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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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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극장] 제 2막, 상이한 영역과 상이한 권리관계(1)







지난 제 1막에서는 디자인극장에 올라온 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 등장인물들의 기본적인 권리관계를 살펴봤다. 이들 배역이 하는 일의 속성, 기대, 욕망, 약속을 차변으로 삼고, 여러 법률과 시장의 원리를 대변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를 비교하면서 디자이너의 권리를 따져 보았다. 이 무대에 익숙해진 관객은 이제 무대 자체에 대해서 시선을 돌릴 것이다. 여기는 어떤 무대인가? 무대에 설치된 장치와 환경이 바로 디자인극장 제 2막의 주제다.






디자인극장에서는 마치 모의재판처럼 몇 가지 법률과 권리가 다뤄집니다. 잘 알아듣기 위해서 사전 지식이 필요하죠. 디자이너의 작업과 관련해서는 저작권, 디자인특허(흔히 ‘디자인권’이라고 칭하죠), 기술특허(그냥 ‘특허’라고 부릅니다), 상표권, 부정경쟁행위, 영업비밀침해 같은 것이 있어요. 이들은 모두 독점적인 권리예요.
 
 
우선 저작권으로 보호하는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뜻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상이나 감정이 아니라 “표현”입니다. 저작권법은 표현한 결과물을 보호합니다. 하지만 모든 결과물을 보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학문적 혹은 예술적 범위의 독창성이 있으며 또한 독립적인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모든 디자인에 저작권이 생기는 것은 아니에요. 독창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또한 독립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어요.  저작권은 국가에 신청하는 게 아니라 창작과 동시에 발생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작권은 법원에서 재판할 때에야 비로소 그 얼굴이 드러난답니다.

디자인특허는 국가에 15년의 독점권을 국가에 신청해서 받는 것이에요. 국가는 무엇에 대한 디자인이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대상이 되는 물건(물품)을 반드시 정해야 해요. 물품이 다르면 디자인은 다른 것입니다.

특허는 기술에 관한 20년짜리 권리예요. 디자인이 어떤 기능의 변화를 추구하는데, 그런 기능 변화가 새롭다면 특허도 시도해 볼 수 있겠죠. 3D 디자인에서는 특허는 중요하게 다뤄집니다만, 2D 디자인에서는 적용할 여지가 거의 없어요.

상표권은 나와 남을 구별해주는 어떤 표지에 대한 독점권입니다. 브랜드, 상호, 성명, 로고, 캐릭터가 나와 남을 구별해주는 기능을 한다면 상표권은 아주 유용한 권리랍니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반쪽 자리 지식이에요. 디자인특허처럼, 상표등록을 하려면 반드시 품목이나 업종을 적어내야 해요. 국가는 묻습니다. 어떤 품목에 대한 것이냐고 말이죠. 의류에 대한 것인지, 장난감에 대한 것인지, 주방 제품에 대한 것인지를 분명히 해서 권리를 신청해야 합니다. 상표가 동일해도 품목이 다르면 서로 다른 상표권으로 봅니다.

성춘향의 굉장히 유명한 디자인 X가 있다고 가정해요. 사람들은 디자인 X가 성춘향 것인지 쉽게 알고 있다고 보는 거죠. 홍길동이 디자인 X을 무단으로 사용한 제품을 팔면 소비자들은 그게 성춘향과 특별한 관련이 있다고 여깁니다. 성춘향은 부정한 모방 때문에 신경증을 앓을 수 있어요. 그때 요긴한 법제도가 부정경쟁행위 방지법이랍니다. 성춘향은 홍길동의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라고 주장할 수 있어요.

한편 디자이너는 취업해서 일하고 있는 회사의 무형 재산을 함부로 가지고 나오거나 다른 사람한테 보여줘서는 안 돼요. 만약 회사가 디자인 원본파일, 재료에 대한 정보, 시장조사자료, 고객 정보 파일 같은 영업자료를 자신의 경쟁력 있는 비밀처럼 여기고 관리했다면, 그건 회사 거예요. 디자이너 것이 아니죠. 함부로 가지고 나오면 영업비밀침해로 처벌 받을 수도 있답니다.






디자인극장의 무대는 편집디자인실이다. 편집디자이너 성춘향은 그녀의 책상에 앉아서 어떻게 하면 의뢰인의 비즈니스를 매력적으로 시각화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녀는 책의 표지를 디자인한다. 그녀는 책의 속편집을 다룰 수도 있다. 단행본일 수 있고 여러 판형의 잡지일 수도 있다. 브로슈어, 팜플릿, 리플렛, 카탈로그 등의 여하한의 인쇄물일 수 있다. 그녀의 작업실에는 큼지막하게 “Free Synthesis & Beautiful Margin”(자유로운 통합과 아름다운 여백)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편집디자이너 성춘향은 그녀의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으로 말미암아 고객에게 큰 신뢰를 받고 있다. 그녀는 대범한 레이아웃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사용하는데, 특히 황진이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선호한다. 황진이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성춘향이 추구하는 디자인 메시지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디자이너 성춘향은 자신의 디자인을 모방하는 장길산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장길산은 낮은 가격으로 고객을 유혹하는데다가 워낙 탁월하게 모방하는 기술을 갖고 있어서 이에 대한 성춘향의 신경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성춘향은 장길산을 상대로 법적인 조치를 결심하고 전문가를 찾았다.
 

성춘향의 디자인은 과연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권리 관점으로 보자면 유감스럽게도 성춘향은 원하는 답을 얻기 곤란하다. 편집디자인을 보호할만한 권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격다짐으로 편집디자인의 결과물에 대해서 디자인보호법이 규정하는 디자인특허(디자인권)를 신청할 수도 있겠다. 모년모월에 작업한 편집디자인에 대해서 보호해 달라는 신청이다. 그렇지만 편집디자인의 결과물은 고객의 의뢰에 따라 또 상황과 유행과 작업 의도에 따라 매번 달라지게 마련이어서 디자인특허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어떤 편집디자인에 대해서 디자인특허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레이아웃이나 이미지가 바뀌어 시각적인 편집 효과가 달라졌다면 그 차이를 묵살하면서 권리주장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권리만을 생각해서 디자인의 변화를 포기할 수도 없다.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 성춘향은 더이상 디자이너가 아니다. 늙은 디자인은 시장에서 서서히 혹은 급격히 퇴출된다.

그렇다면 저작권은 어떨까? 성춘향은 레이아웃과 독창적인 편집 방식에 대해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답답한 해답이 돌아온다. 저작권은 성춘향을 밀어낼 가능성이 크다. 판면권은 좀처럼 인정되기 어렵다. 임꺽정은 자신의 디자인이 누군가의 디자인을 복사기로 카피(copy)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면서 성춘향의 저작권(copyright) 주장을 반박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항변은 재판관과 배심원을 설득할 수 있다. 무릇 상대방이 있는 싸움은 쉽지 않은 법이다. 임꺽정이 다음과 같이 주장하면 성춘향은 소송에서 패배할 것이다.
 

“저는 성춘향의 편집디자인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어요. 도대체 성춘향이 무슨 권리를 주장하는지 모르겠어요. 저작권은 표현형식을 보호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성춘향은 자꾸 컨셉을 이야기해요. 그것은 그녀의 사상이나 감정이겠죠. 레이아웃의 대략적인 컨셉이 유사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정도의 유사성은 우리 디자이너 그룹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예요. 우리 디자이너들은 리서치를 하죠. 그리고 서로서로 참조하고 또 보태고 빼면서 작업을 해요. 그저 아주 자연스러운 디자인 작업예요. 디자인은 미묘함에 반응합니다. 보세요. 게다가 실제로는 차이점이 더 많아요. 사용한 이미지가 다르고, 위와 아래의 배치도 달라요. 글자의 폰트도 다르잖아요. 저는 성춘향의 디자인을 카피한 것이 아니라, 제 나름의 독창적인 작업을 쏟은 결과란 말이죠.”

그러므로 모방에 관련한 편집디자이너 성춘향의 신경증은 법원에서 치료하기 몹시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대법원 2011. 2. 10. 선고 2009도291 판결 참조). “권리를 주장하는 편집디자이너”의 목소리가 있겠지만, “자유로운 디자인작업을 주장하는 편집디자이너”의 목소리도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게 좋겠다. 성춘향은 어느 순간 갑자기 뛰어난 디자이너가 된 것이 아니다. 앞선 디자이너의 노력과 성과를 학습함으로써 오늘의 편집 디자이너가 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결과가 성춘향에게는 차갑게 들리고 약이 아니라 매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뛰어난 디자이너”로서의 성춘향의 지위와 명예가 뒤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디자이너의 신경증은 시장에서 고객의 신뢰를 통해 치유될 수 있다. 더욱이 디자인의 성과물은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한 개의 성과”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편집디자이너 성춘향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출처를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다. 일종의 브랜드가 되겠다.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서 출처를 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만일 디자이너의 로고가 디자인 결과물에 작게나마 표시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진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일관된 포트폴리오로 관리하는 것이다. 모방은 원창작자의 시장 지위와 능력을 증거한다. 그것이 그녀의 명예임을 스스로 자각하면 신경증의 상당부분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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