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격3동 지역브랜드 ‘산격 삶’ - 202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 소개
대구 북구 산격3동의 지역브랜딩 프로젝트 ‘산격 삶(Sangyeok Life)’이 202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브랜드 디자인·아이덴티티 부문에서 본상(Winner)을 수상했다. 행복북구문화재단이 2023년 추진한 로컬굿즈 개발 사업에서 시작됐으며, 대구의 디자인전문기업 커프웍스(KOPF WORKS)가 기획과 디자인을 맡았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의 명소나 상징물을 새로 그려 넣는 일반적인 도시브랜딩과 조금 다른 출발점을 택했다. 산격3동이라는 행정구역의 숫자 ‘3’을 주민들의 ‘삶’으로 바꾸고, 지역을 건물과 지도의 집합이 아닌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존하는 장소로 해석했다.
프로젝트 개요
산격3동, 다양성은 많았지만 연결될 기회는 적었다
산격3동에는 경북대학교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기존 주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대학생과 청년, 유학생, 외국인, 고령층, 상인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생활한다. 프로젝트는 이처럼 다양한 주민들이 같은 지역에 살지만 서로 교류하거나 지역에 소속감을 느낄 접점은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에서 출발했다.
소개서는 이러한 상황을 “학생, 외국인, 고령층이 함께 살아가지만 서로 교류할 기회는 많지 않으며, 그 사이에 도시의 고립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산격3동의 문제는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이 서로 보이지 않고 연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프로젝트의 목표도 단순히 보기 좋은 지역 로고를 만드는 데 머물지 않았다. 산격3동의 지역적 특성을 분석하고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도출해, 주민 간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지역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을 형성할 수 있는 브랜드와 굿즈를 만드는 것이었다.
‘산격3동’에서 ‘산격 삶’으로
프로젝트의 핵심 아이디어는 행정구역 명칭에 포함된 숫자 ‘3’에서 발견됐다. 숫자 3은 한국어로 ‘삼’이라고 읽는다. ‘삼’은 ‘삶’과 발음과 형태가 닮아 있다. 커프웍스는 이 언어적 유사성을 이용해 숫자로 불리던 행정구역을 주민들의 생활과 이야기를 담는 장소로 다시 해석했다.
산격 3동 → 산격 삼 → 산격 삶
‘3’이라는 행정적 기호는 주민 개개인의 ‘삶’을 가리키고, 서로 다른 삶이 모여 산격3동이라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이야기로 확장되는 이 전환은 프로젝트 전체를 움직이는 브랜드 전략이 됐다. 특히 한국어 음가가 갖는 다른 의미에 의존하는 개념을 국제 심사에서 이해시키기 위해 소개서에는 Number 3 [sam]–The Sound of 3 [sam]–The Life라는 설명 구조를 사용했다. 지역 고유의 언어를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외국인 심사자가 개념의 전환 과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번역의 사다리를 놓은 것이다. 지역성을 국제공모전에 소개할 때 중요한 것은 낯선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맥락을 번역하는 것이다.
브랜드, 이야기를 담는 그릇
‘산격 삶’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산격’과 ‘삶’이라는 글자를 분해하고 재배열한 조형으로 구성된다. 한글의 수직·수평 구조와 글자 사이의 빈 공간을 활용해 서로 다른 형태가 연결되는 모습을 표현했다. 정돈된 기업 로고보다 여러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모여 있는 동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프로젝트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완결된 하나의 상징이라기보다 이후의 이야기와 그림을 담는 기본 문법에 가깝다. 실제 소개서도 결과물을 다음과 같은 구조로 제시한다.
BI 디자인 → 그래픽 모티프 A·B → 응용디자인
처음부터 로고 단독 사용보다 그래픽과 일러스트레이션, 제품, 공간으로 확장되는 브랜드 체계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래픽 모티프 : 작은따옴표는 개인, 큰따옴표는 공동체
‘산격 삶’의 첫 번째 그래픽 모티프는 따옴표이다. 삶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지역은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축적된 결과라는 관점에서 출발했다. 주민의 목소리와 기억, 생활의 서사를 담아내는 기호로 따옴표를 선택했다. 작은따옴표는 개인의 이야기를 의미한다. 큰따옴표는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의 목소리를 의미한다.
따옴표는 로고 주변의 장식에 머물지 않고 에코백, 엽서, 거리 시설물과 안내물의 형태를 만드는 기본 조형으로 활용된다. 소개서의 슬로건인 “Your life becomes ‘Our Story’” 역시 개인의 삶이 공동체의 이야기로 확장된다는 브랜드의 구조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따옴표를 선택한 장점은 확장성이다. 크기를 키우면 공간 시설물의 형태가 되고, 반복하면 패턴이 되며, 문장과 결합하면 주민의 실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 하나의 기호가 로고·콘텐츠·제품·공간을 연결하는 공통 언어로 작동한다.
그래픽 모티프 : 주민의 차이를 지우지 않는 일러스트
두 번째 그래픽 모티프는 산격3동의 주민과 일상을 표현한 선형 일러스트레이션이다.
대학생, 외국인, 고령자, 상인, 아이와 보호자, 전동킥보드를 타는 청년 등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인물을 각기 다른 색의 선으로 표현했다. 시장, 골목, 단독주택, 대학 캠퍼스 주변 풍경도 함께 등장한다. 이 일러스트에서 중요한 점은 한 명의 대표 캐릭터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한 세대나 계층을 산격3동의 주인공으로 정하는 대신, 서로 다른 구성원이 같은 화면 안에서 나란히 등장한다. 특정한 하나의 색으로 삶을 규정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여러 색이 중심과 주변의 구분 없이 공존하도록 컬러 체계를 구성했다.
지역브랜드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유명 건축물 하나나 마스코트 하나로 지역 전체를 대표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산격3동의 정체성은 특정한 랜드마크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동시에 살아가는 장면에 있었다. ‘산격 삶’은 지역의 정체성을 사물이 아니라 관계에서 찾았다.
주민 참여가 브랜드의 근거가 됐다
보도자료와 소개서에 따르면 브랜드 개발 과정에는 주민 참여 워크숍이 포함됐다. 주민들은 산격3동의 정체성과 생활문화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고, 프로젝트팀은 주민들의 목소리를 브랜드와 굿즈에 반영했다. 소개자료를 종합하면 개발 과정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① 지역 맥락 분석
경북대학교와 인접한 입지, 원룸과 단독주택 중심의 주거환경, 청년·유학생·고령층·기존 주민이 함께 거주하는 인구 구성 등 산격3동의 특성을 분석했다.
② 주민 의견과 생활문화 수집
주민 참여 워크숍과 의견 수집을 통해 주민들이 인식하는 산격3동의 모습과 지역 생활의 특성을 확인했다.
③ 언어적 핵심 개념 도출
행정구역의 숫자 ‘3’과 주민의 ‘삶’을 연결해 ‘산격 삶’이라는 브랜드 개념을 만들었다.
④ 시각 언어 개발
‘산격 삶’ BI를 개발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나타내는 따옴표와 다양한 주민을 표현하는 다색 일러스트레이션을 구축했다.
⑤ 생활 접점으로 확장
브랜드를 키링, 텀블러, 티셔츠, 에코백 등 주민들이 실제로 사용하거나 지역 행사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굿즈로 확장했다.
⑥ 공간과 커뮤니케이션 환경으로 확장
소개서에는 현수막, 안내표지, 벤치, 휴지통, 메시지함, 엽서, 펜, 머그, 담요 등 다양한 응용안도 제시돼 있다. 일부는 실제 제작물이고 일부는 향후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콘셉트 이미지로 보인다. 공개자료에는 워크숍의 횟수, 참여 인원, 구체적인 진행 방법과 주민 의견이 디자인 안으로 전환된 세부 과정까지는 제시돼 있지 않다.
출품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첨부된 소개서는 레드닷 온라인 출품을 목적으로 수상작을 어떤 이야기와 이미지로 정리했는지 보여주는 자료이다. 구성은 크게 다섯 단계로 읽을 수 있다.
1) 지역의 문제와 목표
산격3동은 다양한 주민이 함께 살지만 상호 교류가 적고, 도시적 고립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문제를 제시한다. 로고가 어떻게 생겼는지보다 왜 이 브랜드가 필요했는지를 먼저 설명한다. 산격3동의 인구 구성과 주민 간 단절이라는 문제를 제시했기 때문에 이후의 시각적 선택이 장식이 아니라 해결 과정으로 읽힌다.
2) 한 문장으로 설명되는 핵심 아이디어
‘3(삼)’과 ‘삶’을 연결해 행정구역 명칭을 사람 중심의 브랜드로 전환한다. ‘3에서 삶으로’라는 전환은 짧고 기억하기 쉽다. 좋은 출품 콘셉트는 긴 보고서를 읽어야만 이해되는 논문 제목이 아니라, 한 문장으로 설명한 뒤 여러 결과물로 증명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단, ‘삼’과 ‘삶’의 관계는 한국어 화자에게는 직관적이지만 외국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소개서는 발음과 의미의 전환을 단계별 영문 설명으로 제시했다.
3) 일관된 시각 시스템
BI, 따옴표 그래픽, 다색 일러스트레이션이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고 ‘개인의 삶이 공동체의 이야기가 된다’는 하나의 개념을 공유한다. BI, 따옴표, 일러스트레이션, 컬러, 굿즈와 공간 응용안이 하나의 체계로 연결된다. 심사자는 결과물의 외형뿐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일관되게 확장되는지를 보게 된다.
4) 다양한 접점으로의 확장성
가방과 텀블러에 로고만 인쇄한 수준을 넘어, 굿즈·편집물·광고·사인·거리 시설물까지 같은 브랜드 문법을 적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산격 삶’의 응용안은 브랜드의 개념이 일상과 공간에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5) 디자인이 만들고자 하는 사회적 변화
최종적으로 ‘산격 삶’은 단절된 사람을 다시 연결하고 도시의 일상에 온기를 더하는 지역 공동체 브랜드라고 정의한다.
소개서 마지막에는 문제, 개념, 따옴표의 의미, 주민 캐릭터, 주민 참여, 굿즈 확장과 공동체적 목표를 하나의 영문 문단으로 압축해 제시한다. 앞에서 보여준 시각 자료를 마지막에 하나의 서사로 묶은 것이다.
‘산격 삶’은 로컬굿즈 개발 사업에서 출발했지만 굿즈를 지역명이 새겨진 기념품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키링에는 다양한 주민 캐릭터가 들어가고, 에코백과 티셔츠에는 산격3동의 거리와 생활 장면이 담겼다. 엽서에는 따옴표와 함께 직접 이야기를 적을 수 있는 공간을 두었다. 굿즈를 통해 주민이 자신의 지역을 가지고 다니고, 다른 주민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굿즈의 역할은 브랜드의 개념을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주민이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드러내는 작은 표식이 되는 데 있다. 소개서는 각각의 아이템을 지역에 대한 소속감과 연결감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정의한다.
‘산격 삶’은 숫자로 관리되던 행정구역의 명칭을 주민의 삶으로 전환하고, 서로 다른 구성원의 목소리를 따옴표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시각화했다. 이를 주민이 사용하고 공유할 수 있는 굿즈와 생활 접점으로 확장했다. 지역 브랜딩은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발견하고, 서로 볼 수 있게 만들며,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하는 일이다. ‘산격 삶’은 숫자 하나, 따옴표 한 쌍, 동네를 오가는 주민의 모습에서도 그 언어가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