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막대한 예산을 들여도 같은 실수가 반복될까
지난 1편에선 저렴한 UX로 고통받는 사용자와 직원의 현실을 다뤘다. 사용자가 피할 수 없는 공공·금융·교육·의료 서비스와 사내 업무 시스템 앞에서, 시스템이 감당해야 할 복잡성을 온몸으로 떠안는 현상을 우리는 ‘디지털 갑질’이라 정의했다.
이번 글에서는 질문을 바꿔 본다. 그렇다면 이토록 모욕적인 UX는 왜 반복해서 만들어지는가? 왜 수많은 조직은 사용자가 불편해하고, 직원이 고통받고, 고객센터에 불이 나며, 결국 몇 년 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재구축을 하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많은 조직이 UX를 ‘비용’으로, 프로젝트 후반부의 복잡한 화면 정리 작업쯤으로 보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가 말한 ‘가벼움’은 처음에는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난 자유처럼 보인다. 조직이 UX를 가볍게 다룰 때도 비슷하다. 초기에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프로젝트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듯 보인다. 화면은 나중에 정리하면 되고, 사용자는 언젠가 익숙해질 것이며, 문제는 오픈 후 고도화 때 고치면 된다고 위안 삼는다.
그러나 회피한 문제는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초기에 아낀 UX 비용은 고객센터에 전화하고, 유튜브에서 사용법을 검색하고, 무능한 챗봇과 씨름하는 사용자의 시간으로 바뀐다. 조직 안에서도 치솟는 고객센터 유지비, 직원의 엑셀 우회, 몇 년 뒤의 잔혹한 재구축 예산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여기에 최신 청구서가 하나 더 붙었다. ‘아무도 쓰지 않는 AI 시스템’, 즉 실패한 AI 전환(AX) 비용이다.
저렴한 UX는 예산을 아끼는 현명한 방식이 아니다. 그저 당장 치러야 할 비용을 미래로 미루는 무책임한 방식일 뿐이다.
UX는 왜 늘 후순위가 되는가

(자료=클립아트코리아)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카카오처럼 오래 내부에서 UX 조직을 키워온 빅테크 기업은 사용자 경험을 제품 경쟁력의 본질로 이해한다. 완벽하진 않아도 적어도 UX를 ‘화면을 예쁘게 꾸미는 일’로 격하시키진 않는다. 그들에게 UX는 시장에서의 생존과 직결된 전략이다.
그러나 IT가 본업이 아닌 대다수 거대 조직은 여전히 다르게 생각한다. 공공기관, 금융사, 제조사, 대기업 그룹사 등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곳에서 프로젝트는 대개 거창한 이름으로 시작된다.
차세대 시스템 구축, 앱 전면 개편, 업무 시스템 고도화, AI 플랫폼 도입, 고객센터 자동화, AX 추진.
이름은 화려하지만 운영 방식은 과거의 ‘기능 구현 중심’에 머물러 있다. 어떤 기능을 만들고 어떤 화면이 필요한가, 어떤 데이터를 조회하고 어떤 시스템과 연계하는가, 언제 오픈하고 예산과 보안 기준은 무엇인가. 여전히 많은 기업이 이 질문에 머문다.
물론 이 질문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질문만으로는 결코 좋은 서비스가 나오지 않는다. 진짜 던졌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사용자는 이 시스템으로 어떤 과업을 완료해야 하는가?” “그 과정에서 사용자는 어디서 실패하는가?” “직원이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지점은 어디이며, AI는 업무 흐름의 어느 순간에 개입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이 거세되는 순간, DX와 AX는 사용자 고려가 빠진 단순한 ‘시스템 구축 과제’로 전락한다. 시스템은 일정에 맞춰 오픈하겠지만, 사용자는 여전히 고통받고, 직원은 우회하며, 고객센터는 마비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렴한 UX의 싹이 튼다.
저렴한 UX는 발주 단계에서 이미 예정된다

(자료=클립아트코리아)
저렴한 UX는 개발 현장에서 갑자기 태어나는 돌연변이가 아니다. 대개 첫 단추인 ‘기획과 발주 단계’에서 운명이 결정된다. 과업지시서(RFP)를 보면 기능 요구사항은 놀라울 만큼 빽빽하다. 화면 수, 메뉴 구조, 개발 범위, 권한 체계, 보안 요건이 구체적인 숫자로 박혀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사용자 경험 요구사항은 실소가 나올 만큼 모호하다.
“사용자 친화적으로 구성한다.”
“직관적인 UI를 제공한다.”
“AI 기반으로 업무 효율을 높인다.”
이런 문장은 현장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무엇이 사용자 친화적인지, 어떤 사용자가 어떤 과업을 얼마나 쉽게 끝내야 하는지, 기존 대비 시간이 얼마나 단축돼야 하는지, 고객센터 문의를 몇 % 줄일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고통은 화면에서 터지지만, 원인은 이미 몇 달 전 작성된 과업지시서 안에 똬리를 틀고 있던 셈이다. 기능 요구만 비대하고 경험 요구가 전무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명확하다. ‘기능은 참 많은데 도무지 쓸 수 없는 시스템’이다. 그러고 나서 조직은 뒤늦게 의아해한다. “왜 사용자가 안 쓰고, 민원은 이렇게 많지?” “왜 현업은 아직도 엑셀을 쓰지?” 답은 처음에 이미 정해져 있었는데 말이다.
기능 구현은 ‘완료의 기준’일 뿐
수많은 DX·AX 프로젝트에서 성공의 이정표는 ‘사용자가 목적을 달성했는가’가 아니라 ‘기능이 돌아가는가’이다. 버튼이 눌리고, 저장·조회가 되고, 출력이 이뤄지며, 오류 없이 배포되면 프로젝트는 ‘성공적 완료’로 간주된다. 그러나 사용자 경험의 성공 기준은 완전히 다르다.
기능의 직관성, 정보 입력의 설득력, 오류 상황 대처, 중복 입력 여부, 이탈 없는 과업 달성, AI 결과물의 신뢰성과 실용성. 이것이 경험의 성공 기준이다.
‘개발하기 쉬운 화면’과 ‘사용하기 쉬운 화면’은 높은 확률로 충돌한다. 개발 관점에서는 DB 구조대로 화면을 쪼개는 게 편하고, 조직 관점에서는 부서별 R&R대로 메뉴를 나누는 게 편하며, 보안 관점에서는 단계마다 2중·3중으로 인증하게 만드는 게 안전해 보인다.
하지만 사용자는 공급자의 사정에 관심이 없다. 부서 구조도, 데이터 구조도, 내부 프로세스도 알고 싶지 않다. 그저 ‘자신의 일을 최소한의 노력으로 끝내고 싶을 뿐’이다. 기능만 구현하고 경험은 버려지는 그 순간, 디지털 갑질이 시작된다.
“다른 회사 정도만”의 편리한 변명

(자료=클립아트코리아)
금융권 프로젝트에서 매번 마주치는 서글픈 데자뷔가 있다. 초반엔 모두가 혁신을 부르짖는다. 고객이 더 쉽게 이해하고, 더 빠르게 신청하며, 더 안심하고 거래할 독보적 경험을 만들자고 눈을 반짝인다. 그러나 개발이 진행될수록 목표했던 경험은 단칼에 쳐내진다.
“기간계 시스템 연계가 무겁습니다.”
“컴플라이언스(규정)상 위험합니다.”
“일정 내 개발이 불가능하니 이번 범위에서 빼고 다음 고도화 때 반영하죠.”
결국 처음 약속한 고객 친화적 UX는 증발한다. 그런데도 프로젝트는 성대하게 끝난다. 기능은 돌아가고, 오픈했고, 임원 보고도 마쳤으니까. 누군가는 눈을 질끔 감고 말한다. “이번엔 어쩔 수 없었으니 다음에 잘하면 되죠.” 하지만 다음에도 일정은 촉박하고, 보안은 복잡하며, UX는 어김없이 찬밥이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조직 내부의 기준선 자체가 낮다는 점이다. 많은 조직의 목표는 ‘최고의 경험’이 아니라 ‘다른 회사 만큼만’이다. “다른 증권사도 그래, 다른 은행도 이 정도는 불편해” “우리만 그런 거 아니야”라며 서로의 못남을 위안 삼는다.
그러나 사용자는 금융회사끼리만 비교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준점은 토스, 카카오뱅크, 쿠팡, 네이버, 그리고 애플과 구글이다. 매일 최고 수준의 사용성을 누리는 이들에게 “다른 금융사도 그렇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금융은 대출, 카드, 급여 계좌가 얽혀 쉽게 떠나기 어려운 폐쇄적 영역이다. 사용자가 불편을 참고 쓰는 것은 충성심이 아니라 대안이 없는 ‘인질’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회사도 이 정도”라는 말은 저렴한 UX를 정당화하는 가장 비겁하고 편리한 변명이다.
사용법을 유튜브에서 배워야 하는 기이한 서비스

(자료=클립아트코리아)
저렴한 UX가 사회에 청구하는 가장 황당한 비용은 ‘학습 비용’이다. 오늘날 사용자는 서비스를 쓰기 전에 사용법부터 공부해야 하는 처지다. 유튜브를 검색하고, 블로그를 뒤지고, 누군가 캡처해 둔 설명 글을 받아 적으며 시스템을 따라 한다. 공공 사이트, 국세청 세금 신고, 조달 시스템, 학교 행정, 병원 예약에서 매일 벌어지는 풍경이다.
이 현상은 본질적으로 기이하다. 잘 만든 서비스는 직관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게 돕는다. 그러나 사용자는 서비스를 ‘쓰기 위해’ 타인이 만든 사설 교육 콘텐츠를 먼저 이수해야 한다. 대출 시스템 하나 쓰려고 영상을 보며 30분을 써야 한다면, 그 기회비용은 누가 보상하는가?
조직도 막대한 비용을 낭비한다. 개발에 수십억을 쓰고도 사용법을 설명하느라 FAQ를 늘리고, 두꺼운 매뉴얼을 만들고, 안내 영상을 제작한다.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문제가 왜 생겼는지를 열심히 ‘설명’하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수준도 아니다. 외양간 문이 왜 열려 있었는지 해설하는 영상을 만드는 꼴이다.
매뉴얼과 FAQ, 블로그 설명글이 비정상적으로 넘쳐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UX가 실패했다는 강력한 증거다. 좋은 UX는 배우지 않아도 흐른다. 저렴한 UX는 사용자를 먼저 공부하게 만들고, 그 학습의 고통을 사회에 전가한다.
고객센터와 민원은 UX 실패의 영수증이다

(자료=클립아트코리아)
많은 조직이 고객센터 운영비를 단순한 ‘운영 비용’으로, 민원 대응을 어쩔 수 없는 ‘관리 업무’로 치부한다. 틀렸다. 반복되는 문의와 민원의 압도적 다수는 저렴한 UX가 발행한 ‘실패 영수증’이다.
고객이 수화기를 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메뉴를 못 찾아서, 용어도 어려운데 오류 메시지마저 외계어 같아서, 다음 단계를 알 수 없어서, 취소·환불 버튼을 꽁꽁 숨겨둬서다. 고객센터에 쌓이는 질문의 산은 고객의 무지가 아니라, 시스템이 친절하게 답하지 못해 남긴 실패의 잔여물이다.
민원도 사용자가 까칠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서비스가 상식적인 기대치를 감당하지 못할 때 임계점을 넘은 분노가 민원이 된다. 특히 떠날 수 없는 공공·금융·의료 영역에서 이 울화는 극에 달한다.
그제야 조직은 사태를 파악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는 것은 근본 원인이 아니라 ‘문의량 폭증’, ‘상담 시간 증가’ 같은 표면 증상뿐이다. 진짜 봐야 할 것은 그 전 단계에 있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사방을 가로막은 불친절한 화면, 내부자만 아는 은어 같은 용어, 실패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같은 프로세스다. 고객센터와 민원 부서는 결국 저렴한 UX가 싸놓은 똥을 사람의 감정과 노동으로 닦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