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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다 안이 아름다운 도시 - 도시 재생 프로젝트

 

 

우리가 도시의 겉을 꾸미는 데 온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이때, 세계의 오래된 도시들은 멋진 건물로 아름다운 도시를 꿈꾸기보다 기존의 문화나 역사를 이용한 ‘느린 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개발 논리에서 한걸음 비껴나 옛 건물의 숨결을 살린 채 새로운 문화를 심고 있는 세계의 도시를 찾아간다.

 

 

2007년을 전후로 공공디자인 붐이 시작되면서 대한민국은 대규모 ‘디자인 공사’에 돌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공공디자인이 국가경쟁력’이라며 ‘디자인 코리아’ 정책을 발표했고, 서울시도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만들고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에 팔을 걷어 붙였다. 이제 공공디자인은 작은 지방 소도시 단위까지 내려가 있다. 아쉽지만 ‘디자인 거리 만들기’, ‘예쁜 간판 만들기’ 등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캠페인성 디자인 정책을 쏟아내는 게 한국 도시디자인의 현주소이다. 문제는 아직 우리 도시의 디자인 논의가 외관을 예쁘게 꾸미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막연히 ‘아름답게’라고 외칠 뿐 구체적인 플랜과 장기적인 비전은 부족한 현실이다. 많은 전문가가 밀어붙이기 식 디자인정책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도시는 과연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까?

 
선진국 가운데에서도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가장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 곳은 독일이다. 대표적인 산업국가인 독일은 산업화 과정과 산업 구조의 격변을 겪으면서 도시의 황폐화를 먼저 경험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만큼 도시 재생을 실험할 기회와 필요성이 많았다.


독일의 서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의 뒤셀도르프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라인강의 지류인 엠셔강 유역에 뒤스부르크라는 인구 50만 명의 조그만 도시가 나온다. 뒤스부르크는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전후 독일의 경제 부흥을 이끌었던 루르 공업지의 대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에는 뒤스부르크 환경공원Duisburg Landschaftspark이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공원 하나가 있다. 이름은 분명 ‘공원’이지만 예사 공원이 아니다.


공원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보이는 모습은 잘 가꾸어진 정원이나 최첨단 놀이기구가 아니라, 까딱하면 허물어질 듯한 녹슨 용광로와 공장 굴뚝이다. 공원 안으로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고 산업시대로 돌아온 느낌이다. 오래전 물자 운반에 쓰였던 공장의 대형 파이프는 고운 색으로 갈아입은 채 아이들의 미끄럼틀로 변했고, 광석 저장 벙커는 암벽 등반 코스로 변신해 레저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동을 멈춘 이곳은 원래 독일 최대의 철강 회사인 티센의 제철소 건물이다.

 


옛 탄광의 한 기계설비실을 개조해 만든 졸퍼라인의 레스토랑 ‘카지노’.

 


산업시대의 영화가 지나간 뒤 폐허가 된 뒤스부르크의 옛 티센 공장.
아직도 쇳가루가 날릴 듯한 이 문닫은 공장이 문화의 힘으로 환경보호의 기념비가 되었다.

 


산업시대의 유물들까지 끌어안음으로써 환경생태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확장한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은 밤이 되면 온갖 화려한 조명으로 옛 공장 시설들을 비춘다.
방문객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횃불을 들고 다니며 이 장관을 카메라에 담는다.

 

1901년 지어져 지난 한 세기 동안 철강대국 독일의 신화를 만든 역사의 주역이었지만, 1985년 설비 현대화와 독일 철강산업의 쇠락으로 문을 닫으면서 유서 깊은 역사를 마감했다. 하지만 공장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지역의 자부심과 유대감을 갖게 했던 소중한 공장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큰 상실로 여긴 지역 주민이 공장 철거를 반대했고, 이는 비슷한 고민에 빠졌던 주변 도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뒤스부르크가 속해 있는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는 공업도시였다 쇠퇴의 길에 접어든 도시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계획으로 엠셔공원 건축박람라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건축박람회지만 멋진 건축물을 전시하는 일반적인 박람회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시도였다. 루르 지역의 철강과 탄광산업이 쇠락하면서 위기에 처한 지역도시를 건축적으로 접근해서 문화, 환경 도시로 탈바꿈시킨다는 마스터플랜이었다. 프로젝트에는 뒤스부르크, 뮬하임, 에센, 보쿰, 도르트문트 등 루르 지역의 엠셔강을 끼고 있는 17개 공업도시가 참여했고 1989∼1999년, 2000∼2010년, 2011∼2020년의 3단계 장기 플랜이 만들어졌다. 건축 박람회의 핵심은 폐광, 폐공장 등 기존 산업시설을 활용해 자연친화적인 도시를 만드는 일이었다.


엠셔공원 건축박람회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은 1997년, 200ha에 이르는 제철소 시설을 개조해 성공적으로 탈바꿈하여 문을 열은 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공원 안에는 물의 공원, 용광로 공원, 부스러기 공원, 철길 공원, 벙커 갤러리 등 공장 세부 시설의 특성에 맞춰 차별화된 공간이 조성되었다.


건축박람회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또 다른 도시는 에센이다. 에센 역시 뒤스부르크와 함께 루르 공업지대에 위치한 도시이다. 뒤스부르 크가 철강도시라면 에센은 탄광도시이다. 에센 북쪽 지역에 있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탄광인 졸퍼라인은 한때 하루 1만 2,000t의 석탄을 생산했던 독일 최대 탄광이었지만 석탄산업의 쇠퇴와 함께 1988년 문을 닫았다. 지금 이곳은 ‘디자인의 성지’로 바뀌어 있다. 건축가 프리츠 슈프Fritz Schupp, 마틴 크레머Martin Kremmer가 마스터플랜을 맡고 노먼 포스터, 렘 쿨하스 등 스타 건축가들이 새 단장에 참여하였으며, 디자인상으로 유명한 레드닷 디자인의 본거지인 ‘레드닷 디자인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도시는 역사를 머금고 있을 때 진정 그 가치가 빛난다. 뒤스부르크와 에센처럼 과거의 추억과 기억을 간직한 채 새로운 가치를 심어 나가는 도시 재생 움직임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무턱대고 이들을 벤치마킹 하자는 말은 아니다. 분명 보존해서 더 가치 있는 옛 건물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곳은 개발로 더욱 좋은 공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낡은 건물=개발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개발지상주의에 물든 우리 태도에 대한 반성이다.

 

 
뒤스부르크 환경공원과 졸퍼라인 모두 넓은 공장 시설을 활용해 문화 이벤트도 적극 개최하고 있다.

 

 

 

엠셔강 유역
350km에 달하는 독일의 엠셔강 유역은 산업화 기간 동안 극심하게 오염이 되어 산업 및 가정 폐수를 라인강으로 흘려 보내는 환경오염의 근원지였다. 하지만 1989년부터 이 지역을 공원 단지로 조성하는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과거 환경오염의 주범에서 지속가능한 친환경 프로젝트의 모범 사례로 성공적으로 변신하였다.


루르 공업지대
18세기 산업화의 시작과 함께 루르강 주변에서 광산 개발 사업이 일어났고 이후 공장들이 밀집되면서 강의 이름을 따 이 일대를 루르 공업지대라고 불렀다. 이로 인해 산업오수와 가정오수로 극심하게 오염되었던 루르강은 최근 재생사업에 성공하여 현재는 생활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티센
티센Thyssen은 1871년 아우구스트 티센이 설립한 루르 지방의 철강회사다. 1997년 4월 티센은 철강 무기 회사인 크루프와 합병하여 현재 유럽 최대, 세계 3위의 철강회사 티센크루프가 되었다.


엠셔공원 건축박람회
엠셔공원 건축박람회는 명칭은 박람회이지만 일종의 도시재생 프로젝트 사업이다. 루르 지역의 엠셔강과 주변도시들이 협력하여 공업화로 인한 환경오염지역의 자연 재생, 생태 복구, 여가 공간 창출, 옛 공장건물의 문화재화, 친환경 주거단지 건축, 230km 자전거 도로 개발 등의 목표를 위해 1989년부터 10년간 추진될 계획의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미완으로 끝나 현재는 이후 30년 프로젝트의 과정에 있다.


졸퍼라인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탄광인 졸퍼라인Zollverein은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럽 최대의 광공업지대였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탄광산업의 쇠퇴로 1988년에 폐쇄되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Tag
#도시 #공공디자인 #독일 #도시재생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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