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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철도 아래, 도시가 다시 초록을 되찾는 법


 

 

일본의 도시를 걷다 보면 철길 아래가 애매한 자투리 공간으로 남아 있는 모습을 종종 만난다. 그렇다면 이런 곳에도 정원을 만들 수 있을까. 건축가 다케다 기요아키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는 오히려 도시가 미처 쓰임을 부여하지 못한 이런 공간이야말로 새로운 정원이 들어서기에 적합할 수 있다고 본다. 지난 20여 년간 도쿄에서는 건널목 사고와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해 철도를 고가화하는 사업이 이어졌고, 그 아래에는 활용되지 못한 긴 띠 모양의 공간들이 새로 생겨났다.

 

2024년 그는 도쿄 네리마구의 한 고가철도 하부 공간을 도시 속 오아시스로 바꾼 프로젝트 'Play! 코카시타[고가아래]를 완성했다. 고가가 주변 주택보다 훨씬 높이 솟아 있어 그 아래가 의외로 빛이 잘 들고 통풍도 좋다는 것, 그리고 길게 이어진 고가의 형태가 도시의 빗물을 모아 흘려보내는 그릇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착안이었다.

 

 

 


 

 

 

인공물이 생명을 넘어선 시대의 건축

 

다케다는 런던 이스트런던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2008년 구마 겐고 건축사무소에 합류해 10년 넘게 일했고, 2019년 도쿄에 자신의 사무소를 열었다. 콘크리트와 유리, 강철 같은 인공적인 재료 사이에 식물과 흙, 물을 끌어들이는 작업은 오랜 시간 그의 건축을 관통해 온 주제가 됐다.

 

그의 생각을 보다 선명하게 만든 계기는 한 과학 논문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콘크리트, 아스팔트, 건물과 같은 인공물의 총질량이 지구상 모든 생물의 양(biomass)을 넘어섰다는 연구 결과였다. 다케다는 이 숫자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건축에 던져진 질문으로 받아들였다. 이미 인공물이 자연보다 더 많은 시대라면, 건축은 자연을 밀어내는 대신 그 안에 다시 생명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2021년 도쿄에 완성한 쓰루오카 하우스다. 집 곳곳에 깊은 흙을 담을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식물뿐 아니라 새와 곤충 같은 생물이 함께 머물 수 있도록 설계했다. 굵기가 서로 다른 콘크리트 원통들이 맞물려 흙과 식물을 떠받치는 독특한 구조 역시 건축과 정원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기 위한 장치다.

 

더 흥미로운 변화는 건물이 완성된 뒤 시작됐다. 다케다가 심지 않은 식물들이 곳곳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그 배경에 새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새들이 씨앗을 옮기고 배설물을 통해 흙에 영양분을 더하면서, 건축가가 계획하지 않은 작은 생태계가 스스로 만들어졌다.

 

건축가는 생명이 들어올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한발 물러선다. 그다음부터는 식물과 새, 비와 바람, 그리고 시간이 건축을 조금씩 바꿔나간다. 다케다에게 건축은 자연을 담아놓는 그릇이라기보다, 자연이 스스로 개입하고 자라날 수 있도록 열어둔 하나의 ‘살아 있는 골조’에 가깝다.

 


 

 

 

 

골목 화분에서 배운 호텔

 

다케다의 최근작은 2025년 9월 문을 연 SOIL 니혼바시다. 에도 시대부터 상업지로 번성했던 도쿄 니혼바시의 뒷골목에 들어선 9층, 14실 규모의 작은 호텔이다. 좁고 긴 건물의 외벽은 녹슨 듯한 붉은빛 골강판으로 둘러싸여 있고, 층층이 굴곡진 표면 사이로 식물이 자란다. 멀리서 보면 골목에 줄지어 놓인 화분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듯한 모습이다.

 

디자인의 출발점은 이 동네의 오랜 문화였다. 니혼바시는 집과 가게가 촘촘하게 붙어 있어 마당을 갖기 어려운 동네다. 대신 주민들은 보도와 처마 밑, 창턱 같은 작은 틈에 화분을 내놓고 식물을 길러왔다. 잘 자란 식물은 포기를 나누어 이웃에게 건네기도 했다. 일본에서 ‘가부와케(株分け)’라 부르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나의 식물이 집에서 집으로 옮겨가며 골목의 풍경을 만들어왔다.

 


 

 

다케다는 설계에 앞서 동네를 오래 걸어 다니며 주민들을 만나고 집 앞의 화분과 식물을 조사했다. 호텔 외벽을 채운 난초와 염자, 아레카야자 가운데 상당수도 새로 구입한 조경수가 아니다. 주민들이 나눠준 식물에서 다시 포기를 나눈 것으로, 수십 년 동안 이 동네에서 자라온 식물의 후손들이다. 골목에서 수평으로 이어지던 화분의 풍경을 호텔의 외벽을 따라 수직으로 확장한 셈이다.

 

여기에는 호텔이라는 건물에 대한 다케다의 고민도 담겨 있다. 여행자를 위한 호텔은 정작 그 동네에 사는 주민에게는 들어갈 이유가 거의 없는 장소다. 새로운 호텔이 들어서는 순간 오랫동안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과 단절된 섬이 되기 쉽다. 다케다는 그 사이를 식물로 연결하려 했다. 주민의 집 앞에서 자라던 식물이 호텔로 옮겨가고, 그 식물이 다시 골목의 풍경과 이어지면서 낯선 건물에 동네의 시간과 기억이 스며든다.

 

SOIL 니혼바시에서 식물은 건물을 꾸미는 조경 요소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 키우고, 나누고, 다시 자라게 하는 과정 자체가 건축의 일부가 된다. 쓰루오카 하우스에서 새와 씨앗이 건축가의 계획 너머로 건물을 변화시켰다면, 이곳에서는 주민들이 오랫동안 이어온 작은 생활의 습관이 건축을 완성해간다.

 

 

 

 

매혹의 이면, 남겨진 질문들

 

다케다의 건축은 생물다양성 위기 시대에 '자연 위에 얹힌 건물'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자라는 건물'이라는 매력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다만 그 매력이 곧 보편적 해법이라는 뜻은 아니며, 그 자신도 이를 낭만화하지 않는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하중과 리스크다. 그는 쓰루오카 하우스를 두고 정원 환경을 '예측 불가능'하다고 표현하며, 그 도전을 받아들이는 일이 그만큼 더 '무서웠다'고 말한다. 폭우에 대응하는 배수 파이프를 설치하고, 고밀도·저밀도 퇴비를 신중히 배분하며, 옥상과 건물 가장자리의 흙을 줄여 하중을 낮추는 등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비해야 했다고 한다. 흙과 물, 해마다 늘어나는 식물의 무게를 계산에 넣어야 하는 건축은, 뒤집어 말하면 유지·관리와 안전 관리의 부담을 상시적으로 지는 건축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얇은 옥상 녹화와의 근본적 차이다. 그는 뿌리 얕은 식물만 견디는 얇은 흙을 추구하는 현대의 옥상 녹화 관행과 정반대로, 작은 숲이 될 만큼 흙을 최대한 두껍게 깔았다고 밝힌다. 무성한 생태계를 얻는 대신 구조·비용·관리의 난도가 함께 올라간다는 트레이드오프가 뚜렷하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물음이 확장성과 진정성이다. 개별 주택이나 소규모 부티크 호텔에서 성립한 실험이, 대규모·저예산 도시 개발에서도 성립할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녹색 외피'가 실제 생물다양성 회복으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시각적 위안에 그치는 '그린워싱'에 가까운지 역시 프로젝트마다 따져볼 대목이다. 다케다의 작업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적어도 그가 식물을 장식이 아니라 공간을 넓히고 공동체를 잇는 인프라적 요소로 다룬다는 점, 그리고 지역의 실제 관습(가부와케)에 뿌리를 둔다는 점 때문이다. 

 

 

 


 

 

 

다케다의 건축은 완결된 정답이라기보다, 도시가 콘크리트와 자연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 보게 하는 질문에 가깝다. 고가 아래 버려진 땅, 마당 없는 골목, 지역과 단절된 호텔처럼 '이미 존재하는 환경'을 적이 아니라 재료로 삼는 발상은 분명 값지다. 관건은 이 접근이 한 건축가의 서명이 담긴 작품을 넘어, 관리 비용과 안전, 형평성까지 감당하는 도시의 일상적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느냐다. 그 답은 앞으로 이 초록의 골조들이 시간과 함께 어떻게 자라는지가 말해 줄 것이다.

 

 

https://note.com/playkoukashita

https://soilis.co/nihonbashi/

 

 

 

박혜연(일본(고베))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학사 졸업
-영국 왕립예술대학원 제품디자인 석사 졸업
-생테티엔(프랑스)비엔날레 참여작가
-스왈로브스키 본사(오스트리아)협업작가
-런던디자인뮤지엄레시던시 작가
(현) 프리랜서 디자이너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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