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위치에서, 다른 풍경을 보다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 김일호 산업통상부 사무관 인터뷰
공무원은 대개 행사를 기획하고, 설명하고, 점검한다. 때로는 심사하고, 승인하고, 결과를 보고받는다. 이번에는 달랐다. 2026년 4월 열린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에서는 산업통상부 사무관급 공무원 10명이 각 팀의 참가자로 들어갔다. 산단 근로자와 지역 주민, 서비스디자이너, 비주얼라이터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1박 2일 동안 문제를 듣고, 아이디어를 내고, 발표안을 함께 만들었다. 이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장면이다. 중앙부처 사무관 10명이 주말을 포함한 1박 2일 행사에 '운영자'나 '참관자'가 아니라 '팀원'으로 참여하는 일은 흔치 않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부가 이번 해커톤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산업단지 정책을 현장의 언어에서 다시 살펴보는 실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김일호 산업통상부 사무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앞선 인터뷰의 주인공 김민채 비주얼라이터와 같은 '케더산(K더하기산단)' 팀에서 활동했다. 케더산 팀은 산업단지 근로자의 자부심 회복과 지역사회와의 관계 개선을 핵심 문제로 삼고, 산단과 주민이 서로 호감을 회복해가는 '썸단'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김민채의 인터뷰가 흩어진 말들이 어떻게 하나의 그림과 구조로 정리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인터뷰는 같은 테이블에 있던 정책 담당자가 그 과정을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해커톤 전까지 산업단지 정책을 다루는 공무원으로서 산단의 유형과 제도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일상을 겪고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로자와 주민의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같은 문제를 붙잡아보자 풍경은 달라졌다. 정책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정책의 동료가 되었고, 숫자와 사업명 뒤에 가려져 있던 생활의 문제들이 선명해졌다.
김일호 사무관을 만나, 새로운 위치에서 보게 된 산업단지의 다른 풍경을 들었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이 되는 자리 —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
2026년 4월 17일부터 18일까지, 충남 예산 스플라스 리솜에서 '산업단지 정책 해커톤'이 열렸다. 산업통상부가 주최하고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한국디자인진흥원이 공동 주관한 이 행사에는 창원·완주·구미 산업단지의 청년 근로자와 지역 주민, 공무원,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총 10개 팀이 구성되었고, 각 팀에는 산단 근로자와 주민, 산업통상부 공무원, 서비스디자이너인 퍼실리테이터, 토론 내용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하는 비주얼라이터가 함께 배치됐다. 케더산 팀이 주목한 문제는 '자부심'이었다. 대한민국 제조업의 중심축인 산업단지가 정작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랑스럽게 말하기 어려운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팀은 산단 근로자가 스스로 자신의 일터에 자부심을 느끼고, 인근 주민도 산단을 친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3단계 아이디어 '썸단'을 제안했다. 오해를 풀고, 기여를 인정하고, 함께 즐기는 과정을 통해 산업단지와 지역사회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제안이었다. 김일호 사무관은 이 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처음에는 근로자들이 주말 행사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 걱정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예상이 처음부터 깨졌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일호 사무관이 말하는, 새로운 위치에서 본 산업단지

김일호 산업통상부 입지총괄과 사무관
참가자들이 정말 적극적으로 참여할까 걱정했습니다
"처음 이 해커톤에 참여한다고 들으셨을 때, 솔직히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많은 근로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의견을 개진할지 의문이었습니다. 특히 행사일이 주말이어서 귀찮게 개인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하실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책은 알았지만, 그 안의 사람은 잘 몰랐습니다.
"행사 전에는 산업단지를 어떤 곳으로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지역과 유형에 따라 다양한 산업단지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몰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예상은 초반부터 깨졌습니다
"1박 2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무엇이었습니까?"
"많은 순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처음 아이스브레이킹 때부터 아이디어 모집하고 개발하는 매 순간, 팀원들이 정말 열심히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한 명이 아이디어를 내면 옆에서 바로 AI로 그것을 형상화하고, 심지어 3D 시뮬레이션으로 영상을 만드는 걸 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감탄하곤 했습니다."
지방을 떠나고 싶어 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정책 담당자로서 가장 예상과 달랐던 현장의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근로자 분들이 요즘 기업상황이 어렵고, 특히 지방은 더하다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가고싶어 할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할 수만 있다면 지방에 머물기 원한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산단 근로자도 한 명의 주민입니다
"'이건 진짜 산업단지 현장의 문제다'라고 느끼신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정부나 지자체가 오래전부터 산단 환경개선을 위해 많은 사업을 했는데 모르고 있는 근로자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문화, 체육, 편의시설이 너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근로자도 한명의 주민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여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거시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해커톤 하면서 처음에 들었던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활동 중에 바뀐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이고 왜 바뀌게 되었나요?"
"앞의 답변과 연결되는 부분인데, 아무래도 정책 관련자이다보니 처음에는 너무 거시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산단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지 현실과 동떨어진 고민만 했는데,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크게 예산이 들거나 법을 고치지 않아도 생각만 다른 방향에서 해보면 해답이 보이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도와드리러 왔다가, 오히려 더 많이 배웠습니다
"정책 담당자로서 현장 참여자들과 함께 토론하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입주한 기업이나 근로자들에게 어떻게 지원해 줘야 하나 이런 측면에서 단순히 상상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이분들이 정책 입안자들은 생각도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셨어요. 또 그걸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구체적인 방안까지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처음엔 도와드리러 갔었는데, 제가 오히려 더 많이 배워 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책상 위 자료로는 보이지 않았던 산업단지 문제가 있었습니까?"
"사람의 감정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산단내 반려동물 돌보미 서비스는 평범한 공무원이 정말 착안하기 힘든 아이디어입니다. 때로는 전체의 효율보다 사소한 도움이 중요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썸단'은 여전히 최고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공감하신 아이디어는 무엇이었고, 왜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저는 아직도 우리팀이 제안한 "썸단"이 최고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근로자는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인근 주민은 산단을 친화적으로 느끼게 한다는 발상은 정말 이상적이었습니다. 다른 팀 아이디어 중에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반려동물 돌보미 서비스였습니다. 이건 저같은 공무원은 절대 생각하지 못 할 아이디어였습니다. 수요기반의 정책을 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업단지 명문가는 올해 바로 추진해보고 싶었습니다
"참여자들이 낸 아이디어 중 실제 정책 검토 대상으로 가져갈 만하다고 느끼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거의 모든 아이디어들이 현실적이고 우수해서 모두 정책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에서 산업단지 명문가를 선정해서 영예를 높여주자는 아이디어는 올해 산업단지의 날 행사에 바로 추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감되지만, 실행은 쉽지 않은 아이디어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아이디어는 좋지만 실행은 어렵겠다"고 느끼신 아이디어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일과중에 시간을 낼 수 없는 근로자를 위한 출장 행정서비스가 정말 공감이 가면서도 실제 실행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안의 문제도 있고, 무인과 유인서비스 중 어느 것이 현실적인지에 판단도 기관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공공행정보다 은행이나 보험같은 사적 서비스 구축이 비용문제도 있어서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일상 속에 규제 아닌 규제가 많습니다
"아이디어가 정책 검토 단계로 넘어가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통상 예산, 법령, 대상지, 담당기관 중 무엇이 가장 부족합니까?"
"예산이나 장소 같은 자원도 문제이지만 결국 규정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달행정지원서비스의 경우 정말 필요한 아이템이지만 소관 기관은 바로 실행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도 일상 속에 규제 아닌 규제가 많습니다."
말로만 들을 때와, 보이게 되었을 때는 달랐습니다
"서비스디자인 방식이 일반 회의(미팅)이나 일반적인 워크숍과 다르게 느껴진 지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산단 근로자의 경험과 마음에서 시작하고, 창의적으로 풀어가는 서비스디자인 방식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아무래도 말만 하거나 글로 쓰면 아이디어를 처음 들었을때 느낌이 금방 날아가 버리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를 하니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아이디어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도 느끼게 되어 서비스디자인이라는 방식에 더욱 참신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책수립에 산단 근로자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 해커톤 이후 산업단지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때까지는 지자체나 관리기관이 사업을 신청하면 정부가 승인하는 방식으로 정책 집행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물론 정책대상자의 의견을 듣긴 하겠지만 수요자 중심의 행정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는 실제 정책의 효과를 몸으로 받게 될 산단 근로자의 의견이 정책수립에 보다 많이 반영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관중이었던 시민을 선수로 참여시키는 일입니다
"현장 참여형 정책 개발이 기존 정책 기획 방식과 다른 지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서는 위치가 다르면 보는 풍경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정책기획자가 아무리 역지사지하려고 해도 많은 정책수용자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장참여형 정책개발은 그동안 관중이었던 일반 시민을 선수로 참여시킨다는 측면에서 게임의 법칙을 바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무원이 팀원으로 참여하는 방식은 더 확대되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공무원이 팀원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더 확대해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공무원들은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고, 한편으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만날 일이 적었던 사람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 정책도 자리를 옮겨야 보이는 것이 있다
김일호 사무관과의 인터뷰를 마치며 두 개의 장면이 남는다. 하나는 해커톤 시작 전, 과연 근로자들이 주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지 걱정하던 공무원의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1박 2일 동안 같은 팀원으로 토론하고, 현장의 말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정책 담당자의 모습이다. 정책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정책을 함께 만드는 자리로, 정책대상자를 바라보는 위치에서 정책수요자와 나란히 앉는 위치로 옮겨간 것이다. 그곳에서의 풍경은 달랐다. 근로자는 단지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산단에서 살아가는 주민이었고, 지방의 청년은 떠나고 싶은 사람만이 아니라 머물 수 있는 조건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반려동물 돌봄처럼 숫자와 보고서에는 잘 잡히지 않는 생활의 문제도, 한 사람의 일상에서는 충분히 중요한 정책 의제가 될 수 있었다.
그는 현장참여형 정책개발을 두고 "그동안 관중이었던 일반 시민을 선수로 참여시킨다는 측면에서 게임의 법칙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번 해커톤에서는 시민만 선수가 된 것이 아니었다. 공무원도 심판석이나 관람석에 머물지 않고 같은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 해커톤에 산업통상부 사무관 10명이 팀원으로서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정책이 현장을 향해 설명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장과 함께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수요자가 있던 위치에 서자, 다른 풍경이 보였다. 산업단지 정책이 달라지기 위해 필요한 첫 변화도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될지 모른다.
관련 자료
정리 :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안전디자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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