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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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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 도록 - 한국디자인포장센터, 1978

제13회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 도록

한국디자인포장센터, 1978

 


발간사

 

거국적인 경제 발전과 수출 신장으로 산업 경제의 급속한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이 때에 제13회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 전람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올해도 각 산․학계의 디자인 분야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호응이 있었다는 것은 세계 각국의 치열한 수출 경쟁과 우리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명 및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이번 출품 경향을 보면 종래의 학생 중심에서 벗어나 생산 업체와 일반 전문가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도구에 피와 사랑이 통하는 우수한 작품들이 출품되어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가속화하여 창의적 개발과 연구 노력하는 성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도 필사적인 수출 전략 경쟁에 임하고 있는 이 때에 조금이라도 안일할 수는 없으며, 창의적인 디자인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우리도 수출 대열에 앞장서야만이 우리들의 살 길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매년 개최되는 행사이지만 행사로서 그칠 것이 아니라 해마다 강조되고 있는 디자인 개선으로 수출 입국하는 사명감을 깊이 인식하고, 아직까지 이 산업디자인 분야에서는 개발의 여지가 많음을 자인하고 매진하여야 될 줄 압니다.

상공부가 주최하고 한국디자인포장센터가 주관하는 이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 전람회에는 그 출품수가 매년 증가하여 사계의 적극적인 참여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규정에 의거 올해부터 초대 작가 제도를 신설하여 권위와 긍지로써 후진양성과 선도적 역할을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 또한 거국적인 행사의 일환으로 대구·부산 전시를 위시하여 광주· 대전으로까지 확대 전시함으로써 산업 디자인계의 더욱 폭넓은 전시 계몽으로 비약되는 길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산업 디자인 전람회는 시대 조류와 국가적 요구에 수용할 창의적이며 전진적인 비전을 위한 광장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제도적인 개선과 그 기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은 이번 제13회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 전람회의 입상작·특선작 및 추천 작가와 초대 작가의 작품입니다.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바입니다.

1978년 10월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이사장 김희덕


 

임원 명단

 

대회장 최각규 상공부 장관

부회장 배상욱 상공부 차관

집행위원장 김희덕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이사장

위원

한재열 상공부 중소기업 국장

하진필 한국디자인포장센터 부이사장

봉상균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진흥 상무 이사

김유옥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 이사

윤정희 한국무역협회 이사

이은규 대한무역진흥공사 이사

박대순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권순형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조영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심사위원

 

위원장 박대순

부위원장 조영제, 길한식

 

제1부 시각디자인

분과위원장 김홍련

위원 이찬주, 김명호, 백철, 김영호, 조영제, 박용도, 양호일, 권명광, 봉상균

 

제2부 공예디자인

분과위원장 권순형

위원 한재열, 백태원, 이은규, 이신자, 길한식, 김덕겸, 김유옥, 황종례, 윤미자

 

제3부 공업디자인

분과위원장 이우성

위원 하진필, 민철홍, 나창수, 곽원모, 김정웅, 이희종, 최승천, 박원의, 박대순

 

 

심사총평

 

금년 들어 산업 디자인전도 명칭을 바꾼 지 2년이 되며, 상공 미전(商工美展)이 시작된 지 13회라는 나이를 맞이하였습니다. 우리가 1백억 달러 수출의 고지를 넘어서면서 앞으로 2백억 달러 고지를 향해 전진하는 산업 사회 속에서 우리 디자인계가 산업에 직접 간접적으로 기여한 사실에 대하여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공 미전이 처음 개최된 1966년도만 하더라도 디자인이란 용어 자체도 생소하였으며, 우리 사회속에 디자인이 아직 정착하지 못하였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전을 계기로 디자인계는 물론이요, 기업인·수출 상사들도 점차 디자인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간 상공 미전은 모방의 시대와 흡사한 시기를 10여 년간 겪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년부터 산업 디자인전으로 명칭을 바꾸어 디자인의 참뜻을 인식하게 되고 수출 1백억 달러를 달성하면서 저임금에 의한 저염가 수출에서 이제는 탈피할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제 후진국의 울타리를 벗어났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수출 상품도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 세계 속의 한국으로서 선진 대열에 끼이게 될 시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생산 제품에 대한 디자인 개발'로 한국인에 의한 디자인이 세계 속에 침투하여야 할 창의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디자이너들의 사명은 우리나라의 고도 성장과 산업의 강력한 발전, 즉 공업화 사회와 정보화 사회의 진전은 디자이너들의 사회적 필요도(Social need)를 더욱 높여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만드는 일로부터 사용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 생산에 관한 총합 계획(Total planning)을 할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디자인은 예술의 극(極)으로부터 과학의 극에 이르는 횡단적이고도 폭넓은 영역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쾌적한 생활 환경을 조성하는 총합 계획이며, 환경 디자인이란 큰 우산 속에 내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 과학 기술은 점차 전문화·세분화되어 좁고도 깊게 연구되어 상호의 관련성을 상실하여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예술과 조화를 이루어 가며 환경 디자인이란 큰 우산 속에 통합시키려는 디자인 활동이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이라고 하겠습니다.

최근에 와서는 학제 연구(Interdisci-plinary)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대규모의 연구를 단독 전문 분야의 학문으로서는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넓은 범위의 학문간의 협력 연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디자인은 원래가 통합을 기조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경 조성이란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관계의 학문 이외에 도시 공학(都市工學)ㆍ건축학 · 기계 공학·전기 공학·인간 공학·문화 인류학(文化人類學)ㆍ심리학·사회학 등 사회 과학·인문 과학·자연 과학 전반에 이르는 광범위한 학문의 협력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디자인이야말로 대표적인 학제 연구(Interdisciplinary)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국제 사회 속에서 디자인의 흐름은 그 영역이 확대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 환경 속에서 2백억 달러 수출 고지를 눈앞에 두고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산업 디자인전의 흐름이 국제적 흐름에 얼마나 접근하고 있는지 한번은 반성을 하고 넘어갈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도 예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좀 다른 점은 예년에 비해 학생들의 출품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전체 출품수의 약 30% 내외인 반면에 산업계 디자이너들의 적극적인 참여란 점입니다. 이것은 극히 바람직한 일인데, 그것은 이들의 디자인이 바로 메이커의 상품으로 소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앞으로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의 우수한 디자인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총출품수는 646종, 1,748점으로서 작년에 비해 제1부 시각 디자인부나 제2부 공예 디자인부에서는 많은 증가를 보였으나, 제3부 공업 디자인부에서는 학생들의 작품이 많이 줄어든 대신에 일선 메이커의 현역 디자이너들의 출품이 대부분인 것은 그만큼 공업 디자이너의 질적 향상을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통령상 수상작인 박 성우(朴成祐) 작‘수출용 책상 용구 세트’는 우리나라 전통 공예인 목칠(木漆)을 바탕으로 현대 감각에 맞는 기하학적인 단순한 형태로 정리하여 목재의 재질감 (材質感) 과 칠(漆)의 특성을 살려 하나의 포장으로 수납할 수 있게 한 착상이 여러모로 좋았다고 봅니다. 이러한 점 등이 여러 심사 위원에게 호감을 주어 결선 투표에서 대통령상으로 뽑혔습니다.

국무총리상은 제1부 시각 디자인부의 신용호 작‘관광 포스터'로서 한국 관광을 소개할 수 있는 내용을 아주 섬세하고도 재치 있는 기법으로 처리하여 복잡한 내용을 하나로 통일시킨 구도나 색감(色感)이 아주 좋았습니다.

부총리 겸 경제 기획원 장관상의 지해천 작 '비데오 카세트 카메라’는 그 형태면이나 색채 계획, 그리고 기능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다고 보겠으며, 특히 이러한 제품은 지금 선진국에서는 사무실·학교·가정용으로 각광을 받을 전략 작품으로서 그 착상이 아주 좋았다고 하겠습니다.

다음 각 부별로 살펴보면, 제1부 시각 디자인부에는 346종이 응모되어 입선 작품은 48종으로 특선은 12종, 입상은 3종입니다. 시각 디자인은 매년 그 응모 작품수가 증가되고 있으며, 작품의 내용이나 기법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우수작이 속출하여 심사에 많은 애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응모 작품이 포스터에 편중되어 있는 점은 시정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며, 이번에는 그런대로 포장 디자인과 POP 등이 출품된 것은 퍽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상 작품인 한국 디자인 포장 센터 이사장상의 장병석(張丙錫) 작 ‘기아 혼다 포스터' 는 화면의 구도나 계층 변화의 색채 변화와 거기에서 풍기는 속도감(速度感) 등은 포스터의 사명을 다한 구상이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상인 백명진(白明振) 작 ‘호루겔 캘린더'는 캘린더로서뿐만이 아니라 회화적(繪畵的)인 기법의 묘사는 음률에 말려 들어가는듯한 광고 매체로 훌륭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제2부 공예 디자인부에는 218종 출품에 입선 73종과 특선 12종, 수상작은 3종입니다. 금년에는 출품수가 많이 늘어났으며, 심사 과정에서 생산적인 요소에 중점을 두고 용(用)과 기능면에서 우수하며 주변에 산재하여 있는 재료와 전통적인 공예를 보다 산업적으로 디자인한 것을 주로 심사 대상으로 하여 지나치게 일품 공예적(一品工藝的)인 것은 입선에서 탈락시켰습니다. 수상작은 대통령상 외에 한국 무역 협회 회장상을 받은 장미연(張美燕)작 ‘테이블 매트’는 그 문양(紋樣)이 한국적이면서도 용도는 서구적인 착상으로 관광 민예품으로서도 각광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며, 중소기업 협동 조합 중앙회 회장상인 서길용(徐吉龍)작 '다기(茶器) 세트'는 우리 나라의 도자기를 다기(茶器)로 응용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3부 공업 디자인부는 산업 디자인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데, 작년에 비해 출품수가 줄어 82종이 출품되었고 이 중에서 45종이 입선되었으며, 특선 12종과 입상은 3종입니다. 이 분야는 그간 역사가 짧아 기업인이나 사회에서 그리 인식되지 않은 분야였으나, 꾸준한 노력과 생장으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분야가 짊어진 사명감은 막중한 것입니다. 전람회의 초창기에 비하여 그 수준의 향상은 격세지감이 있으나 아쉬운 것은 아직도 디자인 테마가 전자 제품이나 가전제품(家電製品)의 디자인이 대부분으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점입니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시야를 넓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상 작품을 보면 상공부 장관상인 임창영(林昌榮)작 ‘조명 기구'는 그 소재를 종이로 하여 접을 수 있게 한 기능적 구조나 작은 공간으로 포장 수납할 수 있는 지기(紙器)의 구조 등은 아주 착상이 좋았다고 하겠으며, 종이 등이 보여 주는 구성적 · 미적 형태와 저렴한 가격이 가능한 재료의 선택은 훌륭하다고 하겠습니다.

다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상인 이영재 작 '다용도 개스 렌지'는 운반에 편리하도록 컴팩트화시키면서도 기능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 있게 한 디자인은 레저 상품으로서 외국에 수출하는 데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심사위원장 박대순

 

 

목차

 

발간사/김희덕

임원 명단

심사 위원 명단

추천 작가 명단

심사 총평/박 대순

출품 및 입상자 현황

입상 작품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부총리 겸

경제 기획원

장관상 · 상공부 장관상

한국 디자인 포장 센터 이사장상·

대한 상공 회의소 회장상

한국 무역 협회 회장상·

전국 경제인 연합회 회장상

중소 기업 협동 조합 중앙회 회장상·

대회장상

특선 및 입선 작품

제1부 시각 디자인

특선 작품

입선 작품

제2부 공예 디자인

특선 작품

입선 작품

제3부 공업 디자인

특선 작품

입선 작품

추천 작가 작품

제1부 시각 디자인

제2부 공예 디자인

제3부 공업 디자인

초대 작가 작품

제1부 시각 디자인

제2부 공예 디자인

제3부 공업

디자인

부 톡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 전람회 연혁

입상자 · 특선자 입선자 주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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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산업디자인 전람회의 어제와 오늘

백철

상공부 중소기업국 지도과장

 

1966년에 제1회 대한민국 상공 미술 전람회를 개최한 상공 미전은 10년이 가까운 기간이 지나는 동안 디자인 창안 기풍을 조성하는 메 선도적 역할을 다해 왔다. 그러나 현대 디자인의 경향은 미술적인 경지를 벗어나 과학을 겸비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점과 전통적인 미술 전람회의 영역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전람회의 명칭 및 성격을 변경시키는 제도 개선의 움직임이 1974년에 있었다.

한국 디자인 포장 센터 주관으로 “상공 미전 제도 개선 심의회”를 구성하게 되었고, 1977년 8월 22일에는 한국 디자인 포장 센터 회의실에서 장성환, 하진필, 한기성, 김현기, 최문기, 조영제, 백태원, 박대순 등 제씨가 참석하여 제1차 회의를 시초로 수차에 걸친 회의를 개최하고 그 결과를 상공부에 건의하기에 이르렀으며, 상공부는 보다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몇 명의 사계 또는 관련 기관에 질문서를 보내어 의견을 받아 종합하였었다.

종합된 의견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람회 명칭을 개정하여야 한다. '대한민국 상공 미술 전람회'를 '대한민국 디자인 전람회'로 개칭하여야 한다. 미술이란 표현이 본 전람회의 목적에 부적합할뿐더러 디자인이란 표현이 세계적으로 보편화 된 용어이며 본 전람회의 목적에 부합되고, 전람회의 과학화를 지향하기 위해서도 시대에 적응한 명칭을 계몽·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출품 부문을 추가 신설하고 명칭을 변경하여야 한다. 현행의 상업 미술 부문 · 공예 미술 부문 및 공업 미술 부문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시각(視覺)디자인 부문·공예 디자인 부문. 공업 디자인 부문 및 환경 디자인 부문으로 구분하여야 한다. 상업 미술을 시각 디자인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상업 미술이란 표현이 모호하여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고, 환경 디자인부를 신설하는 이유는 디자인 분야가 환경 디자인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는 세계적 경향으로 금후 디자이너들의 커다란 역할이 기대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세째, 초대 작가 제도를 신설하여야 한다. 현행 제도에는 추천 작가 제도가 있으나 그 작품을 심사할 권위 있는 작가 제도가 없으며, 신진 작가와 원로 작가의 구분이 없어 추천 작가로 일괄 취급하고 있으므로 디자인계의 계서 (階序)가 확립되지 않는다. 또한 초대작가 제도는 작품의 질적인 향상과 디자인전의 체제 확립에 기여할 것이다.

네째, 추천 작가상 수여를 제도화하여야 한다. 제9회 상공 미전부터 추천 작가상을 수여하고 있으나 시상 근거가 없이 시상하고 있으므로 이를 규정하여야 한다. 추천 작가상의 수여는 중견 작가(中堅作家)의 개발 의욕을 고취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다섯째, 출품수를 작가 1인당 각 부문마다 3점으로 제한하고 있는 현행 제도를 철폐하여야 한다. 많은 출품을 장려하는 의미에서 출품수의 제한은 철폐하여야 한다 등이었다.

이상과 같은 요지를 골자로 한 '대한민국 상공 미술 전람회 규정의 개정(안)'을 만들어 절차를 밟았으나 환경 디자인부의 설치에 대하여는 고속 도로 및 도시환경을 관장하는 건설부와 소관 사항의 문제가 명확치 않아 보류되는 상태가 되었었다. 장시간의 휴면 기간을 거친 후 1976년 4월 13일 한국 디자인 포장 센터 회의실에서 상공 미전 제도 개선 소위원회를 열고 하진필, 한기성, 유광열, 민철홍, 이은규, 필자 등이 참석하여 환경 디자인 부문 신설 문제는 일단 보류하기로 하고 명칭은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 전람회' 로 '디자인' 앞에 '산업'이라는 악센트를 두기로 하였다.

상공 미전의 내용이 실용화와 수출에 기여하도록 하는 희망을 어느 궤도에 오를 때까지 강조하고자 1차·2차·3차 산업을 망라하는 경제학 용어를 첨가하도록 하였었다.

다시 절차를 밟게 되었으나 또다시 난관에 부닥치게 되었는바, 법령의 제정이나 개정을 할 때에 체제를 검토하는 기관에서 “1976년 5월 17일자로 심의를 요청한 대한민국 상공 미술 전람회 규정 중 개정령(안)은 그 내용이 규정의 명칭을 위시하여 '상공 미술'을 외국어인 '디자인'으로 개정하는 것이 주요 골자로 되어 있는바, 이는 정부의 국어 순화 방침에 배치되는 것이므로 적절한 우리말로 바꾸어 표현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되어 일단 반송하오니 선처하시기 바랍니다”는 의견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어문 행정을 관장하는 문교부에 의견을 문의한바, “디자인이란 용어는 우리말로 적합한 표현이 없어 교육 과정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회신하오니 참작하시기 바랍니다”고 되어 1976년 9월 18일 (편집자註: 1976년 7월 5일자 현직 김희덕 이사장 취임]에 대통령령 제8249 호로 '대한민국 상공 미술 전람회 규정 중 개정령'이 공포됨으로써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 전람회'가 탄생하게 되었고, 1977년도에는 제 12회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 전람회를 한국 디자인 포장 센터 상설 전시관에서 개최하게 되었었다.

지난 수년 동안의 산업 디자인 전람회의 개최 요강 내용의 변천을 보면, 1976년 (제 11회)에는 시상 부문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은 1백만 원의 부상(副賞)과 해외 연구 시찰 추천의 부상을 위시하여 국무 총리상·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상. 상공부 장관상까지는 시상금과 해외 연구 시찰 추천의 부상을 주는 등 모두 3백만 원의 시상금과 5명의 해외 연구 시찰을 추천하여주도록 하였었다. 장소는 덕수궁 안 국립 현대 미술관을 임대하여 개최하였고, 지방 이동 전시는 예산 관계로 실시하지 못하였다.

1977년의 제 12회 전람회에는 대통령상의 부상은 시상금을 150만 원으로 인상하고 시상금의 총액을 430만 원으로 늘렸으며, 해외 연구 시찰 추천은 중소 기업 협동 조합 중앙회장 수상자까지 모두 9명에게 혜택이 가도록 늘렸다. 시상금과 해외 연구 시찰 추천의 수가 증가된 것은 모두 출품자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노력이었다고 보며, 특히 해외 연구 시찰 추천을 계속 늘리는 것은 우수한 수상 디자이너들이 선진국의 디자인계를 연구하고 시찰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본다.

금년 6월에 개최된 제 13회에는 최고상인 대통령상의 경우 2백만 원으로 시상금을 다시 인상시키고 총액은 750만 원으로 제 12회 때보다 320만 원을 인상시켰고, 수상자 중 해외 여행 추천 인원은 특선자까지 확대시켜 45명 이상으로 늘렸으며, 출품 디자이너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아 왔다.

전시장의 규모도 덕수궁 내의 국립 현대 미술관을 임대하여 전시할 때는 4백 평 미만이었던 것이 1977년의 제 12회 때부터는 한국 디자인 포장 센터의 자체 전시관을 확보하여 개최하게 되었으므로 450여평 내외까지 늘려 전시하게 되어 전시장의 협소로 겪던 애로는 없어지게 되었다.

지방의 디자이너들과 산업계를 위하여 실시하는 이동 전시도 부산 · 대구에서 광주·대전 지역까지 확대.전시하게 되었으며, 총전시 기간은 6월 1일부터 8월 말까지 3개월여 동안 전시하게 되었다.

 

 


산업 디자인전의 의미와 공과

장윤우

성신사대부설 산업미술연구소장

 

산학일체 (産學一一體)의 표본으로 수출 상품 및 국내 디자인 개량을 목표로 창설된 '대한민국 상공 미술 전람회'는 11회의 연륜을 쌓은 1976년 9월 18일자로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 전람

회'로 개칭되었다.

제1부 시각(視覺) 디자인부, 제2부 공예 (工藝)디자인부, 제3부 공업(工業)디자인부로 나뉘어져 1977년도 제12회전에는 총응모 작품이 1,573 점이었다.

심사 위원장인 권순형(權純) 교수는 “초창기의 미술 대학 학생층의 출품에서 양적으로는 줄었으나 일선 디자이너로 압축된 질적인 성장”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올해의 제 13 회전도 예년과 같이 성황이었다. 1백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우리에게 당면한 커다란 과제의 하나가 디자인 개선임은 말할 나위도 없게 되었다. 외제의 모방이나 표절이 아니고 참 우리의 것을 제시하고 세계 속의 코리어를 심어 줄 때가 성큼 다가선 것이다. 우리의 상품이 우리의 이미지를 가지고 떳떳하게 세계 시장을 석권해야 할 때가 지금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산업 디자인전이 가지는 의의가 어느 때보다도 막중하고 “이대로 좋을 것인가”를 검토해 보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움직이는 세계, 날로 변해 가는 유행과 디자인 감각, 그리고 기능성(機能性)에 대처하는 문제를 떠안은 디자인전은 관전 (官展) 형식인 산업디자인전 말고도 꽤나 된다. KSID 라든가 한국 디자이너 협의회, 산업 미술가 협회, KSGD, KSCD, 동아 공예 대전(東亞工藝大典), 우수 농가공 개발 상품전, 전국 각 미술 대학의 그룹전, 개인전 등등...

기업체의 디자인실도 판촉(販促이라든가 여러 가지 형태로 강화되어 가고 있다.

이제 디자인은 단순한 설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사활이 걸려 있다. 아이디어에서부터 설계·판촉 · 데이터 · 경영 ·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것을 조립하고 책임을 갖는다. 따라서 디자이너의 개념도 미(美)의 조리사인 동시에 사회적 기술자이고 조직자로 나아간 것이다.

좀 무엇하긴 하지만 국전(國展) 공예부(工藝部)를 생각해 보자. 국전의 전신(前身)이랄 수 있는 선전(鮮展)에 공예부가 생긴 것은 제 11회인 1932년부터였다. 강창원 등 한국인이 나전칠기 · 도자기·민예품 등을 출품하기 시작하였고, 제 23회 (1944.5)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예인들이 참여하였었다. 해방 이후 국전 공예부에는 디자인까지 포함해서 많은 작가들이 노력을 기울이고 새로운 작가들이 속속 탄생되었으나, 여기에도 문제점은 없지 않았다.

이경성(李成) 교수의 『한국 현대 미술사』공예편에 따르면, “7회 때부터 눈에 띄게 위축된 공예는 일반 입선 작가의 한정된 공예 의식이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고 있는가 하면, 이순석(石)의 돌취미는 예술이 아니고 애무를 일삼는 취미적인 것으로 굳어져 가는 것 같고, 김재석 (金在奭)의 도자기는 무던히도 재주가 없다는 것을 되풀이해서 보여줄 따름이고, 김진갑(甲)의 나전칠예도 완전한 매너리즘에 빠져 청신한 맛은 하나도 없고, 박성운(朴星云)의 목공예품(木工藝品)도 노력과 성실에 비해 소질의 유무를 의심할 지경이다. 근 10년 같은 심사 위원의 같은 기준과 같은 취미 밑에서 자라 온 국전 공예는...... (중략) 안이한 타협과 협상의 시장으로 화하였다. 극언하면 동화(東貨) 백화점 일층 토산품 판매장 같은 분위기 속에서 명패만 국전이라고 높이 내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제 27회 봄 국전을 보자. 지난 4월 21일 발표된 제3부(書藝.四君子)와 제4부(工藝建築.寫眞)의 입상 작품들을 놓고 “갈수록 초라해지는 국전”이라고 지상에서 혹평하였다.

어째서 그럴까. 국력은 갈수록 신장되고 예술 중흥을 표방하는 정책인데, 유일한 관전 (官展)으로서의 국전, 특히 공예 부문인 봄 국전이 혹평을 면치 못하는 것은 어디에 원인이 있는 것일까. 오늘의 한국 공예 디자인과 공업 디자인계를 주도하는 인사들의 대부분이 이 곳의 관문을 통해 나왔거나 통하고 있는 것으로 필자는 안다. 이 분들에 의해 미래의 한국 공예 디자인과 공업 디자인계를 걸머질 인재들이 무럭무럭 커가고 있음도 사실이다. 물론 국전 공예의 성격과 개칭된 산업 디자인전의 방향이 다름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길지 않은 한국 공예 디자인의 역사를 살필 때 국전 공예가 걸어 온 자취가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제도(특히 심사 방법)의 바뀜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난제를 앞으로도 안고 가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전통의 현대화인지 탐미(美)와 아류(亞流)의 형성인지 확고 불멸한 기준이 아쉬운 채 국전은 벌써 노쇠한 숨을 가쁘게 쉬고 있다.

참신하고 선도적인 산업 디자인전, 국력과 더불어 세계 만방에 펼쳐야 할 막중한 인재들의 등용문으로서의 이 전람회는 어떤가. 제 13회 전까지 이끌어 옴으로써 뿌리를 늘이고 기반을 다진 공을 치하하고 싶다. 특히 불모의 공업 디자인이 환경 개선과 수출 증대로서의 일익을 담당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대통령께서는 '미술 수출(美術輸出)'이라 격려하시지 않았던가. 그러나 공적을 내세움보다는 앞으로도 연면할 거국적 행사이기에 이 시점에서 다시 진단해야 할 요인은 없는가 숙고하고 싶다.

한 가지만을 제언하려고 한다.

심사의 과정이다. 산업 디자인전은 전술한 바와 같이 시각 · 공예 · 공업의 세 디자인부로 대별되어 있다. 제1부에는 Commercial design 으로서의 poster, packaging, lay out, DECOMAS visual communication의 다양한 매체가, 제2부에는 product design 으로서의 목(木)·금속·초자(子)·섬유· 플라스틱 도자(陶磁) 등 입체 작품이, 제3부에는 양산(量産)과 경제성, 전통과 창의, 기능과 시장성 (市場性)등의 전자·산업 제품이 출품자의 기량을 총동원하여 자웅을 겨루게 된다.

입상작의 어느 것은 기업화되기도 하고, 산학 협동(産學協同)의 좋은 본보기로 후학들에게도 일조가 되는 것이다.

디자이너로서의 관문 통과, 교직자는 연구 경력의 일환으로, make money 등 필요한 목적이 있기에 출품자는 제일 먼저 누가 심사할 것인가에 관심을 쏟게 된다. 이는 당연한 이치이다.

대체로 추천 작가급에서 부문별 권위자가 심사를 떠맡게 된다. 그렇다고 보면 대개 누구가 이번에 심사할 것인가가 부각되게 마련이다. 어느 분은 도자공예에 권위급이니까 무슨 경향이 유리하다. 어느 분은 염직 (染)에는 전혀 생소하니까 이번에는 불리하다. 이 분은 은사(恩師)이니까, 그분은 자기 직계 (直系)에만 손을 쓰신다, 등등 별별 루우머가 돌게 된다.

심사 위원 선정 때나 입상작 결정에도 표대결은 불가피하다. 표를 많이 모으는 사람이 심사에 참여도 하게 되고, 또한 최고상 입상 등 표의 힘은 막강하다.

“젊은 친구가 고약해. 은사도 몰라 보고 표를 가지고 나를 막 몰아 붙이는군. 새로 심사에 참여한 위원을 놓고 푸념하는 얘기다. 구더기 무서워 된장 못 담그랴마는 문제는 심각할 수가 있다.

평생을 두고 외길을 파도 눈이 겨우 떠질까말까 한다는 노작가(老作家)의 겸손(?)한 말씀이 되새겨진다. 예컨대 흙과 유약 (釉藥)과 불의 싸움. 이 분은 돈도 가정도 친구나 세속적인 것은 전혀 관심 밖이다. 다른 도작가(陶作家)의 작품을 대할 때도 지극히 망설인다. 함부로 평을 못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창작 세계를 자기 나름의 취향과 편견으로 혹 욕되게 하지 않을까 저어해서이다.

그런가 하면 유약의 발색 과정도 모르는 젊은 목공예가(木工藝家)가 일언지하에 매도해 버리는 것을 본다. 섬찟하다.

모르니까 전공 이외의 분야는 외면해 버리는 심사 위원도 있지 않을까. 만사를 제쳐놓고 제자의 작품 제작을 도와 주는 심사 위원도 계시는 것 같다. 내것을 밀기 위해서 상대의 주장도 쉽게 받아들이는 이런 일은 없을까.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고, 이런 일은 늘어놓아 보았자 치부만 보일 뿐 하루 아침에 양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출품자 자체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랴.

제언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심사 위원 구성 방법을 고쳐 보십소사 하는 것이다. 그 하나는 심사 위원 자격 규정을 바꾸어 사계의 권위자라면 어느 곳에 가서도 모셔올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 몇 사람 중에서 뽑아야 된다는 구태의연한 아집에 잡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무학(無學)의 석공 (石)이랄지라도 평생이 돌과의 싸움이었다면 돌에 대해서만은 어느 이론가보다 더 친근하다. 염료(染料)만을 다룬 사람이 돌의 유현한 세계를 어떻게 외람되어 단정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되면 자연히 심사 위원 구성은 제한 없이 그 분야의 전문가만이 참여하여 진지하게 이루어 나갈 것이다. 누가 심사 위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풍문도 해소될 것이고, 출품자는 자기의 작품에 솔직한 평가가 내려질 것이라는 긍지를 지니게 된다.

둘째는 출품작을 분류 (예비 심사)한 뒤에 출품의 양 질量.質)별로 심사 위원수를 위촉함이 어떨까 한다. 여기에는 사전 분야 예선을 위한 관리 위원 (가칭)쯤이 필요할 것이고, 매회의 심사위원 위촉을 위한 운영 위원 (고문 역할이 위원은 수시로 변하되 업계 · 학계 · 일선 디자이너·주관처 등에서 많은 인원을 위촉하여 이들이 추천하도록 한다)과 공개 심사 원칙이 있어야 할 줄 안다. 그리고 재학생의 출품에는 제한을 둠이 바람직하다.

세째, 추천 작가제. 이것이 만능이 아니라는 기본 입장을 밝혀 둠이 어떨까. 벽을 헐어 버리고 한 작가의 실적이나 연륜으로 볼 때 초대하고 싶은 경우에는 수시로, 또 추천 관문을 들어선 작가라도 작품이 미흡하면 출품 보류를 (이는 고문·심사·관리 위원 등의 확대 회의에서 의결)함이 앞으로 수없이 늘어 갈 추천 작가의 수를헤아릴 때 숙고하여야 될 과제가 된다고 본다.

봉직 기관에는 정년이 있어도 작가에게는 은퇴가 없다. 순수 예술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산업 디자인계, 샤아프하고 기민한 아이디어와 센스를 요청하는 분야인 바에야 원로원 (元老院)도 아닌 이상 무언가 정리 방법이 모색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가적인 규모의 전람회는 오늘과 내일의 수준을 갖기 위해 보다 합리적인 하부 구조를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의 고식적인 생각은 물론 막대한 투자만으로도 살려지지는 않는다. 옛날의 수공적 (手工的) 공방(工房)이 관아 수요를 대기 위해 존재했던 것과 같이 오늘의 과학 기술 연구소가 초현대적 조직으로 국가의 힘에 의해 운영되는 산업 발전의 기초인 것에 비추어 오늘의 디자인 공예가 어떤 형태로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국가적 뒷받침으로 현대적 형태의 공방(工房)이 전국 곳곳에 있고, 젊은이들이 몸과 마음을 불태울 수 있을 때, 굳이 산업 디자인전에만 쏟는 과잉된 열기가 진정되지 않을까 본다.

 

* 사진 및 기사 출처 : 디자인포장 38호 (1978. 한국디자인포장센터) 내용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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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디자인전 출품작의 실용화 이렇게 본다

박대순

제13회 산업 디자인전 심사위원장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지난 9월 7일로 지방전시까지 마친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 전람회에 출품된 수상작을 위시하여 특선, 입선된 많은 작품들이 어느 정도 실용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주최측인 정부나 한국 디자인 포장 센터 또는 이 행사에 참여하였던 심사위원 및 많은 작가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더우기 이 전시회의 기본 목적이 수출산업 제품의 고급화를 위한 디자인 개선은 물론 작가의 창작 활동의 기풍을 확립시키고 아울러 디자인 진홍을 진작시키는 데 있으므로 그 문제점은 자못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13회를 거치는 동안 실제로 실용화된 것은 손을 꼽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고, 1회부터 오늘날까지 출품 작가의 대부분이 대학 재학생들이었다는데서 그 문제점은 야기되는 것이다. 이 전시회가 처음 개최되던 시기만 하더라도 기업은 물론이요 일반사회에서는 디자인이란 용어 자체도 생소하였으며, 산업과 디자인의 관련성이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에 가까왔던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디자인전은 이 분야의 학계에 종사하는 분들에 의해 선도되어 왔기 때문에 자연히 학생들의 작품이 많이 출품되었으며, 산업과 연결시켜 보려고 많은 애를 써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인들은 기업의 구조나 경영 방식에서 낙후된 사고방식을 면치 못하였고, 저임금에 의한 견본 주문 생산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형편이었으므로 디자인의 필요성이나 신제품 개발이란 점은 엄두도 못 내었고 관심조차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환경 속에서 궁극의 목적은 동일할지라도 시행과정에서 주최측인 정부나 한국 디자인 포장 센터의 입장과 여기에 직접 참여하고 작품을 출품하는 학계와는 그 견해가 약간 다른 점에서 문제가 야기된다. 주체측에서는 경제의 고도 성장에 따르는 수출 상품을 보다 고급화하고, 정부가 많은 투자를 하여 기획하는 이 전시회의 출품 작품이 곧바로 실용화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갈망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학계에서는 이 전시회를 보다 길게 보는 차원에서 우선 그간 정부나 기업이나 일반이 생소하게 느끼고 이해하지 못하던 것을 계몽하고 이해시키는 방향으로 이끌고, 또한 여기에 즉각적으로 실용화되지 않더라도 작품에서 디자인이란 것을 보여주고 이러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능력의 디자이너들이 기업의 디자이너로 기용되거나 고용되어 그 기업의 제품 개발에 직접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방향으로 이끌어 왔으며, 이 전시회를 미술의 국전(國展)과 겨룰 만한 권위 있는 실용예술〔實用造形〕의 국전으로서 부각시키고 또한 산업 디자인전을 거침으로써 이 나라의 디자이너로서 인정받으려는 둥용문의 과정으로서 이해되고 유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으로써 미개척 분야인 이 분야의 디자이너로서의 인정과 지위를 굳히는 데 단계의 역할을 한 것이다.

여기에서 즉각적인 실용화를 요청하는 주최측의 입장과 이 전시회를 거치는 디자이너들이 기업에 참여하였을 때 즉각적인 실용화를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이 있는 디자이너의 육성과 인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학계의 입장과 양립되는 것이다. 이 두 입장은 서로가 일리는 있다고 하겠으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상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산학 협동 체제로 일원화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보다 진지한 의견 교환에 의한 접근과 정책의 배려, 기업인들의 이해와 참여, 디자인 교육 제도의 개선 등 숱한 문제점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보는 견해로는 현재 우리가 수출 신장에 따르는 디자인의 필요성은 누구나 똑같이 부르짖고 있으면서도 디자인이 “무엇 때문에" 또는 “왜" 필요하며 그 디자인은 “누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기업이 그저 서로가 막연하거나 또는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에는 디자인은 존재하나 Design Policy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국제 경쟁 사회에서는 누구나가 다 알고 있듯이 Mass Production(대량 생산), Mass Sale(대량 판매), Mass Communication(대량 전달), 이 세 가지가 서로 복잡하게 엉클어지면서 사회의 Cycle을 돌리고 있는데, 이것이 현대 사회 또는 현대 문명의 중추적 기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Cycle 속에서 수많은 기업군(企業群)이 팽대(膨大)한 에너지를 분출하며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기업간의 격렬한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 남고 또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영 계획에 의한 노력을 집중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노력의 의지가 경영 Policy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기업이 뚜렷한 경영 Policy 를 가지고 운영된다고 하면, 그 스스로 기업 이미지라는 것을 명확한 모습으로 사회에 내놓을 수 있고 알릴 수 있는 것이다.

대량 생산되는 제품의 모습은 Industrial Design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양산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광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문 광고나 팜플렛 등의 인쇄 매체에 의한 광고, 그리고 TV Commercial 등의 전파 매체 둥을 포함하여 이것은 Visual Design에 속하게 된다. 이러한 디자인의 제 분야가 기업 이미지를 살리는 것이다. 이 기업 이미지를 통일하려는 의식과 노력이 바로 Design Policy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양산될 많은 제품의 Industrial Design에 대한 개발과 대량 판매를 하기 위해서 대량 전달하는 기업 조직을 가지고 이것에 대처할 수 있는 Design Policy를 하고 있는 기업이 과연 몇이나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한 상품을 새롭게 기획하고 제조하는 단계로서는 기획, Designing, 제조 준비의 3단계를 먼저 생각하여야 하며, 기업은 기획 결정 이전에 디자인에 대한 확고한 방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제품은 품질이 어느 한계에 도달하여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위치에 오면 가격 인하가 경영 합리화의 측면에서 볼 때 한계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것을 타개해 나가고 기업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바로 디자인인 것이다. 기업에 있어서 디자인의 진가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디자이너와 영업 부문과의 협력 등에 의한 통일성 있는 Design Policy에 달려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기업의 본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대 기업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산업 디자인전에 출품된 작품이 바로 실용화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회에 출품하는 디자이너의 성분과 또 이 전시회를 어떻게 보며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기업의 자세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기업들이 무관심하거나 외면하고 있으며, 관심이 있다고 하여도 기업주의 기호에 맞지 않아 외면당하거나 관심은 있어도 여기에 전시된 작품은 이미 그 기업의 기획 비밀이 노출된 것으로 간주하고 아예 외면하는 자세 등 그 요인을 분석해 보면 이루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학생 작품이 많았던 종래의 전시회는 출품작이 단지 학교에서의 연구 작품이었지 이것을 누구에게, 즉 어느 기업에 줄 수 있는 것인지 또 그 기업 이 받아들일 것인지 그저 막연하기만 하였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그러하지만 학생들의 연구 작품이 입상이나 특선, 입선이 되면 그들은 그 영예로 만족하고, 또한 그것이 훌륭한 경력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그들이 한 작품을 제작하는 데 소요되었던 개발비나 작품 제작비에 수십만 원 또는 그 이상을 투자하고도 감수하고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기업에 있는 현역 디자이너들도 위에서 말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산업 디자인전에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고 하면, 당장 간부에게 호출되어 회사일 이외의 일을 한다고 호되게 기합을 받거나 직장마저 잃을 정도로 직업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디자이너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굳히고 인정받기 위하여 이 전시회에 입상 또는 특선이나 입선으로 뽑히려고 회사 간부의 눈치를 보아 가며 과외 시간에 숨어서 애를 쓰고 있는 디자이너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숨어서 외롭고 어렵게 개인 비용을 투자해서 만든 작품이 입상이나 특선, 입선을 하면 회사로서도 환영은 하지만,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진작 보고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나무란다고 한다.

이와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외국 디자이너의 디자인만을 인정하려는 사대주의 사조와 더불어 국내 디자이너를 경시하고 외국 상품의 모방이나 도용을 일삼는 일은 이제 삼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업들이 신제품올 개발하기 위하여 이제는 Design Policy를 갖는 기업들이 되어야 할 때인 것이다. 이와 같은 풍토 속에서 우선 실용화의 전제보다는 기업들의 경영 Policy 의 합리적 방안의 하나로 Design Policy를 수립할 수 있는 건전한 사고의 기업이 많이 나와야겠고, 또 그러해야만 지금 2백억 달러 수출을 목표로 할 때 국제 경쟁 사회 속에서 이겨 내고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실용화를 위한 전제가 선행된다고 하면 이 산업 디자인전을 많은 기업이 이해하고 참여하여야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행정력이 뒷받침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Maker의 디자이너들이 자기 회사의 신제품 개발에 심혈을 경주할 것이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다. 그렇지 않고 기업이 제품 개발의 비밀을 요한다면, 현재 미국, 일본 둥 외국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완제품이 시장에 출하된 뒤 기성 상품을 대상으로 주어지는 G. Mark, 즉 Good Design 전을 개최하고, 기왕에 13회까지 이끌어 온 이 전시회에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 싶다. 이 분야의 학계나 디자이너들의 학문적 연구 발표 기관으로서, 또는 디자이너들의 둥용문적 역할로서 높은 차원에서 긴 안목으로 디자인 진흥 사업의 일환으로서, 또는 디자이너의 육성 기관으로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수상작이나 특선, 입선작 몇 점을 놓고 어떻게 실용화하느냐 하는 것보다 먼저 해결하여야 할 제반 문제점을 끄집어 내어 이것이 정책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당위성을 발견하고 기업이 이것을 이해하고 수용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항상 다람쥐 채 바퀴 돌 듯 악순환만 거듭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출처 : 디자인포장 39호(1978.9. 한국디자인포장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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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작 일부 발췌

 

 

 

 

"제13회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 도록 - 한국디자인포장센터, 1978"의 경우,
공공누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사진, 이미지, 일러스트, 동영상 등의 일부 자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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