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 젓가락
젓가락 두 짝은 항상 똑같아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난 디자인. 음과 양의 이치에 따라 한쪽은 올록하고 다른 쪽은 볼록하게 만들어 음식이 잘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손으로 잡기 편하고 음식을 더 정확하게 집을 수 있도록 젓가락 끝부분을 마름모꼴로 디자인하고, 마름모 꼴을 꽃 모양으로 발전시킨 것은 조형적인 면은 물론이고 젓가락의 본래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젓가락 박사’ 정미선은 “먹는 문화가 달라지면 먹는 방식도 먹는 도구도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한국의 주류 문화를 반영한 폭탄주 전용 잔도 나오는 세상이 아닌가. 국물이 있는 면용 젓가락은 특허를 받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제품화되지 않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음식의 특징을 고려해 가장 편하게 젓가락질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 정미선의 디자인은 젓가락질이 서툴러 몇 번이고 음식을 집었다가 입에 가져가기에 실패했던 이들, 특히 젓가락 문화가 생소한 외국인들도 음식을 편하고 재밌게 즐기는 데 큰 도움이 될 법하다.
음식과 함께 문화도 나르는 젓가락 디자인
우리나라의 젓가락 디자인이 아직 실험 단계에 머무는 동안, 일본의 젓가락 브랜드 하시쿠라 마츠칸(Hashikura Matsukan)은 디자인 회사 넨도(Nendo)와 함께 2013년 젓가락 컬렉션을 선보였다. 숟가락 없이 젓가락만을 사용하는 일본은 밥공기를 들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기 때문에 식기구로 가벼운 나무 소재를 선호한다. 젓가락 역시 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옻칠과 젓가락 공예로 잘 알려진 지역인 후쿠이 현 오바마 시에서 1922년 창업한 하시쿠라 마츠칸은 오랜 시간 축적해온 독자적인 기술력에 넨도의 디자인을 더해 일본다움이 묻어나는 나무 젓가락을 완성했다.
라센(Rassen)
나선형으로 깎은 두 짝의 젓가락이 하나로 합쳐진다. 하시쿠라 마츠카가 쌓아온 기술력과 도전 정신, 그리고 넨도의 디자인이 모여 완성된 젓가락. 젓가락 하나만으로도 일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사진 ⓒ Akihiro Yoshida>
특히 나선형으로 깎은 두 짝의 젓가락이 하나로 합쳐지는 ‘라센(Rassen)’은 숙련된 장인의 솜씨와 첨단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음식을 집는 부분이 테이블에 닿지 않도록 끝부분을 얇게 깎은 ‘지카오키(Jikaoki)’나 젓가락 두 짝을 블록처럼 딱 들어 맞게 디자인하고 안쪽에 자석을 넣어 한 세트로 쉽게 휴대하고 수납할 수 있도록 한 ‘카미아이(Kamiai)’는 본래 젓가락 기능은 물론이고 음식을 먹지 않는 순간까지 고려한 젓가락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일 것도 없이 무명씨가 쓰임에 맞게 만들었을 사소한 젓가락 디자인이지만, 하시쿠라 마츠칸은 매일 먹는 음식을 다루는 식도구에 가장 적합한 재료에 대한 끈질긴 연구와 새로운 도전으로 일본의 식문화와 공예를 시대에 맞게 잘 버무려냈다.
지카오키(Jikaoki)
음식을 집는 부분이 테이블에 닿지 않도록 끝부분을 얇게 깎아 만들었다. 젓가락 받침대 없이도 위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사진 ⓒ Akihiro Yoshida>
카미아이(Kamiai)
젓가락 두 짝을 블록처럼 딱 들어 맞게 디자인하고 안쪽에 자석을 넣어 한 세트로 쉽게 휴대하고 수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 Akihiro Yoshida>
일상에서 쓰이는 평범하고 단순한 물건일수록 디자인하기 어렵다. 젓가락도 그중 하나다. 조형적인 면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면은 물론이고 우리의 식문화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 눈에 띄지 않아도 쓸모에 의해 사용하는 평범한 물건일수록 디자인이 더욱 중요하다. 밥 먹듯이 매일 사용해야 하는 물건인데 불편하면 쓸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너무 오랫동안 그 모습으로 사용해왔기에 불편함마저 익숙해져 디자인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처럼 작고 사소한 것들이 개선되었을 때의 효과는 기대 이상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어렸을 때부터 젓가락질을 했던 우리조차 제대로 못 하는 젓가락질인데, 포크와 나이프가 익숙한 외국인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식을 알리는 노력만큼이나 식문화를 잘 반영한 식도구 디자인 또한 생각해봐야 할 때다. 훗날 한식이 세계에 널리 알려질 때, 그에 걸맞은 식도구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