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막 시작되는 카루이자와(軽井沢)의 숲을 상상해 보자. 해발 1,000m안팎의 고지대 공기는 한여름에도 서늘하고, 안개는 나무 사이를 천천히 흘러간다. 그 숲을 누군가 달린다. 운동복도 아니고, 각 잡힌 러닝 장비도 아니다. 방금 잠에서 깬 그대로의 모습, 파자마처럼 헐렁한 옷차림이다. 거리를 재지도 않고 페이스를 확인하지도 않는다. 적당히 숲길을 달린 뒤 객실로 돌아온 그는 다시 침대에 몸을 눕힌다. 일본어로 '니도네(二度寝)'라 부르는, 한 번 깼다가 다시 잠드는 그 달콤한 시간이다. 다시 눈을 뜨면 차가운 옥수수 스무디 한 잔이 기다리고 있고, 어쩌다 5km를 채웠다면 호텔은 그 뜻밖의 노력을 칭찬하듯 레이트 체크아웃을 선물한다.
호시노리조트(星野リゾート)의 BEB5 카루이자와가 2026년 여름 선보인 '여행런(旅ラン)' 프로그램의 풍경이다. 얼핏 들으면 농담 같다. 어딘가 게을러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작은 프로그램을 조금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지금 시대가 경험을 설계하는 방식이 거의 압축된 형태로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운동과 여행, 휴식과 숙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지난 몇 년 사이 달라져 왔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호텔 이벤트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브랜드가 어떤 방식으로 경험을 구성하며, 공간이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기록보다 관계가 중요해진 시대
오랫동안 러닝의 언어는 단단하고 금욕적이었다. 개인 최고기록을 갱신하고, 더 멀리, 더 빠르게 완주하는 것이 중요했다. 인터벌 훈련과 한계 돌파, 정신력 같은 단어들이 러닝 문화를 지배했고, 광고 속 러너들은 언제나 땀에 젖은 채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러닝은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기록은 그 싸움의 결과였다.
그러나 지금의 러닝 붐은 모든 톤과 결이 다르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동력이 ‘기록’에서 ‘관계’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라바(Strava)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러닝 클럽 수와 커뮤니티 활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런던마라톤과 뉴욕마라톤 같은 대형 대회에는 매년 역대 최대 규모의 참가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Z세대의 증가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이유다. 많은 젊은 세대에게 러닝은 더 이상 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취향이 비슷한 공동체에 속하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활동이 되고 있다. 과거 카페가 사람들을 이어주는 공간이었다면, 오늘날 러닝 클럽은 현대판 '제3의 장소(third place)'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들은 달리기를 통해 친구를 만들고, 소속감을 느낀다. 운동이 자기 관리의 영역에서 사회적 경험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와 브랜드를 설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전제 자체의 변화다. 과거에는 기록 향상을 돕는 도구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관계와 분위기, 그리고 소속감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경험경제(Experience Economy)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더 이상 기능만 소비하지 않는다. 그 기능을 둘러싼 사회적 의미와 정체성, 그리고 관계망을 함께 소비한다. BEB5의 여행런 프로그램이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러닝이 지녀왔던 금욕적이고 경쟁적인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대신 '느슨한 웰니스'라는 다른 감각을 제안한다. 두 번 자도 괜찮고, 달리지 못해도 괜찮으며, 기록하지 않아도 괜찮다. 극기를 팔던 자리에 회복을, 경쟁을 팔던 자리에 여유를 놓은 것이다. 이는 단순한 컨셉이 아니라 번아웃과 자기계발 피로에 지친 세대를 겨냥한 정서적 포지셔닝이다.
호텔은 더 이상 '자는 곳'이 아니다 — 공간이 플랫폼이 될 때
이 변화는 호텔 산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과거 호텔은 객실의 크기와 전망, 조식의 품질로 경쟁했다. 그러나 오늘날 호텔 산업의 경쟁력은 물리적 시설보다 경험의 설계 능력에서 나온다. 실제로 많은 호텔 브랜드는 스스로를 숙박업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BEB5가 내세우는 "이자카야 이상, 여행 미만(居酒屋以上 旅未満)"이라는 문구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호텔 소개 문구라고 보기에는 다소 엉뚱하지만, 이 한 문장 안에는 브랜드가 판매하려는 것이 무엇인지가 선명하게 담겨 있다. 그들이 판매하는 것은 객실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다. 격식보다 편안함을, 완벽함보다 여유를, 효율보다 즐거움을 우선하는 태도다.
브랜드의 목소리가 이렇게 정해지는 순간 그 위에 놓일 수 있는 경험 역시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강도 높은 러닝 캠프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파자마 차림으로 숲을 달리고 다시 잠드는 프로그램은 정확히 브랜드의 결과 맞아떨어진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장소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카루이자와의 숲은 원래부터 존재했다. 해발 1,000m라는 입지를 그저 '시원한 피서지'가 아니라 '천혜의 러닝 환경'으로 번역하는 것 — 이건 장소를 콘텐츠로 바꾸는 플레이스 브랜딩이다. 같은 숲이라도 '바라보는 풍경'일 때와 '달리는 코스'일 때, 그것이 손님에게 주는 가치는 전혀 다르다. 장소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어떤 사용 방식을 부여받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으로 번역된다. 결국 브랜드가 한 일은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환경에 새로운 사용법을 입힌 것이다.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그러나 가장 영리한 방식이다. 오늘날 공간 비즈니스의 경쟁력은 공간 자체보다 공간을 해석하는 안목에서 나온다.

가장 영리한 전략은 마찰을 줄이는 것
여행런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 때문이다. 대부분의 서비스는 사용자가 더 많이 행동하도록 설계된다. 더 자주 운동하고,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더 오래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여행런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거리를 재지 말라고 하고, 못 달려도 괜찮다고 다독이며, 비가 오면 아예 달리기를 접고 안개 낀 숲을 천천히 걷는 '미스트 워크(ミスト・ウォーク·안개 산책)'로 대체한다. 목표가 사라진 자리에 비와 안개, 숲의 냄새 같은 감각만 남긴다.
서비스 디자인에서는 이를 '마찰(friction)의 제거'라고 부른다.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가 많을수록 참여율은 낮아진다. 사람들은 운동 그 자체보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에서 더 자주 무너진다. 옷을 갈아입고, 장비를 챙기고, 목표를 세우고,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부담을 떠안는 순간 문턱은 높아진다. BEB5은 그 문턱을 낮춘다. 파자마 같은 루즈 웨어 차림으로 나가도 되고, 목표 거리를 채우지 않아도 되며, 비가 오면 달리기 대신 안개 낀 숲을 걷는 '미스트 워크'로 갈아타도 된다. 화면 속 클릭 수를 줄여 사용자를 붙드는 디지털 서비스의 원리를, 물리적 아침의 동선 위에 그대로 옮겨놓은 셈이다.
그렇다고 이 느슨함을 게으름의 미화로 오해하면 안된다. 오히려 번아웃을 통과한 세대가 갈망하는 웰니스의 감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더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는 대신, 몸은 깨우되 자신을 몰아붙이지는 않는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5km를 달려낸 사람에게는 레이트 체크아웃으로 그 작은 분발을 슬며시 인정해준다. 의무는 덜어내고 성취의 단맛은 남겨두는 구조다. 흔한 게이미피케이션이 '해야 보상받는' 문법을 따른다면, 이 프로그램은 '안 해도 되는데 하면 칭찬받는' 쪽으로 그 문법을 뒤집는다. 강요 없이 동기만 남겨두는 이 반전이야말로 가장 정교한 대목이다.
한 편의 안무처럼 짜인 경험
여행런은 개별 혜택의 집합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된 경험이다. 일어나 파자마 차림 그대로 숲을 달리고, 객실로 돌아와 다시 잠들수도 있고, 온천에 몸을 담근 뒤 현지산 옥수수 스무디를 마시고, 레이트 체크아웃으로 아침을 마무리한다. 각 단계가 다음 단계의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도록 배치되어 있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몸을 움직인 뒤에는 따뜻한 침대가 기다리고, 다시 잠에서 깨어나면 온천에서 몸을 이완시키며, 그 뒤에는 차가운 스무디가 감각을 깨운다. 움직임과 정지, 차가움과 따뜻함, 각성과 이완이 번갈아 배치되면서 짧은 아침 안에 하나의 작은 서사가 만들어진다. 사용자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감정적 여정을 통과하게 된다.
여기서 떠오르는 개념이 행동경제학의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이다. 사람들은 경험 전체를 고르게 기억하지 않는다. 대게는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을 중심으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여행런은 그 끝자락에 달콤한 이완의 순간을 배치한다. 무엇을 전체적으로 경험하게 했는가보다 어떤 감정으로 끝나게 했는가가 경험 전체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꿰고 있는 것이다.


공유되고 싶은 경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마지막으로 여행런은 동시대 경험 디자인의 문법을 보여준다. 좋은 경험은 그저 즐거운 경험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고, 공유하고 싶어지는 경험이다. 그래서 오늘날 브랜드는 광고를 만드는 대신 공유 가능한 순간을 설계한다.
여행런은 이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기능성 스포츠웨어 대신 셀렉트숍 ‘FREAK'S STORE’의 루즈 웨어를 파자마로 선택하고, 카루이자와의 여름을 상징하는 옥수수 스무디를 제공하며, 안개 낀 숲과 파자마 차림의 러닝이라는 강력한 장면을 빚는다. 파자마를 입고 숲을 달린다. 돌아와 다시 잠을 잔다. 그리고 차가운 옥수수 스무디를 마신다. 이 조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이자 콘텐츠가 된다.
오늘날의 경험은 소비되는 동시에 기록되고 공유된다. 따라서 브랜드는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야기하게 될 장면을 설계한다. 손님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브랜드는 가장 진정성 있는 홍보를 얻는다.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것은 결국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공유된 장면이다.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여행런이 보여주는 변화는 결국 카테고리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이다. 러닝은 스포츠만이 아니고, 호텔은 숙박시설만이 아니며, 온천은 목욕이 아니고, 옷은 패션만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카루이자와의 어느 느슨한 여름 아침'이라는 하나의 경험 안에서 연결된다. 사람들은 운동을 구매하는 것도 아니고 객실을 구매하는 것도 아니다. 그 아침의 분위기 전체를 구매한다.
성과에서 관계로, 객실에서 경험으로, 최적화에서 의도된 느슨함으로, 광고에서 공유 가능한 순간으로. 파자마를 입고 숲을 달린 뒤 다시 잠드는 이 작고 엉뚱한 프로그램이 던지는 메시지는 의외로 분명하다. 이제 브랜드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기보다 사람들이 보내고 싶어 하는 시간을 설계하고, 그 시간이 끝난 뒤 몸에 남는 감각까지 매만진다. 좋은 경험은 대개 거창한 말보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느슨한 한 장면 속에서 더 오래 기억된다.
BEB 파자 여행런(BEBパジャ旅ラン)
- 기간: 2026년 5월 18일 ~ 8월 31일
- 예약: 프런트에서 당일 접수 (선착순)
- 정원: 1일 3팀 (1팀 1~3명)
- 요금: 1,000엔 (1인당, 세금 포함, 숙박료 별도)
- 포함 사항:
- 옥수수 스무디
- '호시노 온천 톤보노유(星野温泉 トンボの湯)' 입욕권 (1회분)
- 'FREAK'S STORE' 루즈 웨어 & 러닝화 렌탈
- 레이트 체크아웃 (5km 달성 시에 한해, 12시까지)
- 우비 렌탈 (우천 시에 한해)
참고사이트
https://hoshinoresorts.com/ja/hotels/beb5karuizawa/
https://mg.runtrip.jp/archives/109180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학사 졸업
-영국 왕립예술대학원 제품디자인 석사 졸업
-생테티엔(프랑스)비엔날레 참여작가
-스왈로브스키 본사(오스트리아)협업작가
-런던디자인뮤지엄레시던시 작가
(현) 프리랜서 디자이너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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