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디자이너 엑토르 기마르(Hector Guimard)가 디자인한 파리의 지하철역 출입구 <출처: (cc) Steve Cadman at commons.wikimedia.com>
산업화에 따라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도시는 주거지와 상업, 사무 지구로 역할에 따라 구획되었다. 대중교통은 주로 외곽에 있는 주거지구에서 도심으로 이동하는 수요에 따라 생겨났는데, 버스와 지하철이 대표적이다. 주로 서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정부의 주요 정책의 일환으로 비교적 저가의 운임으로 운영되며, 공공재로서의 공공성을 바탕에 둔다.
최초로 대중교통 서비스를 공공디자인으로 풀어낸 사례는 엑토르 기마르의 파리 지하철 시설물 디자인 프로젝트였다. 기마르는 1900년부터 1913년까지 총 141개의 파리 지하철역의 입구시설물에서 가판대, 벤치, 가로등, 철책, 가드레일의 디테일까지,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을 적용해 총체적으로 디자인했다.
대중교통 시설 디자인의 경우 정거장 하나의 시설물뿐만 아니라, 여러 정거장을 아우르는 정체성을 구현해야 한다. 즉 시스템화가 필요한바, 파리 지하철 프로젝트는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표준화된 디자인 시스템을 대중교통 시설 디자인에 적용한 첫 번째 사례로 꼽힌다.
이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지하철역 디자인 개선 작업이 이뤄졌다. 1980년대 초반 낙후된 시설 개선 및 낙서 제거에 나선 뉴욕의 지하철 환경 개선 사업과 고전 예술 작품 이미지를 차용한 벽화 및 그래픽 시스템 개선 작업을 시행한 런던 지하철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경험은 온갖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총체적인 무엇이다. 우리의 경험에는 감각과 판단, 그리고 여러 다른 경험들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공공서비스는 경제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서비스의 질을 높여 이를 경험하는 대중의 만족도 향상을 우선시한다.
지하철역 프로젝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대중교통의 이용 경험을 개선하는 디자인은 지하철역 또는 버스 정거장과 같은 ‘대기공간’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런 대기공간은 대중교통 서비스 자체와는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대중교통이 원활한 이동을 통해 인구를 도시의 각 장소로 순환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정거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교통 서비스 이용객들이 이동에 앞서 ‘기다림’을 만족스럽게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다림’이라는 행위를 분석해 보자. 여기에는 공간적 속성과 시간적 속성이 중첩된다. 공간의 측면에서는 외부 환경 요인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공간 구조 구축이 중요하고, 시간의 측면에서는 사용자 ‘행동’에 따른 다양한 경험을 충족시켜야 한다.
구조적으로 아름다운 정거장
공간적인 측면에서 지하철역은 지하 공간이라는 제약 탓에 구조 자체를 바꾸는 등의 전면적인 기능 개선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대대적인 구조 디자인보다는 2차원 그래픽 요소에 한정하여 벽면이나 작은 부수적 구조물 같은 요소 개선에 치중하는 편이다. 반면에 버스 정거장은 대부분 야외 공간에 3차원 구조로 만들어진다. 버스 정거장을 피난처 혹은 임시보호소라는 뜻의 셸터(shelter)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사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일반적인 건축물 구조와는 다르지만, 정거장은 지붕을 필수 요소로 한 간이 건축물의 역할을 맡게 된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io)는 건축의 3대 조건으로 편리함과 안전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꼽았다. 이는 현대 건축에도 적용 가능할 터, 간단한 건축물인 버스 정거장에도 대입해 볼 수 있다.
‘아름다움’은 지하철역에 비해 특히 버스 정거장에서 혁신적으로 구현이 가능하다. 크기와 형태 변형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로운 지상의 간이 구조물이기에, 건축적 ‘구조’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셸터로서의 기본 기능만 충족된다면,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
스위스 아라우시의 중앙역 버스 정거장은 많은 버스 노선이 한꺼번에 몰리는 역전 정거장의 특성상, 세 개의 차선에 걸쳐 있다. 이 세 개의 차선을 모두 덮는 거대한 천장이 이 정거장의 특징이다. 전체를 하나의 구조물로 덮되, 가운데 부분은 뚫려있는 비정형의 유기체 형태로 만들어 바람과 자연광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하여 답답함을 없앴다. 얇은 기둥으로 지지된 채 햇살을 투사하는 천장 구조물은 멀리서 보면 허공에 떠 있는 구름 같기도, 가까이 들여다 보면 기포가 가득한 탄산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디자인으로 가벼움의 시각 효과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