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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미감: 디지털로 본 미술 속 자연과 휴머니즘

광주에 온다면 놓치지 않고 방문해야 할 문화시설 중 하나가 바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 이하 ACC)이다. ACC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교류·교육·연구 등을 통하여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아시아 각국과 동반 성장하고자 설립된 국제적인 예술기관이자 문화교류 기관이다.    

ACC 건물 내에는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의 5개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년 내내 다양하고 역동적인 프로그램들이 펼쳐지고 있다.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관에서는 ‘아시아성’이 돋보이는 융복합적 콘텐츠가 담긴 <몰입미감 Aesthetic Immersion - 디지털로 본 미술 속 자연과 휴머니즘> 을 열어 화려하고 다채로운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고 있다. 5월 12일부터 10월 15일까지 약 5개월간 열릴 예정이다. 서정미 넘치는 그림들을 작품의 원작과 가상의 디지털콘텐츠가 병치된 공간 구조 내에서 ‘설렘(프롤로그)-몰입(1부)-체험(2부)-감동(3부)-여정의 기억(에필로그)’라는 5개의 주제에 따라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입구의 길고 좁은 통로를 걸어가다 보면 텅 빈 공간에 빛으로 그린 그림을 만날 수 있다. 보자마자 낯익은 군상의 모습들이 크고 작은 형태로 관람객들을 반기고 있는 듯 보인다. 해당 작품은 이중섭의 <아이들>로 아주 작은 원본의 그림을 정육각형의 박스에 투각하고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통해 커다랗게 확대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중섭, 아이들, 1950년대> 작품을 블랙 큐브에 투각하여 빛으로 그림을 그린 프롤로그 공간 ⓒ 류인혜

 

이중섭은 피난시절 회화 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담뱃갑 속의 은박지 종이를 반듯하게 펴서 날카로운 철필로 눌러 그림을 새겨 넣고 물감을 묻혀 선묘를 도드라지게 하는 방식의 ‘은지화’ 라는 독창적인 표현으로 주목 받았는데,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모습을 공간에 풀어내어 관람객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낸다.

1부[몰입, 공간에 새기다]에서는 한국 근대 회화 중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 14점을 대형 스크린 화면에 투사하여 화려한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고 있다. 은은하고 담백한 수묵화부터 인상주의적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근대 풍경화까지 영상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공간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김종찬, 연, 1941>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류인혜


생동감 있는 형태와 화려한 색채의 화조도를 병풍식으로 나열하여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 류인혜

가로로 긴 영상 화면을 2~3대의 빔프로젝터가 각각 비추면서 14점의 작품을 생동감 있는 미디어 아트 영상으로 구현하고 있는데, 각 영상 화면 사이에 거울을 배치하여 공간 너머 또 다른 공간이 펼쳐지는 듯 확장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영상에 무빙 효과를 주어 꽃잎이 흩날리고 수많은 나비가 꽃 주변으로 날아갔다 모여들기도 하며 마치 작품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실감 영상은 원본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절한 디지털 기술을 통해 구현 된다면, 가볍게 지나쳤던 작품들을 다시 자세하고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2D로만 보았던 그림들을 3D로 입체감 있게 재현한 영상을 통해 한쪽 면밖에 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360도로 감상할 수도 있다.  

1부에서 몰입감 있게 고해상의 작품을 느끼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2부에서는 체험의 코너로 이어진다. 2부[체험, 손끝에 새기다]에서는 디지털 상호작용 기술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다. 눈으로 보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작품을 제대로 느끼고 오랫동안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


<이제창, 드로잉2, 193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디지털 붓으로 먹을 찍어 어미 개를 칠해보는 인터랙티브 체험코너  ⓒ 류인혜


<이제창, 드로잉2, 193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어미 개를 디지털 붓으로 칠하면 어미 개가 새끼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젖을 물리는 인터랙티브 체험코너  ⓒ 류인혜

이제창 작가의 <드로잉2> 작품으로 디지털 화면의 이젤 위에 붓 터치를 하면 붓의 농담을 통해 스케치된 강아지에게 생명력을 주는 인터랙티브 체험이다. 밑그림이 있는 상태에서 먹을 칠하는 경험에서 더 나아가 좀 더 주도적으로 붓의 농담을 느끼면서 다양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화면이 구성되어 있었으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김중현, 춘양, 193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한복의 다채로운 색감을 입혀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체험코너 ⓒ 류인혜

디지털 화면에 왼쪽부터 순차적으로 인물이 담긴 화면을 5조각으로 나누고 각 인물의 한복에 색을 입혀서 그림을 완성해 보는 인터랙티브 체험이다. 세 가지의 색 조합을 미리 구성해 두고 해당 화면을 터치하면 옷이 자동으로 입혀지는데 각 인물의 옷을 다르게 입혀볼 수 있어 단순한 구성이지만 흥미롭다. 손으로 직접 그려보거나 칠해보는 경험이 아닌 터치 방식이기 때문에 5번의 조작으로 결과물이 완성되는 과정이어서 다소 경험의 시간이 짧다는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전통 채색화의 다채로운 색감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채용신, 전우 초상화, 1911>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렸던 당시 극사실주의 화풍을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는 체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류인혜

채용신은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까지 활동한 화가로, 초상화·화조화·인물화 등을 세필과 채색으로 생생하게 그렸던 화가이다. 디지털로 구현된 그의 작품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초상화가 실제 사진으로 순식간에 바뀐다. 채용신은 당시 서양화법과 사진술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렸던 극사실주의 화풍을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는 행위를 통해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2부를 지나 3부에 다다르면[감동, 가슴에 새기다]의 주제로 작품 원작과 원작의 디지털을 한 공간에 병치해 두었다. 원작의 감동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원작의 아우라를 디지털적으로 재현함과 동시에 감동을 극대화하는 공간을 연출하였다

 


<허달재, 매화, 2023> 의재미술관 소장|미디어 아트로 작품을 생동감 있게 재현하여 감동을 극대화하는 연출 공간 ⓒ 류인혜

 

허달재 <매화작품은 6미터 가로 폭에 2미터에 달하는 높이의 대형 작품이다. 미디어 아트를 원본과 함께 전시하는 과감한 시도를 함에 있어서는 원본이 가진 우수성과 가치를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원본 작품과 미디어로 재해석된 작품을 동시에 바라보는 데 있어서 어색함 없이 서로 조화롭게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미디어 작품 양옆으로 거울을 배치하여 매화가 무한대로 이어지며 다음 장소로 안내하는 듯하다. 이 공간의 연출은 많은 관람객의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여럿이 모여서 즐기는 떠들썩하게 즐기는 대신 생각을 비우고 말없이 한 곳을 응시하는 멍때리기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불멍’, ‘산멍’, ‘물멍등 다양한 형태의 멍때리기가 등장했다. 이러한 트랜드를 반영하듯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 작품에서 착안하여 물멍을 하기에 좋은 작고 아담한 큐브 공간이 연출되어 있다. 순차적으로 물방울이 벽면을 타고 하나씩 떨어지면서 경쾌한 소리를 낸다. 그리고 바닥에 진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파동이 생긴다. 작품만 바라봐도 물방울이 곧 떨어질 듯 생동감 있으나 실제로 큰 화면에 재현하여 소리와 함께 감상하니 감동이 배가 된다.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 작품을 재해석하여 물멍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작은 감상 겸 휴식 공간 
ⓒ 류인혜

 

마지막으로 전시의 에필로그에서는 인공지능기술(AI)을 통해 관람객들의 초상을 작품 속에 대입해 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AI Painting으로 앞서 보았던 채용신의 초상화 두 점을 비롯하여 근대 회화 등 총 6점의 작품에 자기 얼굴을 합성해 볼 수 있다. 6점의 화풍과 그림체가 모두 다르다 보니 내 얼굴도 그것에 맞게 달라질 줄 알았으나, 사진을 찍어서 얼굴 영역만 그대로 합성하는 형태라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AI가 그려준 나의 작품을 디지털 액자에 전시해 보거나 모바일 기기로 전송하여 소장할 수 있는 경험을 준다는 점에서 많은 관람객이 호기심을 보였던 체험 공간이다.  

 


인공지능기술(AI)을 통해 6개의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하여 나의 얼굴을 작품 속에 대입해 볼 수 있는 체험코너 ⓒ 류인혜 


기존의 수동적 관람 방식이 아닌 관람자가 전시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서 창의적 경험을 할 수 있고, 미디어 아트를 통해 작품 감상에 새로운 몰입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몰입미감 Aesthetic Immersion - 디지털로 본 미술 속 자연과 휴머니즘> 전시를 위해 실무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제작하여 문화예술 향유층 저변을 넓히고자 하는 ACC의 노력이 돋보였다. 기술의 변화에 발맞추어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융복합 문화예술 콘텐츠를 기획하고, 이를 전시에 적용하여 새로운 전시문화를 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전시 정보>

장소: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

기간: 2023.5.12() ~ 10.15()

시간: (-): 10:00 ~ 18:00

          (, ): 10:00 ~ 20:00

          *매주 월요일 휴관

가격: 무료

예매: 자유 관람


류인혜(국내)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실내디자인 석사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 실내디자인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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