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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지혜로운 소비를 위하여, 디자이너 박현정

 

 

2002년 한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했던 해,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 한글을 알리자며 친구와 함께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무작정 충무로에 가서 알록달록 여러 종이를 골라 허접한 노트를 만들고 한글자음을 모티브로 스티커도 제작해서 표지에 이리저리 붙였다. 이제 가장 큰 고민은 ‘물건을 만들었으니 어떻게 판매 할 것인가’였다. 요즘은 블로그, 페이스북 등을 통해 얼마든지 홍보가 가능하고 온라인 숍이나 오프라인의 여러 숍에서도 충분히 디자인 제품을 선보일 수 있다. 하지만 12년 전에는 온라인 쇼핑이 갓 자리를 잡던 시절이었던 터라 내 개인 홈페이지로 제품을 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확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노트를 싸들고 유일한 판매처였던 홍대 프리마켓으로 가서 처음 제품을 판매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터질 만큼 무모한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시작한 브랜드를 올해로 12년째 이어오고 있으니 나도 참 끈질긴 사람 같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시대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까지 너무나 많아졌다. 또 SNS를 통해 신제품 소식을 알리고 반응을 얻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이 제품을 판매하느냐 보다는 어디서, 어떻게 판매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시대가 왔다. 그저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만 의미를 두지 않고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착한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친환경 문구 디자인 브랜드인 공장(Gongjang) 또한 환경을 생각하는 그린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친환경 시장과 소비자 사이에서 적극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

 

나의 즐겨찾기는 이런 친환경 디자인과 판매 방식을 추구하고 있는 곳이다. 일본 도쿄에 ‘패스 더 배톤(Pass the Baton)'이라는 숍이 있다.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다면 구글번역기를 통해 사이트를 살펴보면 편리하다. 나는 이 숍을 직접 방문해보지 못했지만 사이트를 통해 업데이트되는 제품을 자주 들여다본다. 리사이클링 숍이라는 기본 취지도 맘에 들고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오래된 물건을 재활용하고 리메이크한 제품들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 정체성이 명확한 로고부터 눈에 띈다. 오래된 블라우스를 입은 손이 심플한 옷을 입은 손으로 바톤을 넘겨주고 있고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Pass the Personal Culture. New Recycle, Pass the Baton.”

 

이곳은 흔한 빈티지 숍이 아니다. 우리가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미래로 계승하자는 의미에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새로운 아이디어와 함께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개인이 수집한 추억의 물건이나 한 때 아껴 사용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판매하는데, 주인의 프로필과 물건의 스토리를 담아 소중하게 사용 할 다음 사람을 찾는 방식으로 판매한다.

 

부모님의 소장품,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물건, 여행에서 구입했던 것, 수십 년 전에 구입 했던 것 등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쓸모가 있고 소장가치가 있는 물건이 그득하다. 이 외에도 최근에 구입했지만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든지 구입해 놓고 잘 사용하지 않는다든지 물건에 대한 사연은 모두 다르다. 판매하는 제품의 종류도 다양하다. 의류, 액세서리, 신발, 그릇, 책, 문구, 장난감, 공예품 등 벼룩시장의 온갖 아이템들을 모아 놓았지만 전혀 잡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사이트에서는 카테고리 별로 소비자가 원하는 아이템을 찾기 쉽게 정리해 놓았으며, 제품에 대한 스토리와 판매자의 정보, 여러 각도로 촬영한 제품의 사진으로 물건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할 수 있다. 마켓에 참여하는 연령층도 젊은 층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하며 판매자 정보를 클릭하면 그 사람이 마켓에 내 놓은 제품 리스트도 한눈에 볼 수 있어 판매자의 컬렉션 취향도 엿볼 수 있다. 판매자는 제품 판매 수익금의 50%를 받게 되고, 환경, 지구, 아이, 음식, 예술, 스포츠, 응급지원 등 기부대상을 지정해 자선 단체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사회활동에 기여할 수 있다. 패스 더 배톤 또한 자체적으로도 각 활동단체에 매출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 배톤을 넘겨 줄 것인가. 이러한 착한 소비구조 안에서 사람들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 개인 문화를 존중하고 그것을 서로 교환하여 나에게 새로운 가치로 다가오는 연결고리가 되어 줄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오모테산도에 위치한 숍을 직접 방문해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

 

 


국내에도 착한 소비를 지향하는 ‘오브젝트’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홍대와 삼청동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온라인 숍에서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매장방문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먼저 구경하곤 한다. 사이트만 본다면 여느 쇼핑몰과 별 다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제품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자세히 보면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닌 것들이 많다. 오래된 책을 재활용해 만든 조명, 나무를 가공해 만든 핸드메이드 소품, 사진인화지를 재활용해 만든 에코백 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물건들이 눈에 띈다. 오브젝트에서는 공장 제품도 있다.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제작 과정에서 조금씩 불량이 난 제품을 이곳에서만 시중가 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지금은 모두 판매된 제품 중 ‘어쩌다 6개월 다이어리’라는 제품이 있는데 제본집의 실수로 12개월이 되어야 할 다이어리가 6개월로 잘못 제본이 된 경우였다. 제품 제작이 잘못되어 고심했는데 6개월 다이어리가 필요했던 사람들에게는 행운처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우리 브랜드 뿐 만아니라 다른 브랜드에서도 이처럼 일반 시장에서 유통하기 어려운 제품을 오브젝트에서 소개하고 있다. 또 아직 시장에 유통되지 않은 신진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제품, 아티스트의 아트워크 소품, 소규모 개인 출판사의 책들까지 다양한 아이템을 만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선 물물교환 코너가 있어 나에게 필요없는 물건을 다른 이의 물건과 교환할 수도 있으니 온라인 사이트에서 흥미가 생겼다면 직접 매장에 방문하여 착한 소비에 동참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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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비 #gongjang #오브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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