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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_야경 혹은 생태

새롭게 단장된 청계천을 걸어보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광화문에서 마장동까지 쌀쌀한 가을 날씨 속에서 노르스름한 불빛이 참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아직은 새로 복개 된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사람도 많이 있기에 조명구경 사람 구경에 심심치 않게 걸을 수 있죠. 가까이에 물이 있어서 그런지 공기도 괜찮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청계천을 걷다보면 그 주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푹 내려앉은 개울 밖에는 하늘과 건물만 보입니다. 두타의 휘영청 밝은 불빛은 마치 에니메이션 ‘아키라’에 대한 오마쥬처럼 느껴질 정도죠. 그렇게 청계천 밖은 마치 전혀 다른 세계 같아 보입니다. 청계천은 청계천에 밀집된 수많은 상가들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격리된 공간입니다. 상가들의 간판도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예전의 모습과 그리 달라져 보이지도 않죠. 오히려 지금의 간판들이 이전의 간판들이 생겨나고 철거되기까지의 시간만큼이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아크릴로 짜여진 글자들이 알루미늄 박스보다 잘 견딜 수는 없을 테니까... 하긴 청계천을 걸으면 밖의 상가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밤이 돼야 반짝이는 간판들... 그나마 불을 켜놓은 간판도 얼마 안 되지만, 야간에는 정주인구도 보행자도 거의 없는 청계천 상가 주변에서 간판의 불을 밝혀야 할 필요도 없죠. 무엇을 위한 개발이었을까요? 조사하러 갔다가 쫓겨났던 일화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도시는 도화지가 아닌데...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이 무시되고 짓밟혀야 한다면... 그래서 사는데 지장이 생긴다면... 물론 그런 바닥에서 살다보면 엉뚱한데다가 화풀이를 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마련이니... 경제도 안 좋은데... 청계천의 상인들에겐 간판이라는 좋은 안주거리가 생긴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생산자와 소비자는 서로의 활동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맞추어 가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전의 간판들은 그저 만드는 사람들이 무식해서 울긋불긋 유치한 색을 쓴 걸까요? 음식점과 복덕방의 타이포그라피가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색을 쓰고 있던가요? 우리가 길을 걷다가 약국을 찾을 때, 약국이라는 글자를 보기도 하지만, 멀리서 보이는 약국스러움을 보고 찾아간 적은 없었을까요? 하긴 그건 그냥 경향성일 뿐, 그리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 그런 거 잘 모르는 사람은 그게 그걸로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차이를 가지고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다주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건 자신의 선택이고, 자신만의 위안을 가질 수 있는 그 무엇이었겠죠.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에 학습당한 소비자들도 작고 빨간 글자 같은 그런 조그마한 차이에 친구들에게 어깨를 으쓱하기도 하고... 별 것 없는 세계이지만, 어느 한 쪽의 생각만으로 그것도 그 생태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인 강요를 당한다면,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관계와 여기서 파생되는 정보는 교란될 수밖에 없습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간판들 속에서 단골 매장의 간판을 찾는 건, 이제 간판보다는 청계천의 새로운 다리나 골목 몇 번째 집이라는 식으로나 가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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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청계천의 커뮤니티는 많이 짜증날 것 같습니다. 청계천과 상관없이 단순한 구경을 위해 혹은 건강을 위해 새로 단장된 청계천을 걸어다니는 저 같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과 격리된 채 맑은 수돗물 냄새에 그나마 자연을 느끼려 안달하고 있고... 그나마 일본의 어느 중소도시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조명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우리도 이만큼 발전했네... 하면서?
어쨌든 변화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합니다. 저같은 사람들에게 변화는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죠.
하지만, 누구에 의해서, 누구를 위해서라는 걸 잊지 않아야...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나마 좀 낮아지겠죠.

(그러면서도 ‘각’안나오는 동대문너머의 문제지역? 보다는 광화문쪽 사진을 싣는 걸 보면, 저도 참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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