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름답고 평등하면 우린 뭘 먹고 사니.”
영화 〈타짜〉 중에서

파리의 어느 골목, 한 사내가 컵 3개를 현란하게 섞는다. 공이 있는 컵의 위치를 맞히는 야바위 게임이다! 구경하던 이들이 ‘이 컵이다’ 싶어서 돈을 걸면 어김없이 잃게 되는데, 단순해 보이는 이 게임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여기에 두 가지 속임수가 있다.
첫 번째, 이 공은 스펀지로 만들어져서 야바위꾼은 마술 트릭처럼 공을 자유자재로 컵에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컵을 지목한들 야바위꾼은 그 컵에 공이 있게도, 없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속임수는 ‘바람잡이’이다. 야바위판에서 구경꾼인 척 흥을 돋우고, 때로는 게임에 직접 참여해 돈을 잃거나 따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구경꾼에게 게임 참여를 부추기는 등 참으로 다양한 역할을 한다. 구경꾼들은 이들이 야바위꾼과 한패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과 같은 처지인 구경꾼, 관광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 경계하지 않는다. 이번 장에서는 이 바람잡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바람잡이 마케팅
‘바람잡이’를 마케팅에 활용했던 유명한 사례가 있다. 2002년 소니에릭슨 Sony Ericsson은 당시 흔치 않았던 컬러 화면과 카메라를 장착한 휴대전화 T68i를 새로 출시했다. 그리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60명의 배우를 섭외해 뉴욕 등 대도시에서 관광객인 척하고 다니게 했다. 그러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T68i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게 했다. 휴대전화를 체험한 사람이 입소문을 내도록 기획한 것이다. 이 홍보 방식은 당시 화제가 되었는데, 창조적인 마케팅이라 보는 시각도 있었고, 홍보 목적을 밝히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접근한 측면이 있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1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바람잡이가 성행하는 듯하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시간당 1만 원 하는 탕후루 줄 서기 아르바이트를 소개하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었다.2 이들의 역할은 탕후루 파는 가게가 인기 많은 명소처럼 보이도록 줄을 길게 서고 탕후루를 몇 번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줄이 길면 지나가는 사람이 관심을 보일 테니 판매자 측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줄을 선 소비자는 자신 앞에 있는 사람 중 몇 명이나 진짜고 가짜인지 모를 일이기에 논란이 되었다.
온라인으로 이동한 바람잡이
온라인 세상에서는 바람잡이를 더 쉽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 배달 음식 등에 남긴 리뷰를 보면 “살면서 이만한 제품을 본 적이 없네요”, “가성비 최고, 믿고 추천”, “○○은 사랑입니다” 등 광고인지 리뷰인지 모를 다소 과장된 표현을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상위 리뷰 중 80%는 허위라는 보도도 있었다.3
97% 이상의 소비자가 리뷰에 기반해 구매하고4 리뷰가 없는 상품은 구매를 망설이거나 포기하기도 한다.5 리뷰가 매출에 큰 영향을 주다 보니 판매자 측에서는 고민이 많다. 경쟁 상품에 허위 리뷰가 일제히 달리는 걸 보며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야 하는지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포털 검색창과 오픈 채팅방 등에 ‘리뷰 알바’를 검색하면 이를 주도하는 마케팅업체와 채팅방 등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이들을 통해 ‘알바’를 시작하면 빈 박스, 가짜 영수증, 제품 사진 등 구매 인증에 필요한 것을 전달받고, 사용해보지도 않은 상품에 대해 지시받은 대로 후기를 작성해 올려야 한다(그림2 왼쪽).6

이런 식으로 작성된 리뷰의 대가는 건당 1000~2000원이다. 이렇게 돈으로 리뷰를 매매하는 행위는 마케팅업체들이 주도하는데, 처벌 수위도 낮고 적발도 쉽지 않아서 현재도 성행한다.7
블로그나 SNS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맛집, 병원, 여행 등을 검색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역시나 대가를 받고 올린 허위 리뷰인 경우가 많다.8 홍보 비용을 마케팅업체에 지불하면, 직원이나 알바생이 요청받은 대로 게시물을 작성해 게시하는 식이다. 2023년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허위 게시물을 2만여 건 적발했고, 위반행위를 한 광고주와 광고대행사를 엄정하게 제재할 것이라 밝혔다.9
더 생동감 있게 진화한 온라인 바람잡이
앞서 소개한 리뷰 댓글이나 블로그가 정적인 텍스트 형태의 바람잡이였다면, 이보다 더 생동감 있는 온라인 바람잡이도 생겨나고 있다. 바로 채팅방과 라이브커머스의 바람잡이이다. 먼저 ‘리딩방’ 이라 불리는 채팅방은 투자수익을 목적으로 고급 정보를 주는 오픈 채팅방인데, 가입비가 수백만 원에 이른다. 방의 마스터는 특정 종목의 매수와 매도 시점을 알려주고, 바람잡이들은 일제히 “마스터님의 리딩으로 10분 만에 450만 원 벌었어요~”라며 거짓 인증 화면을 올린다. 사람들은 이 같은 실시간 소통에 현혹되어 자신도 고수익을 낼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10
하지만 실상은 바람잡이들이 가짜 계정 여러 개를 돌려가면서 자문자답 식으로 운영한다(그림3).11

인터넷 홈쇼핑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브 커머스에서도 수법은 비슷하다. 쇼호스트가 상품을 안내하는 동안 바람잡이 알바생은 미리 지시받은 대로 채팅창에서 열심히 호응하고 대본에 적힌 대로 질문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이런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거짓으로 연출된 상황에 속아 불필요한 구매를 할 수 있다.12 대화가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한정된 시간 안에 신속하게 매매해야 한다는 특성 때문에 소비자는 더욱 현혹당하기 쉽다.
첨단기술로 무장하고 등장하는 바람잡이
바람잡이도 첨단기술이 접목되면서 더욱 진화하고 있다. 챗 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사용하면 방문하지 않은 음식점이나 호텔에 대해서도 그럴듯한 리뷰 문구를 빠르게, 무한대로 작성할 수 있다.13 이 같은 AI 기반의 허위 리뷰는 진짜와 거의 차이가 없어 현재 기술로는 탐지하기 어렵고 얼마나 심각한지 파악조차 하기 어렵다.
여기에 VR이 합쳐져 시각적인 부분까지 속이면 그 힘은 더욱 더 강력해진다. 메타버스 세상은 아직 마땅한 규제가 없어 노출하고 싶은 상품이 있으면 가상공간에 마음껏 배치할 수 있고, 바람잡이 AI 캐릭터 또한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서비스 측에서 광고하고 싶은 ‘옷’을 가상환경 속의 AI 캐릭터에게 입혀 사용자 주변에서 다니도록 한다. 이들 캐릭터는 사용자가 평소에 좋아하는 외모와 신체로 디자인되어 사용자의 관심을 끌게 된다. 여기에 캐릭터들끼리 옷에 대해 칭찬하는 이야기를 나누게 하면, 사용자는 이들의 대화를 듣고 영향을 받게 된다. AI 캐릭터는 점점 인간과 비슷하게 말하고 행동할 것이므로 사용자는 캐릭터가 실제 사람이 조종하는 캐릭터인지, AI 바람잡이 캐릭터인지 구별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14 결국 사용자는 자신이 일반 VR을 체험하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실제로는 아예 광고 안에 들어가 있는 셈이 된다.
어디 광고 뿐이겠는가. 이런 전략과 기술은 여론 형성에 정치적으로 악용되거나, 사람들을 은밀하게 현혹하고 기만하는 범죄에 활용될 위험도 있다. VR에서 보고 있는 것 중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
바람잡이 광고를 바라보는 시각
바람잡이 광고가 소비자를 기만에 빠뜨리는 등 온라인 환경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15 성인조차도 광고 여부를 인지 하기 어려운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이미 유아용 메타버스 콘텐츠에 서도 위장 광고 전략이 행해지고 있어 소비자단체 등이 문제를 지적 하고 나섰다(그림5).16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고’라는 사실을 명시하는 방법도 강구되고 있으나 아직 마땅치 않다. VR은 시각적·청각적·공간 적인 총체적 경험이기 때문에 기존 SNS 등에서 사용하는 일회성 광고 표시 방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가상세계 내에서는 광고 표시를 더 자주, 더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17 하지만 이때 VR의 가장 큰 특징인 몰입이 깨지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저해한다는 반대 의견도 나오고 있어 앞으로 지속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바람잡이’ 마케팅이 광고 효과가 좋고 참신하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자신이 유인되는지조차 모르는 무방비 상태에서 광고인지도 모를 광고를 마주하게 된다. 근본적으로 소비자를 속이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뒤늦게 느낄 수 있는 배신감과 좌절감은 헤아리지 않는 것일까? 바람잡이가 바람잡이인 걸 알았다면 애초에 그렇게 행동할 소비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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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재영 홍익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출처 : 디자인 트랩, 윤재영, 김영사, 2022. (2부 편리함과 효율의 딜레마, 6장 바람잡이의 진화,누구를 믿어야 하나)
주
1. Martin, Kelly D., and N. Craig Smith. “Commercializing social interaction: The ethics of stealth marketing.” Journal of Public Policy & Marketing 27.1 (2008): 45-56.
2. 송치훈. “‘시간당 1만 원’ 탕후루 가게 바람잡이 줄 서기 알바까지 등장”, 동아일보, 2023년 9월 1일,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901/120974278/2
3. 정인선, 옥기원. “[단독] 쿠팡은 알바 놀이터…최상위 구매평 다섯 중 넷은 ‘조작’”, 한겨레, 2022년 10월 4일,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061184.html
4. 김세라. “온라인 쇼핑 이용후기 ‘실제 구매에 큰 영향’ 미쳐”, 소비자경제, 2022년 1월 11일, http://www.dailycnc.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683
5. 김민아, 김재영. “온라인 이용후기 관련 소비자 보호방안 연구”, 한국소비자원, 2019.
6. 성월. “빈 박스 마케팅”, 네이버 블로그, 2022년 2월 18일, https://m.blog.naver.com/12sunrise703/222630621217
7. 김신영. “리뷰 조작, 못 잡나 안 잡나”, 단비뉴스, 2023년 4월 7일,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376
8. 최신혜. “‘폐업 막아보려다 돈만 날렸다’ 외식업계 ‘블로그 마케팅’ 사기 기승”, 아시아경제, 2019년 4월 10일, https://www.asiae.co.kr/article/2019041009324624978
9. 권종일. “공정위, 소비자 기만한 유튜브·네이버 블로그 ‘뒷광고’ 2만 1037건 적발”, 세정일보, 2023년 2월 6일, https://www.sejun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1461
10. 김정범, 진영화, 이지안. “‘7000만 원 넣고 1억 환급’…허위 인증샷으로 초보 투자자 현혹”, 매일경제, 2023년 11월 24일, https://www.mk.co.kr/news/society/10883033
11. 최예린. “하루 종일 카톡만 하고 월 300만 원?…‘리딩방 알바’ 알고 보니[최예린의 사기꾼 피하기]”, 한국경제, 2022년 2월 19일,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202183534i
12. 신지인. “‘물건 좋네’…바람잡이 판치는 온라인 라이브 쇼핑”, 조선일보, 2022년 12월 14일,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2/12/14/V3NIGXSR7VDVDMC-4GC6IJJIEVI/
13. Collinson, Patrick. “Fake reviews: can we trust what we read online as use of AI explodes?” The Guardian, 15 Jul 2023, https://www.theguardian.com/money/2023/jul/15/fake-reviews-ai-artificial-intelligence-hotels-restaurants-products
14. Nightingale, Sophie J., and Hany Farid. “AI-synthesized faces are indistinguishable from real faces and more trustworthy.”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9.8 (2022): e2120481119.
15. Langer, Roy. “Stealth marketing communications: is it ethical?” Strategic CSR communication. Djøf Forlag, 2006, 107-134.
16. Perez, Sarah. “Consumer advocacy groups want Walmart’s Roblox game audited for ‘stealth marketing’ to kids.” TechCrunch, 25 Jan 2023, https://techcrunch.com/2023/01/24/consumer-advocacy-groups-want-walmarts-roblox-game-audited-for-stealth-marketing-to-kids/
17. Stapley-Brown, Victoria. “A Marketer Walks Into the Metaverse….” R/GA, 13 Dec 2022, https://rga.com/fv-marketing-endorsements-metaverse
<다크넛지의 비밀, 윤재영> 전체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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