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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디자인정책 - 요코하마의 쿠니요시 나오유키

 

 

도시디자인 정책은 무엇보다 정책의 연속성이 중요하다. 한 번 잘못된 도시디자인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38년간 디자인 업무만을 맡고 있는 요코하마시 공무원 쿠니요시 나오유키는 도시디자인 정책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잘 계획된 스카이라인과 야간 조명으로 더욱 아름다운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 지구 풍경.

 

한국에 공공디자인 붐이 생기면서 가장 바빠진 도시 가운데 하나가 이웃 나라 일본의 요코하마이다. 도쿄에서 30km 떨어진 인구 350만 명의 항구도시 요코하마는 수도 도쿄와 가깝고 바다를 끼고 있으며 일본 최초의 개항 도시라는 점에서 한국의 인천과 많은 공통점을 지닌 도시이다. 요코하마는 오랫동안 도쿄의 베드타운 역할을 해오다가 1970년대부터 계획적인 도시디자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난개발로 복잡해진 도쿄에 비해 살기 좋은 도시, 쾌적한 도시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 요코하마는, 이제 막 도시디자인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우리에게 참고할 만한 좋은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요코하마 디자인의 핵심은 ‘올드&뉴’, 즉 전통과 현대의 조화이다. 약 40년 동안 실시된 1,000여 개 디자인 프로젝트 가운데 최대 규모인 ‘미나토미라이 21’ 프로젝트는 요코하마의 도시디자인 특징이 집약된 축소판이다. 바다에 면한 지역인 미나토미라이 지구를 개발하는 이 프로젝트는 바다로부터 점차 상승하는 스카이라인과 차분한 야간조명 관리 등으로 조화로운 도시개발을 이뤘다. 딱딱한 관공서나 역사적인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창조도시 요코하마’ 프로젝트 역시 많은 한국 지자체가 벤치마킹하는 전략이다.


정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요코하마의 도시디자인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그 정책의 일관성이다. 요코하마에 ‘견학’ 간 국회의원이나 공무원이 꼭 만나게 되는 인물이 있다. 요코하마시 도시정비국에서 근무하는 쿠니요시 나오유키 수석조사역이다. 쿠니요시는 1971년 디자인팀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 무려 40년 가까이 ‘요코하마 가꾸기’라는 한우물만 팠다. 그 사이 사무실 전화번호는 딱 한 번 바뀌었고, 그때에도 혹시 업무가 단절될까 봐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요코하마에서 만난 쿠니요시가 들려준 에피소드는 정책의 일관성이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실감하게 했다. 20여 년 전 건물 외관 색을 바꾸기 위해 그와 상담했던 한 건물주가 세월이 흘러 다시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건물 주인이 예전에 자신이 상담했던 인물과 똑같은 사람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더라는 것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을 세월 동안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쿠니요시를 보고 그 건물주는 깊은 감화를 받았다며 자신의 건물도 오랫동안 보존하겠노라 다짐했다고 한다.

 


용도가 다해 폐기될 예정이었던 창고가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한 전시공간이 되었다.

 


요코하마의 중심가 바샤미치 풍경.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차도를 S자로 만들어 차량이 천천히 달리도록 했고,
간판도 작게 만들도록 해 도시 간판들의 시각적 공해를 줄였다.

 

쿠니요시는 요코하마의 뒷골목을 자기 집처럼 훤하게 꿰고 있다. 어디에 새로 신호등이 생겼는지, 어느 도로가 보행자에게 장애물이 많은지…. 이를 통해 주민의 불편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요코하마 디자인의 산 증인이자, 행동하는 디자인정책 그 자체이다. 일본에서도 쿠니요시처럼 한 가지 일을 40년 가까이 한 공무원은 극히 드물다. 쿠니요시 역시 몇 번이나 다른 부서로 발령 제의가 왔지만 디자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동료들은 왜 승진 기회가 많은 좋은 부서로 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어쩌면 요코하마가 ‘공공디자인의 교과서’로 한국에까지 알려진 데는 쿠니요시 같은 공무원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행정 책임자가 바뀌면 정책도 따라 바뀐다. 하지만 요코하마의 경우에는 쿠니요시가 있었기 때문에 시장이 바뀌어도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정책의 일관성과 함께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행정과 주민, 전문가가 삼위일체가 되는 주민 참여형 정책이다. 요코하마시의 경우에도 정책의밑그림은 도시디자인팀이 그렸지만, 주체는 주민이었다. 요코하마시는 민의民意가 반영되지 않은 정책은 생명력이 길지 않음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기에 주요 정책에는 항상 주민을 참여시켰다. 일례로 1970년대 후반 일본 최고의 색채 전문가로 꼽히는 요시다  신고가 도시 색채 계획을 자문할 당시, 디자인팀은 건물의 색채 시뮬레이션을 일일이 주민에게 보여주며 색채 선호도를 조사했다. 또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상점가 바샤미치 지역의 재정비 사업을 추진할 때는 디자인 전문가와 상점 주인, 도시디자인팀이 3자 협의체를 구성해 추진하는 등 주민이 참가하여 마을을 만든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냈다.


도시디자인은 일회성 정책이 아니라 그 도시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밑그림과 같다. 그래서 도시의 백년지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번 잘못된 도시의 디자인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우리 역시 지난 세월 동안 무수히 경험했다. 이렇게 중요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공무원은 2∼3년이면 담당 부서를 바꾸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제 겨우 디자인의 ‘D’를 알 만한데 또 다른 부서로 이동해야 할 판”이라는 한 디자인 담당 공무원의 하소연이 그저 신세 한탄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일관성 있는 정책과 이를 담당하고 있는 인력의 영속성이 디자인 도시를 만드는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나토미라이 21
‘미나토미라이 21’은 요코하마 도심에 있던 조선소, 창고 용지와 매립지를 주변과 연계하고 건축물 디자인과 녹지를 공공 목적에 맞게 재구성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이다. 그 사업의 중심에는 항구의 장점을 활용한 ‘수변 활용’의 콘셉트가 있는데, 강과 물을 활용한 재생사업 중 성공사례로 꼽히는 후쿠오카 캐널시티와 기타큐슈 리버워크의 경험을 잘 활용했다.


창조도시 요코하마
‘창조도시 요코하마 프로젝트’는 요코하마를 과거 르네상스의 중심 도시였던 피렌체처럼 문화예술인들의 창작촌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항만 주변에 6개의 ‘창조도시 거점지구’를 만드는 등 각종 문화예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인들의 작업 공간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예술작업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요코하마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한 경제 파급 효과가 연간 1000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요시다 신고
요시다 신고1949년생는 일본의 환경색채 디자이너로 1972년 무사시노 미술대학 기초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1974년 프랑스로 유학을 가 쟌 필립 랑크로 교수에게 배웠다. 1975년 컬러 플래닝 센터 색채계획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현재 무사시노 대학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환경색채디자인』 『도시와 색채』 『거리의 색을 만들자-환경색채디자인의 수법』 등이 있다.


바샤미치
요코하마의 대표적 중심가인 바샤미치馬車道는 막부시대 말기 개항 후 외국인 거류지에 만들어진 거리다. 당시 외국인들의 요청으로 도로 폭을 넓히고 가로수를 정비하여 마차가 다닐 수 있게 했다. 메이지 말기부터 요코하마 제일의 고급 상점가가 되었다. 옛 영화를 반영하듯 중요한 역사적 건물이 많아 요코하마시는 이를 보존 정비하여 새로운 명소로 재탄생시켰다.

 

 

참조 사이트
창조도시 요코하마 웹사이트
www.city.yokohama.jp/me/keiei/kaikou
요코하마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웹사이트
www.yokohamacreative.com

Tag
#일본 #요코하마 #도시디자인 #환경 #요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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