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발생하는 의료진에 대한 폭력 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요즘이다. ‘의료인 폭행방지법’에 관한 논의가 나올 정도로, 병원 내 폭행 사건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나 예기치 못한 급성 질환이나 사고 환자를 다루는 응급실에서 이러한 폭행 사고가 잦다. 응급실의 의사와 간호사는 위중한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한편, 때로 환자 본인이나 보호자의 폭력이나 폭언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를 디자인의 시각에서 접근하여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더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형태를 부여하는 행위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유무형의 대상을 아우르는 경험을 다루는 디자인이 점점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이름하여 ‘서비스 디자인’, ‘경험 디자인’이 그러한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응급실에서의 폭력을 줄이기 위해 디자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의료진이 폭력에 노출될 때, 의료인의 기본 인권뿐만 아니라 다른 응급 환자의 치료 기회마저 박탈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응급실 폭력은 심각한 문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응급실의 진료 체계는 물론 이용자의 경험을 폭넓게 사유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응급실에서는 왜 화가 날까?
응급실에 환자가 도착하면 접수와 함께 상태 초진, 중증도 분류, 엑스레이(X-ray), MRI 등 추가 검사를 거쳐 최종 진단과 치료가 이뤄진다. 이 모든 진료 과정이 매끄럽게 연결된다면 좋겠지만, 긴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에서는 과정 중간중간에 피할 수 없는 긴 ‘대기 시간’이 발생하기 일쑤다.
응급실의 진료는 선착순이 아니라 생명이 위태로운 순서를 우선으로 한다. 그런데 환자마다 자신의 상태가 가장 심각하고 위급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오해가 발생한다. 의료진이 판단하기에 당장 처치를 요하지 않는 상태라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실제 치료를 받기까지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