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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 세대를 위한 디자인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1970년에 남자 59세, 여자 66세였다가 2010년에 남자 77세, 여자 84세로 대폭 늘었고, 2030년에 남자 81세, 여자 87세가 예상된다. 그에 따라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2000년 7%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8년에는 14%로 두 배 늘어나고 2026년에는 무려 21%에 달하는 초고령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무려 세계 1위.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달려가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다가오자 이른바 실버산업에 대한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본 후생성의 정의에 따르면 실버산업은 “대략 60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민간 기업이 시장경제의 원리에 입각해 상품이나 서비스의 공급을 행사하는 산업”이다. 실버산업에 대한 기사들의 공통점은 한국이 초고속으로 노령화되는 것에 반해 실버산업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실버 세대를 위한 산업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위한 시장이 성숙되지 못하다는 뜻이다. 한국 노령 인구는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 가난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렇듯 실버산업에 대한 접근은 대개 노인들의 주머니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빼낼 것인지를 연구한다. 그 대상은 일부 부유한 노인에 국한된다.

 


그에 반해 노인은 일반 제품은 물론 생활환경 전반에서 큰 불편을 느낀다. 어떠한 상품도, 어떠한 주거나 환경도 노인을 배려해서 디자인되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버스의 높은 턱은 무릎이 아픈 노인들을 좌절시킨다. 작은 글씨의 잡지와 신문은 안경을 쓰더라도 읽기 불편하다. 꼭 노인만을 위한 상품과 산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상품, 즉 우리가 매일 쓰는 스마트폰, 가전제품, 자동차, 요리와 식사 도구, 가구, 집의 문이나 창문, 공적 공간의 시설과 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환경이 노인을 배려하면 그것이 곧 실버세대를 위한 디자인이다. 노인은 지팡이처럼 노인만이 쓰는 특수한 도구만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물건과 시설을 똑같이 사용한다. 그렇다고 그런 모든 물건과 환경을 노인만 배려해서 디자인할 수도 없다. 따라서 실버 세대를 위한 디자인이란 결국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실현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20대의 나이에 80대 노인으로 변장해 무려 3년 동안이나 노인 체험을 한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는 이렇게 말한다. "한 가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이가 드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는 젊을 때 즐기던 것을 나이 들어서도 즐기고 싶어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느냐는 디자인의 몫이지요.” 다시 말해 사람은 노인이 되어서도 젊었을 때처럼 남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몸의 기능은 떨어지고 기력은 약해졌으며 때로는 병을 앓기도 한다. 이런 노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사용해도 편리하고 기능성이 뛰어난 옥소 굿 그립은 유니버설 디자인의 전설적인 프로젝트다.

 


사업가인 샘 파버는 관절염을 앓는 아내가 기존의 감자 깎는 도구를 쓰다가 손을 다치자 ‘스마트 디자인’을 찾아가 힘이 없는 노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손잡이를 디자인해달라고 의뢰한다. 기존의 이런 도구들은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려고 대개 금속을 사용했다. 스마트 디자인팀은 어린이들이 커다란 크레용을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일단 손잡이가 더 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힘이 약한 노인일수록 적당히 큰 손잡이를 원한다.

 


또 자전거 손잡이에서 힌트를 얻어 손잡이에 작은 홈들을 연속적으로 파서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산토프린’이라는 신소재는 가볍고 젖어 있을 때도 미끄럽지 않다. 감자 깎는 도구로 시작해 다양한 주방용품으로 라인을 확대했다. ‘옥소 굿 그립Oxo good grips’ 라인은 관절염과 만성적인 병을 앓고 있는 사람, 노약자, 신체적으로 열등한 사람처럼 사회적 약자를 먼저 고려해 디자인했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아주 훌륭한 디자인이다. 이것이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의 본질이다.

 

 

 

 

 

 

 

 

노인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절대적 숫자에서도 한국보다 월등히 많은 일본에서는 일찍이 이런 실버 세대를 위한 디자인, 넓게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발전했다. 클로버사가 생산한 ‘셀프바늘’은 눈이 침침한 노인은 물론 일반인도 실수하기 쉬운 작은 바늘 구멍에 실 넣기를 아주 쉽게 해결했다. 바늘 윗부분이 U자 모양으로 파여 있어서 여기에 실어 걸고 밑으로 잡아당기면 구멍으로 실이 들어간다. U자의 밑부분에 눈이 보이지 않는 작은 틈이 있어서 이 틈으로 실이 들어가는 것이다. 실을 구멍으로 통과시키는 것보다 위에 걸치는 일은 훨씬 쉽다는 원리를 이용했다. ‘라치키스 스태플러’는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아주 약한 힘으로도, 바닥에 놓지 않고 손에 들고서도 누를 수 있는 스태플러다. 한국의 디자이너 김승우가 디자인한 유니버설 플러그는 플러그의 중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서 꽉 낀 플러그를 뽑기 쉬운데, 이런 디자인이야말로 노인들에게 필요하다. 이 플러그는 독일 iF 콘셉트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노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라면, 노인에게만 필요한 디자인 역시 필요하다. 휴대폰의 경우 한국에서도 노안이 온 사람들을 위해 폰트를 키우는 기능을 탑재한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65세 이상 노인이 무려 3천만 명이 넘는 일본에서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IT 제품에 두려움을 느낄 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기능들을 소화하지도 못하는 노인에 맞게 기능을 대폭 줄이는 대신 노인에게 필요한 기능을 추가한 ‘라쿠라쿠 휴대폰’이 1999년 출시된 뒤 꾸준한 업그레이드로 노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2011년까지 무려 2천만 대가 팔렸을 정도다. 청력이 약한 노인들을 위해 상대의 말이 천천히 들리게 한다든지 상대 말을 더 크게 해주는 기능, 위급 상황에 버튼을 누르면 주변에 큰 소음으로 알리고 보호자에게 자동으로 전화를 거는 알람 기능 들은 노인에게 절실한 기능이다. 많은 기능들이 없어서 일반 스마트폰 요금보다 훨씬 싸기까지 하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프란체스카 란차베치아와 싱가포르의 훈 와이는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늘 지팡이나 받침대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노인들을 위한 제품을 디자인했다. 노인은 지팡이를 짚을 수는 있어도 뭘 들고 다니기는 힘들다. 그래서 지팡이 중간에 컵이나 책을 올려놓을 수 있는 쟁반이나 트레이, 또는 바느질 도구를 넣을 수 있는 상자를 결합시켰다. 이 제품들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코엔 형제가 만든 영화의 제목과 같은 ‘노인을 위한 나라를 없다’. 지팡이는 노인을 독립적으로 만드는 고마운 도구이지도 하지만 늙고 힘없음을 증명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런 지팡이를 좀 더 아름답게 디자인한다면 지팡이도 패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 리 뇌레고르는 형태와 컬러로 멋을 더한 것은 물론 기능적으로 더 개선된 지팡이 ‘옴후Omhu’로 노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옴후의 슬로건은 이 지팡이의 성격을 대변한다. “인생은 불안전하고 아름답다.” 이처럼 실버 세대를 위한 디자인은 단지 기능적으로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노인에게 자존감과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더욱 가치가 배가 된다.

 

 

 

 

실버 세대를 위한 디자인 사례들은 이미 고령화가 진행된 서구와 일본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요원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들은 바로 옆에 노인이 있고 그들이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들을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 고통을 느낀다. 집 안에 있는 작은 턱과 계단, 수많은 버튼이 달린 리모컨, 평범한 의자조차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야 비로소 노인의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실버 세대를 위한 디자인이란 기본적으로 사람만이 가진 독특한 능력이 상상력으로부터 탄생한다. 상상력은 창조적인 것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는 데도 활용된다.

 


나에게는 깃털처럼 가볍고 숨쉬는 것처럼 쉬운 도구가 노인에게는 엄청 무겁고 어지러울 정도로 어렵다는 걸 상상하는 순간 배려가 생기고 새로운 가능성이 탄생한다. 배려와 공감이라는 디자이너의 상상력이 실버 세대를 위한 디자인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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