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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간판이 보여주는 생명력

요즘 종로거리를 걷다보면 거리의 이미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작년부터 서울시에서 진행한 간판개선사업의 결과로 예전의 울긋불긋 난립하던 간판들이 상당히 정리되어 보기에도 한결 산뜻한 거리가 되었습니다. 원하는 업체나, 건물에 한해서 시행된 사업이라서 그런지 거리의 모든 간판이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모습으로도 예전과는 다르게, 많이 정리된 느낌을 줍니다. 간판개선사업이 대부분 한 건물 단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런 건물 앞에 서면 마치 오아시스에 서 있는 것처럼 시각적 청량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간판들을 달고 있는 상점주인들에게는 그 산뜻함이 달갑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간판개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간판에 대한 말이 나온 것만으로도 격앙이 되어 험악한 말을 내뱉으시는 분들까지... 멋지게 정리된 간판들에 비해 개선된 간판을 내걸고 일하시는 분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상점주인들은 왜 그렇게 상반된 모습들을 보여주었을까요?
종로거리가 깔끔하게 정리된 사인시스템을 과시하는 새로운 간판들로 교체가 되었는데도 간판개선사업에 대해 여기저기서 불만이 제기되는 것은 왜 일까요?

간판이란 그 재료나 형태에 있어서 제각각이긴 하지만, 그 모든 생김새들은 단 하나, 소비자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능합니다. 유치한 빛을 찬란히 번쩍거리는 여관의 네온간판에서부터 플라스틱으로 글자를 짜 맞춘 ‘00슈퍼’의 간판, 지금도 대부분의 점포들이 선호하는 플랙스 간판까지 수십 종의 간판들이 거리 곳곳에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소비자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죠.
하지만 그 치열한 경쟁으로 온 도시의 건물들은 간판들로 덕지덕지 덮이고, 장난삼아 엄마 몰래 화장을 한 아이같이 울긋불긋한 모습으로 변해 버립니다. 유치하고 촌스럽게... 새빨갛고 새파란 색의 간판들이 무식함의 때를 벗고 파스텔톤에 예쁜 강아지가 그려진 동물병원간판이 되어도 건물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달라붙어 있는 모습들... 바뀌지 않는 난잡함... 어쨌든 자신을 알려야 하기에, 도시의 간판들은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서울이란 도시를 더욱 더 어지럽게 만듭니다. 도시미관을 생각하면 참 골치 아픈 존재들입니다.
결국 서로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도시를 어지럽히는 간판들을 정리하기 위해 서울시는 종로에서부터 간판개선사업을 실행하였고, 이제는 다른 지역에서도 이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런 간섭도 없이 대중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놔둔다고 도시미관이 개선될 가능성은 없으니까요. 사실 시민들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거리가 밝고 산뜻하기를 원하고 있었고, 종로거리에 간판을 내건 주인들도 자신들의 간판 때문에 거리의 이미지가 지저분해 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업은 큰 반발 없이 진행되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모든 간판들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간간히 새롭게 바뀐 간판들과 덕분에 깔끔해진 거리를 생각하면 어쩌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각적으로 숨통이 트인다는 느낌마저 들 정로도 이전의 간판들은 말 그대로 건물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간판이 거리의 미관을 위해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것은 오히려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했습니다. 태생적으로도 간판은 도시의 소비와 생존을 위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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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에서 간판은 소비자와 상인들을 연결해 주는 통로가 됩니다. ‘저는 이러저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누구누구입니다.’라는 것을 알려야 하는 상인과 ‘누구누구의 이렇고 저런 서비스를 받아야지.’라는 생각으로 거리에 나선 소비자들을 연결해 주는 고리와 같은 것이죠. 그리고 그 연결고리로서의 간판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그 누구의 간섭이나 통제 없이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들간의 관계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튼튼하고 오래가면서 톡톡 튀게 간판의 개성을 만들어낼 것인가?’만을 고민해 왔죠. 어떻게 예쁜 간판을 만들것인가라는 심미적 효과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튀어야 내가 보일까라는 시각적 효과를 해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나만을 생각해야 하는 시장에서 간판의 시각적 효과만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고 그런 현실을 바꿔야 하는 것도 서울시가 당면한 현실이었습니다. 양측이 바라본 간판이라는 대상은 너무도 다른 모습을 요구받고 있었죠. 하지만, 어느 한 측의 일방적인 추진으로는 간판이 간판스럽게 만들어지기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계획하고 집행시켜 어떤 효과를 얻겠다는 생각은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대중이 만들어낸 시장은 무질서하고 어떠한 결과도 만들지 못하기에, 지시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서울시로서는 그런 능력이 있고 어쩌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기도 합니다. 시청으로서는 서울시라는 도시 전체를 계획하고 관리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관리한다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발견하고 대응책을 개발한다는 것이고...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자신의 관점에서 예상하고 계획하고 일을 진행시키면,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결과도 얻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난 상황들... 예측되지 못한 현상들은 어떤가요? 그것을 단지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들로 치부하고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낙오한 것으로 규정해버려야 할까요?

종로의 거리에서 영업하는 점포들은 각양각색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골목 안쪽의 금은방이나 공방들, 약국과 의료기기 대리점, 여행사 등의 사무실, 옷가게나 선물 상점, 식당이나 호프, 소주방, 노래방, PC방, 만화방, 극장 등 많은 수의 서비스들이 있고, 그런 서비스를 찾아오는 많은 소비자들이 있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거리의 그 수많은 서비스들은 하나의 스타일로 통일되어 갔습니다. 약국이나 호프나 당구장이나 모두 똑같이 모던디자인에 바탕을 둔 사인시스템이 적용되어졌죠. 몇 가지의 패턴이 있기는 했지만, 건물 한 채 당, 하나의 패턴으로 통일하여 개선되었습니다. 거리미관으로 보면 그렇게 깔끔하게 통일된 이미지들은 간판들의 어지러운 난립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해주죠. 하지만 개선된 간판은 간판의 목적을 무시당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개선된 간판 옆에 있는 간판들이 개선된 간판의 정리된 공간을 통해 더욱 부각되어 버리기도 하고... 실재로 금은방이나 옷가게 등 개선된 사인시스템에 어울리는 상점들은 상점이미지가 향상되었지만 호프나 당구장등 지나가는 소비자를 유혹해야 하는 상점들은 밋밋해진 간판 때문에 손님들이 줄었다며 한숨만 내쉬게 되었습니다.
결국 도시경관의 통일성과 새련미를 강조하기 위해 교체된 간판은 이미지의 특성만을 따지면 성공적이었겠지만, 도시 속 소비자와 서비스제공자의 생태를 무시함으로써 개선된 간판에 어울리지 못하는 업종의 서비스들은 생존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개선사업이 점차 진행되면서 수정되어간 것 같습니다. 동일한 규격에 정리된 타이포, 스테인레스 혹은 크롬의 번쩍임 등을 통해 깔끔함과 모던함만을 과시하던 간판들이 업종별 간단한 이미지 등도 넣어가며 간판 고유의 특성을 고려하기 시작했죠. 종로3가에서부터 동대문, 청량리 쪽으로 걸어가면서 간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종로거리의 사인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되었었고, 발전 혹은 변형되어 갔는지를 마치 일기를 들춰보는 것처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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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피드백으로 볼 지, 서울시와 시장의 커뮤티케이션이 이루어져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시의 일방적인 지시만 있었다면 이런 변화는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은 다 같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였던 것이죠.

아마 이것이 대중의 생명력이 아닐까요?

디자인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을 대중에게 맡긴다는 것이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그냥 알아서 하게 놔둔다면 대중이 만들어 내는 것들은 잡동사니뿐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대중은 무엇을 해야 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은지는 알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명품과 유행이 생겨나는 것이겠죠. 그러나 대중은 그 자체로서의 생명력을 가지고 꿈틀거립니다. 명품, 모던을 추구하는 것은 누구의 지시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하고 맞는다고 생각되어졌기에 나오는 수동적이지만, 능동적인 행동이죠. 대중은 누군가의 잣대로 재단되고 파악되고, 관리당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움직임에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같이 뛰고, 같이 숨쉬면서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힘들을 어떻게 움직임일 것인지 그 흐름 속에서 같이 생각해보고 길을 제시하는 것... 디자이너는 결국 그 생명력을 보고 그 움직임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스쳐가는 생각이지만, 차라리 간판이 가지는 보편적인 시각적 성질, (크기와 형태 그리고 색상 등)을 택해 각 거리의 특성에 맞게 하나의 일관된 이미지만 구축하고 그 이미지의 틀 안에서 자유롭게 디자인이 이루어지게 한다면, 정리된다는 느낌은 좀 덜 할 수 있겠지만, 거리의 시각적 통일성과 아이덴티티, 그리고 간판의 건강한 생태를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단순하고 엉성하게 짜 넣은 활자만을 박아 넣은 간판이라고 해도 그 안에는 그 간판이 만들어질 때까지의 순간들과, 그 이전부터 만들어져 왔던 간판들의 기억이 녹아있습니다. 타이포 마저 들쭉날쭉해서 그저 우습기는 하지만, 간판들은 자신들이 어떤 업종에서 무엇을 팔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장의 간판들은 시장의 흐름 속에서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을 만들어내 왔고, 어느 정도 한국적인 미의식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저 삶 속에서 나온, 자신들이 만들고도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자신들의 모습 자체로 그 모든 것들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살아온 경험, 살아있음과 기억한다는 것, 그렇게 자신의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찾아내고 표출시키는 것, 그것이 디자인이 해야 할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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