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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서워서 잘 안 가던 곳에서, 살고 싶은 곳을 상상했습니다 - 산업단지정책해커톤 참가자 강선미 인터뷰

무서워서 잘 안 가던 곳에서, 살고 싶은 곳을 상상했습니다

산업단지정책해커톤 참가자 강선미 인터뷰

밤이 되면 산업단지는 텅 빈다. 공장은 24시간 돌아가지만, 사람은 사라진다. 조명은 부족하고 골목은 어둡다. 강선미 팀장은 그런 산단이 무서워 밤에는 잘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 그녀가 2026년 4월,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 테이블에 앉았다. 전문가도, 공무원도, 디자이너도 아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1박 2일이 지났다. 저질 체력이 걱정됐던 그녀는 새벽까지 남았고, 발표 당일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어둡고 무서운 그 산단을, 사람들이 걷고 싶은 은하수 길로 바꾸자고 말했다. 무서워서 잘 안 가던 곳에서, 살고 싶은 곳을 상상하게 된 1박 2일. 강선미를 만났다.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과의 만남

2026년 4월 17일부터 18일, 충남 예산 스플라스 리솜에서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이 열렸다. 산업통상부가 주최하고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한국디자인진흥원이 공동 주관한 이 행사에는 창원·완주·구미 산단의 청년 근로자 60여 명과 지역 주민, 공무원, 전문가 등 약 100명이 모였다. 완주 산단의 한 청년 근로자가 산업통상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꺼냈고, 그 제안에 공감한 장관이 이번 행사를 계획했다. 매일 산단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찾자는 취지였다. 총 10개 팀에 산단 근로자, 지역 주민, 산업통상부 사무관까지 함께 팀원으로 참여했고, 팀마다 전문 서비스디자이너인 퍼실리테이터와 비주얼라이터가 배정됐다. 현장의 소리 속에서 진짜 문제를 공감하고,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했다. 강선미 팀장은 완주 지역 이해관계자로 참여했다. 그녀가 속한 팀은 8팀, 씨-브릿지(C-bridge)였다.

씨-브릿지의 '은하수 로드' —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다리

씨-브릿지 팀원들이 주목한 것도 강선미 팀장이 느껴온 바로 그 어둠이었다.

"365일 24시간 공장은 돌아가지만 그 주변은 빛이 없는 밤거리가 됩니다. 부족한 조명, 끊긴 대중교통, 삭막한 보행 환경은 근로자들에게 단순한 불편을 넘어 불안을 줍니다."

팀은 두 사람의 페르소나를 설정했다. 늦은 밤 퇴근길 어두운 골목이 무서운 20대 여성 근로자 김미소 씨. 야간 근로 후 운동하고 싶지만 마땅한 공간이 없는 30대 남성 근로자 이영웅 씨.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안심하고 집에 갈 수 있는 길, 그리고 퇴근 후 활기찬 일상이었다.

해법은 세 가지였다. 첫째, 공유형 안심 버스. 공공기관의 유휴 차량을 심야 셔틀로 활용해 귀갓길의 불안을 해소한다. 기관은 ESG 실적을 얻고, 근로자는 안전한 귀가를 얻는 상생 모델이다. 둘째, 은하수 로드. 보행자의 압력을 전기로 변환하는 자가 발전 보도블록과 낮에 빛을 모았다가 밤에 내뿜는 축광 페인트로 걸을 때마다 발밑이 은하수처럼 밝아지는 길을 만든다. 셋째, 스마트 런닝 인프라. 산단 특유의 직선형 격자 구조를 활용한 런닝 코스를 조성해 야간에도 운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든다. 팀이 전하려 한 메시지는 하나였다. 24시간 가동되는 산업단지의 밤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닌 새로운 기회여야 한다. 이 아이디어를 발표한 사람이 강선미였다.

인터뷰, 강선미가 말하는 머무는 산단의 꿈

강선미 팀장 프로필 사진

강선미
완주군마을공동체 중간지원조직 운영지원팀장 · 전 전주MBC 작가

설렘 반, 걱정 반 — 저질 체력이 걱정됐어요

방송 작가로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던 그녀가, 이번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됐다. 처음엔 설레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처음 이 해커톤에 참여한다고 들으셨을 때, 솔직히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설렘 반, 걱정 반 이었어요. 창원, 구미에서 오시는 새로운 분들과의 만남은 설레였고, 해커톤이라는 것 자체가 끊임없이 의견을 제시하는 비교적 빡신(?) 시스템이기 때문에 잘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더라고요. 워낙 저질 체력이라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나의 의견이 하나의 정책이 되고 산단이 변화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컸어요!"

글쎄, 저질 체력을 걱정했던 그녀는 결국 새벽까지 남았다.

무서워서 잘 안 가게 되는 곳이었어요

"행사 전에는 산업단지를 어떤 곳으로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산업단지는 그저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의 '일 하는 곳', '일 하고 떠나는 곳'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실제로 밤 시간 산단에서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거든요. 무서워서 잘 안가게 되죠."

산단 옆에 살면서도 산단을 몰랐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퇴근 후 무엇을 바라는지. 테이블에 앉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이건 진짜 산업단지 현장의 문제다'라고 느끼셨던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난 저녁의 산단이요. 워낙 어둡고 인적도 드물어서 산단 인근을 지날 때면 무서운 적도 있거든요."

그 어둠은 방치가 아니었다. 한국의 산업단지는 처음부터 사람이 머무는 공간으로 설계되지 않았다. 산단은 1960년대 수출 주도 성장 논리 속에서 생산의 효율을 위해 만들어졌고, 일과 후의 삶은 설계도 바깥에 있었다. 빈 골목과 켜지지 않는 가로등은 그 설계의 결과였다. 강선미가 밤마다 느낀 두려움은 그녀만의감각이 아니라 60년짜리 정책이 남긴 공백이었다.

발표의 순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24시간 공장은 돌아가지만 그 주변은 빛이 없는 밤거리가 됩니다."

생각 하나가 달라졌습니다 —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해커톤 하면서 처음에 들었던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활동 중에 바뀐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이고, 왜 바뀌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산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 그저 '무서움' 이었다면, 해커톤 이후 산단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는 분의 의견을 듣고 나서부터는 '아~ 외국인 노동자들도 한 집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아빠이며 타지에 와서 고생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밤의 산단이 무섭다고 생각했고, 산단의 외국인 노동자가 무섭다고 생각했다.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무서움이 하나씩 이해로 바뀌었다. 모르는 것이 무서움이었고, 아는 것이 공감이었다.

다른 팀 눈을 피해 몰래몰래 총총 뛰어갔죠

"1박 2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무래도 마지막 순서인 발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조의 멋진 아이디어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또박또박 스피치를 거듭 연습했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했더랬죠^^ 아! 그 전에 다른 팀의 눈을 피해서 몰래 몰래 총총 뛰어가 퍼실리테이터 교수님 룸에서 새벽까지 PT준비를 했던 게 기억에 남네요."

다른 팀 눈을 피해 몰래몰래 총총 뛰어다니던 그 새벽이 그녀에게는 '머무는 산단'의 첫 경험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게 선정이 안 됐어요 — 솔직한 아쉬움

"가장 공감하신 아이디어는 무엇이었고, 왜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저는 사실 저희 8팀 씨-브릿지 의견이 가장 공감이 되었는데, 선정되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어요.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에 집중했고, 적은 예산으로도 변화가 클 것 같았거든요. 어두 컴컴한 산단에 런닝을 할 수 있는 노선이 생기면 울퉁불퉁한 길도 개선이 되고, 러너들이 산단 보안관이 되어 안전하고 생기 넘치는 산단의 모습이 그려졌거든요."

그녀는 팀에서 냈던 아이디어 중 당장 실행해보면 좋을 것을 꼽았다.

“러너들이 신나게 산단을 뛰어볼 수 있는 행사요! 마라톤 행사도 좋고요~ 산단의 울퉁불퉁한 길을 개선하고, 코스만 어느 정도 만들어지면 주말에 휑해진 산단에서 마라톤 행사도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선정작들은 현실적인 아이디어 보다는 이상적인 아이디어가 선정 되었더라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현실적인 내용을 배제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텐데…^^"

"저희가 제안한 것, 그리고 다른 조들이 제안한 것들이 합쳐진다면 완성형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서비스디자인이 사람을 머물게 했습니다

"서비스디자인 방식이 일반 회의나 일반적인 워크숍과 다르게 느껴진 지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사실 이번 해커톤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에요. 일반적인 회의는 지루한 분위기 때문인 지 아이디어를 쉽게 내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컸거든요. 그런데 서비스디자인 방식은 일단 분위기 자체가 편안했고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고 응원해주는 느낌이라 부담 없이 참여하게 되더라고요.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빠른 시간에 친해지고 똘똘 뭉치게 만드는… 그래서 원팀이 되어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매력적인 방식인 것 같아요!"

빨리 끝났으면 했던 사람이 이번엔 누구보다 늦게까지 남았다.

실행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이 해커톤 이후 산업단지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완주에서는 이미 진행이 되고 있지만, 머무는 산단이요! 일만 하고 집으로 떠나버려서 휑하고, 차갑고, 무서운 산단이 아니라 언제든 활기찬 분위기가 감도는 사람이 머무는 산단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자리가 일회성 이벤트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결국 실행이겠죠. 그러자면 중앙부처와 각 시군 담당자, 그리고 산단 책임자 분들이 움직여야 되겠죠. 해커톤을 통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도 실행이 안된다면 그건 무용지물 일테니까요.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의 정책이 되고, 산단이 변화된다면 이런 자리가 매 회 계속될 것 같아요!"

“모든 정책이 그런 것 같아요. 각 부처 간의 칸막이가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TFT를 꾸려서라도 누구의 실적이 아닌 하나의 결과를 위해 똘똘 뭉쳐서 진행하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마치며 — 머문 사람이 꿈꾸는 산단

그녀는 밤의 산단이 무서웠다. 산단 옆에 살면서도 잘 안 가게 되는 곳이었다. 그런 그녀가 1박 2일을 산단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낯선 사람들과 하나가 됐고 은하수 길을 이야기했다. 저질 체력을 걱정했던 사람이, 몰래몰래 총총 뛰어다니며 발표를 준비했다. 그 시간은 그녀에게 사람이 머무는 산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씨-브릿지의 은하수 로드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안심 버스도 아직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상상은 새벽까지 준비한 발표 자료 위에, 무서웠던 곳에서 살고 싶은 곳을 꿈꿔봤던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60년 동안 설계도 바깥에 있던 것들 — 퇴근 후의 시간, 골목의 불빛, 머무는 사람들 — 이 이제 정책의 언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서웠던 곳에서, 살고 싶은 곳을 상상해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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