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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포장, 특집 : 제10회 상공미전 - 21호 1975.06.30.

디자인포장

특집 : 제10회 상공미전

21호 1975.06.30.

한국디자인포장센터


목차

김교만, 상공미전 10년, 어제와 오늘

김현기, 상공미전의 산학계 기여도와 그 개선 방향

이명구, 디자인계에서 본 상공미전과 그 개선책

김근배, 공예 디자인상의 심리적 작업능력과 인간공학

주홍길, 경쟁의 무기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박상우, 오늘의 공업 디자인 원리와 그 적용 방향

권길중, 신라 금공술의 공정적 구명

장윤우, 수공예의 제작방법과 그 재료

곽대웅, 기업을 살리는 색채전략 ①

이승희, 기업경영과 디자인의 역할

박재진, Corporte Image란 무엇인가

임영주, 한국의 건축문양 와당무늬

서동희, 산업도자기 제품의 종류와 디자인 개선책

이웅길, 우리 나라 가구의 사회적 배경과 미의 본질

이혜선, 페르샤 융단 문양과 그 분류

박래경, Bauhaus의 디자인 교육

 

윤종혁, 디자인 교육의 본질과 그 전개

 

 

상공미전10년

어제와 오늘

김교만 서울대 미대 부교수

 

현황

 

흔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올해로 제 10회전을 맞이하게된「대한민국상공미술전?회」 는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필자만이 아닐 줄로 안다. 그러나 10년 전「상공미전」의 힘겨운 창설에 직접 참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결코 짧다고만은 할 수 없는 10년의 기간을 두고 상공미전과 함께 생활하여 온 디자이너의 한 사람으로서 올해의 「제10회전」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깊은 의미를 갖는다. 상공미전 10년은 한 마디로 한국디자인의 10년사이며, 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 산업입국과 수출증대를 국책으로 추진하여 온 한국의 산업,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성장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지난 제9회전만 하여도 총출품 907종에 3,003점이란 광범하고도 열의있는 참여에 619종 1,025점이 낙선이라는 높은 경쟁렬을 기록하는 성장을 보였고, 구성에 있어서도 제1부(상업미술)의 375종 1,006점 출품에 88종 392점 전시, 제2부(공예미술)의 374종 1,529점 출품에 115종 513점 전시, 제3부(공업미술)의 158종 468점 출품에 85종 273점 전시, 총 288종 1,178점이라는 균형과 충실을 보여 10년 전 창립전시 총 1,041점 출품(제1부 725점,제2부 165점,제3부 151점) 중에 235점 전시라는 「약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장족의 발전상을 기록하였다.

상공미전의 성장은 비단 수량적, 외형적 증가에서 그치지 않고 디자인계,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전체에 디자인을 인식시키고 그 질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 10회를 거듭하는 동안 상공미전은 디자이너의 창의적 아이디어 및 프로세스 개발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디자인과 비지니스의 협동적 분위기 조성과 산학의 유대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생산인의 디자인 센스 육성과 올바른 이해를 촉진하는 사회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여 왔다. 그 결과 제10회 전을 가지게 된 지금 상공미전의 의의와 위치는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인 것이 되었다.

상공미전 10년을 돌이켜 보는 현시점에서 디자인을 위해 있고 디자인 속에서 생활하였으며 특히 상공미전과 더불어 성장의 길을 걸어 온 디자이너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상공미전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에 남다른 감회를 가졌고 그 빛나는 앞날의 성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상공미전의 10년사에 한 참여자로서 또는 목격자나 증인의 입장에서 상공미전에 관해 보아온 일들, 아는 것들, 그리고 바라는 것들을 정리하여 이제 하나의 리포트를 만들 때가 되었다고 보며 이런 일은 여러 면으로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상공미전의 성격

 

상공미전,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는 문자 그대로 정부가 주최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상공미술종합전람회이며 매년 1회 개최되는 이 종합전에는 제1부(상업미술부), 제2부 (공예미술부), 제3부 (공업미술부)에 걸쳐 국내의 모든 디자이너가 자격에 제한없이 출품하게 하고 있다.

상공미전은 그 명칭이 가르치듯 종래의 미술, 회화나 조각 중심의 이른바 순수미술의 전람회와는 성격을 달리 하며「미술」의 한 분야로 이해되어 온 공예 - 이른바「창작공예」또는「수공예」,「일품공예」라 불려온 공예미술전과도 성격상 완전히 구별된다. 뿐만 아니라 산업립국, 수출증대를 국책적으로 추진하여 온 정부가 수출 산업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창의적 공예품을 개발하여 국적있는 산업을 진흥시키고자 창설한 전시행사인만큼 상공미전은 디자이너들 또는 특정한 디자인 그룹에 의한 디자인전과도 성격상 근본적 차이를 가졌다. 그러기에 상공미전은 창립전부터 오늘에 이르는 오랜 기간을 두고, 비록 부분적 변화는 있었지만, 수출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독창적인 작품 또는 개랑작품의 출품을 우선적으로 요구하여 왔고 여기에 에너지 및 자원 절약적인 아이디어 작품, 국내 산업 자재에 의한 생산 가능 작품, 그리고 새마을공장 진흥을 위한 아이디어 작품 등을 덧붙여 요구함으로써 이 전람회가 어 디까지나 수출 및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개최되는 정부의 디자인 진흥 행사임을 명백 히하여 왔다. 상공미전의 이런 특수한 성격은 이 행사를 정부가 직접 주관하는 한 회를 거듭할 수록 강화될 것이며, 이 점에서 상공미전의 성격에 관련된 일절의 논쟁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자연히 해소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제10회전을 갖는 현시점에서 상공미전의 개최가 매년 그 해 나름으로 크고 작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또 그 논쟁의 대부분이 바로 전람회의 성격에 관련된 것이었음을 생각할 때 상공미전의 성격은 그 설정과 파악에 따라 언제나 논쟁의 가능성을 스스로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논쟁의 가능성은 각부 출품내용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한 개최 공고문을 살펴보면 더욱 짙어진다. 금년 제10회전을 앞두고 전람회의 명칭을 이제까지의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에서 가령「대한민국디자인대전」이나「한국디자인전」등으로 바꾸는 문제와 전람회의 구성을 3부구성에서 가령「환경디자인」등을 포함하는 새롭고 보다 현실적이며 전문화된 구성에로 확대시키는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것도 바로 이 성격 때문이었다.

주지하는바 상공미전은 「국전」 등 정부 및 기타 단체에서 주최하는 종합전에서 소외되어 발표와 참여의 기회를 갖지 못한, 그리하여 사회 일반의 인식이나 창작기풍 조성에 있어 너무 푸대접을 받은 상업미술과 공업미술의 독자성을 올바로 인식시키며 이 전문분야 작가들의 창의를 진작시켜 국가산업 경제 발전에 참여하는 공동의 광장으로서 마련되었고, 그 당연한 요망으로서 초기에는 국내 상공업 미술인의 창작기풍을 조성하며 이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상공 미전 개최의 첫째 목적으로 삼았었다. 그 결과 창립전 이내 초기의 몇 회 동안 상공미전은 사실상 「응용미술전」, 「종합공예전」, 「생활미술전」의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한 상공업미술 관계 교수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창작발표전의 성격을 짙게 하였다. 따라서 이런 창작 제 1주의의 성격에 주최측은 당연한 요구를 제시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창설시의 3개부, 즉, 상업미술, 공예미술, 공업미술의 3개부 구성에 국내외의 굿디자인제품을 별도 전시하여 비교 연구의 기회를 마련하며 이로써 산학일체의 협동 적 자세를 진작하려는 하나의 과도기적 조치가 취하여 졌었다. 그러나 이런 기구상 또는 성격상의 부분적 묘처도 같은 집행부에 같은 운영 그리고 같은 출품자라는 자체의 한계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다가 마침내 정부측에서 상공미전의 집행을 한국디자인포장센터로 이관하고 그 성격을 수출 제1주의로 확정하면서 상공미전은 오늘에 이르는 명확한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현재의 수출 제1주의 성격을 초기의 창작 제1주의에 비교하거나 현행 성격 및 구성을 평가하여 상공미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할 필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디자인 자체의 시대적, 역사적 요청이었듯이 상공미전도 우리의 시대, 역사적 요청이 었으며, 이 시대나 역사의 요청이 달라지면서 디자인 자체의 의미가 발전적으로 변천하듯 상공미전 역시 우리 시대나 사회의 요청이 달라지면서 마땅히 발전적 변모를 거듭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상공미전의 성격에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달라진 시대나 사회의 요청을 집행 당국이 직시하여 어떻게 운영의 묘를 살리며, 이에 관심을 둔 모든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달라진 성격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을 연구개발하여 공동의 광장에 적극 참여하는가 하는 점이다. 필자 나름으로 상공미전의 앞날에 지대한 관심과 기대률 가지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상공미전과 디자이너

 

상공미전은 한마디로 디자이너들의 것이다. 주최측이 아무리 성격을 합리화하여도 이 성격을 올바로 받아들이는 디자이너의 참여가 없다면 상공미전은 있을 수 없다. 정부나 업계가 아무리 국적있는 디자인 제품을 개발하고 산학의 협동연원기를 조성하려 해도 그 주역인 디자이너의 참여 없이는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상공미전은 오직 디자이너들의 것이며, 디자이너들을 위해 있는 전람회이다. 디자이너의 책임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상공미전이 디자이너들의 것이기에 그들은 상공미전을 보다 잘 살려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교육 및 사회교육의 장으로 만들 사회교육적 책임을 져야 하며, 오직 디자이너들 만을 위한 것이기에 그들은 출품작 하나 하나에 시대나 사회의 요청을 반영하며 그 디자인 센스를 선도하는 전문가적 사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상공미전 10년의 역사를 통해 가장 큰 성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이런 책임감과 사명감을 직시한 디자이너들을 육성하는 공동의 교육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앞서 상공미전 10년사는 그대로 한국디자인 10년 사이라 하였거니와 상공미전의 성장과 변신의 자취를 만일 디자이너들과의 관계란 측면에서 고찰할 경우 상공미전 10년의 역사를 통해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곳이 주1최자인 정부나 후원자인 산업계가 아니라 디자인계이며 그 주인공인 디 자이너들 자신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디자이너는 상공미전의 창설과 함께 그 독자성과 전문성이 비로소 공식적으로 인정될 기회률 가졌으며, 디자이너의 지도 육성과 사회 진출을 사회적으로 공인 받을 수 있는 떳떳한 광장을 갖게 되었다. 상공미전을 통해 디자이너는 성장했고 그 성장의 정도에 따라 디자이너는 산업 또는 교육의 현장에서 일터를 찾게 되었다. 이렇게 디자이너는 상공미전을 통해 전문성을 확립하였고, 그 사회적 위치를 뚜렷이 할 수 있었으며, 특히 각급 학교의 디자인 교육을 책임진 유능한 디자이너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 이 엄연한 사실은 비록 현재의 상공미전 운영이나 특히 그 특전, 시상 등에 있어 충분히 만족할만한 상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결코 부인하지 못할 것이며, 디자이너들은 오히려 상공미전과 함께 생활하고 성장하고 변모하여 온 자신의 모습에 온갖 감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상공미전과 디자이너의 관계는 필수적이며 회를 거듭 할수록 그 관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상공미전의 개최 의의를 디자이너들이 좀 더 명확히 파악하여야 하겠다는 점이다. 이 점이 분명하였다면 상공미전 주변에 맴도는 소문들, 가령 「상공미전은 국전공예부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디자인 그룹의 종합전 같다」, 「산업박람회 같다」, 「대학 종합 디자인전 같다」에서 「누구를 위한 전시회인지 모르겠다」, 「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는 등에 이르는 온갖 관심있는 소문들을 좀 더 일찍 불시할 수 있었을 것이며, 디자이너들 스스로 상공미전을 자신의 일터로 생각하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투철하였더라면 상공미전이 보다 더 내실과 균형있는 발전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디자이너 나름의 아쉬움이다. 디자이너는 시상이나 특전을 탐하기에 앞서 산업립국과 수출증대를 강력히 추진하는 정부의 디자인 정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자신의 디자인 하나 하나가 바로 그 지역사회나 국가의 생활 환경 개선에 직결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여 헌신하는 사회적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만 상공미전은 그 성격을 명확히 할 수 있으며, 그 기구와 특전은 발전적으로 증대될 것이다.

 

상공미전의 성과

 

이상에서 상공미전의 현황과 성격 그리고 디자이너와의 관계를 참여자 또는 증인의 입장에서 살펴 보았거니와 「상공미전」의 알찬 성장 발전은 주권자와 참여자 모두가 무엇보다도 먼저 전람회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 일에서 출발하여 그 성격에 가장 알맞는 기구와 운영을 구구(構究)하며 특히 그 중심을 이룬 디자이너들의 창의와 책임감, 사명감에 찬 연구개발로서만 성취할 수 있다는 자명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상공미전 10년의 성과도 이런 전제에서 고찰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리라 본다. 10회를 거듭하는 동안 상공미전 10년을 통해 제일 많은 도움을 입은 측이 디자이너라 하였거니와 상공미전은 디자이너들의 지위향상과 더불어 사회, 특히 산업계에 디자인의 개념을 인식시키고, 디자이너의 능력과 필요성을 확인시키는 무대로서도 그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오늘날 사회에서 디자인의 생활화를 위한 어떤 요청이 싹트고 있다면 그 바탕에는 분명 상 공미전 10년의 노력이 깔려 있을 것이며, 산업계에서 디자이너의 요청이 있다면 이또한 상공 미전 10년의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들에게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디자이너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여 상공미전을 성장 발전시 키는데 함께 참여하는 일 뿐이다.

 

* 디자인포장 21호. 1975. 한국디자인포장센터 내용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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