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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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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56년 간의 기록,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도록이 공개되었습니다.



디자인DB > 아카이브 > 간행물 메뉴에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도록이 추가되었습니다. 

2022년 5월 31일,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도록(1966~2021. 56년 간의 자료)이 모두 업로드되었습니다. 

첨부된 도록 PDF는 텍스트 인식 되어 있어서 검색도 됩니다.

많이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디자인DB에는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도록을 포함해  정기간행물, 연구보고서 등 총 354권의 자료가 등록되었습니다.

아래 링크로 추가된 자료가 무엇인지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jBSpZfPKaxCkI_koJ3C8Mg3pt5W5MdPX6Sogth-AqhE/edit#gid=791235435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도록 표지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역대 대통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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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는?
1966년 상공부 주최, 상공회의소 주관으로 제1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를 시작으로 현재(2022년 57회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까지 이어지고 있는, 디자인 전 분야를 대상으로 공모하는 국내 최고의 권위의 콘셉트 디자인 어워드입니다. 전 세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제도를 통해 미래를 선도할 디자인 콘셉트와 혁신 발굴. 글로벌 차세대 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수출 입국을 통한 자립 경제의 목표 달성을 위해 우리 경제사의 일대 전환기라 할 수 있는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던 1960년대 후반, 상공부의 정책적 뒷받침하에 산업디자인의 연구 개발 활동을 촉진시켜 생산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수출 진흥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안내... : https://www.kidp.or.kr/?menuno=911

 

 

 

 

...제1회 ‘대한민국 상공미술전람회’(현재의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이하 ‘상공미전’)가 열린 1966년에는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완성연도이자 1967년부터 시작되는 제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준비 기간에 해당되는 의미 있는 해였다. 같은 해에 ‘(사)한국포장기술협회’와 ‘한국공예디자인연구소’가 같은 시기에 발족된 것도 우연한 일치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정부의 포장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강했다는 점을 시사하는 중요한 지표라고 말할 수 있다. ‘상공미전’이 만들어진 계기는 1965년 11월, 상공부 주최로 24명의 공예인들을 초청하여 수출품 포장디자인에 관해 열렸던 간담회였다. 이렇게 본다면, 당시 서울대학교의 미술대학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던 한국공예디자인연구소가 ‘상공미전’을 태동시킨 모태가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공예디자인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있었던 이순석은 한홍택, 박대순, 민철홍, 권길중 등과 더불어 ‘상공미전’ 5회까지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제1회 ‘상공미전’은 1966년 8월 3일부터 22일까지 상공부 주최, 대한상공회의소 주관으로 국립미술관(경복궁 후원)에서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거의 매회 개막식에 참석하였으며, 당시 상공부 장관이었던 박충훈이 전람회장을 겸하였다. 이는 이 전람회가 당시에 얼마나 국가적인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이 전람회의 성과가 얼마나 수출품의 부가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였는가를 말해주는 징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람회는 크게 상업미술, 공예미술, 공업미술의 세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정부에서 일차적인 관심을 가졌던 부문은 상업미술 부문이었다. 왜냐하면 가장 시급한 문제는 디자이너에 의한 수출품의 개발보다는 수출품의 포장개선이 시급한 시대적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출품작가가 산업 일선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학계에 몸담은 디자이너나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실제 기업 일선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고, 그러한 성향의 작품 중에서 입선 이상의 시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에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수출포장디자인 위주의 작품이라기보다는 포스터, 달력 디자인, 일품공예의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공예작품 등이 다수 출품되었다. 그러나 제2회 전시회 이후에는 그 성격에 맞춰 포장디자인 작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러다 제4회 전시회에서는 패키지디자인이 대통령상 다음의 상에 해당하는 국회의장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후의 전람회에는 상업미술 부문의 출품작의 상당수가 패키지디자인이었으며 전람회 초기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관광포스터, 달력 디자인은 패키지디자인과 더불어 꾸준히 지속된 주제였다. 도판으로 실린 사진은 당시 출품작들의 경향을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주요 수상작들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그러나 상공미전 입상작들은 기업에 의해 현실적인 제품으로 거듭 태어나지 못했다. 전람회의 성과가 기업과 수출에 연계되지 못하고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는 점은 상공미전이 가진 태생적인 한계였다. 왜냐하면 이 전람회가 학계의 발의로 시작되었고 심사 역시 학계가 주도해나갔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순석, 한홍택, 민철홍, 김교만 등이 포함된 제1회 심사위원의 명단은 이 전시가 초기부터 얼마나 학계 중심이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징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상공미전은 패키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크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지나치게 설립 초기부터 현장 중심의 전람회의 성격을 확립하지 못하고 학계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 전시회를 통하여 인정할만한 디자인 능력의 소유자들, 즉 ‘추천 작가’를 공식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간접효과를 거두었다.(후략)

 

디자인코리아 (2020, 한국디자인진흥원)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설립까지의 前史' 중에서 발췌, 오근재

 

 

공모전이란 어떤 특정한 목적으로 작품을 공개 모집, 선정·전시하는 제도이다. 초대 형식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형식이기에 심사 제도가 수반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가 최초의 공모전으로서 1949년 정부 주관 아래 시작되었다. 이러한 국전은 보통 아카데미와 관계되는 경우가 많아 보수적 성격이 짙은 편이었지만, 오랫동안 신인들의 등용문이자 예술 창작 활동을 점검할 기회를 제공해온 것도 사실이다.

1966년 8월 상공부가 주최한 국내 최초의 디자인 전람회인 《대한민국 상공미술전람회》(이하 《상공미전》)는 1971년 제6회부터 KIDP가 이어받아 주관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미술 수출’이라는 정책 아래 미술계와 산업계를 직접 연결해 수출 및 국내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1965년 상공부의 주재로 공예인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대학의 디자인 교육자들은 국전에 상응하는 산업 미술 전람회를 개최해 범국가적인 디자인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고, 상공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상공미전》이 시작됐다. 그 목적은 “현재 국가 총력을 경주하는 수출 진흥의 방해 요인 중 특히 디자인의 낙후는 우리나라 상품의 수출 부진을 자초하여 왔음을 비추어 정부에서 수출 진흥책의 일환으로 대외적으로 우리나라 디자인의 후진성을 만회하여 수출 증진을 기하고 대내적으로 우수한 디자인의 창안 기풍을 조성하여 디자인의 진흥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수출 증진의 결실을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첫 번째 《상공미전》은 1966년 8월 3일부터 22일까지 경복궁 미술관에서 1부 상업미술부, 2부 공예미술부, 3부 공업미술부 총 3부로 나뉘어 소규모로 치러졌다. 초기에는 일반인들도 참여했으나 점차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출품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1973년 2월 5일 정부는 《상공미전》의 세부 규정을 대통령령 제6486호로 마련해 디자이너를 발굴해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공모전으로 바꾸었다.

《상공미전》은 디자인의 각 분야에서 전문 디자이너들을 배출했다. 강찬균, 권명광, 양승춘, 김영기, 김효, 박윤정, 김덕겸, 이창호, 김길홍, 이순혁, 배천범 등 1974년까지 약 86명의 디자이너들이 《상공미전》을 통해 이름을 알렸는데, 이들 중 몇몇은 이후 KIDP의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헌정될 정도로 한국 디자인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70년대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점점 정립되어 가면서 《상공미전》이란 명칭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부적합하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1976년 9월 18일 대통령령 제8249호에 의거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이하 《디자인전람회》)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규정도 일부 개정됐다. 개최 요강 역시 상당 부분 수정되었다. 제1부 산업미술을 시각 디자인으로, 제2부 공예미술을 공예 디자인으로 개칭해 국제적 통용어에 근접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 개칭에도 혼란을 겪어 1979년에는 시각 디자인, 공예 디자인, 제품디자인으로 수정하며 점차 산업디자인의 개념을 정립해갔다. 이후 심사 부문에 환경 디자인을 추가하거나 포장디자인을 시각 디자인에서 분리해 독립 부문으로 신설하는 등 디자인의 흐름과 시대적인 추세에 맞춰 변화해갔다.

제42회(2007)부터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로 바뀌어 개최되고 있는 《디자인전람회》는 차세대 디자이너의 등용문 역할과 다가올 미래의 디자인 트렌드를 조망해 디자인을 통한 산업의 미래와 문화 전반에 걸친 삶에 방향을 제시한다는 기본 원칙을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품디자인, 시각정보디자인, 디지털미디어·콘텐츠디자인, 공간·환경디자인, 패션·텍스타일디자인, 서비스·경험디자인, 산업공예디자인 등 7개 부문과 초대 및 추천 디자이너 부문에 걸쳐 선정하고 있다.

《상공미전》으로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는 《디자인전람회》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초창기의 어려움을 딛고 꾸준히 이어져오며 디자인에 대한 인식과 사고를 전환시켰을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서 우리나라의 디자인 및 경제 발전에 공헌해 왔다.

디자인코리아 (2020, 한국디자인진흥원) 중 '‘미술 수출’에서 ‘디자이너 등용문’으로 :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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