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지오 만지니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대학 명예교수는 DESIS 네트워크 공동창립자 겸 코디네이터로 다양한 사회혁신 디자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 황금나침반(Compasso d’Oro)’ 상*을 2회 수상했으며 유럽 연합 과학연구개발총국 자문위원이다. 소재 디자인, 전략 디자인, 서비스디자인을 거쳐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디자인, 사회혁신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디자인을 넘어서는 생각과 솔루션을 발표해 오고 있는 디자인 전략가이자 지속가능한 디자인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서비스디자인, 사회혁신 디자인의 대가로 꼽히고 있는 에지오 만지니 교수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가 생각하는 사회를 혁신하는 디자인으로서의 융합에 대해 들어보았다.


※‘ 황금나침반(Compasso d’Oro)’ 상은 이탈리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디자인 상으로 이탈리아 산업디자인협회(ADI)가 주관하고 전세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투표를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생애를 바쳐 최고의 업적을 쌓은 전문가에게 수여된다.

만지니 교수님께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디자인, 디자인을 통한 사회혁신과 관련한 활동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밀라노 공대에서 은퇴한 후 DESIS(Design for Social Innovation andSustainability) 네트워크(이하 DESIS)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제 DESIS는 36개의 디자인 랩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됐고 내 활동 범위도 전 세계로 넓어졌어요. 다음 주에는 콜롬비아에 들렀다가 샌프란시스코로 갑니다.

DESIS에 대해 짧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랩들이 연합해서 만든 협력 네트워크입니다. DESIS는 특정 지역을기반으로 하는 여러 개의 로컬 네트워크들로 이루어지며 로컬 네트워크 안에로컬 DESIS 랩들이 있습니다. 디자인은 사회적 혁신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수 있고, 사회적 혁신의 성공은 역으로 디자인 발전에 공헌할 수 있습니다. 사회혁신 및 지속가능 디자인은 다가올 시대의 디자이너들에게 크고 발전 가능성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DESIS는 지속가능 사회를 위한 혁신을 지원하고 그 과정에서 디자인 커뮤니티의 역할을 강화하고자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은퇴하신 후 더 바쁘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일과 여가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최근 3~4년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사회혁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를 예를 들면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사회혁신을 논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그들의 목소리도 작았어요. 사회혁신에 대한 프로젝트를 하려면 다른 방식으로 포장해야만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사회혁신을 주제로 하는 프로젝트가 굉장히 많이 생겼습니다.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을 다루는 기관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DESIS의 목적은 애초에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의 역할을 논의하고 증진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디자인을 통해 사회혁신에 기여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지식을 생산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DESIS 안에는 현재 주제별로 6개의 소그룹이 있습니다. 1) 공공/협동적 서비스, 2) 고령사회와 새로운 재능의 발견, 3) 개방적 분산형 네트워크, 4) 도농 교류, 5) 비인가 정착촌(Informal Settlement), 6) 보다 안전한 사회 등입니다. DESIS 회원들은 이중 관심 있는 소그룹에 합류하거나 필요할 경우 새로운 소그룹을 만들어 다른 회원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 역할은 소그룹의 활동을 지원하고 활성화시키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비인가 정착촌 소그룹에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지요.

연구 주제가 참으로 다양하고 통섭적입니다. 사회혁신 디자인에서 융합이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면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 분야에서 하는 모든 활동들이 다양한 분야와 지식의 융합입니다. 사회혁신이란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에 속한 사람들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또한,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이란 다양한 지식, 사고, 기술을 적용해 제품, 서비스, 커뮤니케이션, 조직, 그리고 정책까지 디자인하는 동시대의 개념입니다.하지만 융합과 통섭이 가능하려면 그 구성원이 되는 개개 분야의 정체성이 확실해야 합니다. DESIS를 만든 이유도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의 정체성과 역할을 고민하고 확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비스디자인, 사회혁신 디자인을 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이 갖춰야 할 융합적 소양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사회·환경·경제 분야의 현상과 문제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바탕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컨셉, 시나리오, 비전의 형태로 제시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해결책을 직접 실행하는 활동가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들 스스로 해결책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디자인하는, 요컨대 플랫폼을 디자인하는 촉진자로서의 능력도 중요합니다.

현재 서비스디자인의 흐름과 추세,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탈리아의 경우 4년 전부터 황금나침반상에 서비스디자인 분야가 추가되었습니다. 밀라노공대는 제품-서비스시스템 디자인, 서비스디자인, 전략 디자인과 같은 석사 과정들에서 서비스디자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서비스디자인이 발전해온 길을 돌아보면 과거에 우리가 생각한 서비스디자인이란 한 개인 또는 기업이 서비스의 모든 요소를 계획하고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서비스디자인이란 제품/서비스의 디자인, 생산, 사용, 폐기 등과 관련된 모든 요소를 디자인하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활동들을 할 수 있는 권한이 한 사람(또는 기업)에게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가능하지는 않지요. 사회혁신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있는 경우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는 경우라면 그들의 참여를 일방적으로 설계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은 결코 최선이 아닙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 서비스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Services)’ 접근이었습니다. 즉, 서비스의 이해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설계하고, 플랫폼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터랙션을 컨셉, 시나리오, 비전의 형태로 제시하고, 이러한 인터랙션이 일어날 수 있도록 문화/기술/유통/법률적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가장 유망한 시나리오 몇 가지를 시범적으로 실행하면서 궁극적으로 서비스가 활성화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한국에도 다양한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와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조언을 부탁합니다.

2011년 한국 방문 때 성미산 마을과 쌈지 농부를 둘러보면서 큰 감흥을 받았습니다. 또한, 사회혁신 분야의 전문가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것도 매우 고무적이었지요. 오늘날 사회혁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회혁신을 지원하고 확산시킬 수 있도록 DESIS 코리아** 멤버들이 더욱 노력하고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 2012년 11월 23일 DESIS 코리아가 출범했고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희망제작소 등 세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교수님께서 2013년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올해의 희망 사항은 첫째, DESIS의 주제별 소그룹 4~5개가 센터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되면서 디자인 지식을 생산해낼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는 지금 참여하고 있는 비인가 정착촌 프로젝트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날 아프리카,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의 인구가 도시로 빠르게 유입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들의 정착과 관련된 해결안을 디자인해보고 싶습니다. 셋째, DESIS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철학 토크(Philosophy Talk)에서 우리가 사회혁신이라 지칭하는 새로운 문화란 과연 무엇이고 이 안에서 형성되는 퀄리티(Qualities) - 예컨대 관계의 퀄리티, 시간의 퀄리티, 장소의 퀄리티, 노동의 퀄리티 - 에 대해 토론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글. 백준상 <울산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조교수,DESIS@UNIST 랩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