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을 서비스디자인으로 다시 보다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 개선방안 연구
백현정
한국 사회에서 자살은 오래된 비극이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공공의 실패다. 2024년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 해 동안 14,872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하루 평균 40명 이상이 자살로 사망한 셈이다. OECD 평균과 비교해도 한국의 자살률은 여전히 매우 높다. 이 숫자는 개인의 불행이나 가족의 슬픔으로만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가 누군가의 위기를 제때 발견하지 못했고,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지 못했으며, 고립된 사람을 다시 삶의 관계망 안으로 데려오지 못했다는 냉정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살예방은 왜 디자인의 주제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디자인계 독자에게 낯설 수 있다. 자살예방은 전통적으로 의료, 상담, 복지, 행정의 영역으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위기는 어느 한 기관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경찰, 소방, 응급의료기관, 자살예방센터, 행정복지센터, 복지기관, 지역 주민조직이 각자의 자리에서 관여한다. 문제는 이 기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안전망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관과 기관 사이의 연결, 절차, 책임, 정보 공유, 경험의 연속성이 제대로 디자인되지 않는다면 안전망은 찢어진 그물이나 다르지 않다.
백현정 연구자의 석사학위논문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적용한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 개선방안 연구」는 이 찢어진 지점을 들여다본다. 연구는 시흥시 정왕본동 생명존중안심마을을 중심으로, 자살 고위험 주민을 둘러싼 지역사회 민관기관의 협력 과정을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으로 분석했다. 이해관계자 지도, 서비스 블루프린트, 고객 여정 지도, 워크숍, 실무자 인터뷰를 통해 자살예방 서비스가 어디서 끊기고, 어떤 순간에 당사자가 다시 고립되며, 기관 간 협력이 어떻게 보완되어야 하는지를 살핀다.
이 연구의 핵심은 자살예방을 하나의 '서비스 경험'으로 바라본 데 있다. 자살 고위험 주민은 위기 상황에서 여러 기관과 접촉한다. 각 기관이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더라도, 이용자 입장에서는 서비스가 끊기거나 반복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으로 경험될 수 있다. 행정적으로는 연결되었다고 보이는 순간에도, 당사자는 여전히 혼자 남겨질 수 있다. 자살예방의 실패는 때로 개별 기관의 실패가 아니라, 기관 사이 연결의 실패로 나타난다.
연구자는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세스를 적용해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한 뒤, 개선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전달 가능한 방안으로 정리했다. 이해관계자 지도는 지역사회 자원을 시각화하고, 서비스 블루프린트는 기관 간 협업의 전방·후방 과정을 드러내며, 고객 여정 지도는 자살 고위험 주민의 접촉과정을 따라가며 서비스 단절 지점을 확인하게 한다.
연구는 정왕본동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의 개선방안을 중앙정부, 지자체, 지역사회 이해관계자 차원으로 제안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자살예방 재정 확대와 부처 간 정책 연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자살예방을 지역 현안으로 다루는 컨트롤 타워 역할, 조례와 위원회 운영, 보건·복지 연계 강화가 중요하다. 지역사회 차원에서는 기관 간 역할 정립, 사례회의와 간담회의 정례화, 정보 공유, 교육, 주민 대상 홍보와 생명지킴이 활동 등이 제안된다.
물론 서비스디자인이 자살예방의 전문적 개입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건·복지·응급·행정의 전문성이 당사자에게 끊기지 않고 도달하도록 만드는 일은 분명 디자인의 영역이다. 이 연구는 자살예방사업을 캠페인이나 개별 기관의 업무로 보는 시각을 넘어,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작동해야 하는 서비스 시스템으로 다시 정의한다.
생명존중안심마을은 생명을 지키는 마을을 표방한다. 그러나 마을이 실제 안전망이 되기 위해서는 선언보다 연결이 중요하다. 백현정의 연구는 그 연결이 어디서 약해지고, 어떻게 다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자살예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통해, 서비스디자인이 복잡한 공공서비스의 관계와 절차, 책임 구조를 개선하는 실천적 방법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백현정 | 시흥시정신건강복지센터 팀장
지역사회 정신건강 현장에서 22년간 일해 온 정신건강전문요원이다. 정신건강증진과 자살예방을 위한 상담, 사업 기획, 기관 간 협력 업무를 수행해 왔다.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정신건강의 어려움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돕고, 연결해야 할 과제임을 고민해 왔다. 생명존중안심마을 사업에 서비스디자인 관점을 적용해 주민 발굴, 서비스 여정, 협력 구조를 연구했다. 현재는 정신건강복지센터 실무자의 지역사회 서비스 협력 경험을 주제로 박사과정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서비스디자인을 사람과 자원, 기관과 제도 사이의 끊어진 연결을 회복하는 공공 실천의 방법으로 탐구하고 있다.
초록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적용한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 개선방안 연구
- 정왕본동 생명존중안심마을을 중심으로 -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디자인콘텐츠학과 헬스케어디자인 전공
백현정
지역사회의 사회문화적 맥락, 구성원과 민관기관의 자살예방에 대한 인식, 그동안 기관이 서로 맺어온 협력관계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생명존중안심마을 사업은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에 따라 2024년부터 정책적으로 조성하는 마을단위 사업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업 시행과 지역사회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은 목표 설정으로 지자체마다 사업 실행에 대한 부담감이 높은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생명존중안심마을 사업이 취지에 맞게 지역사회 민관기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추진될 수 있도록 그동안의 협력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자살 고위험군에게 자살예방 서비스가 접근하기 쉽고, 유기적이고 통합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네트워크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본 연구는 시흥시 정왕본동 생명존중안심마을에서 자살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한 이해관계자들의 협업과정을 분석하였다. 연구방법은 대표적인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인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세스 모델을 적용하였다. 자살 고위험군과 이해관계자가 접촉하는 모든 경로의 유·무형의 요소에 대해 이용자 중심의 리서치 방법으로 분석하고,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 이해관계자들이 도출한 문제점에 대해 접근성, 통합성, 전문성, 책임성이라는 전달체계 원칙을 비추어 중앙정부 차원, 지자체 차원, 이해관계자 차원에서의 개선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중앙정부의 자살예방 재정 확대 및 정책이 구체적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자살사망자 미래소득 감소분을 추산해 보면 1인당 409백만원이 나온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고려한다면 자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추계된 규모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국가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인식하에 자살예방 인프라 마련을 위한 재정을 확보하고, 자살예방사업의 예산 규모를 확대하여야 한다. 또한 자살 고위험군에게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자살예방을 목표로 부처별 관련 사업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 마련과 구체적인 지침이 수립되어야 한다.
둘째, 지자체 중심의 대응체계가 강화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법과 조례에 근거하여 자살예방에 대한 책무성과 행정적 권한을 가진다. 지자체가 자살예방정책을 총괄지휘하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함으로써 자살 고위험군에게 지역사회 서비스가 연속적이고 통합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지역 자살예방을 위해 예산의 규모를 확대하고 사문화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위원회를 운영될 수 있도록 정기적인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지자체 중심의 보건·복지서비스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통합적 전달체계를 구축하여 지역사회 네트워킹을 위한 상호 준비를 모색하여야 한다. 자살예방사업 수행기관으로 자살예방센터가 책임성 있게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역할과 권한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셋째,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은 이용자 중심의 자살예방 서비스를 구현하여야 한다. 먼저 자살예방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관 간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 사례회의 및 교육의 정례화, 간담회 운영을 통한 정보공유 및 협력 강화 등 서비스가 책임성 있게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자살 고위험군의 복잡한 심리사회적 상황을 이해하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들의 전문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자살 고위험군을 위한 지역사회 서비스가 그들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여 포괄적이고 통합적으로 제공되어 어느 정도 삶의 안정과 자립을 이루기까지 연속적으로 제공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 구성원의 생명존중인식을 높이기 위해 기관별로 조직화된 주민들을 대상으로 주민 활동가 교육과정을 주민 리더들과 공동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을 제안한다.
주제어: 생명존중안심마을, 자살예방 전달체계, 자살예방 네트워크, 민관협력
목차
Ⅰ. 서론
1.1 연구의 배경
1.2 연구의 목적
1.3 연구의 범위와 방법
1.3.1. 연구의 범위
가. 용어의 정의
1) 생명존중안심마을
2) 자살 고위험군
3) 네트워크
4) 이해관계자
나. 연구의 범위
1.3.2. 연구의 방법
Ⅱ. 이론적 고찰
2.1 서비스디자인
2.1.1. 서비스디자인의 개념 및 원칙
가. 서비스디자인의 개념
나. 서비스디자인 원칙
1) 서비스의 특징
2) 서비스디자인 원칙
2.1.2. 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
가. 발견하기(Discover)
나. 정의하기(Define)
다. 발전하기(Develop)
라. 전달하기(Deliver)
2.1.3. 서비스디자인 도구
가. 고객 여정 지도(Customer Journey Maps)
나. 이해관계자 지도(Stakeholder Maps)
다. 서비스 블루프린트(Service Blueprint)
2.2 자살예방사업 전달체계
2.2.1. 자살예방정책 추진 현황
2.2.2. 자살예방사업 전달체계
2.2.3. 자살예방사업 전달체계 원칙
가. 통합성
나. 접근성
다. 전문성
라. 책임성
2.3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
2.3.1. 생명존중안심마을 추진 현황
2.3.2.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
가. 생명존중안심마을 전달체계
나.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
2.3.3. 국내 생명존중안심마을의 조성 사례
가. 김해시 사례
1) 추진 현황
2) 이해관계자
나. 부산광역시 북구 사례
1) 추진 현황
2) 이해관계자
다. 시흥시 사례
1) 추진 현황
2) 이해관계자
Ⅲ. 정왕본동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 문제점 도출
3.1 발견단계
3.1.1. 문헌연구
가. 지역적 특성
1) 일반 현황
2) 자살 현황
3) 환경적 특성
나. 정왕본동 생명존중안심마을
1) 추진 현황
2) 이해관계자
다. 정왕본동 생명존중안심마을 이해관계자 지도
3.1.2. 워크숍
가. 워크숍 개요
나. 사전준비
다. 워크숍 진행
3.2 정의단계
3.2.1. 서비스 블루프린트
가. 자살 위기 현장
나. 지역사회
다. 서비스 블루프린트
3.2.2. 고객 여정 지도
가. 시나리오
1) 대상자 설정
2) 접촉과정 분석
나. 고객 여정 지도
3.2.3. 실무자 인터뷰
가. 인터뷰 개요
나. 인터뷰 결과
3.2.4. 문제 정의
가. 문제 탐구
1) 자살 위기 현장
2) 지역사회
나. 소결 : 네트워크 문제
Ⅳ.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 개선안 제시
4.1 발전단계
4.1.1. 아이디어 도출
가. 자살 고위험군 발굴
1) 정책적 개선방안
2) 프로세스 개선방안
나. 대상자 의뢰 및 개입과정
1) 정책적 개선방안
2) 프로세스 개선방안
다. 인식개선
1) 정책적 개선방안
2) 프로세스 개선방안
4.2 전달단계
4.2.1. 개선방안
가. 정책적 개선방안
나. 프로세스 개선방안
다. 소결 : 네트워크 개선방안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그림 17. 서비스 블루프린트

그림 18. 고객 여정 지도

그림 21. 정왕본동 생명존중안심마을 네트워크 시스템 맵(정책적 개선방안)
#서비스디자인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