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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험의 장소로 선택된 공간, 한옥

북촌 거리를 거닐다 보면 전통적인 한옥의 이미지와는 상충하는 화려한 쇼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제품 홍보나 행사 장소로 가장 선호하는 장소가 한옥이 된 것이다. 외국인들의 시선에는 천편일률적으로 밋밋하고 비슷한 형태와 재료로 둘러싸인 건물들 사이에서 꽤나 매력적인 건축물로 보일 것이 분명하다. 한때 한국인에게 소외되어 왔던 건축물이 한국을 대표하는 K-건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급격하게 훼손되어 가는 북촌의 현실에 위기감을 느낀 주민과 서울시가 힘을 모아 2001년「북촌 가꾸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한옥을 되살린 원동력이 되었다. 이후 2008년 「서울한옥선언」, 2015년「서울한옥자산선언」, 그리고 최근 2023년 2월「서울한옥4.0 재창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한옥 정책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최근 한옥을 재해석한 다양한 현대 한옥이 등장하면서 한옥 디자인에 대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4회에 걸친 한옥 정책의 변화|출처: 서울시 서울한옥포털 자료 재편집 ⓒ 류인혜

「서울한옥4.0 재창조」는 ‘새로운 한옥, 일상 속 한옥, 글로벌 한옥’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울의 도시 경쟁력과 매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를 삼고 있다. 따라서 한옥 건축 양식의 최소 기준(필수 항목)인 한식 목구조, 한식 지붕틀, 한식 지붕형태, 한식형 기와, 입면 비례 총 5가지만 충족하면 한옥 비용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시민 모두에게 열어두었다.


한옥 건축 양식의 필수 항목 5가지 |출처: 서울시 서울한옥포털 자료

한옥 심의기준 개정 33개 완화, 11개 폐지|출처: 서울시 서울한옥포털 자료 

 

국내외 우수한 브랜드들이 한옥을 새로운 경험의 장소로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반짝거리는 새로운 건물보다 오래된 건물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한옥 고유의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시간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공간의 역사가 주는 편안함과 감성을 활용해 자사의 상품과 연결 짓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둘째,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하여 자연스럽게 자연이 공간에 유입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뇌는 본능적으로 빛을 찾는다고 한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빛은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뇌의 활성화를 돕고 몸을 이완시켜 긴장감이나 피로, 우울증 등의 정신적인 문제에 개선을 도와준다. 관람객 또는 소비자들에게 한옥 고유의 마당으로 들어오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상품을 전시하고 팔 수 있는 아주 적합한 장소인 것이다. 

 

셋째, 평면적인 건축 사이에서 한옥만이 가진 입체적인 구조의 지붕 형태, 푸른 기와의 반짝임 등이 개인의 감성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유발한다. 한국의 기후와 문화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한옥의 정신을 이어 본래의 형태에서 최소한의 변형만 가한 한옥이 있는가 하면, 현대적인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기능과 재료 면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한 현대 한옥도 만나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한옥의 매력을 알아본 해외 기업들은 북촌의 한옥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또한 한옥의 매력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전시, 홍보의 장소로써 이용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완화된 한옥정책과 트랜드를 반영하듯 올해 5월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구찌 크루즈2024 패션쇼(Gucci Cruise2024 Fashion Show)’ 가 성대하게 열렸다. 매년 역사적으로 뜻깊은 장소를 선정해 크루즈 패션쇼를 열어온 구찌다운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중앙에 위치한 전각으로,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 등 국가 의식을 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근정전의 장소성에 맞게 대규모의 패션쇼가 열렸고, 온라인으로 스트리밍되어 전 세계 패션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구찌의 제품과 더불어 한옥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구찌 크루즈2024 패션쇼(Gucci Cruise2024 Fashion Show)  |출처: instagram.com/gucci/

 

 

한옥을 현대적 요구와 기능에 맞게 새롭게 탈바꿈하여 고객을 맞이하는 현대 한옥이 무수히 늘어나고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공간이 구성되는 전통 한옥과는 달리, 건물을 중심으로 수평적으로 확장되는 휘겸재의 구조는 현대 한옥의 바람직한 변화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전통 한옥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근대적인 생활 방식에 맞게 실용적으로 진화된 내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휘겸재 바로 옆에는 승효상 건축가가 지은 순백색의 카페 건물 옆에 자리하고 있는데, 카페 손님들이 여유롭게 휘겸재 앞 마당에서 차를 즐길 수 있도록 휴식의 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공예 장인의 전시, 정통 분재와 꽃꽂이 클래스, 웨딩 장소 대관 등의 알찬 행사를 열어 시민들에게 한옥을 경험할 기회도 열어 두었다.

송현재도 휘겸재와 같은 근대식 한옥 형태를 지니고 있다. 대신 전시장을 비롯한 라운지, 사무실 등의 기능을 지닌 건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보다 진보적이고 개방감 있는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 한옥의 공간적 유연성과 시간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기능과 미적 감성을 새로이 불어넣은 국제갤러리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북촌의 역사지구 경관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함께 녹아든 현대 한옥이 참 아름답다.

 


전통 한옥을 근간으로 새롭게 변화한 현대 한옥 휘겸재의 다양한 쓰임 |출처: instagram.com/hwigyumjae/ 

 


전통 한옥을 근간으로 새롭게 변화한 현대 한옥 송현재(국제갤러리 한옥)의 전시 사례 |출처: instagram.com/Kukje Gallery/ 

 

한옥 내부 공간은 다소 협소하지만 전통 장인의 공예 작품이나 고미술품, 한옥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현대 작가의 조각 등이 한옥 안으로 유입되니 오감이 열린 상태에서 작품을 색다른 시각으로 주목할 수 있다.   

필자는 한옥의 현대화가 계속해서 시도되던 1930년~1950년대 서울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을 비롯하여 2000년대 한옥의 부흥과 함께 주목받게 된 ‘현대 한옥’의 변화에 주목하였다. 형태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현대인이 요구하는 다양한 기능을 품을 수 있는 한옥 말이다. 고유한 형태적 아름다움은 유지하면서 도시의 매력과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한국의 건축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류인혜(국내)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실내디자인 석사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 실내디자인 졸업
(현)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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