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국가산업단지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억과 제조업 전환의 과제가 한 공간에 겹쳐 있는 상징적 현장이다. 생산의 경쟁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청년 정주, 생활 경험, 산업 유산 활용, 지역 정체성의 재구성 문제가 동시에 맞물려 있다. 문화선도산단 사업은 산업통상부·문화체육관광부·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가 연계하여 산업단지의 공간·문화·생활 기반을 함께 전환하려는 정책 사업이다. 이런 이유로 구미의 문화선도산단 사업에서는 청년의 경험에서 출발해 미래상을 구체화하고 현장에서 검증하는 청년디자인리빙랩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이 글은 구미산단 청년디자인리빙랩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김선아 교수가 가능성과 과제를 정리한 글이다.
[기고] 구미산단, '청년 + 디자인 + 리빙랩'으로 이상향을 그리다
2026.02.21.
김선아
국립금오공과대학교 산업·빅데이터공학부 교수
구미산단 청년디자인리빙랩 자문위원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꽤 있었다. 구미 문화산단 청년디자인리빙랩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다른 프로젝트를 할 때와는 달리 지나치게 몰입하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과 상황에 근거한다. 90년대 중반 첫 직장의 현장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미 공장에서 몇 달을 보내면서 역동적이고 풍요로웠던 기억이 있다.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자부심과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개인의 열정이 가득 차 있었다. 20년 만에 직장 때문에 돌아온 구미는 여전히 웅장했지만 여러 가지 위기와 변화의 상황 속에서 도시의 미래를 고심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구미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현재 구미 시민으로 살고 있는 나는 구미시의 '문화선도산단 사업' 선정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희망의 촉진제가 무척이나 반가웠고 청년디자인리빙랩에 참여하면서 진심이 되었다.
문화선도산단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행정 부처와 기관의 개별 사업이 연합하여 기존 산업단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문화'라는 시대적 키워드로 산업단지를 '활성화해 재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기존 정부 공모 사업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정책 실험으로서 산업단지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형태의 사업으로 다양한 조직과 목적, 하드웨어와 콘텐츠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조화를 이루어가야 하는 어려운 프로젝트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화선도산단 사업의 세부사업으로 청년디자인리빙랩*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청년디자인리빙랩 사업이란? 청년디자인리빙랩은 청년·시민의 경험을 기반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서비스디자인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프로토타이핑·시범운영하며 정책 실행 가능성을 검증하는 현장 실험 모델이다.
왜 '청년 + 디자인 + 리빙랩'인가?
왜 청년인가?
청년은 하나의 상징이자 은유이다. 산업은 변화하는 기술의 흐름에 맞추어 지속적인 혁신을 해야 생존하며, 이를 위해 신기술과 신산업에 필연적으로 투자하고 성장시켜야 한다. 우리나라가 가진 제조업의 경쟁력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나 피지컬(Physical) AI 등 최근 이슈를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한 기술로의 전환을 위해 기술과 산업의 청년인 DX, AX가 필요하다. 이를 개발하고 운영, 활용하기에 유리한 미래 성장 세대로서의 핵심 인력인 청년 또한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구미시는 젊은 도시인 편이지만 점차 고령화되어 가고, 청년 유출 인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여성 청년 인구의 유출 심화로 인한 도시 구성 인원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공간과 환경, 여건은 어때야 할까? 옛 영광을 누렸던 장년 세대는 문화산단에 나이트클럽을 지으면 청년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수요자인 청년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청년을 관찰하고 청년에게 물어보고, 직접 참여시켜 살아 있는 의견과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구미 문화산단 청년디자인리빙랩*은 청년 대표단 활동과 참여단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정리하여 인사이트를 도출하였다. 특히, 지역 청년의 특성이 가성비와 효율을 중시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는 '옵티미디언(Opti-median)'이라는 개념을 정의하였다. 이는 '문화'라는 개념이 구미 문화산단에 적용될 때 다른 도시나 지역과는 차별화된 방향과 레벨, 범위를 정의하는 단초를 제시하였다.
* 구미 문화산단 청년디자인리빙랩 소개
* 2025청년디자인리빙랩 구미산업단지 서비스디자인 과제 아이디어 모음
왜 디자인인가?
시각예술로서의 디자인은 원류를 따져 볼 때 예술의 의미에서 현재의 역할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예술의 가장 큰 가치는 현실을 비판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상향을 제시하여 사람들이 미리 경험하게 하는 데 있다. 현상학자인 메를로 퐁티(Merleau-Ponty)는 '선경험(先經驗)'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예술은 아직 가보지 못한 근원적인 세계의 모습을 선험적으로 감각이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 정의한 바 있다. 본 사업에서 디자인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의 문제점과 상황, 여건 등을 조사·분석하고 미래의 이상적 모습을 계획하고 시각적으로 전달함으로써 그 역할을 하였다.
구미 문화산단 청년디자인리빙랩은 '옵티미디언이 사는 세계'라는 이상향의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박공지붕의 상징적 조형성을 가진 방림방직의 옛 건물을 중심으로 일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콘텐츠 아이디어와 운영 방안을 시각화하여 청년의 미래를 선경험하게 하였다. 구미시는 청년디자인리빙랩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구미 문화산단의 마스터플랜과 문화산단을 대표할 브랜딩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수요자인 청년의 생각과 기대가 디자인으로 치환되어 문화산단의 이름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건축물, 시설물과 같은 하드웨어와 프로그램, 서비스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콘셉트로 아우를 것이다.
왜 리빙랩인가?
실제 현장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실험하여 개선과 검증을 통해 발전시키는 개념을 리빙랩이라고 하며, 이는 몇 년 전부터 신제품 개발, 도시 혁신에 활용되어 왔다. 탑다운 방식의 정책 실행은 수요자와 현장에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며 서로 간의 불신을 초래하였다. 현장 실험의 방식을 통해 계속 수정해 나가는 리빙랩은 느린 것 같지만, 정책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고 시행착오 비용을 낮추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기존의 리빙랩은 기획과 분리되어 현장 실험에 중점을 두었다면, 청년디자인리빙랩은 수요자인 청년과 시민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기획 단계에서부터 중점적으로 반영하고, 정리된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는 과정을 정책 공급자와 서비스디자이너, 수요자가 함께해 나가면서 몰입과 신뢰를 쌓아 나가는 방식으로 차별화된다. 이는 수년간 시행되었던 '국민디자인단'이라는 정책서비스디자인의 노하우가 만들어 낸 체계와 지식에 기반한다.
* 국민디자인단이란? 국민디자인단은 공공서비스 현장에서 수요자·공무원·전문가가 함께 문제를 재정의하고 해법을 만들어 온 정책서비스디자인 실행 모델이다.
구미 청년디자인리빙랩은 지역 디자인 기업과 '국민디자인단'* 경험이 많으면서 지역에 기반을 둔 서비스디자인 전문가가 운영하여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장성, 연대감을 최대화하였다. 또한, 정책공급자(공무원)와 시민 간의 입장과 의견을 통합적으로 조율하고 고려한 아이디어를 전략적으로 정리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1차 연도의 기획을 바탕으로 2026년에 시행할 아이디어 실험은 문화산단의 변화를 체감하는 작은 씨앗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구미시는 청년디자인리빙랩을 시작으로 문화산단 브랜딩 개발, 문화산단 마스터플랜 용역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올해 구미 문화산단의 그림이 구체화될 것이다. 구미시는 문화산단 사업을 위해 별도의 추진단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청년디자인리빙랩을 포함해 문화선도산단 세부 사업을 체계적으로 통합 관리하고자 하는 지자체의 의지가 드러난다. 지역을 넘어 자부심을 느낄 만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자 모두가 비전을 공유하고, 실무 협의와 전문적 의사 결정이 흔들림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구미의 지난 50년의 영광을 앞으로 50년의 꿈으로 상징화할 첫 그림이 상투로 굳지 않도록, 협의와 실행 과정에서 자문위원으로서 뾰족함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