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AI 시대, K-패션의 새로운 저작권 전쟁
들어가며....
지난 6월 칼럼 「디자인을 훔치는 시장에서 K-패션의 미래는 있는가?」를 통해 필자는 패션산업의 기술은 곧 디자인이며, 디자인 보호는 개별 기업의 권리분쟁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디자인을 만들고도 지키지 못하는 산업에서는 기업이 창작과 혁신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 섬유패션산업은 디자인 모방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과 저작권적 측면의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디자인과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연 인공지능은 누구의 창작물을 학습하여 성장하는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디자인권과 이미지의 저작권 등 권리는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그리고 기존 디자이너나 사진작가의 창작물과 유사한 결과물이 만들어졌다면 그 책임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 고민해야할 것이 한 둘이 아니다.
AI와 섬유패션산업의 현상을 들여다본다.
생성형AI는 이미 섬유패션산업의 기획과 생산, 마케팅 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디자이너와 제품기획팀은 이제 몇 줄의 명령어와 조건 값의 문장만으로 새로운 의상 콘셉트와 텍스타일 패턴을 만들 수 있고, 기업은 별도의 촬영이나 고민도 없이 가상모델을 활용한 룩북과 광고 이미지를 제작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상품명과 브랜드 슬로건, 쇼핑몰 상세페이지, 소셜미디어 콘텐츠, 패션필름의 스토리보드까지 생성형 AI의 활용범위는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과거 하나의 패션상품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시장조사와 디자인 스케치, 패턴 제작, 샘플 수정, 모델 섭외와 촬영 등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그러나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짧은 시간에 수십 수백 개의 디자인 시안과 광고 이미지 등 저작물을 비교하고 수정할 수 있다.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 패션기업에는 새로운 경쟁의 기회가 될 수 있고, 소비자의 반응을 미리 확인하거나 불필요한 샘플 생산과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처럼 생성형 AI가 가져온 생산성과 효율성 등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AI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창작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점이다.
AI는 수많은 기존의 텍스트와 사진, 그림, 패턴, 디자인 등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속에서 발견한 일정한 특징과 구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결국 그 학습의 출발점에는 오랜 시간 창작활동을 해 온 기존 디자이너와 기획자, 작가, 사진작가, 브랜드와 기업의 저작물등 소위 기존 인간중심의 저작물과 저작자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AI는 그들에게 학습을 허락받았는가?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이 AI 학습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가?
그 결과로 AI기업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면 원저작자에게도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생성형 AI 저작권 권리 논쟁의 가장 핵심적 논제이자 풀지 못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각국의 AI관련 동향과 움직임....
생성형 AI와 관련된 세계 각국의 저작권 분쟁도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저작물을 AI 학습데이터로 이용하는 행위가 허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AI를 이용하여 만든 결과물에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전자는 학습 단계의 적법성에 관한 문제이고, 후자는 생성된 결과물의 권리 귀속에 관한 문제이다.
지금은 일반화된 일시적 복제 하에서 각종 논문과 글들의 복제율, 저작권의 침해정도를 검토해주고 있는 “카피킬러”란 프로그램 출현 시기 고민했던 문제와 고민들이 생각이 난다.
미국에서는 언론사와 작가, 이미지 제공업체, 예술가 등이 자신의 기사와 사진, 그림 등이 허락 없이 AI 학습에 사용되었다며 관련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왔다.
이에 대해 AI기업들은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는 행위는 기존 저작물을 그대로 판매하거나 복제하는 것과 다르며, 일정한 범위에서는 공정이용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창작자들은 자신들의 저작물이 없었다면 AI 서비스도 만들어질 수 없었던 만큼 최소한 이용 사실을 공개하고 허락과 보상에 관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 저작권청도 2025년 생성형 AI 학습과 저작권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AI 학습 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저작물 이용이 당연히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이용된 저작물의 성격과 출처, 이용 목적,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특히 불법적으로 확보된 자료의 이용이나 기존 저작물의 시장을 직접 대체하는 결과물을 만드는 행위까지 일률적으로 정당화하기는 어렵다는 취지이다.
유럽연합은 보다 적극적으로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인공지능법 체계는 범용 AI 모델 제공자에게 유럽연합 저작권법을 준수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모델 학습에 사용한 콘텐츠에 관한 요약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2025년 마련된 범용 AI 행동규범도 투명성과 저작권 준수를 주요 축으로 하고 있으며, 2026년에는 AI 생성물의 표시와 고지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유럽의 정책 방향은 AI 기술개발을 금지하기보다는 무엇을 학습했고 무엇을 생성했는지에 관한 책임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AI현황과 현상들...
우리나라도 AI와 저작권에 관한 제도적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생성형 AI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과 분쟁 예방에 관한 안내서를 마련하고, AI 활용 정도와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구분하여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2026년에는 AI와 저작권에 관한 안내 자료도 종합적으로 정리해 공개했다.
청와대에 AI수석이란 직책이 생겨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AI를 기준으로 정책을 추진 중인 것도 이색적이다.
현재 국내외 저작권 제도의 기본적인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인간의 창작적 개입 없이 AI가 자동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 자체에는 원칙적으로 인간의 저작물과 동일한 저작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창작물을 AI에 입력하고, 수차례의 선택과 수정, 배열과 편집을 거쳐 구체적인 창작적 표현을 완성했다면 그중 인간이 창작한 부분은 보호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최종 결과물에 인간의 창작적 판단과 표현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섬유패션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그런 측면에서 우리 섬유패션산업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패션상품 하나에는 의류의 전체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원단의 문양과 그래픽, 자수와 프린트, 촬영사진, 모델의 포즈, 배경 이미지, 상품설명과 광고문구 등 다양한 창작요소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류의 실용적 형태가 모두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지만, 독창적인 텍스타일 문양이나 그래픽, 패션사진과 영상, 일러스트레이션 등은 저작물로 보호될 수 있다. 하나의 상품과 콘텐츠 안에서도 디자인권과 저작권, 상표권, 부정경쟁방지법상 보호가 중첩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생성형 AI에 특정 유명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이름을 직접 입력하여 그 스타일과 유사한 의상 이미지를 만들어 광고에 이용했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히 특정한 분위기나 유행을 참고한 것인지, 기존 작품의 창작적 표현을 실질적으로 재현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해당 이미지에 타인의 상표나 특징적인 패턴이 표현되었다면 저작권뿐만 아니라 상표권 침해나 출처 혼동, 제품형태의 부정경쟁행위의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AI가 제작한 가상모델과 패션화보도 마찬가지다. 실존 모델이나 연예인의 얼굴과 신체적 특징을 유사하게 생성하면 초상권이나 퍼블리시티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기존 사진작가나 저작권자의 촬영구도와 조명, 배경, 표현방식을 실질적으로 재현했다면 저작권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AI가 생성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이 모든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AI는 업무수행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고, 그 결과물을 선택해 상업적으로 이용한 기업이나 이용자에게도 상당한 검토와 사용에 따른 책임이 요구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AI가 패션산업의 기존 모방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경쟁사의 제품을 분석하고 유사한 디자인을 제작하는 데 일정한 시간과 기술 샘플 등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경쟁제품의 이미지를 AI에 입력하거나 특정 스타일과 정보를 지시하는 것만으로도 짧은 시간에 수많은 변형 디자인과 새로운 저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모방의 속도는 빨라지고, 원본과 유사하면서도 일부만 변경된 결과물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즉 한계생산비가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는 결과가 된다.
이 과정에서 중소 디자이너와 독립 브랜드가 가장 먼저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대기업처럼 지속적으로 시장을 감시하거나 해외 플랫폼의 침해상품에 대응할 인력과 자본이 부족하다.
어렵게 개발한 디자인과 이미지와 저작물이 AI 학습에 사용되거나 유사한 콘텐츠로 재생산되더라도 그 사실을 확인하기조차 어렵다. AI 기술의 발전이 창작의 민주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이미 많은 데이터와 자본을 가진 기업에 더욱 유리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현실과 생활이 되어버린 생성형 AI의 이용을 막거나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AI는 패션기업의 기획능력을 높이고 생산비용과 재고를 줄이며, 소비자의 요구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산업도구이다. 필요한 것은 이용 여부에 대한 찬반논쟁이 아니라 AI를 안전하고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산업적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다.
AI활용에 대한 대안을 수립하고 실천하자.
첫째로 우선 패션기업은 AI를 통해 제작한 디자인과 콘텐츠의 생성과정을 기록해야 한다.
사용한 AI 서비스와 입력한 프롬프트, 참고 이미지의 출처, 생성된 여러 결과물 가운데 최종안을 선택하고 수정한 과정, 인간 디자이너가 추가한 창작적 요소를 구체적으로 보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료는 향후 저작권 등록이나 권리 귀속을 판단할 때뿐만 아니라 타인의 저작물을 고의로 모방하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에도 중요한 증거와 근거가 될 수 있다.
둘째는 AI 서비스의 이용약관과 데이터 처리방식을 확인해야 한다. 기업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미공개 디자인이나 시즌 기획 자료를 공개형 AI 서비스에 입력하면 해당 정보가 서비스 개선이나 재학습에 이용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권리관계가 불분명한 이미지를 참고자료로 입력하거나 생성된 결과물을 아무런 검토 없이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특히 외부 디자인업체나 광고대행사에 AI 활용 업무를 맡길 때에는 사용한 도구와 참고자료, 결과물의 권리보증과 침해책임을 계약서에 명확히 정해야 한다.
셋째는 기업 내부의 AI 활용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어떠한 자료를 AI에 입력할 수 있는지, 특정 작가나 브랜드의 스타일을 직접적으로 모방하도록 지시해도 되는지, AI 생성물임을 표시해야 하는 경우는 무엇인지, 최종 결과물을 누가 검토하고 승인할 것인지에 관한 기준이 필요하다.
AI 사용을 개인 디자이너의 자율적 판단에만 맡겨두면 기업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타인의 저작권이나 상표권, 초상권, 퍼블리시티권 등 각종 무형의 권리와 자산을 침해할 수 있다.
넷째로 정부와 산업계는 패션산업에 특화된 AI 학습데이터와 저작권 이용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당하게 권리를 확보한 원단 문양과 디자인, 전통복식, 색채와 소재정보 등을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창작자가 원할 경우 일정한 조건과 보상을 전제로 AI 학습에 제공할 수 있는 라이선스 시장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적인 무료 이용과 전면적인 이용금지 사이에서 투명한 허락과 합리적인 보상이라는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생성형 AI 저작권 정책의 핵심은 ‘누가 AI를 더 많이 사용하는가?에 있지 않다.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고,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혁신적인 결과물을 정교하게 만들어 내는가에 있다. 권리관계가 불분명한 데이터를 무분별하게 학습한 AI보다 정당하게 확보된 고품질의 패션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산업적으로도 더 지속가능하고 경쟁력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무리하며...
지난 칼럼에서 디자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패션기업은 경쟁력을 지키기 어렵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AI 시대의 패션기업은 자신의 디자인을 보호하고 저작권을 관리하는 동시에 자신이 사용하는 AI가 누구의 창작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도 살펴야 한다. 권리를 주장하는 기업이라면 다른 창작자의 권리 또한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AI는 패션디자이너를 완전히 대체하는 창작자가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새로운 혁신도구 정도가 되어야 한다.
기술이 창작자를 지우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단기적으로는 빠르고 저렴한 콘텐츠를 얻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패션산업을 움직이는 창의성의 토대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창작자가 정당한 평가와 보상을 받지 못하는 시장에서는 결국 새로운 창작물도 지속적으로 탄생하기 어렵다.
AI는 누구의 창작물을 먹고 자라는가? 이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기술기업만의 몫이 아니다. 정부와 산업계, 플랫폼과 패션기업, 그리고 AI를 사용하는 섬유패션인 우리 모두가 함께 답해야 할 문제이다.
K-패션이 생성형 AI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면서도 세계시장에서 신뢰받는 창의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과 창작자 보호가 함께 동행해 나가는 새로운 저작권 질서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AI는 창작자를 대신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아니라 창작자의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다.
결국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AI는 패션산업의 미래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창의성을 토대로 성장한 기술이 다시 인간의 창작을 돕고, 그 이익이 창작자와 산업에 공정하게 돌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생성형 AI 시대에 K-패션이 선택해야 할 새로운 경쟁전략일 것이라 믿는다.
세상이 어찌 변해가든 AI의 미래는 결국 인간의 창의성 위에 세워질 수밖에 없다.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기술은 오래 지속될 수도 없다.
우리 K-패션이 AI 시대에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만큼이나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산업문화와 저작권 질서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AI가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을 더욱 빛나게 하는 시대,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K-패션의 미래일 것이다.
출처 :
( https://fpost.co.kr/board/ )
원문기사링크 : https://fpost.co.kr/board/bbs/board.php?bo_table=special&wr_id=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