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대를 대표하는 기업가는 누가 뭐래도 일론 머스크다. 시간을 10년만 앞당겨보자.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전설로 남은 스티브 잡스가 떠오를 것이다. 다시 10년을 앞당기면 어떨까? 운영체제 윈도(Windows)의 빠른 보급으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의 도래를 주도한 빌 게이츠가 있다. 빌 게이츠는 소리없는 정보통신(ICT) 혁명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난 만 66세의 빌 게이츠는 다시 한 번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설립한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Breakthrough Energy Ventures)의 빌 게이츠가 베이 지역에 왔다. 2022년 6월 14일(화) 오전 11시,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 Berkeley) 젤르바흐(Zellebach) 홀에서 빌 게이츠를 만났다. 테크크런치 세션즈(TC Sessions) 기후 분야 연사로 나선 빌 게이츠는 “청정기술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자본을 투입할 것인가(How to Deploy Billions in Clean Tech)”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대담을 위해 연단에 등장하는 빌 게이츠(오른쪽)>
[자료: 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 촬영]
탄소제로 2050: 빌 게이츠는 여전히 낙관적일까
기후위기가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지 책으로는 충분히 알기 어렵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통산업의 영향력에 대해 실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 혁신을 논하면서 시멘트, 철강, 화학물질, 종이, 농업용 토지와 같은 전통산업 영역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빌 게이츠는 “혁신의 본질은 매우 다르다. 진행속도가 빠른 디지털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후위기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순진하게 접근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내며, “전통산업을 바꾸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으며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ies)을 포함한 전지구적 차원에서 기술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이 지나치게 선진국(developed countries) 시장에 편중되어 있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빌 게이츠는 실제로 2015년 유엔 기후변화회의 파리협정에서 돌파구(breakthrough)를 마련했다. 청정에너지 기금 설립계획을 직접 발표하며 30개국 정상을 상대로 에너지 연구개발(R&D) 예산을 두 배로 늘릴 것을 촉구했다. 2016년부터 브레이크스루 에너지에는 각 분야 전문가 그룹을 고용해오고 있다. 빌 게이츠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배출량의 65%를 차지하는 중·저소득 국가(middle income countries)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파했다. 부유한 국가(rich countries)의 참여만으로는 전체의 25%밖에 해결할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또한, 브레이크스루가 청정에너지 분야 혁신을 주도하면서 맞닥뜨리는 난관을 직접 해결해야 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기후 행동자의자(climate activist)로서 그는 이렇게 의견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반드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We do have to activate)”
<탄소제로 2050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빌 게이츠>
[자료: 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 촬영]
기후위기 분야에서 빌 게이츠가 일하는 방식
브레이크스루 에너지는 혁신기업이지만 실리콘밸리 기업이 전형적으로 일하는 방식과 차이를 보인다. 브레이크스루는 탄소포집 기술, 수소 기술을 이해하고 있는 거대 기술팀을 직접 구성한다. 빌 게이츠는 자체적으로 강력한 기술 팀을 보유하는 사업모델을 수립하고 회사를 시작했다.
브레이크스루의 포트폴리오에는 문자 그대로 발로 뛰면서 찾은 10개의 파트너사(社)가 있다. 빌 게이츠는 “대의를 지향한다(cause-oriented)”며 “배출량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에만 자금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멋진 웹사이트를 구축해놓은 회사를 찾기 위해 품을 들이는 것이 아니다”고 단호한 어조로 덧붙였다. 시장을 촉발하기 위해 빌 게이츠는 세계적 부호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려 투자를 부탁했다. 20명에게 전화를 했을 때 빌 게이츠는 10억 달러 자금유치에 성공했고 다음 단계에서 10억 달러를 모았을 때는 청정에너지 시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전화를 돌릴 필요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브레이크스루는 20억 달러를 확보했다. 빌 게이츠는 몇몇 추가 투자유치 계획도 있다. 주로 펠로(fellow)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브레이크스루는 오픈소스 모델에 기반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전형적 스타트업과는 차별화된 벤처기업으로 자신들을 규정한다. 빌 게이츠는 브레이크스루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집중하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기업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못박았다.
빌 게이츠는 브레이크스루가 겪을 앞으로의 위기에 대해서도 예상했다. 브레이크스루가 '입증되지 않은 기술에 대해 자본을 활용할 여력이 있다'고 해도 몇 년 동안은 추운 겨울을 보낼 것이다고 말했다. 브레이크스루는 실사(due diligence)에 기반한 소규모 시험생산을 통해 세계의 대형 시멘트 회사, 철강기업, 화학업체와 제휴할 수도 있다. 혹은 테슬라(Tesla) 같은 전기차 회사처럼 직접 공장을 지을지도 모른다. 빌 게이츠는 “변화의 크기는 한정된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투입한 혁신과 효율적으로 배치된 자본의 양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고 발언했다.
동시에 빌 게이츠에게 가장 절실한 이슈는 ‘아프리카에 값 싼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다고 전했다. 아프리카는 20년 전보다 오늘날 1인당 사용 가능한 전기량이 더 적다. 아프리카의 인구 증가 수는 20년 동안 추가 전략량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전통산업은 현재 달성 가능한 상태에 만족하고 새로이 개선할 방향으로 혁신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적시에 올바른 버튼을 누르자(Push the right button at the right time)”며 동료 기업가와 예비 창업자를 독려했다. 아프리카로 대표되는 저소득·저개발 지역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일깨우며 의견을 마무리했다.
<테크크런치 누리집에서 생중계된 빌 게이츠와 사회자 대럴 에더링턴(Darrel Etherington)의 대담>
[자료: 테크크런치(networking.techcrunch.com)]
혁신과 인재, 머스크에 대한 빌 게이츠의 평가
빌 게이츠는 과학, 엔지니어링 경력 초기단계에 있는 인재들에게 기후위기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적극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월스트리트에서 파생상품을 만들거나 실리콘밸리에서 원숭이의 디지털 이미지를 분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비전은 그저 소득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다(That’s not just maximizing income)고 잘라 말했다.
빌 게이츠는 최고의 인재가 기후위기 해결 산업 분야에 들어오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브레이크스루는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획기적 아이디어에도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탄소배출이 0이 되도록 만드는 기술혁신뿐 아니라 배출의 65%가 일어나는 세계 저소득 지역을 상대로 ‘탄소배출 없이 시멘트를 만드는 신기술’을 전수하는 활동까지 포함한다. 빌 게이츠는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하지만 전환이 일어나도록 브레이크스루가 돕겠다(You have to put some more capital in but we’ll help that transition)”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빌 게이츠는 오스틴(Austin)에 있는 테슬라 기가팩토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산업 전체의 판도를 바꾼 일론 머스크를 높게 평가하면서 감동적(mind-blowing)이며 놀랍다(amazing)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탄소배출 제로로 가기 위해서 테슬라의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9%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테슬라는 놀랍지만 나머지 91%에 대한 전지구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떤 시각에서는 전기 자동차가 가솔린 자동차보다 오염이 심할 수 있다. 전기 자동차 생태계를 위한 녹색 그리드가 필요한 지역은 여전히 대다수다. 빌 게이츠는 2050 탄소배출 제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Let’s get that done)고 제안했다.
한편, 기업가로서 빌 게이츠는 일론 머스크를 ‘자신과는 스타일이 다른 사람’으로 정의했다. 빌 게이츠는 머스크가 소셜네트워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할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는지에 대해 자신은 특별한 통찰이 없다고 말했다. 기업가로서 빌 게이츠는 잘 알려진 것처럼 머스크처럼 논쟁을 극대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빌 게이츠는 머스크는 확실히 혁신의 힘을 믿는다(He certainly believes in innovation)고 생각한다며 존중을 나타냈다. 머스크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환상적인 것 아니냐(a fantastic thing)고 반문하기도 했다.
<2021년 초 발간된 빌 게이츠의 저서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자료: 아마존(Amazon.com)]
시사점: 영향력이 큰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추구하라
빌 게이츠에게는 20초가 남았다. 그는 기업가, 기술자, 미래 창업가를 위한 조언으로 주어진 시간을 사용했다. 빌 게이츠는 “우리는 많은 혁신을 이뤄냈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며 “아직 구축하지 못한 정교한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산업과 농업 분야의 섬세한 거버넌스는 아프리카와 같이 소외된 지역을 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은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며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특유의 낙관적 자세를 견지했다. 좋은 아이디어에는 자본이 유지될 것이라며 빌 게이츠의 브레이크스루도 이 흐름에 동참해 투자를 주도할 것을 시사했다.
ESG로 알려진 환경·사회·투명 경영은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한 조류가 아니다. 세계가 마주한 축적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고 있다. 정보통신 혁명으로 세상을 뒤흔든 기업가는 기후위기를 마주한 지구를 위해 자신의 여생을 바치고 있다. 공허한 구호와 단순한 기부를 통해서가 아니다. 빌 게이츠는 더 나은 지구를 만드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제시하며 이윤을 창출하는 방법을 설파했다. 신규 사업기회를 찾는 글로벌 기업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빌 게이츠의 마지막 당부를 한국의 예비 창업가를 상정해 전달한다.
“영향력이 큰 영역에서 아이디어를 추구하십시오(Pursue the ideas in those high impact areas).”
자료: TechCrunch Climate 'Bill Gates on How to Deploy Billions in Clean Tech' (2021.6. 14, Zellebach Hall, UC Berkeley) 및 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