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사용자에게 떠넘겨선 안돼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우리에게 가벼움과 무거움의 철학적 의미를 묻는다. 나는 요즘 수많은 디지털 서비스를 대할 때마다 비슷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UX는 왜 이렇게 가볍게 취급되는가. 그리고 그 가벼움은 왜 사용자에게만 유독 무겁게 되돌아오는가.
서비스 제공자에게 화면 하나는 단순히 구성해야 할 ‘페이지’일 수 있다. 개발자에게는 수많은 코드 중 하나의 ‘예외 케이스’일 수 있고, 디자이너에게는 다음 고도화 때 고치면 될 ‘항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용자에게 그 순간은 결코 리허설이 아니다. 지금 당장 민원을 신청해야 하고, 대출을 받아야 하며, 병원을 예약하고 회사 시스템에 데이터를 입력해야 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잘못 눌러도 다시 배우면 되는 연습 문제가 아니라, 실패하면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 실전이다. 그런데 ‘저렴한 UX’는 사용자에게 무책임하게 선언한다.
“우리는 쉽게 만들지 않았지만, 당신은 알아서 써야 합니다.”
이것이 저렴한 UX의 본질이다. 제작 비용이 적게 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사용자의 시간, 혼란, 실패, 그리고 분노를 저렴하게 취급한다는 뜻이다. 서비스 제공자와 개발 조직이 마땅히 해결했어야 할 복잡성을 사용자와 현장 직원에게 떠넘기는 무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사용성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갑질’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우리는 오랫동안 소프트웨어가 불편한 현상을 ‘사용성 문제’라고 불러왔다. 버튼을 찾기 어렵거나, 메뉴 구조가 복잡하거나, 용어가 어렵고 오류 메시지가 불친절한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 학술적인 표현만으로는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사용성은 소프트웨어의 ‘성질’이다. 반면 ‘디지털 갑질’은 사용자가 처한 ‘상황’이다. 어떤 소프트웨어가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과, 그 소프트웨어를 반드시 써야만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게임 앱이 불편하면 지우면 그만이다. 쇼핑몰 앱이 불편하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정부 민원 서비스, 은행 앱, 병원 예약 시스템, 보험 청구 시스템, 그리고 회사 업무 시스템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사용자는 쉽게 떠날 수 없다. 반드시 처리해야 할 업무와 서류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 갑질은 단순한 사용성 문제가 아니다. 사용자가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잘못 만들어진 소프트웨어가 사용자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현상이다. 나는 이를 “디지털이 사람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기존의 갑질이 ‘아쉬운 사람’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구조라면, 디지털 환경에서는 소프트웨어가 그 권력을 휘두른다. 사용자는 대안이 없기에 그 부당한 요구를 묵묵히 감내할 뿐이다.
일상의 사소함 속에 숨겨진 비효율

(자료=클립아트코리아)
우리는 매일 이러한 디지털 갑질을 마주한다.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 방법을 몰라 뒤에 선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쩔쩔매는 어르신부터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내 문제에 맞는 선택지가 없어 헤매다 결국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ARS의 굴레, 매장에서 받은 1+1 쿠폰을 쓰려다 적용 방법을 몰라 결국 포기하고 마는 좌절감, 강사 등록 서류를 위해 보안 걸린 PDF를 캡처하고 재가공하며 버려지는 서글픈 30분까지.
이런 일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사소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시스템이 해결했어야 할 복잡성이라는 쓰레기를 사용자가 대신 치우고 있는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키오스크가 쿠폰 적용을 안내하지 못하면 사용자가 눈총을 견뎌야 하고, 공공 사이트가 파일 형식을 유연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사용자가 수동으로 문서를 재조합해야 한다. 은행 앱이 내부 용어를 고객 언어로 바꾸지 못하면 사용자는 ‘공동인증서’와 ‘금융인증서’의 차이를 공부해야 한다. 이 모든 상황의 공통점은 하나다. 시스템이 처리해야 할 일을 사용자가 대신하고 있다.
가해자 없는 폭력: 시스템은 사과하지 않는다

(자료=클립아트코리아)
디지털 갑질이 더 답답한 이유는 가해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통적인 갑질은 사람이 사람에게 한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만, 적어도 항의하거나 협상할 대상이라도 존재한다. 하지만 디지털 갑질은 다르다. 키오스크는 사정을 듣지 않고, ARS는 다급함을 이해하지 않으며, 회사 업무 시스템은 직원이 왜 같은 정보를 다시 입력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사용자는 화가 나지만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모른다. 고객센터 상담사는 해결 권한이 없고, 현장 직원 역시 그 시스템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 결국 사용자는 참고, 돌아가고, 다시 시도하다 포기한다. 그러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건 부당하다”는 울화가 쌓인다.
우리는 이 감정을 너무 오래 ‘불편함’이라고만 불러왔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서비스에서 반복되는 불편함은 단순한 권리 침해다. 국민을 위해 제공되는 정부 서비스가 어렵고, 내 돈을 맡긴 은행 앱이 복잡하다면 그것은 단순한 짜증을 넘어선 울화가 된다.
나쁜 UX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기에 더 위험하다. 잘못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사용자를 힘들게 한다. 매번 같은 정보를 입력하게 하고, 매번 같은 오류를 피하게 하며, 매번 같은 불안을 감수하게 한다. 처음에는 불편함이지만, 반복되면 짜증이 되고, 피할 수 없으면 분노가 된다. 이 지점에서 사용성 문제는 비로소 ‘디지털 갑질’이 된다.
직원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피해자’

(자료=클립아트코리아)
이 고통은 고객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직원은 회사가 도입한 시스템을 거부할 권리가 없는, 가장 심각한 피해자다. 업무 시스템은 직원이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많은 시스템은 직원이 업무에 집중하도록 돕기는커녕, 시스템 자체를 다루는 일을 또 하나의 거대한 업무로 만든다.
특히 금융, 제조, 공공기관의 내부 시스템은 시장의 평가를 직접적으로 받지 않기에 문제가 더 깊이 숨어든다. 직원들은 불편하다고 말하기보다 적응하기를 택한다. 시스템을 비판하면 “변화에 저항한다”는 오해를 살까 두려워 조용히 엑셀로 우회로를 만들고 포스트잇을 붙인다. 조직은 시스템이 잘 운영된다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나쁜 UX가 만든 비용은 고객센터와 현장 직원이 몸으로 처리한다. 키오스크가 어려우면 직원이 설명해야 하고, 공공 사이트가 복잡하면 상담사가 응대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들어오는 고객의 문의는 고객의 무지가 아니라, UX가 사용자의 질문에 미리 답하지 못했다는 증거, 즉 ‘실패 로그’다.
AX 시대, 더 심각해질 디지털 갑질

(자료=클립아트코리아)
AI가 도입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사용자 경험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AI만 추가하는 것은 기존의 문제를 더 빠르고 그럴듯하게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고객센터 시나리오가 엉망이라면 AI 챗봇은 그 부족한 구조 위에서 오답을 생성할 것이고, 업무 프로세스가 복잡하다면 AI는 직원에게 또 다른 확인 업무를 던져줄 뿐이다. UX 없는 AX는 업무를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사용자가 검토해야 할 ‘또 하나의 시스템’이 된다.
AI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사용자의 과업과 실패 지점이 명확히 설계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AX는 디지털 전환의 해결책이 아니라 디지털 갑질의 증폭기가 될 뿐이다.
시스템의 무능을 사용자에게 묻지 마라
나쁜 UX의 가장 잔인한 점은 사용자가 스스로를 탓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가 반복해서 실패한다면 그것은 사용자의 능력이 아니라 시스템의 설계 문제다. 좋은 UX는 사용자를 유능하게 느끼게 하고, 저렴한 UX는 사용자를 무능하게 만든다. 실제로 무능한 것은 사용자가 아니라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오늘날의 사용자는 이미 ‘좋은 경험’을 알고 있다. 송금은 몇 초 만에 끝나고 배송은 다음 날 도착하는 일상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은, 더 이상 구시대적인 복잡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번 좋은 경험을 한 사용자는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경험의 불가역성이 바로 이것이다.
저렴한 UX는 사용자 문제로 시작하지만, 결국 고객센터의 비용 증가, 매출 감소, 생산성 하락이라는 경영 문제로 끝난다. 저렴한 UX는 싸게 만든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가치와 노동을 싸게 취급한 결과다.
다음 글에선 이 문제가 왜 반복되는지 살펴보려 한다. UX를 저렴하게 생각하는 의사결정 구조가 어떻게 조직 전체의 비효율과 AX의 실패로 이어지는지 그 이면의 이야기를 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