 배치할 수는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을 법한 추상적인 형태와 색상을 가진 덩어리들을 디자인하고, 공장 같기도, 극장 같기도, 악어 모양처럼 보이기도 하는 조그만 집도 만들었지요. 모래로 강을 연출하고, 나무들 안에 대피소도 만들었어요. 알도 로시Aldo Rossi의 디자인과 비틀스의 노란잠수함Yellow Submarine을 섞은 듯한 모양의 원뿔 언덕들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지요. 앞서 말씀드린 등고선 형태의 좌석들로 공간의 경계를 내부에서 외부로 확장했고요.

 

이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였던 제랄딘 테오-주자르트Geraldine Teo-Zuzarte책임자과 신시아 탄Cynthia Tan교장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상적이었어요. 이 프로젝트에 뚜렷한 목적의식과 학교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저희를 찾아오셨으니까요. 무엇보다도, 그분들의 수년 간의 교사활동과 교육사업 경험이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분들은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 학교Reggio Emilia Schools의 영향을 받아,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한, 열린 환경을 싱가포르의 어린이들을 위해 새롭게 조성해보고 싶어 하셨지요. 기능과 아름다움이 조화된 현대적인 디자인 말이에요.

 

그들의 바람을 종합하여 어린이들의 배움에 가장 적합한 분위기인 ‘느슨하고 연상적인loose& evocative 공간’과 곡선형 디자인이 적용되었던 첫 번째 교육센터처럼 ‘유동적이고 유연한fluid&flexible 공간’이라는 두 가지 디자인 개념을 도출해냈습니다. 미리 규정된 억압적인 공간이 아닌, 사용자인 어린이들을 위한 여지가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인 언어 자체가 추상적이어야만 했어요. 제랄딘과 신시아는 저희가 그 언어를 ‘애벌레 꼬리 어린이 발달 학습 센터’만을 위한 방법으로 해석해낼 수 있도록 믿어줬지요.

 

그 이후에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매일의 일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기나긴 대화를 나누었어요. ‘신발 정리, 화장실 들르기, 목욕하기, 장난감과 미술 도구 사용, 매트리스 보관’ 등의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말이에요. 어린이 교육 시설 디자인은 처음이다 보니 복잡하게 느껴졌지요. 이런 부담감을 떨쳐버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봤어요.

 

첫 째, 가구디자인에 집중하기: 공간을 단순하게 채우는 가구가 아닌, 내부 공간을 조성하는 가구를 상상했어요. 저희는 이 과정을 마치 ‘도구함Kit’을 만드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교실을 배치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선생님과 감독관이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었어요.

 

둘 째, 주어진 공간을 최대한 잘 활용하기: 텅 빈 사무 공간이지만 그 안에 작은 건축물들을 세워서, 좀 더 친근한 환경을 조성하면서 교육 공간을 더 섬세하게 만들었지요. 전통적인 기관 디자인을 탈피할 수 있었고, 클라이언트의 바람이 깃들인 작고 장난스러운 건축물들이 공간 안에 시리즈로 들어서게 되었어요.

 

물론, 그 밖에도 문제점들이 있긴 했어요. 사무 공간 안에 작은 건축물들을 짓는 게 교육시설 건축의 관례는 아니었으니까요. 이런 방식을 일본이나 네덜란드의 특수한 공간에서 본 적이 있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처음 시도였거든요. 클라이언트들은 즉각적으로 이 디자인의 장점을 이해했지만, 시공하는 분들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이셨죠. 저희의 디자인 언어를 가시화하기 위해 시공업체와 가구제작소와 협업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특히, 저희의 작은 건축물들이 천장의 거대한 도관 설비들과 충돌하지 않도록 시공하는 게 가장 까다로웠지요. 저희와 클라이언트의 이상향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전반에 영향력을 끼치시는 시공하시는 분들과 직접 일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대통령 배 디자인상을 받기 전에도 레켈 아키텍츠는 헤르조그&드뮈롱Herzog & deMeuron(https://www.herzogdemeuron.com)의 몽골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유명 클라이언트들의 프로젝트를 맡아 해왔지요?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 몇 가지를 더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조쉬: 헤르조&드뮈롱과 함께한 "올도Ordos(*몽골의 지역 이름)프로젝트"는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었어요. 2000년대 이후의 중국에서나 가능할법한 이상하고 비현실적인 꿈 같았고, 계획안에 온갖 신기한 아이디어들이 잔뜩 쓰여 있었지요. 사실 중국의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 http://aiweiwei.com)의 사무실에서 프로젝트 초청장을 받았을 때, 이건 사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몽골 사막 한가운데 300여 평의 땅에 100여 개의 집으로 구성된 마을을 만든다는 것은 예술가나 좋아할 만한 생각이지, 저희한테는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어요. 사회적 경제적인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아 보였죠.

 

 

올도 프로젝트 Ordos 100, Villa 081의 집 한 채를 위한 다양한 모델들 / 이미지© Darren Soh, Fullframephotos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재미난 경험을 얻었고, 저희가 좋아하는 집 한 채의 디자인을 도출해낼 수 있었어요. ‘거대한 집 한 채’를 절대적으로 ‘다른 형식을 가진 집 두 채’로 생각하고 켜켜이 쌓아 올리는 아이디어가 정말 좋았어요! 만들어진 집 한 채는 전통적인 집이 엉성하게 만들어진 모양이고, 다른 한 채는 미래에 살던 이상 생명체가 묻혀있는 고고학적인 발굴현장처럼 만들어졌어요. 활력이 넘치는 디자인이었고, 아이 웨이웨이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줬어요. 얼마 전, 올도에 대한 BBC방송을 봤어요. 새로운 개발단지 안의 집들이 모래바람으로 훼손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돈의 논리에 지배되지 않는 비현실적이고 아름다운 마법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지요.

 

 

올도 프로젝트 Ordos 100, Villa 081 / 이미지© Darren Soh, Fullframephotos:

(첫 번째) 쌓아 올려진 두 집

(두 번째) 작품 모델의 단면

(세 번째) 근접 공원에서 바라본 모습

(네 번째) 모델의 단면도

 

 

에르메스Hermes와 함께한 작업도 소개해드릴 수 있겠네요. 에르메스는 정말 멋진 파트너이고, 전통적이면서도 실험적인 브랜드예요. 에르메스는 다른 대체품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보수적인 프랑스 럭셔리에 기반을 둔 시리즈를 선보이지요. 고가로 거래되기 때문에 그들만의 환상적인 세계를 창조하는데 많은 시간과 재원을 투자할 수도 있고요. 에르메스에는 마법의 숲에서 길을 잃은 것만 같은, 끊임없는 위트와 놀라움이 있어요.

 

 

레켈 아키텍츠의 에르메스를 위한 쇼윈도우 디자인 / 이미지© Darren Soh, Fullframephotos:

(첫 번째) 에르메스 셔틀콕

(두 - 세 번째) 에르메스 동물 시리즈

(네 - 다섯 번째) 에르메스 공 시리즈

 

 

에르메스와는 삼 년 동안 동남아시아에 있는 상점 디자인부터, 이벤트 기획, 그래픽 디자인과 팝업 샵 디자인을 해왔어요. 솔직히 에르메스가 호락호락한 클라이언트는 아니에요. 디자인 요소 세세한 부분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원조 디자인이기를 요구하니까요. 또, 에르메스의 문화적 맥락과 결이 맞으면서도, 예상을 벗어난 새로운 디자인이어야 해요. 에르메스는 매장마다 다른 디스플레이를 해요. 디자인만 생각하면 놀랍지만, 대량생산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말이 안 되는 거죠.

 

에르메스는 디자인에 많은 기대를 거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품위있는 클라이언트예요. 디자이너와 한 번 인연을 맺으면 후견인처럼 오랜 기간 함께 재미난 컨셉으로 작업을 이어나가지요. 잔디도 없는 현장에 하룻밤 있다가 철거될 ‘비밀의 정원’을 디자인한 적이 있어요. 화원에서 식물을 빌리고 다음 날 돌려주기로 마음먹었지요. 그 하룻밤을 위해 대지, 잔디, 나무, 수풀을 총동원한 열대정원을 만들었어요. 토피어리 조각에 울타리로 만든 20M가 넘는 아치와 나무 밑동들까지 설치했지요. 방문객들이 에르메스의 창문을 넘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려고, 기하학적으로 만든 나비와 버섯들을 설치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어요. 아무 클라이언트나 디자이너에게 이런 자유를 주지 않지요.

 

 

레켈 아키텍츠의 에르메스를 위한 "비밀의 정원" / 이미지© Darren Soh, Fullframephotos:

(첫 번째) 라셀 예술대학LaSalle School of the Arts의 인공 잔디 위에 만들어진 비밀의 정원

(두 번째) 토피어리 연출

(세 번째) 기하학적 나비 연출

(네 번째) 기하학적 버섯 연출

 

 

레켈 아키텍츠는 개인 소유의 주거 환경 디자인부터 공공장소나 교육공간, 인테리어, 가구 디자인부터 디자인 연구를 넘나들면서, 스타일도 주제도 확연히 다른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는데, 프로젝트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시고 진행하시나요? 레켈만의 디자인 철학이나 업무 방식이 있으신가요?

조쉬: 저희가 프로젝트를 고른 게 아니고, 프로젝트가 저희를 선택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레켈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들어오는 프로젝트를 마다치 않았어요. 우리가 선택해서가 아니라, 이 바닥에서 구르다 보니 다학제적인 디자인 스튜디오가 되어버린 거예요. 운 좋게도 레켈이 성장하면서, 저희의 이런 다학제적 캐릭터가 더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택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무엇이나 다 해드려요.’ 하던 저희가 전방위 스튜디오가 된 것이지요.

 

 

레켈 아키텍츠의 주거-문화 공간 프로젝트 "갤러리 하우스", 2012년 / 이미지© Darren Soh, Fullframephotos:

(첫 번째) 입면의 아래층은 갤러리이고 위층은 주거공간이다.

(두 번째) 갤러리의 위층은 침실이 차지하고 있다.

(세 번째) 욕실을 계단 사이 공간과 욕실을 분리하는 금속 가림막

(네 번째) 갤러리 위층에 매달려 있는 침실

 

 

이제는 더 신중해질 때가 왔지요. 솔직히 주어진 예산이나 규모에 혹해서 프로젝트를 선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대신, 말이 잘 통하고 저희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법한 클라이언트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위한 비결의 80%는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관계에서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클라이언트의 성품만큼이나 클라이언트가 운영하는 기관의 짜임새도 중요하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디자인 결정에 좌지우지하는지, 그 사람들이 같은 동기와 목표를 가졌는지, 리더가 얼마나 명확한 사람인지도 살펴야 해요.

 

저희와 함께했던 애벌레 꼬리 재단the Caterpillar’s Cove과 리엔 재단the Lien Foundation은 좋은 클라이언트의 본보기예요. 둘 다 사려 깊은 세계관에 바탕을 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아이디어와 카리스마를 가진 클라이언트였고, 디자인의 힘을 믿고 있었으며, 각자의 고집을 넘어선 열린 토론이 가능했어요. 이런 경우는 클라이언트와 만나면서 배우는 게 생기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둔 협업이 가능하지요.

 

싱: 저희의 일하는 방식에 있어,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것’은 참 중요해요.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이미 프로젝트의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하는 것 같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모든 프로젝트를 ‘백지’ 상태로 시작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자신들은 그렇다고 말하는 디자이너들도 있지만, 말이 안 되죠. 저희도 여러 가지에 흥미가 있고,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고, 디자인에 대한 강박관념도 있기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그런 게 다 녹아 나오기 마련이에요. 그렇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큼은 결과물을 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런 유연성은 클라이언트와의 소통과 그들의 기여도에 달려있어요. 결과적으로, 확실하게 협력 가능한 클라이언트와의 만날 때 프로젝트를 잘 이끌어갈 수 있어요.

 

 

레켈 아키텍츠가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시던 두 분이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두 분의 배경이 참 달라요(*조쉬는 미국 시카고에서 자라고 언어학과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싱은 영국과 싱가포르에서 자라고 회화를 전공했다).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하신 지 1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어쩌면 두 분의 성향이나 관점이 다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한 팀으로 조화를 이루시나요?

조쉬: 싱과 저는 솔직히 거의 정반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잘하는 것도,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요. 싱은 상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지만, 저는 단편적인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쫓는 편이지요. 싱은 레켈 아키텍츠의 ‘좌뇌’이고, 저는 ‘우뇌’라고 서로 농담을 해요. 부부가 운영하는 다른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의 경우와 상반되게, 아내인 싱이 전형적인 남성의 역할을 담당하는 동안, 남편인 저는 컨셉과 심미성에 매달리지요.

 

저희는 참 다르지만 그래도 건축 디자인만큼은 비슷한 취향과 저희가 하는 일에 대한 공통의 가치를 가지고 있고, 저희 작품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가져가면 좋겠다는 이상향을 공유하고 있어요. 덕분에, 저희의 다른 점이 잘 상쇄가 되지요. 프로젝트의 컨셉과 가치에 대한 초반 논의를 마치고 나면, 그 후로는 서로 다른 부분을 담당해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우선순위에 따라 어떤 것에 더 집중해야 할지 살펴요. 부모가 되면서 배우게 된 것이지만, 한 팀에서 디자이너로 일 할 때도 적용이 되네요.

 

 

두 분이 일과 삶을 모두 함께하시는데, 부부로서의 관계와 자녀들이 두 분의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끼치시는지 궁금합니다. 일과 삶을 조화롭게 병행해나가며, 레켈 아키텍츠를 이끌어나가시는 비법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싱: 아이들이 저희 디자인에 정말 큰 영향을 끼쳤어요. 저희 초창기 작품들을 살펴보면 차갑고 머리로 생각한 흔적이 역력해요. 그런 외부의 평가를 계속 받았지만, 그 당시 저희는 저희가 공부했던 교육기관에서 추구하던 학문적이고 철두철미한 건축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지 별로 개의치 않았어요.

 

저희 아이들은 씩씩하고 질문이 무척 많아요. 엄마·아빠는 왜 이 건물이나 물건을 좋아하냐고 계속 묻지요. 그럼 이해가 되게 답변을 해줘야 해요. 다섯 살짜리한테 디자인을 설명하다 보면, 저희가 설명을 자세히 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호감이나 즐거움 같은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지요.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하는 프로젝트는 아이들을 만족하게 할 수 없고, 저희도 만족하게 할 수 없더라고요. 다섯 살짜리가 저희 프로젝트를 즐기면, 어떤 배경이나 연령대의 사람들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저희 작업이 좀 더 아이들처럼 장난스럽고 재미난 방식으로 변해가기 시작하더라고요. 이제 와서 저희 초기 작품을 보면, 왜 그렇게 혼자 심각하고 대단했는지 솔직히 거슬려요. 저희 두 사람의 사람 됨됨이나 우리 가족 특성과 이제는 맞지 않는 거죠.

 

저희 두 사람은 이제 긴장을 풀고 덜 심각하게 디자인을 대하고, 저희 딸 밀라Mila와 아들 레오Leo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요.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 디자인을 하고, 장애를 가진 어린이나 알츠하이머를 가지신 분들을 위한 디자인을 하면서, 저희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정말 중요해졌어요.

 

 

레켈 아키텍츠의 장애어린이와 일반어린이의 차별 없는 교육을 위한 AWWA 통합형 학교 프로젝트, 2015년 / 이미지© Darren Soh, Fullframephotos: 부부의 딸 밀라(7세, 빨간 옷), 아들 레오(5세, 초록색 상의와 파란색 하의) 외 친구들의 학교 방문 현장

 

 

조쉬: 일과 삶의 균형은 저희도 아직 배워가는 중이에요. 어떨 때는 성공한 것만 같은데, 실패할 때도 있지요. ‘아이들과 있을 때, 업무 시간 이후에는 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저희 나름의 기본 수칙을 지키고 있어요. 매일 저녁을 같이 먹고, 아이들의 숙제를 도우며 함께 놀기 위해, 일을 적당한 시간에 마치려고 노력하지요. 이렇게 살기 위해 저희 두 사람의 외부 사회 활동은 최대한 자제해야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하기에 괜찮아요.

 

일이 힘들어지면 아이들에게 솔직히 이야기하고 왜 그런지 설명을 해요. 그리고 마감된 프로젝트는 아이들에게 구경을 시켜주면서 설명을 해줘요.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나 에르메스 쇼윈도우 작업의 경우, 아이들이 무척 즐겼어요.

 

 

가장 최근에 완성했거나 진행 중인 재미난 작업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싱: 알츠하이머를 가진 어르신들을 위한 보호센터 시리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아펙스 하모니 롯지Apex Harmony Lodge(http://www.apexharmony.org.sg)라고, 재산 정도와 상관없이 어르신들을 모시는 몇 안 되는 싱가포르의 알츠하이머 전문 센터예요. 괜찮은 곳이고, 스텝들도 좋지만, 알츠하이머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15년 전에 시설이 세워졌어요.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래픽, 제품, 가구 디자이너들과 협업하고 있고, 패션 디자이너와도 함께 일해볼 생각이에요. 어르신들이 저희의 디자인으로 좀 더 쾌적한 환경과 편리한 일상을 누리시는 것을 보고 싶을 따름이지요. 다른 알츠하이머 증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아가고, 디자인이 그들의 환경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어르신들이 독립적이고 침착한 삶을 영위하실 수 있는지 탐험하는 과정은 흥미로운 작업이에요.

 

알츠하이머를 가지신 분들이 색상을 보는 방법을 예로 들자면, 짙은 배경과 고광택 시각물은 그분들께 스트레스를 유발해요. 왜냐하면, 짙은 배경은 구멍이 난 것으로 이해되고, 고광택은 젖은 바닥같이 보이거든요. 저희는 이런 요소들을 더 잘 탐구하고, 그분들의 환경이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대안을 고민하지요. 이런 공동의 목적을 위해 다학제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가구가 어떻게 그분들의 사회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 셔츠의 버튼을 찍찍이로 바꾸는 게 그분들의 독립성 향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와 같은 것들이지요. 결과물이 너무 기대돼요!

 

 

10년 뒤에 레켈 아키텍츠는 어떤 모습일까요?

조쉬: 모든 것이 유동적이라 10년 뒤에 저희가 디자인을 하고 있을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레켈 아키텍츠는 마땅히 그리되어 있어야 하는 모습으로 변해있겠지요. 저희는 레켈 아키텍츠나 저희 두 사람에 대해 어떤 특정한 상을 그리고 있지 않아요. 특히나 "점점 더 큰 프로젝트를 맡아야겠다, 더 중요한 계약을 맺어야겠다." 같은 것들은 저희의 관심사가 아니에요. 저희는 작은 프로젝트들을 해나가는 데에 더 열중해요. 작은 프로젝트에서 큰 아이디어가 나오니까요.

 

작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많은 시간을 쏟았고, 앞으로도 어쩐지 돈 안 되지만 재미난 연구 프로젝트를 하고 있을 것만 같아요. 저희는 싱가포르의 빠른 디자인 발전 속도가 걱정되고, 그래서 저희만큼은 더 적은 프로젝트를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내 가려고 해요. 일 년에 두-세 개 정도의 작은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공부하고 학문적인 글을 쓰는데 할애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레켈 아키텍츠의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을 위한 가구 프로젝트 / 이미지© Jansen Teo :

1950년대에 만들어진 시청과 대법원에 있었던 가구의 복제품에 현대적인 소재와 마감처리 기법을 덧입힌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어떠한 작업물이라도 그들만의 디자인 언어로 풀어내는 재주를 가진 레켈 아키텍츠, 그들의 디자인이 사실은 부부가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서 다듬어진다는 사실은 큰 시사점을 가져다준다. 다양한 사람들, 특히나 싱가포르 사회 약자들을 위해 해 나가는 그들의 디자인과 다학제적 연구가 한국에도 좋은 자극이 되었으면 싶다.

 

 

레켈 아키텍츠의 사무실 / 이미지© Darren Soh, Fullframephotos

 

 

 

 

리포터_차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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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kker Architects #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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