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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진화하는 디자인

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진화하는 디자인

20세기 디자인의 21세기 생존법


 

– 하비 몰로치(Harvey Molotch)

 

[상품의 탄생, 그리고 디자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국내 소개된 책의 저자인 사회학자 하비 몰로치(Harvey Molotch)는 이렇게 말했다. 상품의 사회학, 소비의 인류학에 초점을 둔 그는 상품의 흐름과 소비의 코드를 바탕으로 세상을 읽었다.

그가 주목했던 ‘세상을 바꾸는 상품’, 그리고 그런 ‘상품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관계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상품과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보고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추측하는 것처럼, 이제는 한 시대의 상품이 또 그 상품의 디자인이 특정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할지도 모른다.

워크맨처럼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베스트셀러와 그 디자인으로 당시 사람들이 물건을 통해 얻고자 했던 바를 짐작할 수 있다면, 한 카테고리의 물건이 변화해온 모습은 라이프스타일의 변천사를 훑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태양광 휴대전화 충전소가 된 영국의 빨간색 전화 박스


첫째는 휴대폰 보급에 밀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공중전화 박스다. 빨간색 공중전화 박스는 영국 하면 떠오르는 아이콘 중 하나. 1924년 건축가 자일스 길버트 스콧(Giles Gilbert Scott)이 디자인한 것으로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인 빨간색 공중전화 박스. 1924년 건축가 자일스 길버트 스콧이 디자인한 것으로 여전히 영국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런던 전역에 8000여 개의 공중전화 박스가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템이긴 하지만 휴대폰이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21세기에 공중전화를 사용할 일은 별로 없다. 한때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던 공중전화는 거리에 방치된 채 관리 문제 등으로 도시의 골칫덩이가 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영국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중전화 박스는 에너지 낭비가 문제시되기도 했다. 기존의 공중전화 박스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의 학생이었던 해럴드 크라스턴(Harold Craston)과 커스티 케니(Kirsty Kenney)는 기존의 공중전화 박스를 태양광을 이용한 휴대전화 충전소로 바꾸는 방법을 제안했다.

“매일 아침 학교를 오가며 공중전화 박스를 보면서 런던 전역에 사용되지 않고 있는 8000여 개의 공중전화 박스를 어떻게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한 해럴드 크라스턴의 말이다.

2014년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의 올해의 신진 기업가상을 수상하고 런던시 올해의 저탄소 기업가상에서 준우승을 거머쥔 이 아이디어는, 2014년 10월 1일 런던 시내 토트넘 코트 로드 역에 처음 설치됐다.



2014년 10월 1일 런던 시내 토트넘 코트 로드 역에 설치된 솔라박스. 초록색 솔라박스 위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으며, 안에는 각종 디지털 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가 구비되어 있다.

 

 

솔라박스 내부 모습

 

런던의 문화를 상징하던 빨간색 공중전화 박스는 녹색 경제를 상징하는 초록색 솔라박스(www.solarboxlondon.org)가 됐다. 솔라박스 위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으며, 안에는 각종 스마트 폰과 태블릿PC, 카메라 등의 충전기가 구비되어 있다. 오전 5시 30분부터 밤 11시 30분까지, 365일 사용할 수 있다. 태양광을 이용하여 휴대폰을 완충하는 데 4시간이 걸리고, 하루 최대 100대의 폰과 태블릿을 충전할 수 있다고. 기다리는 동안 광고를 시청하기만 하면 이용 요금은 무료다.

전화하고, 메시지 보내고, 사진 찍고, 음악 듣고, 동영상 보고, 검색하느라 온종일 꺼둘 틈이 없는 휴대폰의 배터리, 그리고 더 이상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공중전화 박스라는 두 가지 문제를 태양광이라는 친환경 재생 에너지를 활용해 똑똑하게 해결한 셈이다. 2015년까지 추가로 4개의 솔라박스가 더 설치될 예정이라고. 빨간색 공중전화 박스가 점점 초록색 솔라박스로 바뀌면, 21세기 런던의 아이콘 역시 바뀔지도 모르겠다.


런던 시내에서는 초록색 솔라박스 뿐만 아니라 무료 와이파이 사용 구역을 표시하는 검정 전화박스도 볼 수 있다.



접어서 들고 다니는 플러그


휴대용 전자기기를 사용하기 전까지만 해도 벽의 콘센트에 꽂아야 하는 플러그를 들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휴대폰, 태블릿PC, 노트북처럼 들고 다니는 전자기기가 많아지면서 충전용 플러그도 함께 챙기게 됐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우리나라의 플러그는 그래도 납작한 편이라 휴대가 그다지 불편하지 않지만, 영국의 경우는 다르다. 1940년부터 유지해온 영국의 플러그는 금속핀 3개가 있는 두툼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최민규(www.madeinmind.co.uk)가 ‘폴딩 플러그’를 디자인하게 된 이유다. 영국 왕립예술학교 졸업 프로젝트로 시작한 ‘폴딩 플러그’는 2010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이 선정하는 브릿 인슈어런스 디자인 어워드(현재는 올해의 디자인으로 명칭 변경)에서 ‘올해의 디자인’으로 선정됐다.

 

2010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이 선정하는 브릿 인슈어런스 디자인 어워드에서 ‘올해의 디자인’에 선정된 디자이너 최민규의 ‘폴딩 플러그(Folding Plug)’ 프로토타입.

 

‘접어서 얇게 만들자’는 콘셉트는 간단했지만, 실제 제품으로 양산되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이었던 ‘폴딩 플러그’는 2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더 뮤’라는 이름의 제품으로 출시됐다.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단지 전자기기의 디자인 자체가 작고 얇고 가벼워진 것을 넘어 플러그 시스템까지 달라진 것이다. 플러그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접어서 얇게 만들자’는 목표 아래 만든 프로토타입. 제품이 양산되기까지 프로토타입 제작 과정을 거쳐 디자인을 계속 수정했다.



제품으로 양산된 ‘더 뮤’. 1940년대부터 유지되어온 영국 플러그를 바꾼 디자인이다.

 

디자이너 최민규는 올해 초 영국식 플러그에만 적용됐던 ‘더 뮤’를 ‘뮤 시스템’으로 확장시켰다. 플러그 부분을 마치 블록처럼 끼웠다 뺐다 할 수 있게 디자인해 영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플러그 규격이 다른 나라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이런 시스템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국뿐만 아니라 플러그 규격이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킨 ‘뮤 시스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인디고고에서 13만 9125달러를 투자받았다.


사물인터넷 기술로 만든 똑똑한 줄넘기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모든 사물을 연결하여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의 정보를 상호 소통하는 지능형 기술 및 서비스’를 의미한다. 사물인터넷은 디자인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최근 탱그램 팩토리(www.tangramfactory.com)가 선보인 ‘스마트 로프(Smart Rope)’는 사물인터넷이 이끌어갈 디자인의 미래를 짐작게 한다.

‘스마트 로프’로 줄넘기를 하면 눈앞에 줄넘기 횟수가 표시된다. 허공에 말이다. 줄넘기를 넘을 때마다 하나씩 늘어난 숫자가 공중에 영사된다. 줄넘기가 회전하는 숫자를 컴퓨터 칩이 계산하면, 줄넘기 줄에 들어 있는 23개의 LED 정교하게 발광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탱그램 팩토리가 개발한 ‘스마트 로프’. 줄넘기를 하면 눈앞에 줄넘기 횟수가 표시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줄넘기 손잡이에 블루투스가 탑재되어 있어, 애플리케이션 ‘스마트 짐’과 연동하면 줄넘기를 하며 축적되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단순히 운동 상태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용자의 키와 몸무게를 입력하면 줄넘기를 얼마나 오래 많이 했는지 뿐만 아니라 줄넘기를 하면서 소모한 칼로리 수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스마트 로프’와 ‘스마트 짐’은 줄넘기라는 운동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스마트 짐’과 연동해 사용할 수 있다. 크라우딩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 19만 3376달러를 투자받았다.


탱그램 팩토리는 ‘스마트 로프’의 콘셉트를 ‘클래식의 진화’라고 설명한다. 스마트 로프는 디지털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날로그 제품인 줄넘기에 사물인터넷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 단순한 운동 기구를 체계적으로 건강 관리까지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든 줄넘기의 진화를 보여준다.



라이프스타일, 기술, 그리고 디자인


결과적으로 디자인은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사용자 요구의 변화는 물론이고 기술의 발전 등 다양한 측면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라이프스타일이 디자인을 바꾼 것인지 디자인이 라이프스타일을 바꾼 것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를 논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든 디자인은 아마 지금까지 가장 진화된 형태일 것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 변치 않고 지속돼 온 디자인이라고 해도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는 모를 일이다. 20세기 디자인이 21세기에도 생존하려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른 디자인의 진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발행일 : 2015. 05. 21.

출처

  • 김영우

    대학에서 실내 건축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로 일했다. 현재 영국에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 컬처에 대해 공부하며 월간 <디자인> 영국 통신원으로 디자인에 관한 글을 계속 쓰고 있으며, 한국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 ‘헬로 레시피(www.hello-recipe.com)’의 영국 컨트리뷰터로 활동하고 있다.

  • 제공 한국디자인진흥원

    유형의 사물에서 무형의 경험까지, 생활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디자인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본 연재는 네이버캐스트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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