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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협업 공간의 디자인

 

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협업 공간의 디자인

창조와 협력의 힘을 이끄는 발원지

 

 

 

공유의 정신을 품은 공간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자신의 저서 [3차 산업혁명]에서 SNS 등 글로벌 네트워크가 교류의 욕구와 공동체에 대한 추구를 촉발했고, 이런 패러다임과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수평적 경제 기회가 ‘소유’라는 자본주의의 중심 원리를 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고전 경제 이론의 신봉자들에겐 이런 주장이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느새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드는 ‘공유 경제’ 모델들을 보고 있자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오픈 소스를 통해 DIY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제품을 세상에 등장시키기도 한다. 또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자동차를 공유하거나 에어비앤비에서 숙소를 구하는 일도 예전에 비하면 무척 자연스러워졌다. 이런 추세와 맞물려 새롭게 떠오르는 공간 유형이 코워킹 스페이스와 메이커스페이스 같은 협업 공간이다. 이 공간들은 최근 불어 닥치고 있는 스타트업 붐이나 메이커스 운동 등과 접점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공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수평적 경제모델의 아이콘, 코워킹 스페이스


한 지붕 아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사무 공간을 이르는 코워킹 스페이스는 새로운 공간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코워킹 스페이스의 확산 속도는 실로 놀랍다. 미국의 경우 2012년과 2013년까지 불과 2년 새 400%의 성장세를 기록했고, 영국과 독일, 일본, 중국 등지에서도 새로운 오피스 문화로 확실히 자리 잡은 모습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리랜서 엔지니어로 활동하던 브래드 뉴버그(Brad Neuberg)는 혼자 일하는 것에 외로움과 한계를 느껴 2005년 최초의 코워킹 스페이스 ‘햇 팩토리(Hat Factory)’를 탄생시켰다. 초기 코워킹 스페이스는 주로 개발자들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디자이너, 작가, 뮤지션, 비즈니스 리더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메이크시프트 소사이어티(Makeshift Society)’ 샌프란시스코

개발자의 천국인 샌프란시스코지만 ‘메이크시프트 소사이어티’의 창업자 레나 톰(Rena Tom)은 개발자가 아닌 프리랜서 작가와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며 코워킹 스페이스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

 

샌프란시스코와 브루클린에 거점을 둔 ‘메이크시프트 소사이어티’는 진화하는 코워킹 스페이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30평도 채 되지 않는 협소한 2층짜리 공간에서 시작한 이들은 핸드메이드 제품 판매 전략이나 아티스트의 커리어 관리 노하우 등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수공예가, 예술가들을 상대로 한 실용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큰 인기를 모았고, 이런 성공에 힘입어 브루클린의 한 오래된 연필공장 창고를 사들여 2호점까지 오픈했다.

 

‘메이크시프트 소사이어티’ 브루클린

킥스타터를 통해 설립 기금을 마련했다. 공간 한편에는 툴 라이브러리를 마련해 창작 활동에 필요한 기구들을 대여해준다. 워크숍 외에도 정기적으로 조찬 모임이나 저녁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것이 비단 먼 나라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코워킹 스페이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콧 둘레이(Scott Doorley)와 스콧 위트호프트(Scott Witthoft)가 스탠퍼드 대학 산하 디스쿨에서 진행한 5년간의 공간 실험을 바탕으로 쓴 책 [메이크 스페이스: 창의와 협력을 이끄는 공간 디자인]은 공간의 구성이나 집기의 형태가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효과가 있음을 강조한다. 올해 1월 성수동에 문을 연 ‘카우앤독(Co Work and Do Good)’의 공간에서는 이런 배려와 기획력이 느껴진다.

 

카우앤독

‘Every Room task Different Story(모든 공간이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말은 ‘카우앤독’의 공간적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yadaphoto

 

 

‘카우앤독’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카우앤독’의 아이덴티티 및 사인물. 그래픽 디자인은 에그플랜트가 맡았다.


건축가 조재원이 이끄는 01스튜디오는 이곳을 디자인하면서 각기 다른 형태의 업무 방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다시 말해 조용히 홀로 일할 수 있는 공간부터 자연스러운 협업과 교류가 일어날 수 있는 공간까지, 다양하게 구획을 나누고 협업의 DNA가 스며들 수 있도록 작은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공을 들인 것이다. 자체 제작한 1층 개방형 카페의 테이블이 그 예인데, 비스듬하게 경사진 각도로 제작한 이 테이블은 서로 시야를 가리지 않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해주는 한편, 모듈 형태로 모임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배치할 수 있다.

한편 건축과 공간디자인 자체가 코워킹 스페이스의 성격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지난 4월 노량진 인근에 문을 연 코워킹 스페이스 ‘무중력지대 대방동’이 대표적. ‘카우앤독’이 소셜 이노베이터를 꿈꾸는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공간이라면, ‘무중력지대’는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무중력지대 대방동’

고시원이 밀집한 노량진 인근에 자리하고 있어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간으로서 활용 가능성이 큰 공간이다. 코워킹 스페이스 역할을 하는 1층의 상상지대는 일종의 다목적홀로 이용된다.


타깃의 연령대가 분명한 만큼 건물 역시 그들의 취향과 성격을 반영하는 데 집중한 모양새다. 무중력지대 대방동 건물은 해상운송용 ISO컨테이너 12개를 쌓아 올려 만들었는데, 청년들의 역동성과 활력을 나타내는 건축적 메타포다. 외관에 주황색을 입힌 것 역시 이런 활기찬 느낌을 반영하기 위함이라고.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가능케 하는 공간 구성과 디자인은 수평적 경제모델의 확산에 이바지하고 있다.

 

 

메이커들을 위한 회합의 장소, 메이커스페이스


코워킹 스페이스가 디지털 노마드족의 출현과 맞물려 있다면,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공동 작업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디지털 메이커들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메이커스: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사람들]을 저술한 3D 로보틱스의 CEO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은 웹 세계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무중량 경제는 물리적 재화를 생산하는 제조업 경제에 비하면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디지털과 개인 제조가 결합하여 산업화가 이뤄질 때 비로소 세상을 변화시킬 폭발력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커스페이스는 진정한 의미의 산업 혁명을 이루는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공간에서도 협업이라는 키워드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단순히 공간이나 자재, 장비를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들과의 접촉점을 만들어내며 그 안에서 새로운 창조성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메이커스페이스의 진정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팹랩 서울

제작 장비, 미디어아트, 피지컬 컴퓨팅 등 메이커 무브먼트와 관련한 다양한 워크숍을 제공한다. 매주 목요일에는 ‘팹랩 서울’에 대한 소개를 하는 오픈데이도 열린다.


메이커스페이스의 시초는 MIT 미디어랩의 제작 실험실 ‘팹랩(FabLab)’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제작 장비들을 한데 모아놓은 이 공작소는 디지털 제조 기술의 접근과 교육의 민주화를 주된 기치로 내걸었다. 현재 미국 로레인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 영국 맨체스터 등 전 세계 36개국 130여 곳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지난 2013년 종로구 세운상가 5층에 ‘팹랩 서울’이 문을 열기도 했다.

초기 메이커스페이스 형성에 가장 크게 일조한 이들은 MIT 재학생과 동문 등의 화이트 엔지니어였지만, 차츰 다양한 형태로 진화∙발전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공동 작업장 ‘테크 숍(Tech Shop)’이 큰 호응을 얻었고, 일본에서는 2012년 3월 작업장과 카페를 결합한 이색 작업장 ‘팹카페(FabCafe)’가 문을 열기도 했다.

 

팹카페

시부야에 자리한 ‘팹카페’는 내부에 대형 레이저 절삭기가 놓여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카페다.


레이저 절삭기와 3D 프린터 등을 갖춘 ‘팹카페’는 일정 금액을 내면 누구나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일반적인 상업 공간과 메이커스 운동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인 것. 주최 측은 워크숍과 토크 이벤트, 파티 등을 열어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 강화를 돕는다. 오픈 2년 만에 7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팹카페’를 찾았으며 일본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방콕과 대만, 바르셀로나 등지에 신규 지점을 오픈하기도 했다.

 

라인웍스

‘라인웍스’는 아직 본격적인 워크숍을 구성하진 않았으나 예술가들이 모인 문래동에 자리했다는 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메이크스페이스다.


한국에서는 아직 본격적인 기류가 형성되고 있진 않지만 조금씩 곳곳에서 유사한 움직임이 엿보인다. 국립과천과학관의 무한상상실, 서울 영상미디어센터 등 아직까지는 대부분 기관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고 있지만, 문래동의 ‘라인웍스(Lineworks)’처럼 디자이너나 예술가를 대상으로 민간이 공간을 운영하기도 한다.

또한, 디자인 스튜디오 제로랩의 작업실처럼 지인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제한된 형태의 협업을 진행하는 메이커스페이스도 있다. 제로랩은 주변 디자인 스튜디오에 작업 공간을 개방하고 간헐적으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 간의 협업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제는 작업 공간의 공유로 분업 이상의 적극적인 협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제로랩의 작업실

오디너리피플, 일상의실천 등 비슷한 규모의 디자인스튜디오와 협업이 이뤄지는 장소다.

 

탁구공

지난 1월 두산갤러리에서 진행한 전시 <다른 방식의 ○>에서 선보인 작품 ‘탁구공’은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오디너리피플이 제로랩과 협업한 작품이다. 아이디어는 오디너리피플이 디자인의 큰 틀은 제로랩이 잡았으며, 제작 역시 두 스튜디오가 함께 진행했다.


이것이 비단 디자인 스튜디오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니다. DIY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이나 스몰배치1) 전략을 취하는 스타트업에도 메이커스페이스는 아주 유효한 공간이 되어준다.

 

 

노동의 형태를 재구성하다


코워킹 스페이스와 메이커스페이스의 빠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이들 공간이 기존 오피스와 공장 시스템을 완벽하게 대체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이 기존 업무 및 생산 체제를 대체하기까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협업 공간이 작업이란 폐쇄적 네트워크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고정관념에 미세한 균열을 내어 노동의 방식과 형태를 다변화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협업 공간이 정말 시대를 바꿀 단초를 제공할 것인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으로 남을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지만 말이다.

 

 

발행일 : 2015. 06. 04.

 

 

출처

  • 최명환

    세종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나와 홍익대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사회적 디자인 그룹 세이브 애즈의 멤버 및 리더로 활동했으며 2012년부터 현재까지 월간 <디자인> 기자로 일하고 있다. 공간과 가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의 디자인을 글로 다루고 있다.

  • 제공 한국디자인진흥원

    유형의 사물에서 무형의 경험까지, 생활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디자인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본 연재는 네이버캐스트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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