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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중단이 독일에 미치는 영향

지난 3월 말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유럽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자 러시아는 자국 천연가스 수입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라는 강수를 두었다. 그리고 4월 말 자국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내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동유럽 국가인 폴란드와 불가리아의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번 두 국가에 대한 가스 공급 중단 조치는 EU 전체와 특히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이 높은 독일을 압박하기 위한 러시아의 외교적 카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현재 독일은 전체 천연가스 수요의 35%*를 러시아로부터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 독일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를 기존 55%에서 35%까지 낮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중단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

 

 

 

독일에서 천연가스는 제조산업, 난방, 전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매우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만약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중단될 경우 독일은 여러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독일에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들이 발생하게 될까?

 

 

 

1. 에너지 부족

 

 

 

에너지 균형에 대한 실무자 그룹(AGEB; Arbeitsgemeinschaft Energiebilanzen e.V.)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독일의 1차 에너지 소비에서 천연가스의 소비율은 26.8%였다. 이는 석유에 이어 두 번째로 소비율이 높은 것이다. 에너지원으로서 천연가스는 특히 산업 분야에서 수요가 높고 또한 난방 에너지원으로 가정에서도 수요가 높다. 그리고 독일은 현재 전력 생산의 14.5%를 천연가스 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이처럼 1차 에너지로서 의존도가 높은 천연가스가 부족할 경우 독일에서는 심각한 에너지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전체 천연가스 수요의 35%를 러시아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러시아로부터 가스 공급을 받지 못할 경우 독일은 에너지 부족 사태가 불가피하다.

 

 

 

<2021년 독일 1차 에너지 소비율>

 

 

[자료: Arbeitsgemeinschaft Energiebilanzen e.V.]

 

 

 

2. 산업에 심각한 타격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독일에서는 특히 산업 분야에서 가스 수요가 높다. 그 이유는 독일 산업이 제조업에 초점을 두고 있고, 제품 생산을 위한 주 에너지원으로 천연가스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AGEB에 따르면 2021년 독일의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이 전년 대비 4.9% 증가했는데, 그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제조산업이 다시 회복세를 보이면서 산업 분야의 가스 수요가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2021년 독일 산업 분야의 천연가스 소비량은 전체 소비량(1,012.2TWh)의 32.35%인 372.5테라와트시(TWh)로 가장 많은 소비량을 보였다. 이처럼 독일 산업이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천연가스가 부족할 경우 산업 분야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2021년 독일의 천연가스 분야별 소비점유율>

 

(단위: TWh)

 

 

[자료: 독일 연방통계청, BVEG, BDEW, Handelsblatt 재인용]

 

 

 

여러 산업 중에서도 특히 화학산업은 가스 공급 중단 시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 왜냐하면 천연가스는 에너지원이기도 하지만 화학제품 제조를 위한 원자재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2020년 산업 업종별 천연가스 소비량을 보면 기초 소재 화학산업의 가스 소비량이 20만1593TJ로 전체 산업 중 가장 많은 소비량을 보였다. 따라서 천연가스가 부족할 경우 독일 화학산업은 생산에 차질에 생겨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독일 화학산업은 2021년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암모니아 생산을 중단하는 등 불안정한 천연가스 공급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2020년 독일 산업 업종별 가스 소비량>

 

(단위: TJ)

 

 

[자료: Arbeitsgemeinschaft Energiebilanzen e.V., Handelsblatt 재인용]

 

 

 

3.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에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차단되면 1차 에너지 부족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에 독일의 에너지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전기세와 난방비, 산업 생산 비용 등 여러 경제 비용을 증가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독일 5개 주요 경제기관*들이 공동 작성해 지난 4월 13일 발표한 2022 공동경제전망(Gemeinschaftsdiagnose)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에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즉각적으로 중단될 경우 2022년과 2023년 2년간 약 2200억 유로의 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5개 연구소들은 2.7%의 성장이 예상되던 올해 GDP 성장률도 가스 공급 중단 시 1.9%만 증가하고, 2023년에는 오히려 2.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 베를린 독일경제연구소(DIW Berlin), 뮌헨 Ifo 경제연구소(Ifo Institute), 킬 세계경제연구소(IfW Kiel), 할레 경제연구소(IWH), 에센 RWI 경제연구소(RWI)

 

 

 

그리고 에너지 가격 상승은 독일의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수 있다. 이미 독일의 물가 상승률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연일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4월 독일의 물가 상승률은 7.4%를 기록하며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5개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될 경우는 2022년 물가 상승률이 기존 6.1%에서 7.3%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만약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 소비 심리가 위축돼 독일 경제는 코로나19 위기 때와 같이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독일 월별 물가상승률(2021.4.~2022.4.)>

 

 

[자료: 독일 연방통계청, Statista 재인용]

 

 

 

4. 사회적 갈등 심화 가능

 

 

 

천연가스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경우 독일에서는 대량 실직 사태가 발생해 실업률이 상승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화학, 자동차 등 제조산업 분야는 가스 부족 사태 발생 시 제품 생산성 저하가 불가피하므로 생산 인력 감축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 5개 경제연구소는 즉각적인 가스 공급 중단 시 이에 따른 파급효과로 2023년에 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실업률은 6%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만약 이러한 대량 실직 사태가 실제 가시화되면 소득 감소에 따른 가계 경제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실직자들의 사회·경제적인 상실감과 소외감 등의 사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부분에서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스 부족 시 정부가 구성한 비상 대응팀이 가스 우선 공급권을 결정하는데, 이때 누구에게 우선 공급할 것인가를 놓고 첨예한 대립이 있을 수 있다. 얼마 전 독일 산업계의 주요 인사들이 가스 부족 사태 발생 시 민간보다 산업 분야에 가스가 우선 공급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문제는 이미 논쟁거리가 된 바 있다. 현재 독일은 비상사태 시 병원과 같은 시설과 함께 민간에 가스를 우선 공급하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민간에서도 가스 수요가 많은데 특히 난방과 같이 중요한 부분에 천연가스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의 기존 건물 중 절반에 해당하는 49%가 천연가스를 난방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민간에 가스 공급이 차단되면 난방을 하지 못해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가스 부족 사태로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하면 오히려 민간에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며 산업 분야에 우선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가스가 부족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대립이 첨예하지 않지만 실제 천연가스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경우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

 

 

 

시사점

 

 

 

우크라이나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그리고 러시아가 독일에 가스 공급 중단이라는 강수를 둘지는 지금으로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하지만 현재 독일은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중단할 경우를 대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부유식 액화가스(LNG) 터미널 건설이다. 지난 5월 5일 독일 연방 경제기후보호부 장관 하벡은 빌헬름스하펜(Wilhelmshaven)과 브룬스뷔텔(Brunsbüttel)에 계획 중인 2개*의 부유식 LNG터미널을 10개월 이내에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반적으로 부유식 LNG 터미널은 파이프 연결 등 기반 시설을 마련하는데 5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나, 이를 가속해 올해 말까지 빌헬름스하펜 터미널을 가동하고 내년 초에 브룬스뷔텔의 터미널을 가동하겠다는 것이 독일 연방정부의 계획이다. 신속한 터미널 건설을 위해 독일 연방 경제기후보호부는 LNG 터미널 건설에 대한 승인 절차 단축을 위한 LNG-가속법(LNG-Beschleunigungsgesetz) 초안 또한 마련했다.

 

* 독일은 30억 유로를 투자해 총 4개의 부유식 LNG 터미널을 계획 중이며, 나머지 2개 터미널 건설 부지로 네덜란드의 스타드(Stade), 로스토크(Rostock), 함부르크(Hamburg), 엠스하펜(Eemshaven) 등을 검토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연방정부는 러시아 가스에 대한 금수조치는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우려와 같이 즉각적인 공급 중단의 경우 경제와 산업에 큰 피해와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요구하는 루블화 결제의 경우도 러시아 국영기업 가즈프롬이 세운 은행 가즈프롬방크의 특별 계좌를 활용해 대금을 결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 결제 방법은 유로 입금 시 루블화로 자동 환전돼 결재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EU의 대러시아 제재 방침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연방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불거진 러시아 에너지원 공급 문제는 2021년 연정 구성 이후 현 정부가 봉착한 가장 큰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 속 신호등 연정이 경제와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위기를 기회 삼아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에 성공하는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썸네일 출처: Rdaktions Netzwerk Deutschland

 

자료: Arbeitsgemeinschaft Energiebilanzen e.V., Handelsblatt, Spiegel, Tagesschau, Hamburger Abendblatt, Statista, DIW Berlin, Ifo Institute, IfW Kiel, IWH, RWI, Deutschlandfunk, Statista, Manager Magazin, 독일 연방정부, 독일 연방경제기후보호부, 독일 연방통계청, KOTRA 함부르크 무역관 보유 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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