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서비스디자인의 재발견 11] 성수동 구두공장 서비스디자인
월간지방자치, 2012.07.
* 출처 : 지방자치연구소
이 글은 과거 월간지방자치에 연재되었던 공공서비스디자인 특집 기사를 재게시한 글입니다. https://www.lgrc.co.kr/
성수동 구두공장 서비스디자인
: 서비스디자인을 통해 성수동 구두 공장에 새로운 활력이 생겨나길 기대하며

윤대영 서울디자인재단 시민서비스디자인팀장
신현정 서울디자인재단 성수동구두프로젝트TFT PM

성수동은 300여 개의 구두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산업 특화지역이다. 가방과 혁대, 지갑 등의 가죽 제품이나 구두와 가방의 부자재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를 모두 합하면 600여 개가 넘는 업체들이 성수동 골목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서울시 제화산업의 발전 과정
우리나라 제화산업의 산업적 기틀이 형성된 시기는 매우 늦었으며,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기계화·규격화·대량생산·전국적 유통망을 갖춘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대규모로 성장한 제화업체들의 입지가 제화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는데, 금호동과 명동, 충무로 등에서 대형 제화업체와 하청업체, 부품업체들의 집적이 이루어졌다. 서울은 넓은 노동시장 및 소비시장을 지니고 있고, 문화의 중심지로서 유행과 패션을 선도하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1910년 이후로 일본 구두 제작기술 전파의 거점이었다는 역사적 요인이 결합되면서 다수의 초기 집적지들을 포함한 우리나라 제화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급속한 양적 성장의 시대를 지나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구두시장이 고급 살롱화와 저가 구두 부문으로 양분되면서, 전자는 이탈리아·프랑스 등의 고가 수입품이, 후자는 중국의 저가 수입품이 시장에 빠르게 유입되어 업체들의 수익구조가 급격히 악화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몇몇 초기 집적지들은 대형 제화업체의 수도권 공장 이전 등으로 빠르게 쇠퇴하였으나, 성수동을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 중심의 집적지가 새롭게 성장하면서 우리나라 제화산업의 중심지로서 서울이 갖는 위상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2002년 기준으로 서울시는 국내 구두 제작업체의 38.6%, 종사자의 38%가 집중되어 있으며, 운동화산업으로 특화된 부산지역의 업체 수를 생각한다면, 구두 제화업계 종사자의 대부분이 서울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구두 제작업체의 44.4%, 구두 부분품 및 재단제품 제조업체의 58.5%가 성동구에 집중되어 있고, 성동구 내에서도 성수동에 구두 제작업체의 86.1%, 구두 부분품 및 재단제품 제조업체의 70.8%가 집중되어 성수동 지역은 국내 제화산업의 최대 집적지임을 알 수 있다.
성수동 구두 관련 업체들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선로를 중심으로 전 지역에 걸쳐 고루 분포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구두를 포함한 다양한 패션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대형 제화업체, 자체 브랜드와 직영 매장을 지닌 구두를 주력 생산하는 중견 제작업체, 일반 시장·동대문 상가·대형 할인 매장에서 유통되는 구두를 생산하거나 하청을 받는 소규모 제작업체 등이 모두 입지해 있다. 특히 업체별 종사자 규모를 분석해보면, 종사자 49인 이하의 업체들이 전체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어 이 지역에 입지한 업체의 대부분이 영세한 소규모 구두 제작업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성수동의 현황, 프로젝트의 시작
성수동은 2009년도 성동구의회 의견 청취 과정을 거쳐 IT 산업개발진흥지구로 지정되어 아파트형 공장이 빼곡히 지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를 지켜보면서 성수동 구두공장 근로자들은 더욱 한숨이 깊어진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주변 분위기가 달라지면 이들 공장의 임대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0일 시장님께서 현장 시정 방문차 성수 IT 종합센터와 서울성동수제화타운(SSST)을 둘러보셨다. 이날 시장님은 지역 구두 공장 상인들이 모여 만든 마을기업 SSST 매장의 가능성을 보셨고, 곧 하청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세한 구두 공장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주문하셨다.
성수동 현장 둘러보기
성수동 현장을 둘러보기 전에 우리는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구두 골목, 어떻게 생겼을까? 성수동 구두가 편안하고 좋다는데, 디자인은 어떨까? 공장들이 어렵다니 가격은 저렴하겠지. 어떤 모양의 구두가 있을까? 백화점 매장 분위기와는 어떻게 다를까? 구두가 만들어지는 구두 공장은 어떻게 생겼을까? TV 프로그램에 줄기차게 나오던 황금색 구두 모형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던 성수동 구두 골목은 어디에도 없었다. 구두 골목은커녕 구두 공장 간판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지역 구두업체 100여 개가 결성되어 만들어진 성동제화협회에서 25개 기업이 조금씩 출자하여 공동으로 만든 서울성동수제화타운(SSST) 매장이 한 군데 있을 뿐, 성수역을 중심으로 성수1가, 성수2가 전체에 퍼져 있다던 구두 공장은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힘들게 더 찾아낸 곳은 백화점에도 납품하는 플랫슈즈 전문 ‘바바라’ 매장과 <다큐 3일>에서 방영된 남화 공장 ‘Dream’, 공원 한쪽에 아는 사람이 아니면 찾을 수도 없도록 셔터문이 절반 내려진 여화 공장 ‘실비 콜렉션’, 이렇게 3곳이 전부였다.
성수동 구두 하면 바로 떠오르는 황금색 구두 모형은 성수역에서 골목으로 조금 걸어 들어간 이면도로 사거리, 2층 상점 주택의 옥상에 정말 아담하게 놓여져 있었다. 그 구두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초라한 모습으로 놓인 그것은, 이곳 성수동에서 평생 기술자로 살아오신 분들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처럼 작아만 보였다.
연매출 20억 원의 여화를 제작하는 구두 공장을 방문해 보았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간판은 보이지 않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 화장실이 있는 낡고 비좁은 건물이다. 직원 수 40명. 130평 공간에 구두의 소재가 되는 가죽을 재단하고 미싱하여 갑피를 만드는 기술자들, 완성된 갑피를 라스트(구두 틀)에 씌우고 창과 굽을 붙이는 저부 기술자들, 마지막으로 리본이나 장식을 붙이고 검품하는 직원들이 공정별로 그룹을 이루어 열심히 작업 중이다.
성수동 공장 중에서 매출이나 직원 수, 규모 면에서 중상위를 기록하는 공장이라 했지만, 좁은 공간을 꽉 채운 구두 부분품과 기계 때문에 공장은 복잡했고, 입구부터 진동하는 본드 냄새와 구부정하게 허리를 구부려 작업에 열중하는 고령의 기술자들 모습이 어쩐지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다음은 성수동 제화업체 25개가 모여 만든 공동 매장, SSST(서울성동수제화타운) 매장으로 향했다. 앞서 본 제조 공장의 열악한 모습과 달리, 깨끗하게 정돈된 쇼윈도와 간판은 그나마 고객을 반기는 모습이었다.
이곳의 매출은 놀랍게도 월평균 8천만 원. 2011년 6월 개관 이후 올해 초까지 꾸준히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고 하였다. 처음에 12개 업체가 모여 300만 원씩 자금을 출자하고 작은 매장을 열었다가 매출이 좋아서 13개 업체가 더 모여 700만 원씩 또 출자를 했다. 그렇게 매장을 임대하고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서 매장의 인테리어 비용도 일부 지원을 받았다. 매출이 발생하면 30%의 수수료를 제하고 나머지는 모두 제조업체의 금고로 현금이 되어 들어간다. 30%씩의 수수료를 모아 매장 직원의 인건비와 매장 관리비 등을 충당하는 것이다. 공장 사장님들의 설명을 곱씹어 다시 계산해 보니, 대략 대기업 납품에 1켤레당 떨어지는 수익은 7천 원에서 9천 원 선, 공동 매장에서 판매 후 30% 수수료를 제하고 남는 마진은 대략 8만~9만 원 정도이다. 수수료 30%를 매장에 환원하고도 9만 원. 대기업 납품 가격에 비하면 9배의 이윤이다. 이쯤 되니 성수동 지역 상인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만나는 분들이 열이면 열, 하나같이 공동 매장을 열어달라고 한다. SSST 매장의 성공을 벤치마킹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공동 매장이 성수동 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답안일까?
DEFINE: 문제의 발견과 정의
성수동 현장을 오가면서 가장 눈에 띈 점은 구두 기술자 대부분이 고령이라는 점이다. 공장 근로자가 10~20명 이내인 곳이 대부분이고, 심지어는 20명 전원이 50대, 60대로 구성된 공장도 부지기수였다. 이대로 가면 10년 후쯤에는 국내에 구두 기술자가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며 푸념하시던 구두 공장 사장님도 있었다.
왜 젊은이들은 구두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 걸까?
중소기업청에서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성동제화협회와 함께 소규모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배출되는 인원은 연 30명이 전부였다. 그것도 저부 기술 과정은 없고, 갑피와 재단 과정만 있는 반쪽짜리 커리큘럼이었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공장에 배치되어 실제 일을 하게 되면 답답하고 본드 냄새 진동하는 공장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이내 그만두기 일쑤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제화 기술인들의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SSST 공동 매장에서 팔리는 수제화의 가격은 13만 원. 비싼 것은 15만 원짜리도 있고, 11만 원 하는 구두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가격은 백화점 정기 세일 기간이면 브랜드 제품을 살 수 있는 가격이고, 동대문, 남대문시장, 홍대 앞, 이대 앞의 구두 가게에서 팔리는 3만~5만 원대 제품에 비교하면 너무나 높은 가격이다. 함께 답사를 갔던 동료는 그래도 수제화니까 한 켤레 살까 하다가 구두 밑창에 붙은 라벨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RENOMI. 레노마가 아니라 레노미 구두를 15만 원에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성수동 구두에 맞는 브랜드와 제품의 라인업, 독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판로가 필요하다!
성수동은 구두 공장이 많은 곳인데도 구두 공장 밀집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출퇴근시간이면 에스컬레이터 앞에 줄을 설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유동 인구 중에 어느 누구도 성수동의 구두 공장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성수동 구두에 대한 이미지 만들기, 어떻게 할까?
이렇게 현장 조사와 문제의 고찰을 통해 우리는 2가지로 성수동의 문제를 정의하였다. 차세대 제화 기술자를 꾸준히 양성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 열악한 공장 환경 속에서도 그들이 바라볼 수 있는 비전을 만드는 일. 그들을 위한 롤모델을 만드는 ‘차세대 제화 기술자의 양성’이 시급하다. 그리고 성수동 수제화가 백화점 브랜드 못지않다는 성수동에 대한 인식 개선과 실제 성수동 구두 제품의 품질 제고, 성수동 구두 골목에 가면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다양한 수제화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 ‘수제화 가치 제고’. 이것이 우리의 2가지 할 일이다.
DEVELOP: 퍼소나와 고객 여정 맵을 활용하여 기획안 만들기
이제 우리는 성수동의 구두 기술자가 되어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려고 한다. 아침 출근부터 저녁 퇴근 시간까지 그리고 퇴근 이후의 시간과 그들의 생각을 경험해보고, 시민의 입장에서 성수동의 구두에 대해 고민해볼 것이다.
이렇게 성수동 구두 공장 서비스디자인은 진행 중에 있다. 문제의 발견과 정의에서부터 아이디어 회의와 서비스 디자인 프로세스를 밟아가며 기획안을 만드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 아직 서비스블루프린트(서비스의 전체적인 정황을 한 장의 도식으로 정리한 개요서)를 뽑아내기까지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연말 즈음 성수동 구두 공장의 마스터플랜이 완성되어 독자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전체의 여정을 소개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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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2년 월간지방자치에 연재되었던 공공서비스디자인 특집 기사를 재게시한 글입니다. https://www.lgr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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