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태양광 제조업계가 다시 한번 유럽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 기업의 압도적 점유율에 밀려 유럽 제조업은 경쟁력을 크게 상실했으나, 최근 네덜란드에서는 기술 혁신과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재도약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의존 심화와 유럽의 위기의식
태양광 패널과 전지 생산에서 중국은 전체 가치사슬의 75~97%를 차지한다. 값싼 에너지와 토지, 대출에 기반한 대규모 생산력과 낮은 가격 전략에 밀려 유럽 제조업체 다수가 시장에서 물러났다. 네덜란드 역시 대표기업들이 잇달아 파산했으며, 최근까지 자체 생산 역량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2021~2026년 전 세계 태양광 패널 생산 추이>
(단위: GW)

[자료: Wood Mackenzie]
그러나 러·우 사태 이후 에너지 안보가 핵심 의제로 떠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EU 집행위는 2023년 '넷 제로 산업법(Net Zero Industry Act)'을 통해 2030년까지 태양광·배터리 등 핵심 녹색 기술의 40%를 역내 생산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동시에, PFAS(독성 물질) 사용 금지, 강제노동 제품 수입 차단 등 규제 강화도 병행하면서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보조금 축소와 시장 여건 악화로 2025년 유럽 신규 설치량은 전년 대비 1.4%(64.2GW)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며, 목표 달성에 조절이 필요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네덜란드 기업의 재도약 시도
네덜란드 위어르트(Weert)에 위치한 Solarge는 초경량·재활용 가능 패널 생산하면서 중국산 표준 제품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이 회사는 SABIC이 개발한 특수 플라스틱 필름을 활용해 패널 무게를 기존 유리 패널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였고, 유해 화학물질인 PFAS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건축물 옥상 하중 문제 해결에 적합한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25년 6월에는 Solarge가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기구(TNO)와 함께 세계 최초로 폴리머 기반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태양광 패널 시제품을 공개했다. 이는 기존의 무거운 유리 대신 플라스틱 구조를 활용해 무게를 절반으로 줄이고, 극도로 낮은 CO₂ 배출량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적 돌파구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이 패널이 킬로와트시당 10g 이하의 CO₂ 배출만 발생시킬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롤투롤(Roll-to-Roll) 방식 생산공정을 적용해 신문 인쇄하듯 연속적으로 셀을 생산할 수 있어, 향후 대량생산 및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료: Solarge]
이 기술은 기존 실리콘 공급망(대부분 중국 의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네덜란드를 차세대 태양광 기술 분야의 선도국으로 부상시킬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Solarge 측은 “이 기술은 단순한 경량화뿐 아니라 유럽 내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는 의미 있는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스타트업 MCPV는 흐로닝언주 페이담(Veendam)에 유럽 최대 규모(연 4GW)의 태양광 전지 공장을 2028년까지 설립할 계획이다. 해당 기업은 헤테로접합(HJT), 탠덤, 페로브스카이트 등 차세대 전지 기술을 적용해 효율 3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2022년 출범한 SolarNL 컨소시엄에는 대학, 연구 기관, 제조업체 등 30여 곳이 참여하고 있다. 이 컨소시엄은 연구개발과 상업화를 연계하며, 2033년까지 20GW 생산능력 확보와 유럽 시장 점유율 15~25% 달성을 목표로 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를 위해 3억 유로 이상을 지원한 상태다.
이 외에도 건축물 외벽용 디자인 패널을 제작하는 Solarix, 트럭·자동차용 태양광 지붕을 개발하는 Lightyear Layer와 IM Efficiency, 박막 태양광 필름을 생산하는 HyET Solar 등 다양한 기업이 틈새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도전과 과제
네덜란드 태양광 산업은 여전히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 기업과 직접 맞서기는 어렵다. 중국산 패널은 여전히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유럽에 대규모로 수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대규모 생산설비를 짓기 위해서는 수억 유로 규모의 자본이 필요한데,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신기술과 결합한 투자이기 때문에 민간 금융권은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MCPV의 사례처럼 정부와 지방정부의 초기 지원은 확보했지만, 추가 민간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프로젝트 착공이 지연될 수 있다.
기술 상용화도 중요한 과제다. 예를 들어 페로브스카이트 전지는 높은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안정성과 대량 생산 공정에서의 신뢰성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또한 핵심 원재료인 실리콘 공급망이 중국에 집중된 점은 중장기적 위험 요인으로 남아 있다.
시사점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기업들은 기술 혁신과 정책 지원을 기반으로 산업 재도약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EU 차원의 공급망 자립 전략이 뒷받침되고 있으며, 네덜란드 연구 기관들이 차세대 전지 기술 개발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요인이다.
특히 Solarge–TNO의 페로브스카이트 세계 최초 시제품 개발은 네덜란드가 차세대 태양광 기술을 실제 시장 적용으로 연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이는 한국 기업이 태양광 신기술 협력, 유럽 공급망 참여, 녹색산업 협력 기회를 모색할 때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KOTRA 암스테르담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동일한 표준 제품으로는 경쟁이 어렵다”라며, “초경량, 친환경, 고효율 등 차별화된 기술을 통해서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자료: fd.nl, solarNL.eu, mcpv.eu, CBS, Solarge, Reuters, Solar Magazine, TNO, Wood Mackenzie, European Commission, KOTRA 암스테르담무역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