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자동차 업계는 파격적인 혁신의 장면들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테슬라가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완전 자율주행(FSD)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사이, 현대차그룹은 AI 로보틱스 '아틀라스(Atlas)'를 통해 인간의 움직임을 완벽히 재현하며 SF 영화 속 미래를 현실로 끌어냈다.
이들의 행보에는 명확한 지향점이 있다. 바로 ‘운전자 없이 AI가 컨트롤하고, 전기로 작동하는 자동차를 AI 로봇이 만드는 시대’로의 진입이다.
따로 노는 디지털 전환, 멈춰버린 통합의 시계
최근 우리 산업계의 화두는 단연 AI 도입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디지털 전환(DX)’도 있다. 섬유 패션산업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디자인부터 스마트 팩토리,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단어와 기술이 지면을 장식한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에서 보여주는 일관된 방향과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
디자인은 기획을 위해, 스마트 팩토리는 자동화를 위해 각기 보조적인 수단으로만 도입될 뿐이다. ‘전기모터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로봇으로 만든다’는 자동차 산업의 목표와 같은 명확한 지향점이 보이지 않는다.
완제품을 기획하는 패션산업과 소재와 제품을 공급하는 섬유산업 사이의 ‘유기적이며 통합적인 디지털 전환’이라는 목표는 여전히 막연한 미래인 것처럼 들린다.
왜 섬유와 패션은 함께 상품을 만들면서도 서로 다른 디지털 언어를 쓰고 있는 것일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산업의 기형적인 구조에 있다. 국내 패션 기업들은 디자인, 마케팅, 판매라는 ‘보이는 영역’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해 왔다.
정작 제품의 본질인 생산 과정에 대해서는 해외 유수의 브랜드들처럼 깊숙이 관여하지 않고, 가격 경쟁의 논리에 따라 단순히 결과물만 받아보는 '방관자적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생산을 잊은 패션, 시장을 잃은 섬유
현재 우리 패션 산업은 제품 생산을 ‘외부의 몫’, 혹은 ‘원가 관리 대상’으로 간주해 왔다. 반면 공급 산업인 섬유산업은 가장 큰 고객인 패션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글로벌 시장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춘 채 익숙한 방식의 품질과 기능성에만 매달렸다.
이러한 단절은 패스트패션 시대의 몰락과 함께 결국 ‘과잉의 품질’과 ‘불합리한 폐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패스트 패션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정확히 데이터로 판단하지 못해 의도하지 않는 많은 재고를 만들고, 섬유는 실제 사용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스펙의 소재를 생산하며 자원을 낭비한다.
서로를 잇는 디지털 신경망이 끊어져 있으니, 시스템 전체가 취약한 리스크를 안고 왜 패션 제품을 시장에 공급하는지 잊고 있다.
미판매 재고 폐기 금지와 디지털 전환
그동안 패션 산업에서 미판매 재고의 소각이나 매립은 브랜드 가치 유지와 물류 비용 최적화를 위한 관행적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EU는 이러한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대기업은 2026년 7월부터 당장 시행 대상이며, 우리 나라도 해당 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폐기가 금지된 세상에서 패션 기업이 리스크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적정 생산’이다.
시즌 전에 물량을 확정하는 ‘사전 대량 생산 방식’에서 탈피하여, 시장의 반응에 따라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온 디맨드(On-demand)방식’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공급망 기업들은 과거의 단순 임가공 형태를 벗어나 고도로 지능화된 생산 기지로 변모해야 한다.
따라서 이 변화의 핵심 동력으로 세 가지 기술적 혁신이 동시에 진행될 것으로 예측해본다. 첫째, 자동차 산업의 전설적인 ‘토요타 간판(Kanban) 방식’ 개념이 이식될 것이다.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여 재고를 ‘제로(Zero)’화하는 저스트 인 타임(JIT) 철학은 이제 섬유 스트림에서도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될 것이다.
둘째, 로봇을 적용한 ‘타임리스(Timeless) 생산’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생산지를 옮겨 다니던 시대는 유효하지 않다.
로봇 자동화 시스템은 24시간 쉬지 않고, 주문을 접수한 순간 다품종 소량 생산을 수행하며, 숙련공의 부재나 시차에 구애받지 않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할 것이다. 셋째, AI를 활용한 공정 및 물류 최적화이다.
AI는 복잡하게 얽힌 공급망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원단 소요량을 예측하고, 물류 경로를 실시간으로 최적화함으로써 생산 과정에서의 에너지 낭비와 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것이다.
동시에 소비자와의 소통을 통한 다양한 방식의 유통, 소비 방식의 출현이 예상된다.
산업을 관통하는 디지털 채널 필요
결국은 이런 변화의 바탕에는 패션과 섬유산업을 관통하는 디지털 채널이 필요하다. 아마도 이 채널은 EU가 요구하고 있는 디지털제품여권 (DPP) 가 구축하는 디지털 네트워크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모든 측정 가능한 데이터가 기록되고 관리될 때, 비로소 의도하지 않은 과잉 생산은 사라지고 투명한 공급망 체계가 완성된다.
우리 섬유 패션산업이 추구하는 디지털 전환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우리는 글로벌 패션산업의 디지털 변화를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소비자를 이동시켜주는 제품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운전의 즐거움을 편리함과 안전으로 대체하는 ‘근본적인 자기잠식’을 통해 미래 생존을 도모하는 자동차 산업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미래 산업으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시작해야 한다.
패션과 섬유가 디지털로 통합되어 ‘적정 생산’의 가치를 실현할 때, 비로소 우리 산업은 지속 가능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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