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이 가장 많이 본 디자인 뉴스
디자인인사이트
인스타 아이콘 인쇄 아이콘

(인터뷰) 정답을 찾기 전에, 질문이 맞는지 물어야 합니다 - 산업단지정책해커톤, 서비스디자이너 김동호

정답을 찾기 전에, 질문이 맞는지 물어야 합니다

산업단지정책해커톤, 서비스디자이너 김동호 인터뷰

이 연재에는 저마다 다른 위치에서 산업단지를 바라본 사람들이 등장한다. 산단 옆에 살면서도 밤에는 가지 못했던 주민, 정책을 만드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받는 자리에 앉아본 공무원, 산단을 직업으로 관리하는 전문가. 김동호 대표는 이 연재에서 서비스디자이너로 참여한 퍼실리테이터다.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 수상 이력이 말해주듯, 공공서비스디자인 현장을 오래 걸어온 사람이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예상하지 못했던 표현을 했다.
"막연한 설레임, 막연한 두려움..." 노련한 그는 무엇이 두려웠던걸까?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이란

2026년 4월 17일부터 18일까지, 충남 예산 스플라스 리솜에서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이 열렸다. 산업통상부가 주최하고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한국디자인진흥원이 공동 주관한 이 행사에는 창원·완주·구미 산단의 청년 근로자 60여 명과 지역 주민, 공무원, 전문가 등 약 100명이 모였다. 완주 산단의 한 청년 근로자가 산업통상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꺼냈고, 그 제안에 공감한 장관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총 10개 팀에 산단 근로자, 지역 주민, 산업통상부 사무관이 함께 팀원으로 참여했고, 팀마다 전문 서비스디자이너인 퍼실리테이터와 비주얼라이터가 배정됐다. 김동호 대표는 10팀 '잘산단말이야'의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했다.

잘산단말이야 팀의 '기술교환 플랫폼' — AI 시대, 불안을 성장으로 바꾸다

잘산단말이야 팀이 출발한 곳은 한 청년 근로자의 이야기였다. 지방 산업단지에서 5년을 일해온 29세 생산직 근로자 김정관 씨. 사장님은 "AI를 좀 알아봐라"고 지시하지만, 현장에는 무엇을 어디서 배워야 할 지에 대한 길이 없다. 팀은 문제의 핵심이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연결의 부재'라고 진단했다. 해법은 기술교환 플랫폼이었다. 지역 대학·연구소가 콘텐츠를 제공하고, 중소·중견기업이 현장 데이터와 문제를 올리고, 산업부·진흥원·산단공이 행정과 예산을 뒷받침하는 삼각 협력 구조. 청년 근로자는 현장 맞춤형 AI 기술을 배우고 적용하며 '문제 해결형 인재'로 성장한다. 프로젝트명은 '공장장님, 그 AI를 써보세요'. 잘산단말이야 팀은 장려상,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상을 받았다. 이 팀의 논의를 이끈 퍼실리테이터가 김동호 대표였다.

인터뷰 — 김동호가 말하는 올바른 질문을 찾는 과정

김동호 대표 프로필 사진

김동호 디자인내일 대표
제품디자인기술사 · 부경대학교 외래교수

막연한 설레임, 막연한 두려움

"처음 이 해커톤에 참여한다고 들으셨을 때, 솔직히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서비스디자이너(퍼실리테이터)로 처음 참여를 제안받았을 때는 설레는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평소 문화산단 청년리빙랩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산업단지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꼈던 아쉬움들을 이번 기회에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커톤 일정이 다가오고 사전 미팅을 거치면서 솔직히 막연한 두려움도 커졌습니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처음 만나는 참여자들로부터 과연 유의미한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라는 해커톤 방식에 대한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해커톤이라는 압축적이고 다소 생소한 방식에 대비하기 위해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활용 가능한 툴들을 점검하고 산업단지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들을 리뷰하며 저만의 준비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려움은 그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준비할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산단, 더 깊이 발견한 문제

그는 이전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들을 통해 산단을 이미 알고 있었다.

"행사 전에는 산업단지를 어떤 곳으로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행사 이전에 산업단지 관련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과연 과거 국가 발전의 심장이었던 산업단지가 앞으로도 그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바라본 산업단지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컸습니다. 중심 산업인 제조업의 불황으로 발전 가능성은 저하되었고 청년들이 기피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로 간신히 채워지는 만성적인 구인난, 기술 인프라 중심으로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필요한 인력이 줄어들면서 식당이나 상점 같은 필수 지원 시설들마저 연쇄적으로 폐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편의시설이 없으니 사람은 더 오지 않는 인프라 쇠퇴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조심스럽고 민감한 내용이지만 본래의 기업(제조)활동보다는 보유한 부동산이나 공장 임대 수익으로 유지되는 일부 기업들을 확인하면서 전반적으로 활력을 잃어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해커톤에서 그는 그 위에 숨겨져 있던 한 층을 더 발견했다.

"'이건 진짜 산업단지 현장의 문제다'라고 느끼신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뼈아픈 진짜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체념이라는 것을 느낀 순간입니다. 해커톤 과정에서 참여자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화 밑바탕에는 이곳은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는 짙은 무력감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산업단지 내부에서 일하고 관계 맺는 분들조차 스스로의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데 밖에서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선은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인프라가 낙후된 것보다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활기와 희망을 잃어가는 것이 산업단지가 직면한 진짜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안에서 분명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문화선도산단 청년디자인리빙랩'에 참여했던 분들이 보여준 긍정적인 에너지였습니다. 정체된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작은 것이라도 직접 바꿔보려 노력했던 그분들의 이야기에는 산업단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느낀 점은 결국 굳어버린 공간을 다시 뛰게 만드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거창한 인프라를 새로 짓는 것만큼이나 근로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변화를 경험해 보는 청년디자인리빙랩과 같은 사업이 현장에 꼭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무너진 기대감을 회복하고 '우리도 바뀔 수 있다'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 그것이 산업단지 변화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박 2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장 곳곳에서 빛나던 FT, VW분들이었습니다. 각 팀에서 서비스디자이너(퍼실리테이터)들이 참여자들의 숨겨진 생각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 그리고 쏟아지는 이야기들을 비주얼라이터들이 실시간으로 훌륭하게 시각화 해 나가는 모습을 중간중간 지켜볼 때 각자의 접근 방식은 다를지라도 현장을 가득 채우는 그분들의 뜨거운 열정과 진정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제게는 가장 뭉클하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의견에서 정책 제안으로 — M.AX와의 만남

초반의 아이디어는 달랐다.

"해커톤 하면서 처음에 들었던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활동 중에 바뀐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이고, 왜 바뀌게 되었나요?"

"초기 아이디어들이 '단편적인 자기계발 지원'에서 'AI 전환기 생존에 대한 근원적 불안 해소'로 깊어진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저희 팀이 다루었던 주제는 '자기계발' 영역이었습니다. 초반에는 교육장을 새로 만들거나 찾아가는 동아리를 지원하는 등, 주로 단순한 교육이나 교류 기회를 제공하는 단편적인 해결책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개선을 넘어 '현재 산단 근로자들이 마음속 깊이 안고 있는 진짜 결핍과 두려움은 무엇일까?'라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찾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보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였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아이디어 발산 중 '기술교환소'라는 키워드가 나왔을 때였습니다. 산업부 사무관님께서는 현재 부처의 핵심 아젠다인 '기술 전환 M.AX(Manufacturing AI Transformation)'에 대해 언급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정책적 흐름을 접한 후 고민의 차원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단순히 여가나 취미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현실로 성큼 다가온 AI 시대에 과연 내 일자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근로자들의 뼈아프고 현실적인 공포와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아이디어의 방향성을 재설정했습니다.
지금 당장 근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기술 전환의 파도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인 가이드라인과 안전망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AI라는 주제를 다루다 보니 아이디어의 기술적 검토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AI가 현장을 빠르게 뒤바꾸고 있는 지금 근로자들이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을 덮어두기보다 수면 위로 끌어올려 정면으로 다루어 보는 것이 그 어떤 단편적인 정책보다도 시급하고 절실한 시점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팀의 아이디어가 '의견'에서 '정책 제안'으로 바뀐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단순한 의견이 묵직한 '정책 제안'으로 탈바꿈한 결정적 순간은 우리의 고민이 '국가적 아젠다'와 맞물리며 근로자의 생존 문제로 직결되었을 때입니다. '기술교환소'라는 키워드에 산업부 사무관님이 핵심 정책인 '기술 전환 M.AX'를 연결해 주신 것이 가장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정책적 흐름을 마주한 순간 산단 근로자들의 진짜 결핍은 당장의 문화생활이 아니라 '다가오는 AI 시대에 내 일자리는 무사할까?'라는 현실적인 생존 공포라는 점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점부터 저희는 '무엇을 더 해줄까'라는 단편적 접근 대신 거대한 기술 전환의 파도 속에서 근로자들의 연착륙을 돕는 '실질적 가이드라인과 제도적 안전망 구축'으로 아이디어를 재설정했습니다. 물론 AI라는 방대한 주제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로자들을 짓누르는 막연한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국가 정책 방향과 연결한 것은 단순한 아이디어를 지금 산단에 가장 절실한 '진짜 정책 제안'으로 만든 핵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팀이 처음에는 놓치고 있었지만, 후반에 발견한 진짜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나요?"

"단편적인 자기계발 기회가 부족하다는 '표면적인 현상' 너머에 '기술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생존의 위협'이라는 진짜 본질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초기에는 단순히 산단 내에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대화가 숙성되고 질문이 깊어질수록 청년 근로자들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는 다가오는 AI 시대에 '내 일자리가 결국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존과 직결된 근원적인 공포가 웅크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당장의 취미나 여가 생활을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시급한 것은 이 거대한 기술 전환의 파도 속에서 청년들이 도태되지 않도록 막연한 불안감을 걷어내고 커리어적 생존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복지를 넘어 그들의 내일을 지켜주는 것이 우리가 보아야 할 진짜 핵심 문제였습니다."

퍼실리테이터의 일

"처음 팀을 만나셨을 때 가장 어려워 보였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처음에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서로 다른 배경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벽이었습니다. 다양한 분들이 모인 만큼 자칫하면 각자의 명함과 타이틀에 얽매여 자유로운 소통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온전히 평등한 테이블에서 누구나 자신의 날 것 그대로의 생각을 편안하게 꺼내 놓을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크고 어려운 산이었습니다. 이 장벽을 허물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행사 전 저희 팀 비쥬얼라이터 김혜진 선생님과 함께 준비했던 친근한 역할 부여였습니다. 참여자분들에게 반장, 오락부장, 기록부장 같은 재미있는 역할을 하나씩 나누어 드렸습니다. 덕분에 딱딱한 위계를 자연스럽게 없애고 모두가 다 함께 최대한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해커톤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끄는 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 자신도 좀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무엇보다 해커톤 전 과정에서 김혜진 선생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든든한 조력이 뒷받침되었기에 초반의 긍정적인 흐름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참여자들이 진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막연했던 산업단지의 문제를 '나의 일상'과 연결 지어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앞서 역할 부여 등을 통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한 뒤 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에 따라 거창한 정책이 아닌 참여자 본인의 일상 이야기부터 먼저 꺼내도록 유도했습니다. 나의 일과, 나의 고민 등 일상적인 대화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산업단지에 대한 생각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지금 산업단지가 겪고 있는 침체와 불안이 단순히 특정 지역이나 공장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전체가 직면한 저성장과 인구 감소 등 사회 구조적 문제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에 대한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결국 이 문제가 나의 삶, 나의 미래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이때 퍼실리테이터(서비스디자이너)로서 제가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바로 질문의 타이밍과 확장이었습니다. 참여자들의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대화 속에서 나오는 수많은 의견 중 어떤 포인트를 짚어내어 한 단계 더 깊은 질문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집중했습니다. 그 적절한 질문들이 마중물이 되어 비로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진짜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질문이나 활동이 참여자들의 생각을 가장 크게 움직였다고 보십니까?"

"단 하나의 극적인 질문이나 특정 활동보다는 자연스럽게 쌓아 올린 대화의 흐름과 적재적소의 꼬리 질문이 참여자들의 생각을 가장 크게 움직였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드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참여자들은 각자의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을 자유롭게 쏟아냈습니다.
이때 퍼실리테이터로서 가장 집중했던 것은 그 파편화된 이야기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맥락에 맞춰 적절한 꼬리 질문을 유연하게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정해진 하나의 정형화된 활동이 사람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쏟아지는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의미 있는 키워드를 재빨리 포착해 내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다듬어 다음 논의로 연결해 나갈 것인가. 저는 이처럼 현장의 흐름을 읽고 생각을 확장해 주는 것이야말로 이번 해커톤의 핵심이자 서비스디자이너(퍼실리테이터)의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퍼실리테이터가 개입하지 않고 기다려야 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질문의 의도와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저는 오히려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철저하게 동행하며 필요한 순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퍼실리테이터(서비스디자이너)가 본인의 개인적인 아이디어나 의견을 직접적으로 피드백하는 것은 참여자들의 주도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서비스디자이너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전 과정을 치열하게 함께 호흡하는 러닝메이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 발산이 정체되어 침묵이 길어지거나, 특히 논의가 단순한 불만 토로나 체념 같은 '부정적인 흐름'으로 빠지려 할 때는 마냥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럴 때는 그러한 부정적인 기류를 철저히 차단하고 분위기를 환기해 논의를 다시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 퍼실리테이터(서비스디자이너)가 단호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맞다고 확신합니다."

정답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찾는 것

"서비스디자인 방식이 일반 회의나 일반적인 워크숍과 다르게 느껴진 지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큰 차이는 '속도'와 '방향'의 우선순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회의나 워크숍은 '주어진 문제를 얼마나 빨리,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눈에 보이는 현상만 쫓아가며 '주차장이 부족하니 주차장을 짓자'는 식의 1차원적인 답을 내리기 쉽죠. 반면 서비스디자인 방식은 성급하게 답을 내리려는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춥니다. 대신 '우리가 지금 풀려고 하는 이 문제가 진짜 맞는가?' 하고 방향을 점검하는 데 훨씬 많은 공을 들입니다.
해커톤 초기 단계에서 퍼실리테이터(서비스디자이너) 역할로 참여한 제가 가장 애썼던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불만 너머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진짜 결핍을 찾아내어 우리가 풀어야 할 질문 자체를 재정의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겪어보며 느끼는 것은 잘못된 문제를 아무리 열심히 창의적으로 풀어봤자 결국 예산과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아! 겉으로는 이게 문제인 줄 알았는데 파보니 진짜 뿌리는 저거였구나' 하고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나면 신기하게도 복잡해 보이던 해결책은 오히려 아주 자연스럽고 명쾌하게 따라옵니다. 정답을 쥐어짜내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질문에 답해야 하는지 올바른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단편적인 회의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서비스디자인만의 가장 강력하고 깊이 있는 차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공감하신 아이디어는 무엇이었고, 왜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가장 크게 공감하고 인상 깊었던 것은 '케더산 팀'이 보여준 문제 정의 방식이었습니다. 앞서 제가 산업단지가 직면한 가장 뼈아픈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굳어버린 부정적인 인식'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케더산 팀은 정확히 이 핵심적인 지점을 파고들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시설의 부족함이나 눈에 보이는 불편함을 논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산업단지를 둘러싼 인식을 '내부(실제 근로자들의 체념)'와 '외부(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로 나누어 매우 입체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재 산업단지가 잃어버린 정체성은 무엇인지 이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를 아주 깊이 있게 탐색하며 문제의 본질을 정의해 나갔습니다.
표면적인 문제 해결에 매몰되지 않고 산단을 둘러싼 인식의 구조와 공간의 본질적인 의미부터 다시 세우려 했던 그들의 접근 방식이 서비스디자인의 철학과 가장 잘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고 서비스디자이너로서 가장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훌륭한 과정이었습니다."

"반대로 '아이디어는 좋지만 실행은 어렵겠다'고 느끼신 아이디어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역설적이게도 저희 팀이 내놓았던 아이디어가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는 다가오는 AI 시대에 산단 근로자들이 느끼는 근본적인 불안을 덜어주자는 아주 중요한 방향성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산업 현장에서 AI나 첨단 기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고 적용되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도는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 해결에 대한 의욕이 앞서서 다소 섣부르게 아이디어의 형태를 그려낸 것은 아닌지 실제 현장에 적용하려면 현실의 벽에 크게 부딪히겠다는 걱정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아쉬움이 오히려 서비스디자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디자인 방법론 하나만으로는 복잡한 현장의 문제를 온전히 풀 수 없고 반드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좋은 예가 지난해 경인지방통계청과 함께 했던 안산시 반월국가산단 주차 문제 개선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저희는 현장에 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관찰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단순히 주차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대중교통이 너무 열악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차를 끌고 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진짜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통계 전문가들의 힘이 더해졌습니다. 저희가 찾아낸 진짜 문제에 그분들이 정확한 데이터와 수요 분석을 덧입혀 주신 덕분에 단순히 '주차장을 더 짓자'가 아니라 '대중교통과 이동 환경을 이렇게 개선하자'는 훨씬 현실적이고 타당성 있는 해결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아이디어는 좋은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한계를 넘어서려면 숨어 있는 진짜 문제를 찾아내는 서비스디자인에 기술과 데이터를 다루는 전문가들의 단단한 팩트가 결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에서 진짜 작동하는 완성도 높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해커톤을 통해 다시 한번 깊이 느꼈습니다."

정책 변화와 보완 과제

"이 해커톤 이후 산업단지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특정한 단일 정책 하나를 바꾸기보다는 우선 눈에 보이는 '시설을 채우는 정책'에서 '사람의 마음과 미래를 지켜주는 정책'으로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의 산업단지 정책은 주로 도로를 넓히고, 주차장을 확충하고, 건물을 깔끔하게 리모델링하는 등 눈에 보이는 물리적 환경을 고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해커톤을 통해 깊이 들여다보았듯 지금 산단에 있는 청년 근로자들을 정작 힘들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인프라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밀려오는 AI 기술 전환의 파도 속에서 '내 일자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회색빛 공간에서 5년, 10년 뒤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까?' 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무력감이 더 뼈아픈 본질적인 문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공장 외관을 예쁘게 꾸미고 단편적인 복지 시설을 지어준들 떠나려는 청년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정책이 근로자들의 삶 속으로 한 발짝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거대한 기술 변화 속에서도 도태되지 않도록 심리적, 제도적 안전망을 촘촘히 짜주고 산업단지라는 공간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버티는 곳이 아니라 나의 커리어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곳이라는 확신을 주는 경험을 설계해 주어야 합니다. 결국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변화를 완성하는 것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기계와 공장이 잘 돌아가게 만드는 하드웨어 중심의 정책을 넘어 그 기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미래와 성장을 케어해 주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정책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 그것이 이번 해커톤 이후 산업단지 정책이 마주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도 본질적인 변화라고 확신합니다."

"현장 기반 정책 해커톤을 다시 진행한다면 꼭 보완했으면 하는 점들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가장 보완하고 싶은 점은 현장의 숨결을 미리 흡수할 수 있는 '사전 탐색 과정의 강화'입니다. 1박 2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은 서로의 생각을 밀도 있게 모으고 구조화하기에는 아주 훌륭한 포맷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까지 정의해 내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입니다. 따라서 다음 해커톤에서는 본 행사 전에 참가자들이 실제 산단 근로자들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가 담긴 리서치 데이터(심층 인터뷰, 현장 V-log 등)를 미리 제공 받고 충분히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합니다. 책상 위에서 상상하는 현장의 모습과 실제 현장의 온도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간극을 사전에 좁혀놓고 출발선에 선다면 현장에서 헤매는 시간을 줄이고 훨씬 더 뾰족하고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서비스디자이너는 AI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역설적이게도 이번 해커톤에서 저희 팀이 겪은 아쉬움이 그 질문에 대한 가장 명확한 대답이 될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서비스디자이너에게는 '넓고 얕은 지식을 습득하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전문가와의 원활한 협업을 위한 소통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서비스디자이너는 프로젝트마다 의료, 환경, 첨단 기술 등 전혀 다른 낯선 주제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AI 개발자 수준의 깊은 전문성을 모두 갖출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파악할 수 있는 넓고 얕은 지식을 갖추기 위한 공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국 서비스디자이너가 다방면의 지식을 공부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스스로 완벽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어떤 주제를 만나든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그들의 전문성을 현장의 진짜 문제를 푸는 뾰족한 도구로 연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서비스디자인에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단단한 팩트가 결합될 때 비로소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에서 진짜 작동하는 완성도 높은 정책이 탄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며 — 서비스디자이너는 러닝메이트다

오랜 현장 경험을 가진 그가 자기 팀 아이디어를 가장 실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서비스디자인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정답을 쥐어짜내는 기술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은 서비스디자인 혼자 완성할 수 없고 기술과 데이터를 가진 전문가들과 함께해야 한다. 지켜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전 과정을 함께 호흡하는 러닝메이트.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출 수 있으려면, 갈등을 견디는 힘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가 두려움을 안고도 해커톤에 임했던 것은, 아마 그 힘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련 자료

정리 :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안전디자인실

#산업단지정책해커톤 #청년디자인리빙랩 #서비스디자인 #산업통상부 #산업단지공단 #한국디자인진흥원


목록 버튼 이전 버튼 다음 버튼
최초 3개의 게시물은 임시로 내용 조회가 가능하며, 이후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임시조회 게시글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