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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디자인, 세상을 바꾸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축 조감도


스포츠, 도시의 미래를 바꾸다

현재 미국 스포츠 산업의 규모는 자동차산업 2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스포츠 산업의 규모 역시 화학공업보다는 작지만, 철강업보단 크다. 4년에한 번 개최되는 국제 스포츠이벤트는 꾸준히 열리는 로컬 스포츠 산업보다 집중되고 폭발적인 경제효과를 낸다.

많은 나라와 도시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등의 국제대회를 유치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다양한 적극적 노력 가운데 하나가 도시를 새로 디자인하는 것이다. 1985년 일본의 고베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도시 디자인과 대형 스포츠이벤트 사이의 모범적인 조화 사례로 꼽힌다. 당장의 전시 목적으로도시를 대대적으로 정비했지만 막대한 비용을 회수하지 못해서 도시 자체가 경제 위기에 빠진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고베시는 스포츠이벤트 때문에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이벤트를 통해 장기적인 도시발전 계획을 앞당겨 세웠다. 당시 시장인 미야자키 타츠오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맞춘 도시정비를 이렇게 설명했다.

“도시 정비사업은 각기 따로 떨어져 진행될 수도 있는데, 스포츠이벤트는 분리된 뉴타운 개발을 종합적으로 묶어주는 촉진제나 다름없다. 뉴타운 개발이라는 큰 틀의 정책과 선명히 연결된다. 유니버시아드 주경기장인 고베 종합운동공원은 닛신 뉴타운의 중심에 위치하고 지하철 연장선으로도 연결된다.”

이때 정비된 그린 스타디움 고베(야구장)와 유니버시아드 기념 경기장(축구장)은 지금도 일본의 프로리그 경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긴 호흡으로 도시를 디자인한 결과 고베 종합운동공원은 유니버시아드 이후에도 유지비를 잡아먹는 코스트센터가 아니라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팀의 전용구장으로 활용된 것이다.

1988년 서울은 스포츠이벤트가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도시로 꼽힌다. 1964년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후진국형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던 우리나라는 국가이미지 개선에 올림픽을 적극 활용해 국가 차원에서 도시개발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교통 체증을 완화하기 위해 지하철 노선을 정비하고 노선버스를 연장했으며, 국제공항의 규모를 넓혔다. 도시 건강과 위생기준도 개선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폐기물 처리 문제도 극복해야 할 의제로 설정되었다. 서울예술센터, 국제현대미술관, 국제 클래식음악협회 등도 설립했다.

종합운동장이 있는 잠실 일대의 땅은 건물을 세운 후 매매할 경우 세제혜택을 주고, 빈 부지 상태로 매매하면 중과세하기도 했다. 경기장 주변을 빠르게 개발하기 위해 정부가 민간에 영향력을 강제한 것이다. 빈민촌의 강제 철거등을 벌인 것 역시 국가주도형 도시개발의 어두운 뒷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총력전 끝에 우리나라는 GNP대비 0.5%, 고정 투자 대비 1.4%의 예산을 투자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도쿄올림픽 당시 일본이 GNP대비 3.4%, 준비기간 중에도 1%수준의 비용을 투입한 것에 비해 훨씬 효율적으로 도시를 ‘디자인’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총 잉여금 3,361억 원, 순잉여금 944억 원의흑자 올림픽을 치렀다. 그리고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개발도상국 이미지를 지니게 됐고, 조악한 복제품을 생산하는 나라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기술강국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스포츠디자인, 기록을 바꾸다

1954년 아디다스의 축구화는 기록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다. 초기의축구선수들은 발목 보호를 위해 군화처럼 목이 올라온 부츠를 신곤 했다. 1930년대에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구두 밑창에 징(스터드)을 박거나 묶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가뜩이나 무거운 부츠에 강철 징을 묶거나 박으면 너무 무거워지기 일쑤였고, 행동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디다스의 창립자인 아디 다즐러는 축구화를 면밀히 분석해서 축구화 밑창에 불편하지않고 가벼운 징을 생산 단계에 붙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아디 다즐러의 노력으로 태어난 축구화가 정식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게 1954년 월드컵이다. 발과 땅이 만나는 면이 커지면 그만큼 미끄러질 가능성이 줄어드는데, 접지 면적 자체를 줄여서 문제 발생의 여지를 원천봉쇄하는 것이다.서독 대표팀의 새로운 신발에 축구계의 이목이 집중했다. 서독은 ‘인도적 측면과 스포츠정신에 입각해’ 헝가리에도 축구화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동서냉전이 극심한 시기였기에 헝가리는 거절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경기 당일,비가 오면서 경기장은 미끄러워졌고 베른에는 기적이 펼쳐졌다. 1930년 제1회 월드컵 결승에서 맞붙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서로 자신의 공을 사용하겠다고 우겼다. 전반에는 아르헨티나의 공을, 후반에는 우루과이의 공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스포츠와 과학의 교차점에서 여러 해답을 제시해왔던 아디다스는 1963년부터 제대로 된 축구공의 제작을 고민했다. 그리고 1970년에 이르러 월드컵 최초의 ‘공인구’를 발표했다. 멕시코월드컵에 등장한 텔스타는 12개의 검정 오각형과 20개의 하얀 육각형 패널을 이어서 완벽에 가까운 구체로 만들어졌다. 좋은 축구공의 조건은 간단하다. 최대한 완벽에 가까운 구체여야 하고, 최대한 완전한 방수능력을 갖출 수만 있으면된다. FIFA는 물이 담긴 컨테이너 안에서 공을 25회 회전시킨 후에 무게가 10%이하로 증가하는 축구공만 인정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처음 등장한 스피도 레이저 수영복은 너울이 선수의 기록에 최소한으로 영향을 끼치도록 만들었다.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수영복으로 착용자의 몸을 심하게 조여서 라인을 매끄럽게 바꾸는것이다. 피부와 지방층 등의 굴곡이 줄어든 수영 선수의 몸은 물의 저항을 덜 받는다. 수영복의 소재 역시 물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선수의 몸은 물의 흐름인 너울을 거스르지 않고 흘려버린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베이징올림픽 수영부문에선 25개의 신기록이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23개는스피도 레이저 수영복 착용 선수들이 세웠다. 여기에 더해 부력을 더하는 직물 (폴리우레탄) 소재 수영복까지 개발되었다. 고심 끝에 베이징올림픽에서 스피도 레이저 수영복의 착용을 인정한 국제수영연맹도 2009년 8월부터는 신소재 전신 수영복을 전면 금지했다. 그래도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2008년부터 2009년 여름까지 매달 속출한 기록들을 인정하고 남겨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 것이다. 1년간의 논의 끝에 기록은 유지하기로 했다. 스피도의 전신수영복은 외형이 아닌 기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스포츠디자인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2014 브라질월드컵의 공식 디자인

1970년 멕시코월드컵의 공인구 텔스타는 32개의 패널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가죽 패널이 많으면 많을수록 꼭짓점(스리 패널 터치 포인트)도 늘어나기 때문에 완벽한 구체에서 멀어지게 된다. 2006년 공인구 팀가이스트는 패널수를 14개(프로펠러형 6개와 터빈형 8개)까지 줄였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의 공인구 브라주카는 6개의 패널만으로 구성된다. 훨씬 완벽에 가까운 구체가 되어 정확한 볼 컨트롤이 가능해진 것이다. 6개의 바람개비형 패널은 브라질 영토를 가로지르는 아마존 강을 콘셉트로한다. 리본을 형상화하는 컬러와 6개의 대칭 패널은 브라질 바히아 지역의 전통적인 ‘소원 팔찌’를 상징하기도 한다.

브라질월드컵의 공식 마스코트인 ‘풀레코(Fuleco)’는 아르마딜로를 형상화해서 만들었다. 이름은 ''축구(푸테보우, futebol)’와 ‘환경(에콜로지아, ecologia)’의 합성어다. 아르마딜로는 멸종 위기에 처한 남미의 희귀종 동물이고, 위험할 때면 몸을 공처럼 말기 때문에 환경, 남미, 축구의 세 축을 잘 연결해주는 마스코트로 채택된 것이다. 공식 엠블럼은 세 개의 손이 우승 트로피 형태로 이어진 모양을 갖추고 있다. 손과 손의 연결은 인도주의를 상징하고, 노랑과 초록색은 브라질을 의미한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올해 하반기 최대의 국가적 이슈는 인천아시안게임이다. 아시안게임 외에도 녹색기후기금 GCF 사무국 유치,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등을 모두 책임져야 할 인천시는 도시 디자인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경기를 펼칠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은 인천의 지역 특성을 잘 살려 디자인했다. 공식 엠블럼은 바다를 상징하는 물결이 바람과 함께 움직이는 것을 형상화했다. ‘빛을 담다’, ‘바람이 분다’, ‘춤을 춘다’의 세 가지 콘셉트가 반영되어, 자연스레 ‘승무’를 떠올리게 된다. 서쪽의 연희공원과 북동쪽의 경명체육공원을 연결하는 청라지구의 녹지를 활용하는 네트워크 콘셉트는 대회 이후에도 인천이 스포츠의 중심지로 자리 잡을 경기장의 미래를 쉽게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주경기장의 설계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대회 중의 동선 배치와 대회 후의 활용도였다. 고베 유니버시아드의 성공 사례를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주경기장 설계를 총괄한 (주)희림 종합건축사무소의 정영균 대표는 “경기 후에도 주민들의 복합문화시설로 활용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한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세계 최대의 수도권 매립지인 인천 서구 백석동 부지에 3개의 친환경 경기장을 건설하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의 골프, 수영(수구), 승마, 근대5종 등의 네 개 종목이 이곳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골프 경기가 열리는 드림파크CC 부지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9년 동안 6천5백만 톤의 쓰레기를 매립한 곳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559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서 생태공원을 겸한 친환경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원래 이곳은 늪지대였는데, 쓰레기로 매운 후 다시 흙을 덮고 잔디와 나무를 심어 새로운 친환경 공간으로 개발한 것이다. 일반 부지에 골프장을 세우려면 수목과 토양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데, 늪지대였던 공간에 쓰레기로 지반공사를 벌인 후 새로운 땅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환경문제에서 오히려 모범사례로 꼽힐 수 있는 것이다.
구월 아시아선수촌 역시 친환경 공간으로 호평 받고 있다. 단지 전체의 30%에 이르는 21만 5천㎡를 공원으로 조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린벨트의 녹지를 최대한 그대로 활용해서 자연 훼손을 피했다. 단지 안에는 기능성 무기질 도료 등 친환경 건축자재를 사용했다. 또한 지열과 태양광 발전 등 대체에너지를 적극 활용하고 저전력 조명과 외출 시 일괄소등, 스마트폰을 사용한 조명기구 원격제어 등의 첨단 기술도 적용됐다.





무한한 스포츠디자인의 영역

스포츠디자인의 영역은 시각, 제품, 환경, 공예 등 매우 다양하고 계속 넓어지고 있다. 먼저 시각디자인 영역이 있다. 2D로 이루어지는 디자인인데 엠블럼이나 마스코트, 픽토그램, 포스터가 대표적이다. 제품디자인도 큰 영역을 차지한다. 스포츠선수를 위한 신발, 의상, 경기도구 등이 스포츠 제품디자인 영역에 해당한다. 엄격한 검증과 표준화가 전제된 상태에서 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인간공학적 기능성이 중요하다.

셋째로, 공간과 환경디자인이다. 축구나 펜싱에 필요한 공간의 성격은 다를 수밖에 없다. 목적에 최적화하는 건 물론이고, 경기 이미지와 성격까지 반영한 내부 인테리어를 아우르는 경기장 디자인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회가 임박하면 분위기를 제고하는 환경장식물도 디자인해야 한다. 선수와 관객의 편의성을 고려한 현수막, 배너, 경기장 안내판 등을 디자인한다. 정리하자면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공간디자인의 세 가지 기본에 환경장식디자인이 추가되는 3+1 부문이 스포츠디자인의 기본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디자인은 대회의 개최 의도와 개최지의 특성 등 정확한 의미전달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매개체이다. 엠블럼 없이 대회의 성격이나 이름을 알 수 없듯이 요즘엔 스포츠이벤트의 상업적인 규모도 계속 커진다. 경기는 경기 자체로 중요하지만 선수들끼리 승부를 겨루는 걸로 끝날 순 없다. 스포츠팬과 국민들에게 대회를 설명하고, 분위기가 고조되도록 이끄는 것 역시 스포츠디자인이 할 일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스포츠대회도 디자인 없이성공할 순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스포츠 대회 디자인은 어느 정도에 이르렀나요?

2000년대 초반까지도 미진한 상태였죠. 물론 86아시안게임이나88올림픽의 마스코트 등 제한된 영역에선 수준급 결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프로스포츠가 활성화되면서 관련 산업이 함께 성장한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황이죠. DDP가 오픈하면서 스포츠디자인 기획전을 열었죠? 거기 가서 보면서 우리의 발전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할 때도 FIFA는 아시아의 스포츠디자인 능력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도 스포츠디자인을 담당하셨군요?

그렇습니다. 한일월드컵의 공식 포스터는 별도로 있었고, 경기가 이루어지는10개 도시의 별도 포스터를 모두 만들어야 했습니다. 전부 우리 디자인 능력으로 만들었습니다. 공식 포스터를 만들 때는 일본과 충돌이 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각자의 이미지를 넣기 위해 엄청나게 다퉜습니다. 우리는 호랑이와 남대문을, 일본은 후지산과 기모노를 넣으려는 식이었죠. 경기장을 조감도처럼 내려 보면 일장기가 연상되지 않을까 우려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측면에서 바라본 경기장의 역동적인 모습을 스케치했더니 우리 내부 판단에선 우리나라의 방패연과 유사했습니다. 외부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죠. (웃음)


스포츠디자인 개발과정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어디에 필요한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 내용이 무엇인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기본계획을 세우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콘셉트가 뭔지 도출해야 합니다. 이건 제품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대형 스포츠이벤트에선 개최지가 어디인지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걸 기본적으로 고려한 후 스포츠의 역동성을 추가하는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인천아시안게임의 엠블럼은 아시안게임의 A, 사람 인(人)자, 인천대교의 세 가지 이미지를 함축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어떻게 조합할지 다양한 방법으로 시뮬레이션 했습니다. 운동감과 의미 전달에 가장 좋다고 판단하여 현재의 엠블럼을 선택하고,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태양을 향해 비상하는 종합적인 이미지를 완성했습니다.

마스코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스코트는 개최도시를 대표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요소가 어떤 게 있을지 언론인, 문화인, 향토사학자 등 40여 분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 내놓기 적합한 소재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차에 문학경기장 앞에서 만난 기자가 백령도 앞의 물범을 못 봤느냐고 묻는 겁니다. 뭔가가 딱 오더군요. 다른 나라가 물범 이미지를 이미 사용하지 않았는지 조사해보니 다행히 그런 자료는 없었습니다. 물범에 대해서도 알아보니까 발해만과 백령도를 오가는 겁니다. 남북을 오가는 습성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물범을 포함한 세 가지 후보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역시 후보였던, 입이 넓적한 저어새는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의 마스코트로 결정됐습니다. 지역의 대표성과 상징성을 고민해서 개발해야 하는 거죠. 다행히 엠블럼과 마스코트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회가 끝나면 디자인은 무엇을 남길까요?

지난 88서울올림픽은 모든 국민의 가슴에 자부심을 남겼습니다. 
인천아시안게임도 시민들에게 대회를 유치하고 진행했다는 자긍심을 남겨야 합니다. 도시 인프라가 시민의 삶에 의미있는 생활공간으로 남는다면, 디자인은 자긍심의 상징으로 삶에 기여할 겁니다. 또, 디자인이 아시아인에게 인천이란 도시의 좋은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인지도를 향상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합니다.


국제 스포츠이벤트의 스포츠디자인 과정도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방식대로 디자인의 기획과 개발이 진행됩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견해를 모아 검증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어느 정도 개발이 완료되면 보안을 유지하면서 국내, 국외 특허를 검토합니다. 아시안게임은 2008년에 개최가 확정되었고, 2009년에 디자인 마스터플랜을 세웠습니다. 2010년 초부터 디자인 개발을 시작했으며 11월 초에 OCA 승인이 나오고 정식 등록을 마쳤습니다. 가장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디자인의 영역은 엠블럼, 마스코트, 픽토그램, 포스터, 시상 및 성화 부문, 환경장식 등 매우 다양합니다.2010~11년에는 엠블럼과 마스코트, 픽토그램, 포스터를, 2012~13년에는 시상 및 성화 부문을, 2013~14년에는 환경장식을 개발했습니다. 최근에 시상대나 메달을 개발했다는 보도는 제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디자인은 2D로 개발되고,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는 또 시간이 필요한 거죠.


처음부터 스포츠디자인을 하신 건 아니죠?

원래는 광고회사에서 10여 년간 전자 계통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일하면서 2002 한일월드컵 조직위원회 사업국 디자인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포츠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분야로 할 일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FIFA와 함께 일해 보니 우리가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그래서 공식 포스터에도 우리의 것을 반영하려고 하고, 경기장 환경 장식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유럽에선 간단한 현수막 정도를 활용하는 등 환경장식이 단순했습니다. 그래서 경기장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어떻게 장식하고 사용할지 메뉴얼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만들었던 메뉴얼이 지금의K리그 등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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