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의 창원산단, 청년으로 거듭나라
미래 100년을 설계하는 '공공 행정의 선행 디자인'이 필요해
대한민국 국토 재편 전략인 5극 3특(5대 초광역권+3대 특별자치도) 체제에서 동남권의 핵심축인 창원 국가산업단지는 지난 50년간 기계·방위산업의 전략적 거점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산업 구조의 고도화와 인구 구조의 변화는 산단 운영 방식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지역 청년 인력의 이탈과 고립 문제는 복지의 영역을 넘어, 창원산단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산업통상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 주관하고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수행하는 '문화선도산단 조성 사업'과 해당 산단의 수요자들로 구성된 '청년디자인리빙랩'이 있다. 이 사업은 산단을 산업 거점에서 노동자 및 거주자의 생활과 문화의 거점으로 재구축함으로써, 각 권역의 자생력을 높이려는 정부의 미래 전략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선도 모델로 평가받는다.
이 과정에서 도입된 서비스디자인(Service Design) 기반의 정책 수립은 공급자 중심의 하향식 행정을 수요자 경험 중심의 상향식 체계로 전환하는 결정적 도구다. 이는 산단의 하드웨어적 인프라 확충에 그치지 않고, 그 공간을 실제 소비하는 청년들의 행동 패턴과 심리적 맥락을 분석하여 정책의 실효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정책 프로토타이핑: 공공 행정의 '선행 디자인'
그간의 산업단지 정책은 확정된 계획을 즉각 집행하는 구조적 관성으로 인해 실제 현장 피드백을 반영할 기회가 부족했다. 반면 민간의 서비스 산업은 정식 출시 전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과 베타 테스트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한다. 이번 창원 청년디자인리빙랩 2차년도의 핵심인 정책 프로토타이핑은 공공 행정에 선행 디자인(Advanced Design)의 개념을 도입한 사례다. 여기서 선행 디자인은 문제 정의와 수요, 실행 조건이 완전히 확정되기 이전 단계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가설로 설정하고, 이후 정책 결정과 집행이 따라야 할 방향·원칙·기준을 먼저 만드는 접근이다. 이는 실행 이전에 불확실성을 드러내고, 소규모 구현을 통해 사용자 반응을 데이터화하여 정책적 오류를 디자인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조정하는 의사결정 장치다. 그 결과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정책 실패 비용을 최소화하는 합리적인 리스크 관리 방식으로 기능한다.
동북항로(NSR) 개발과 창원산단의 미래 100년 설계
창원산단은 현재 동북항로 개발이라는 거시적 지정학적 기회에 직면해 있다. 수에즈 운하를 대체할 북극해 항로의 상용화는 창원을 글로벌 물류와 제조가 결합된 핵심 허브로 격상시킬 전망이다. 극한지 특수 선박, 스마트 항만 기자재, 해양 방산 소부장 산업은 창원의 기계 산업 DNA를 첨단 지능형 산업으로 재편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 프로젝트의 성패는 결국 첨단 기술을 운용할 인적 자원의 확보에 달려 있다. 전문 청년 인력들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주하기 위해서는 리빙랩을 통해 도출된 미시적 경험 설계가 거시적 산업 전략과 정밀하게 맞물려야 한다. 선행 디자인으로서 고도화된 12대 핵심 과제는 창원을 제조 기지가 아닌, 미래 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고도화된 생활 거점으로 변모시키는 실질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지난 1년의 과정을 통해 도출된 12개 실천 과제 중 방위산업의 폐쇄성을 문화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창원산단 콘셉트 무기 대전]*, 노동자의 동선과 휴식 시간을 고려한 [마이크로 틈새 문화 Zone] **등의 과제는 올해 프로토타이핑 과정을 거쳐 정책적 완성도를 높이게 될 예정이다.
* 창원산단 콘셉트 무기 대전 : 방위산업의 경직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게임, 웹툰 등 청년층이 선호하는 콘텐츠와 결합한 문화 축제를 기획한 과제이다. 시민 참여형 공모전과 VR 기술을 활용한 가상 체험 전시를 통해 창원만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대중적인 문화 브랜딩으로 연결한다. 이를 통해 지역 산업에 대한 시민의 자부심을 고취하고, 밀리터리 콘텐츠를 활용한 외부 관광객 유입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 마이크로 틈새 문화 Zone : 업무에 쫓기는 산단 노동자들이 일상 속에서 15~20분 내로 즐길 수 있는 소규모 문화 및 운동 거점을 조성하는 기획안이다. 산책로와 유휴 공간을 활용하여 버스킹 공연이 열리는 예술 존과 게임형 신체 활동이 가능한 운동 존을 설치해 노동자들의 접근성을 극대화한다. 별도 예약 없이 즉각적인 스트레스 해소와 정서적 환기를 지원함으로써 노동자의 직무 만족도를 높이고 삭막한 산단 환경을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재구성한다.
> 창원산업단지 서비스디자인 과제 아이디어 모음
정책 프로토타이핑, 시범 운영되는 장면의 예시 (나노바나나)
리빙랩 방식의 전면적 확대가 필요하다
창원산단이 지난 50년의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미래 100년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삶이 공존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동북항로라는 기회 요인이 지역 경제의 실제적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하드웨어의 혁신만큼이나 정책의 타당성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개선하는 프로토타이핑 절차가 필수적이다.
이제 수요자가 직접 기획하고 현장에서 정책을 검증하는 리빙랩 방식은 '문화선도산단'이라는 특정 사업에 국한된 일시적 모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산단과 관련된 모든 정책 사업이 리빙랩과 프로토타이핑을 정규 프로세스로 채택하여, 집행 전 리스크를 점검하고 실효성을 검증하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행정의 '선행 디자인' 체계야말로 지역 청년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창원을 세계적인 첨단 산업 거점으로 도약시키는 가장 합리적인 해법일 것이다.
2026.1.29. 김광순.
디맨드 대표. 서비스디자이너.
청년디자인리빙랩 디자인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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