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핀란드에서 디자이너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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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는 앞으로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될까? 생성형 인공지능이 이미지와 텍스트를 만들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시대, 이 질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AI의 확산이 반드시 디자인 전문성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핀란드 디자인 산업에서는 직접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뿐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방향을 설정하며 결과를 판단하는 능력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핀란드의 가장 큰 디자인 협회 오르나모Ornamo가 발표한 핀란드 디자인 산업 동향 조사 ‘Design Pulse 2026(Design Pulssi 2026)’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보고서는 노동시장과 기업 활동뿐 아니라 AI와 지속가능성을 주요 주제로 다뤘다. 올해 초 실시된 설문에는 임금근로자 249명, 기업가·프리랜서 102명, 실업자 57명, 디자인 전공 학생 136명 등 총 544명이 참여했다. 응답자의 61%가 헬싱키 수도권에 거주하고 60%가 석사 수준의 학위를 보유하고 있어, 핀란드 전체 디자이너를 대표하는 전수조사라기 보다 현재 디자인 분야 구성원들의 노동환경과 인식을 보여주는 산업 설문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16년과 2026년의 직업을 비교한 자료다.

2016년과 2026년 핀란드 디자인 분야의 주요 직업 비교. 지난 10년 사이 서비스 디자이너, 디지털 디자이너, 디자인 매니저 등 새로운 역할이 주요 직군으로 등장했다. © Ornamo, Design Pulse 2026
2016년에는 인테리어 건축가(31%), 디자이너(17%), 산업디자이너(11%), 패션디자이너(6%), 아티스트(6%)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10년 뒤에는 인테리어 건축가(24%)에 이어 서비스 디자이너(17%), 디지털 디자이너(11%), 디자인 매니저(9%)가 주요 직업으로 등장했다.
이는 단순한 직업명의 변화가 아니다. 디자이너가 다루는 대상이 제품과 공간에서 서비스와 디지털 경험, 조직과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지난 10년간 핀란드에서는 이미 ‘무엇을 만드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해결하고 어떻게 연결하는가’가 디자인의 중요한 업무가 되어왔다. AI는 바로 이러한 변화가 진행되는 시점에 등장했다.
Design Pulse 2026 응답자의 40%는 AI를 지속적으로 또는 상당히 많이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주요 활용 분야는 텍스트 생산, 정보 검색, 브레인스토밍과 콘셉트 개발이다. © Ornamo, Design Pulse 2026
AI 관련 문항에 응답한 538명 가운데 40%는 AI를 지속적으로 또는 상당히 많이 활용하고 있다. 가장 흔한 용도는 텍스트 생산과 가공, 정보 검색, 브레인 스토밍과 콘셉트 개발이었다. 현재는 AI가 완성된 디자인을 대신 만드는 도구 보다는 자료 조사와 분석, 아이디어 개발을 지원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응답자의 73%는 AI가 디자이너의 핵심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고, 67%는 AI 활용 능력이 중요한 경쟁우위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AI에 대한 태도 자체는 긍정 37%, 중립 36%, 부정 28%로 엇갈렸다. 특히 학생과 젊은 응답자에서 부정적인 시각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결국 질문은 AI 활용 여부를 떠나서 “AI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디자이너는 무엇을 담당할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보고서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실행(executing)보다 방향 설정(directing)에 가까워질 것”인지도 물었다. 이에 46%가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고, 36%는 중립, 18%는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46%라는 수치만으로 이것을 디자인의 확정된 미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서비스 디자이너와 디자인 매니저처럼 문제 정의와 시스템 설계, 의사결정과 조율을 담당하는 직업이 증가해 온 흐름과 함께 보면 의미가 있다.
AI는 수십 개의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빠르게 생성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정의하고, 누구를 위한 디자인인지 이해하며, 생성된 결과 가운데 무엇이 적절한지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다른 차원의 능력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디자인은 ‘실행’에서 ‘방향설정’으로 완전히 이동 한다기보다, 만드는 능력과 함께 판단(judgment), 방향 설정(direction), 해석(interpretation)의 중요성이 커지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핀란드 디자인 분야에서는 AI가 핵심적인 디자인 도구가 되는 동시에 업무 효율에 대한 압박을 높이고, 디자이너의 역할과 비즈니스 모델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Ornamo, Design Pulse 2026
이번 조사에서 가장 많은 응답자가 동의한 AI 관련 전망은 디자이너의 대체가 아니었다. 74%가 AI로 인해 디자인 업무의 효율성 압박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고, 62%는 디자인 산업의 비즈니스와 수익 모델이 변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하루가 걸리던 리서치나 콘셉트 개발을 AI를 통해 몇 시간 만에 처리할 수 있다면 기업과 클라이언트는 더 빠르고 많은 결과물을 기대하게 된다. 결국 AI의 등장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익히는 차원을 넘어 디자인의 가치를 무엇으로 평가하고 가격을 매길 것인가 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가운데 핀란드 디자인 노동시장은 불안정해지고 있다. 자신의 일자리가 안정적이라고 평가한 임금근로자는 2022년 86%에서 2026년 62%로 감소했고, 지난 1년간 직원 감축을 경험한 직장도 34%에 달했다. 학생 가운데 자신의 전공 분야 노동시장이 좋다고 평가한 비율은 7%에 불과했다. 물론 보고서는 이러한 고용 불안을 AI의 결과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디자인 산업의 경기 민감성과 기업의 수주 감소 등 경제 상황이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가 조사와 시각화, 텍스트 생산, 아이디어 개발 등 일부 초급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한다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미래의 숙련된 디자이너는 어디에서 경험을 쌓을 것인가? 판단과 방향 설정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역설적으로 그러한 판단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과 초기 실무 경험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보고서에서 보여주는 핀란드 디자인 산업에는 상반된 모습이 공존한다. 디자인의 영역은 서비스와 디지털, 조직과 전략으로 확장되고 AI라는 새로운 도구가 등장한 반면, 노동시장의 불확실성과 경력 초기 디자이너의 진입 장벽은 커지고 있다.보고서 역시 현재 디자인 산업을 “divided and uncertain”, 즉 양극화되고 불확실한 상황으로 진단한다.
AI뿐 아니라 지속가능성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난다. 환경 규제와 데이터를 이해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복잡한 조건 속에서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미래의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조형이나 제작 능력만이 아니라 정보를 해석하고 관계를 연결하며 판단하는 능력일 수 있다.
앞으로 디자인 전문성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보다 어떤 문제를 발견하는가. 무엇을 질문하는가. 생성된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사람과 사회,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다운로드:
https://www.ornamo.fi/en/press-release/ai-is-transforming-design-work-while-the-value-of-design-expertise-is-increasing/
-Aalto대학 Masters of Arts and Design, Product and Spatial Design 졸업
-아에오 AAA 식경험 디자인 컬렉티브 운영
-Juneinwinter 대표 (제품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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