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 일본은 가맹국 중 수면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다. 2021년 기준 하루 평균 7시간 22분으로 세계 평균을 1시간 이상 밑돌고, 수면 부족에 따른 경제 손실은 약 1,380억 달러, GDP 대비 비율로는 조사국 중 최하위로 추산된다. 후생노동성이 2023년 '건강 만들기를 위한 수면 가이드'를 내놓으며 국가 차원의 대응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역설적이게도, 이 ‘수면이 부족한 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앞서 '쉼을 파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잠과 피로 회복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던 경험이 입는 옷, 덮는 이불, 신발 속 깔창으로 제품화되고 있다. 목욕이나 온천처럼 '장소'에 머물러야 얻던 회복을, 이제는 일상 속에서 몸에 걸치는 것만으로 취할 수 있는 제품으로 옮겨온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장의 승부처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신뢰를 어떻게 설계하는가', 그리고 '쉼을 어떤 감각으로 브랜딩하는가'라는 디자인의 영역에 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사는 시장 — 수면 경제의 부상
먼저 시장의 크기를 보자. 일본리커버리협회는 휴양·항피로를 아우르는 '리커버리 시장'의 규모를 2025년 약 7.6조 엔, 2030년 약 14.3조 엔으로 내다본다. 그 하위 카테고리인 리커버리 웨어만 떼어 봐도, 일본능률협회종합연구소는 2024년 189억 엔이던 시장이 2030년 약 1,700억 엔, 즉 9배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 센서·앱 같은 디지털 기술로 수면을 측정·분석해 개선하는 '슬리프테크(Sleep Tech)' 시장이 겹친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슬리프테크 시장은 2022년 약 60억 엔에서 2026년 약 175억 엔으로, 4년 만에 약 3배로 커질 전망이다. 수면이 하나의 산업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이 시장이 뜨거운 이유는 명확하다. 만성적 수면 부족이 사회문제가 되고, 코로나를 거치며 '회복'과 '컨디셔닝'에 대한 지출 의향이 구조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소비의 무게중심이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몸을 쓰는가'에서 '어떻게 몸을 회복시키는가'로 옮겨가면서, 휴식은 미룰 수 있는 여백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투자하는 대상이 됐다.
제도가 곧 브랜딩이 되다 — 리커버리 웨어와 '일반의료기기'
리커버리 웨어의 원리는 이렇다. 특수 광석(세라믹 등)을 섬유에 짜 넣어, 피부에서 나오는 열을 흡수했다가 원적외선으로 되돌려 방사한다. 이를 통해 혈행이 촉진되고 어깨 결림·요통·근육 뭉침이 완화되며 이완 상태가 유도된다는 것이 각 회사의 설명이다.
국가에서 2022년 '가정용 원적외선 혈행촉진용 의류'라는 일반의료기기 분류를 새로 만들었다. 체열을 바탕으로 원적외선을 방사하는 의류를 '리커버리(회복)'라고 표방해 판매하려면, 후생노동성 산하 규제기관에 신고하는 것이 필수가 된 것이다. 인체 위험이 극히 낮은 등급이지만, 핵심은 '회복'이라는 모호한 감각적 효용에 국가 제도라는 객관적 신뢰의 뒷받침이 생겼다는 데 있다.
이 '제도적 신뢰'를 가장 영리하게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한 곳이 D2C 기업 TENTIAL(텐셜)이다. TENTIAL은 2020년 크라우드펀딩으로 리커버리 웨어 'BAKUNE(바쿠네)'를 선보였고, 2021년 4월 일반의료기기 인증을 취득했으며, 2024년 8월에는 제2종 의료기기 제조판매업 허가까지 받아 직접 제조판매 신고를 수행한다. 저가 경쟁 제품이 쏟아지는 가운데, TENTIAL은 "라이선스 취득은 골(goal)이 아니다"라며 의료기기로서의 관리 체제를 갖췄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워 차별화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효용을 파는 시장에서 '어떻게 믿게 만들 것인가'라는 신뢰의 디자인이, 그 자체로 강력한 브랜딩 전략이 된 것이다.

카테고리를 짓다 — BAKUNE라는 생태계
TENTIAL이 보여주는 두 번째 디자인은 '카테고리 설계'다. 상하 세트가 약 2만 5천~3만 엔을 넘는 고가의 파자마임에도 BAKUNE는 개인 구매와 선물 수요를 동시에 공략하며 누적 판매 200만 벌을 돌파했고, 이 브랜드를 앞세워 2025년 2월 도쿄증권 그로스 시장에 상장했다.
성장세는 가파르다. 2026년 8월기 통기 예상 매출은 상방 수정을 거쳐 약 330억 엔, 영업이익 약 38억 엔에 이른다. 특히 주목할 것은 72%대에 이르는 높은 매출총이익률로, 이것이 높은 수익성의 토대가 되고 있다. 파자마 한 벌이 아니라 '고품질의 휴식'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팔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 설계이자 마진 구조다.
TENTIAL은 BAKUNE로 확보한 고객을 이불·침구, 평상복 'MIGARU', 인솔 'INSOLE', 그리고 워크웨어·풋케어 등 주변 카테고리로 확장해 간다. 2026년 8월기 2분기에는 주력인 웨어 외에 침구가 전년 동기의 약 2.3배, 워크웨어가 약 1.8배, 풋케어가 약 2.3배로 늘며 빠르게 성장했다. 하나의 히트 제품을 '컨디셔닝'이라는 상위 개념으로 감싸, 아침에 신는 인솔(깔창)부터 낮에 입는 옷, 밤에 덮는 이불까지 하루 24시간의 회복을 브랜드 생태계로 엮어내는 전략이다. J리그 미래육성 파트너, 사무라이재팬(야구 국가대표) 공식 파트너 취임 등 스포츠 영역의 신뢰 자산도 이 생태계의 확장을 뒷받침한다.

이 시장의 뿌리에는 일본 최초의 리커버리 웨어 전문 브랜드 VENEX(베네크스)가 있다. VENEX의 출발점은 뜻밖에도 간병용 욕창(床ずれ) 해소 제품 개발이었다. '인간이 본래 지닌 자기 회복력을 최대한 발휘시킨다'를 콘셉트로, 백금 등을 나노 수준으로 배합한 독자 소재 'DPV576'을 함유한 PHT(Platinum Harmonized Technology) 섬유를 개발해 2010년 2월 첫 제품을 내놨다.

@ 독자 소재 'DPV576'을 함유한 PHT(Platinum Harmonized Technology) 섬유를 착용 후 수면의 질이 달라짐을 나타내고 있다.
VENEX의 설계 철학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조이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근육을 압박해 성능을 내는 스포츠 컴프레션 웨어와 정반대로, 몸을 전혀 조이지 않는 '논컴프레션(non-compression)' 디자인을 택했다. 소재가 피부의 감각 센서에 작용해 교감신경을 억제하고 부교감신경을 우위로 이끌어, 근육 이완과 혈관 확장, 수면의 질 향상을 유도한다는 설계다. '더 조여서 성능을 낸다'가 아니라 '완전히 풀어줘서 회복시킨다'는 발상의 전환이며, 착용 후 졸음을 느낄 수 있어 운전이나 위험 작업 시 착용을 삼가라고 안내할 정도다. 회복이라는 목적이 소재·실루엣·착용 상황까지 제품 디자인 전반을 규정하는, 명확한 디자인 언어를 보여준다.

개인에서 조직으로 — '건강 경영'과 격화되는 경쟁
리커버리 웨어와 수면 경제의 다음 무대는 개인을 넘어 조직이다. 야노경제연구소는 시장 확대의 열쇠를 '법인용 서비스'에서 찾는다. 종업원의 수면 개선이 기업의 이익률과 몰입도(engagement)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최근 시사되면서, 수면·회복이 '건강 경영(健康経営)'과 생산성 향상의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휴식이 개인의 사적 영역을 넘어 기업이 투자하는 경영 자원이 되는 셈이다.
시장이 커지자 경쟁도 격화됐다. 2024년경 미디어와 SNS를 통해 대중화되고 TENTIAL이 상장하는 사이, 워크맨·이온 같은 대기업이 잇따라 뛰어들며 '가격 파괴'와 '브랜딩'의 이중 전선이 형성됐다. 앞서 언급한 일반의료기기로 신고된 원적외선 혈행촉진용 의류 건수는 2023년 단 4건에서 2026년 4월 185건으로 46배 넘게 늘었다. 다양한 제조사가 진입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저가 공세 속에서 전문 브랜드들이 내세우는 무기가 결국 의료기기로서의 신뢰 관리, 소재 기술의 서사, 그리고 실내복으로도 손색없는 디자인 완성도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모델일수록 세련된 라운지웨어로도 통하는 디자인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다.
왜 지금, '쉼'을 디자인하는가
최근 웰니스 시장에서는 제품의 성능·기능보다 사용자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머무는가가 경쟁력을 결정한다는 명제가 자리 잡았다. 리커버리 웨어와 수면 경제는 이 명제를 흥미로운 방향으로 확장한다. 이들은 '체험'을 파는 동시에, 그 반대편에 있던 '보이지 않는 회복'을 손에 잡히는 제품으로 만들어냈다.
이 흐름이 던지는 디자인적 함의는 세 가지다. 첫째, 무형의 제품화다. 잠, 피로 회복, 이완처럼 계량하기 어려운 감각을 '입고 덮고 신는' 사물로 번역하는 것 자체가 고도의 디자인 과제이며, 그 성패는 소재·실루엣 같은 물성 설계에 달려 있다. 둘째, 신뢰의 디자인이다. 효용이 눈에 보이지 않을수록 '어떻게 믿게 만드는가'가 핵심이 되고, 일본에서는 일반의료기기 분류라는 제도적 장치가 그 신뢰를 떠받치는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됐다. 셋째는 카테고리의 생태계화다. 하나의 히트 제품을 '컨디셔닝'이라는 상위 개념으로 감싸 하루의 회복 전체를 아우르는 브랜드 세계로 확장하는 방식은, 단품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웰니스 브랜드의 전형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쉼'을 어떤 물성과 어떤 신뢰로 손에 잡히게 만들 것인가 — 웰니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한국의 웰니스·리테일·제품 디자인 업계에도 같은 물음이 놓여 있다.

관련 사이트 및 참고 자료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학사 졸업
-영국 왕립예술대학원 제품디자인 석사 졸업
-생테티엔(프랑스)비엔날레 참여작가
-스왈로브스키 본사(오스트리아)협업작가
-런던디자인뮤지엄레시던시 작가
(현) 프리랜서 디자이너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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