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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내일의 디자인 - 미의식이 만드는 미래

 

 

일본의 디자이너이자 전시기획자, 우리에게는 <디자인의 디자인>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하라 켄야(Kenya Hara)의 신작이 안그라픽스에서 번역 출판됐다. <내일의 디자인 – 미의식이 만드는 미래>는 일본의 이와나미쇼텐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도쇼>에 2009년 9월부터 2년간 연재한 글들을 엮은 것이다.

 

연재는 <디자인의 디자인>에서 한 장의 소제목이기도 한 ‘욕망의 에듀케이션’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는데, 이는 욕망이라는 토양에 잠재된 것을 양질의 제품과 환경이라는 우수한 결실로 열리게 하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담고 있는 용어다. 욕망의 발산에 절제를 주고 매듭을 지어주는 문화와 미의식의 차원에서 디자인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내일의 디자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현되는 고유한 미의식을 반영한 디자인이 미래를 결정하는 힘이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국어판과는 달리 이 책의 일본어 원제는 ‘일본의 디자인’이다. ‘일본’을 전면에 내세우고 ‘미래’를 뒤로 빼 부재로 넣었다. 잡지 연재 글을 단행본으로 엮어낸 이와나미신서의 편집팀에서는 처음에 ‘디자인 입국’을 책의 제목으로 제안했을 만큼, 이 책에서는 일본인의 입장에서 ‘디자인’을 통해 재건한 ‘일본’의 ‘미래’에 대한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국가적 차원에서의 제언은 일본의 현재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의 폐허에서 공업국으로 우뚝 일어서 놀라운 속도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이제 완연한 저성장의 시대에 접어들었을 뿐 아니라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미래에 대한 전망마저 어둡게 만들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급부상은 아시아 유일의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으며, 특히 거대한 중국의 유구한 역사, 풍부한 문화유산과 엄청난 속도의 발전은 일본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인간이 극복하기 어려운 거대한 대자연의 힘을 절감케 한 2011년 3월의 동일본대지진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본이 변해야 한다는 국가 차원에서의 절박한 위기의식을 각성시켰다. 하라 켄야는 디자인을 통해 당면한 국가적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임을 역설하고 있다.

 

디자인을 통해 일본을 재건하자는 주장은 한 국가의 정체성을 따르는 고유한 ‘미의식’이 ‘자원’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저자가 기획한 <일본 자동차 JAPAN CAR> 전시에서 보여줬던 것과 같이 섬세, 정중, 치밀, 간결로 요약되는 일본의 고유한 미감이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통하는 일류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자부심임과 동시에 이것을 제대로 알고 잘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일본디자인의 원류를 전통과 역사에서 찾고 있다. 동아시아 끝의 대륙에서 떨어진 ‘섬’이 아닌 온전한 국가이자 세계로 존재하며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키던 서구모더니즘이 들어오기 전 시기를 이상향으로 잡은 것이다. 그 대표적 예로 도예가 조지로의 ‘라쿠다완(樂茶碗)’과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만년을 보낸 교토 히가시야마의 지쇼지(銀閣寺), 무로마치시대 전후의 ‘아미슈(阿弥衆)라는 기능장 문화를 꼽는다. 현재의 일본 디자인을 서구모더니즘 전통에서 분리해 자국의 역사와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일본의 미의식이 현대의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 서구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주체적인 독자성을 가지고 있음을 역설한다.

 

저자는 이렇게 과거로부터 추출해낸 일본의 독자적 미의식을 통해 현재 당면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고 위축된 소비를 활성화할 혁신적 주거양식의 변화를 제안하며, 일본의 전통 주거방식과 하이테크 기술을 결합한 주택을 수출할 수도 있으리라 전망한다. 관광산업은 공업 이후 일본이 지향해야 할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데 식민주의가 남긴 욕망을 뛰어넘는 아시아적 리조트 개발을 제안하고 있으며, 우수 관광산업 사례로 자신이 정보디자인에 참여한 <세토나이 국제예술제>를 소개한다. 미래 소재 역시 일본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핵심 기술로 꼽고 있다. 한 국가의 문화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데 필요한 것이 자국을 바라보는 주체적인 동시에 서구적인 감식안이라는 주장과 함께, 하라 켄야가 지향하는 건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기능한다는 주체성을 갖는 것”임을 밝힌다. 자신이 기획한 <도쿄의 섬유 TOKYO FIBER> 전시는 최첨단 기술이 디자인과 만났을 때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면서 동시에 일본적 미의식이 세계에서 기능한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참혹한 일본의 현실 속에서 기고한 원고들이다. 처음에 이 원고들을 쓰게 만들었던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위기의식은 위기를 넘어 절박함으로 치달은 상황이었다. 저자는 이 위기를 완전히 새로운 토대에 미래를 디자인할 수 있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동시에 제품이나 사건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 힘에 부치는 거대한 파괴와 오염에 압도당한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기도 하고, 인구감소와 고령화라는 일본이 당면한 문제를 시민사회가 성숙하는 과정으로 보고 밀실정책에서 벗어나 대중 정보 공개가 성숙한 사회에 요구됨을 주장하는 글을 통해서는 방사능 오염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한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이런 월간지 연재의 시의성은 글을 생동감 있게 전달해 그 끔찍하고 엄청난 재해를 그 당시의 날 것인 채로 떠오르게 한다. 사고 후 3년이 지난 현재, 일본은 나날이 과격해지는 극우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고유의 미의식과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찾아가는 이 책 속 디자인 여정이 가끔은 불편하게 읽히는 것은 현재 일본의 우경화된 모습과 중첩되어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라 켄야가 제안한 것과 같이 위기를 기회로 삼은 국토 재건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결과를 보기는 어렵다. 아직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디자인이 무용하다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분명 디자인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향해 나아갈 힘이 있다.

 


<내일의 디자인 – 미의식이 만드는 미래>

-저자: 하라 켄야
-역자: 이규원
-출판: 안그라픽스
-128x188 mm / 256 쪽 / 16,000 원
-ISBN 978-89-7059-725-6

 

-목차

머리말
글을 시작하며 – 미의식은 자원이다

 

1. 이동 - 디자인의 플랫폼
  포화된 세계를 향하여
  전람회
  이동에 대한 욕망과 미래

 

2. 심플과 엠프티 - 미의식의 계보
  야나기 소리의 주전자
  심플은 언제 생겨났나
  아무것도 없음의 풍요
  아미슈와 디자인

 

3. 집 - 살림살이의 세련
  살림살이의 모습
  집을 만드는 지혜
  무소유의 풍요
  집을 수출한다

 

4. 관광 - 문화의 유전자
  자국을 보는 감식안
  겹눈의 시점
  아시아식 리조트를 생각한다
  국립공원
  세토나이국제예술제

 

5. 미래 소재 - 사건의 디자인
  창조성을 촉발하는 매질
  패션과 섬유
  계구우후의 크리에이션
  해외에서 일본의 미래를 접하다

 

6. 성장점 - 미래사회의 디자인
  동일본대지진
  성숙함의 원리
  베이징에서 바라보다

 

글을 마치며 – 디자인은 미래다
도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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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희채
예술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한 문화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일들을 시도하고 있다

Tag
#일본 #미래 #미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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