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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닫혀 있던 서울의 지하, 문화공간으로 다시 열리다

 

서울광장 아래, 40여 년간 닫혀 있던 지하공간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서울시는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 사이 지하 2층의 유휴공간을 ‘K-문화 스테이션으로 조성해 지난 8 24일 정식 개장했다.

서울광장 지하 약 13m에 자리한 이 공간은 폭 9.5m, 높이 4.5m, 길이 335m, 총면적 3,261㎡로 약 1,000평에 이른다. 지하상가와 지하철 2호선 선로 사이에 위치하며, 서울시는 1980년대 초 높이가 서로 다른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랜 시간 별도의 용도로 사용되지 않은 덕분에 내부에는 콘크리트 벽과 기둥, 길게 이어지는 터널형 구조가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와 335m에 이르는 긴 선형 구조가 이곳만의 독특한 공간감을 만든다.

 

 

서울시 공식 안내배너 | 출처: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19161

 

이 공간이 시민들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23 9월이다. 서울시는 당시 시민탐험대를 통해 공간을 한시적으로 공개했다. 환기·소방·피난시설 등이 갖춰지지 않아 탐험 프로그램 형태로만 운영됐지만,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통해 도심 지하공간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후 서울시는 서울교통공사와 함께 환기·소방·전기 등 기반시설을 갖추고 상시 이용이 가능한 공간으로 정비했다. 오래된 콘크리트 구조와 터널의 분위기는 그대로 살리면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머물고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더한 것이다.

 

 

2023년 9월, 서울광장 13m아래 숨은 공간을 투어하는 시민 탐험대원들의 모습 | 출처: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9025

 

‘K-문화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에는 매일 오가는 지하철역에서 K-문화를 경험하며 일상에서 문화로 환승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공간은 공공과 민간이 역할을 나눠 운영한다. 서울시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공간을 발굴하고 기반시설을 마련했다면, 콘텐츠 기획과 운영에는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콘텐츠 전문기업 크리에이티브멋이 운영을 맡고 있으며, ‘두두두 서울(dududo SEOUL)’이라는 이름의 K-컬처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빅뱅 데뷔 20주년 기념 미디어 전시 ‘BIGBANG 20TH ANNIVERSARY MEDIA EXHIBITION' 의 미디어 아트 | 출처: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19161

 

K-문화 스테이션의 문을 연 첫 콘텐츠는 빅뱅 데뷔 20주년 기념 미디어 전시 ‘BIGBANG 20TH ANNIVERSARY MEDIA EXHIBITION COSMOS.

전시는 빅뱅이 지난 20년 동안 쌓아온 음악과 이야기, 팬덤 V.I.P와 함께 만들어온 기억을 ‘COSMOS’라는 우주적 개념으로 풀어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기존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전시장처럼 독립된 전시실을 오가는 대신, 관람객은 335m 길이의 터널을 따라 이동하며 전시를 경험한다. 미디어아트와 프로젝션 맵핑, 홀로그램, VR, AI 영상,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긴 동선을 따라 이어진다.

40년 가까이 남아 있던 콘크리트 벽과 기둥, 터널 구조 역시 전시의 배경이 된다. 새롭게 만들어진 전시장에 콘텐츠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공간의 물리적 조건을 전시 경험의 일부로 끌어들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COSMOS’는 총 11개의 체험존을 335m의 긴 동선을 따라 배치했다. 각각의 공간에서는 AI 이미지와 영상, VR, 홀로그램, 레이저, 인터랙티브 미디어 등 서로 다른 기술을 활용해 빅뱅의 음악과 지난 20년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 초반에는 레이저를 활용한 몰입형 공간과 AI 이미지·영상으로 재구성한 빅뱅의 음악을 만날 수 있다. 이어지는 VR 콘텐츠에서는 신곡 ‘BiiiG’의 퍼포먼스를 가까운 거리에서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홀로그램을 활용해 멤버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거나 신곡을 미디어아트로 감상하는 공간도 마련됐다.

 


우주적 개념 'COSMOS' 로 재해석한 프로젝트| 출처: 크리에이티브멋(MUT)

 

관람객의 참여 역시 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방문객의 사진과 추억이 실시간으로 공간에 등장하고 팬들이 남긴 메시지가 전시 콘텐츠의 일부가 되는 등, 일방적으로 영상을 감상하는 데서 벗어나 관람객의 행동과 기록이 공간에 반영되도록 구성했다.

여기에 빅뱅의 20년을 보여주는 미공개 사진과 팬덤을 상징하는 응원봉 등 아카이브 성격의 콘텐츠를 더했다. 첨단 미디어 기술과 오랜 시간 축적된 기록을 한 공간에 배치하면서, 335m의 긴 터널은 빅뱅의 과거와 현재를 차례로 경험하는 하나의 전시 동선으로 활용된다.

 

우주적 개념 'COSMOS' 로 재해석한 프로젝트| 출처: 크리에이티브멋(MUT)

 

K-문화 스테이션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펀스테이션(Fun Station)’ 사업의 하나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 사용되지 않던 공간을 찾아 교통 기능에 머물렀던 역을 여가·문화·건강 등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로 바꾸는 프로젝트다서울시는 2024 5월 여의나루역 러너 스테이션을 시작으로 뚝섬역과 먹골역 등에 운동과 생활체육을 위한 공간을 조성했다. 광화문역·회현역·월드컵경기장역에는 탈의실과 보관함 등을 갖춘 러너 지원공간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사업은 러닝과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돼 온 펀스테이션을 K-POP과 미디어아트, 패션, 엔터테크 등 문화 영역으로 확장한 첫 사례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이곳이 ‘COSMOS’를 위한 일회성 전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의 전시가 끝나면 새로운 콘텐츠로 교체되는 상설 문화 플랫폼으로 운영된다. 서울시는 앞으로 글로벌 K-POP 아티스트와의 협업 전시를 비롯해 K-패션 전시와 패션쇼, 엔터테크 체험, 브랜드 쇼케이스와 팝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갈 계획이다.

 

K-문화 스테이션은 새로운 건물을 짓는 대신 도시에 이미 존재하던 공간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었다. 40년 동안 쓰임 없이 남아 있던 지하공간에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더하고, 기존 콘크리트 구조와 긴 터널이라는 장소의 특징을 새로운 콘텐츠를 위한 자원으로 활용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지하철역의 숨은 공간이 일부로 찾아가는 문화공간으로 지속되기를 바란다. 도시의 유휴공간을 없애거나 새것으로 바꾸기보다, 그 공간이 가진 시간과 구조를 새로운 쓰임과 연결했다는 점에서 K-문화 스테이션은 서울의 지하공간을 활용하는 또 하나의 방식을 보여준다.

 

류인혜(국내)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 실내디자인 학사 졸업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실내디자인 석사 졸업
-2023 굿디자인어워드(GD) 심사위원
(현)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책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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