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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또 다른 언어 전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은 동시대 미술의 맥락에서 디자인 장르의 해석을 시도한 <디자인; 또 다른 언어>(Design; Another Language)전을 신설된 디자인 상설전시실(과천관 2층 상설전시관)에서 개최한다. 오는 2014년 2월 23일(일) 까지 열리는 본 전시를 통해 그래픽디자인, 가구디자인, 광고디자인, 패션디자인 등 디자인 분야 전반을 아우르는 엄선된 작품 100 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본 전시는 오랜 시간 공유해온 일상적인 사물을 새로운 조형 언어로 재창조하여 발전시킬 수 있음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를 잘 보여주는 한국국적의 디자이너 10인이 참여했다. 참여 작가 고만기, 김영나, 김한규, 김희원, 박원민, 이은재, 이정은, 이제석, 잭슨홍, 최정유 (가나다순) 10인은 2013년 국제 디자인계가 주목하는 신진 디자이너들이다. 개별 전공과 작업 성향에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지만, 사물을 재해석하는 방법론적인 독창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독자적인 디자인 학예 연구와 소장품 특화를 고려하여, 각 디자이너들의 대표작 가운데 독창적인 접근의 변형이나 발전 가능여부를 사전 검토하고, ‘동시대성’을 반영하는 새로운 작업을 작가들에게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참여작가 10인은 본인의 전공분야에 그래픽, 가구, 광고, 패션 등의 분야를 접목하여 동시대 디자인 분야가 실험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의 신작을 출품했다.
그래픽/타이포그라피 디자이너 김영나는 종이의 정형화된 규격에서 착안한 ‘A 시리즈 테이블’을 선보였으며, 디자이너 김희원은 인테리어와 사진을 접목하여 ‘인터렉티브 거울’을 출품했다. 또한 자동차 디자이너로 활동경력이 있는 잭슨홍은 휴식공간에 놓이는 ‘라운지 의자’를, 산업디자인과 금속공예를 전공한 고만기 작가는 움직이는 쇼핑카트 ‘로킷’을 선보였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어떤 물체(objet)가 이미 눈에 익숙해져 죽어버린 사물이 아닌, 참신한 디자인 작품으로 재해석되는 흥미로운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오랜 시간 정형화된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이 디자인을 통해 색다르게 정의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존의 과천관, 덕수궁관과 함께 서울관(2013년 11월 개관 예정), 청주관(2015년 개관 예정)을 순차 개관하여 4관 체제를 맞이하게 된다. 미술관 규모의 팽창과 함께 동시대 시각예술문화의 다양한 장르를 보다 폭넓게 수용할 수 있도록 전시공간을 주제별로 정리 중이다. 이러한 비전의 일환으로 과천관의 상설 전시공간을 대규모 개편한 결과, 사진, 미디어, 공예, 건축 부문 상설 전시실에 이어, 본 전시를 시작으로 디자인을 위한 전용 상설 전시공간이 마련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향후에도 미술관을 찾는 다양한 관람객들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도록, 동시대 미술의 맥락 하에서 장르 융합적인 전시를 지속적으로 선보여 나갈 예정이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www.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주요작품

 

 


Δ 고만기 (1978-) / <로우 킷> / 2013년 / 스테인리스 스틸

 

산업디자인과 금속공예를 전공한 작가 고만기 (1978-)는 2009년부터 금속과 기계와의 접점에서 제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종류의 키네틱을 이용한 금속디자인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금속물질을 활용한 장신구의 영역을 넘어 기능적이고 움직임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기능을 가진 사물들을 제작하였다. 그 예로 금속을 가공할 수 있는 소형 금속가공기계, 여러 종류의 부품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기능을 나타내는 조명과 공구, 오브제들이 있다.
이번 작품 <로킷>또한 인간의 새로운 ‘조립식 이동 수단’ 에 대한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6천 년 전의 원형 바퀴, 250년 전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얻게 된 동력, 50년 전 대량생산으로 생겨난 슈퍼마켓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이동의 방법과 사물의 환경을 은유적으로 해석한다. 바퀴가 달린 테이블이나 의자 등에 <로킷>의 유닛들을 장착하면 사람이 타고 이동할 수 있는
‘탈 것’으로 변신할 수 있다. 무거운 축전지나 거대한 모터 따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으며, 원동력은 가정에서 흔히 쓰고 있는 충전식 핸드 드릴이면 충분하다. 이러한 부품들의 응용으로 발생이 가능한 동력의 전이를 실험하며, 대량생산과 양산화에 가려진 ‘마이크로 팩토리’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한다. 가공되지 않은 공산품과 기계부품들의 재정렬과 조립을 통해 새로운 동력 이동 장치인 <로킷>을 제한안다.
*정회전과 역회전, 저속 회전과 고속 회전의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충전식 핸드 드릴이라면 저속 주행과 고속 주행, 후진도 가능한 ‘탈 것’으로 변신할 수 있다. 충전식 핸드 드릴은 한 번 충전으로 보통 20분 정도를 최고 속력으로 구동 할 수 있으며, 여분의 배터리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는 배터리 두 개를 가지고 사람이 가볍게 뛰는 속도로 대략 5km 정도를 이동하고도 남는 전기 용량으로 환산될 수 있다. 속도와 거리는 충전식 핸드 드릴의 스펙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로킷>은 쇼핑카트 콘셉트로 기획되었다. 쇼핑 카트는 기본적으로 바퀴가 달려 있고,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있도록 내구성이 갖추어져 있으며, 넉넉한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로킷>을 장착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바퀴가 달린 것들은 무수히 많다. 이제 <로킷>과 ‘충전식 핸드드릴’만 있으면 그 많은 것들을 타고 다닐 수 있다.

 

 

 

 

 

Δ 김영나 (1979-) / Table A 연작 / 2013 / 금속. 분체도장

 

갖고 싶은 것과 만들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 (1979 -)가 만든 Table A는 자이너가 갖고 싶은 것과 만들 수 있는 것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종이에서 파생된 Table A: 0, 1, 2, 3, 4는는 제 이름처럼 일목요연한 규칙을 실행하지만 동시에 이 규칙들을 가지고 노는 김영나의 이중 어법이기도 하다. 규칙 안에 숨은 교란은 A 시리즈 종이의 용법을 따르는 테이블의 단순한 형태로 인해 쉽게 실체를 드러내지는 않다. 김영나는 A4, A3, A2, A1, A0에 이르는 일련의 A 시리즈 규격으로 각 종이 사이즈에 상응하는 테이블을 디자인했다. 국제 표준화 기구(ISO: 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Standardization)에서 정의하는 가장 널리 쓰이는 종이 사이즈의 표준은 ISO 216으로, 이는 독일 공업 규격 위원회(DIN: Deutsches Institut fuer Normung)의 기준에 바탕한 것이다. 학교와 사무실, 가정용 프린터에 춰진 A 시리즈는 거의 모든 서류와 인쇄물 형태와 질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A0는 841x1189mm, A1은 594x841mm, A2는 420x594mm, A3는 297x420mm, A4는 210x297mm의 크기로 규격된다. 여기서 1mm라도 벗어나면 종이는 표준화의 세계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다른 물질이 되어버린다. 설정된 종이 사이즈에 1:1로 대응하는 테이블의
상판을 입체물로 세우기 위해 김영나는 A 시리즈의 평면을 지탱하는 다리 프레임의 높이를 자의적으로 결정한다. 규격을 다르게 변주해내는 파격은 규격 용지와 테이블 사이를 경쾌하게 오간다. 이는 표준에 입각한 비-표준화의 작업이다. 여기서 김영나가 세운 입각의 법칙은 편평한 A4 시리즈 종이 판형의 규격을 입체의 구조물로 치환하는 것이다. 김영나가 작동시키는 변주의 법칙은 A시리즈 종이 판형의 존재 조건을 일면 그대로 따르는 데에서 시작한다. 가로 세로 일정한 비율을 가진 사각형의 종이 판형은 철제 상판의 규격이 되며, 각각의 규격-시리즈는 철제 상판의 형태를 조금씩 변형하며 테이블 시리즈를 이룬다. Pantone(팬톤) 사에서 제작한 선명한 색채들로 상판의 앞뒤를 도색한 테이블은 거대한 색/종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페인트 컬러 자체이기도 하고, 아무런 기호가 덧입혀지지 않은 텅 빈 종이 같기도 하다. 무늬 없이 테이블 전면에 꽉 차게
드러나는 팬톤 색채는 그래픽 디자인의 기본이며 결정적인 ‘재료’로서의 색채를 가시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A 시리즈의 규격 종이가 따로 또 같이 떨어져 변주된 비율의 연합체를 이루듯이 김영나의 테이블 A는 종이 매체나 인쇄물 이상의 기존 법칙을 통과하며 김영나 만의 필터링을 거친 매우 독자인적 테이블로 구성되었다.

 

 

 

 

 

 

Δ 김한규 (1985-) / <희(喜)> / 2013년 / 황동, 피엠엠에이( PMMA), 엘이디(LED)

 

김한규 (1985- ) 는 미래보다 과거를 탐닉한다. 이런 시야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위한 디자인을 생각한다. 또한 다소 모호한 아웃라인, 또는 획일적이지 않는 형태를 생각한다. 어찌 보면 특별할 수도 있는 이런 형상은 공예의 영향이 크다. 김한규는 공예가 가진 비획일성과 비규격화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고 있다.
조명작품 <희>는 한자의 기쁠 희(喜)를 뜻하며, 빛날 희(熙)의 뜻을 함께 포함한다. 다채로운 색상이 함께 뒤섞인 작품 <희>는 한국의 단청이 지닌 색상의 조화와 구성,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진 미묘한 빛의 광원을 좀 더 단순하면서도 평면적인 구성으로 시도하였다. 다양한 빛의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엘이디(LED)와 빛을 맺힐 수 있는 피엠엠에이(PMMA)를 이용한 <희>는 평면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색상 및 레이어의 조화를 이룬다. 이 디자인은 전통적인 기술과 이미지를 이용한 생산이 가능하도록 수공업과 컴퓨터 기술이 함께 어우러져 일종의 ‘엔지니어링-크라프트’ 로 설명되며, 미묘한 패턴과 재료의 감도로 기존과는 다른 빛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든다. 스테인드글라스와 단청과도 같은 미묘한 색채의 조화와 패턴,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아 그것들과는 비슷한 이미지를 갖지는 않지만 좀 더 평면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재구성되어 있다. 이런 영감은 과거의 어떠한 이미지와 유년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투명한 원통의 형태안에 다양한 색의 피엠엠에이(PMMA) 브릭을 심어서 각각의 덩어리를 돌려가며 새로운 패턴과 색채의 미묘한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이는 마치 마술쇼에서 행해지는 분리마술, 한 면의 색을 같은 색으로 맞추어가며 노는 큐브와 비슷하며, 이런 행동은 우리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처럼 일종의 ‘수동적 낭만’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기둥을 돌려가며 그 안에 심어진 다양한 색의 피엠엠에이(PMMA)의 변화와 왜곡을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데, 고정적인 조명을 살아있는 시스템으로 변형하여 고립된 재료를 매혹적이고 움직이는 독립체로서 인지하고 사용자와 물질의 관계에 생명력을 부여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 디자인의 유기적인 감각, 표면 그리고 개념을 통해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위트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으로 우연히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사물로 이끌어내고, 더 나아가 기존의 디자인에서는 볼 수 없는 단순한 경이로움을 연출해낸다. 이로써 불빛의 밝혀주는 기능 그 이상의 새로움의 시작을 전달하고자 한다.

 

 

 

 

 

Δ 김희원 (1982-) / <흔적 – 거울> / 2013년 / 하프미러, 사진, 센서

 

사진과 공간을 탐구하는 디자이너 김희원 (1982- ) 은 이번 전시에서 흔적이라는 사물과 공간의 개연성을 보여고주자 한다.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 속에서 변하는 것들은 추억이 된다. 추억은 익숙함으로 서서히 희미해지며 우리의 기억에 잔함잔으로 남겨진다. 시간은 다시 흘러 익숙해진 것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고, 이제는 그 속에 새로운 것들이 자리잡는다. 김희원은 공간과 흔적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하여 사물과의 대입에서 발생되는 사건들의 오버랩과 시공간의 차이점을 오브제로 표현한다. 이렇게 흔적은 우리 삶 속에 가장 잔잔하게 스며들어 존재하지 않은 듯 존재하게 된다 <흔. 적>은 우리의 삶 속에 남아있는 잔잔하고 깊은 흔적들을 다시 재조명함으로서 이들이 삶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실제와 허구 사이에서 존재하는 공간 속의 또 다른 공간을 흔적들로 전달한다.

 

 

 

 


Δ 박원민 (1982-) / 희미한 연작 - 흰색, 회색 그리고 남색 / 2013년 / 수지

 

2012년 첫 선을 보인 희미한 연작 I은 화려한 색상과 차분한 형태로 국제 예술 디자인계에서 많은 이슈가 되었던 작품이다. 이번 2013년 희미한 연작 II에서는 동양의 밀도 높은 차분함을 표현하려 하였다. 박원민 (1982-)의 이번 신작은 동양의 수묵화 이미지와 중첩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무채색과 명도에 대한 기준을 다양하게 접근시켜 고요하고 편안한 느낌을 오브제로 전이시켰다. 주위 환경의 많은 이미지들로부터의 혼란과 장식과 스타일의 복잡함을 역설적으로 풀어낸다. 박원민은 한가지 단어로 정의 될 수 없는 색채와 균형과 비율의 느낌을 여백과 비움, 절제의 미를 통해 이야기 한다. 색채와 형태를 최대한 간소화 하여 동양의 미, 수묵화의 고요하고 깊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흰색, 회색, 남색을 사용하되 각기 다른 색상, 명도, 채도(색의 3속성), 투명도, 텍스쳐에 따라 모두 다른 흰색과 회색 남색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대칭이고
불균등한 형태는 색에 의해 조화되며 균형감을 얻게 되고, 작품에 긴장감을 주게 된다. 형태는 재료의 물성과 만들어 지는 과정, 용도에 기반하여 최대한 간결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주 재료인 레진(resin)의 색을 과정마다 달리하였기에 색은 곧 만들어 지는 과정과 연결 부분을 나타낸다. 작가는 작품이 만들어 지는 특유의 과정을 결과로 반영하고 싶었으며, 이 과정은 색과 투명도, 텍스쳐, 형태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작품에 활용 되었다. 이번 작품 <희미한 연작>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것들과 머릿속에 담아왔던 색과 비율,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다른 투명도와 색상, 명도, 채도를 갖게 되며, 재료의 투과도와 텍스쳐에 의해 시시각각 색이 바뀐다. 즉, 색상과 명도, 채도, 투명도와 질감을 절제된 방식대로 활용하여 다양한 효과를 표현하며, 공간 속의 빛과 환경에 따라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지루한 느낌을 주는 일정하거나 정형화된 형태를 배제시키며 비대칭, 비균형적 형태에 색을 통해 균형감을 부여한다. 이번 새롭게 선보이는 회색 희미한 연작 8점은 소재와 형태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몽롱하게 표현해 준 작품들로서 액체에서 고체화 되는 과정과 캐스팅하여
접합되는 제작과정들을 보여주며 고요함과 편안함, 그리고 균형감과 긴장감을 표현하고 있다.

 

 

 

 

 

Δ 이은재 (1981-) / <침묵하는 기계 #02 – 조립> / 2013년 / 도기, 유약, 황동
Δ 이은재 (1981-) / <침묵하는 기계 #02 – 분해> / 2013년 / 도기, 착색, 알루미늄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작가 이은재 (1981-)는 기계와 인간의 접점에 대한 고민으로 시대의 주역으로 기록된 기계라는 이들을 향한 존경과 경외의 마음을 담아 이를 디자인의 방법으로 기념하고자 한다. 인공물의 수학적인 실루엣과 디테일들은 장식적이기보다 기계적이며, 엄격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들이 창조해낸 정교함과 기하학적인 형태는 현대 디자인의 모체가 되었고, 새로운 미의 개념을 이끌어냈다. 아름다움에 대한 단상에서 시작한 침묵하는 기계 #02는 다분히 기능적인 형태들을 미학적으로 해석하여 다시 기능을 부여한 작품이다. 이은재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가 자아낸 묵은 가치들을 끌어내 현재의 감성으로 재구성하고, ‘분해’와 ‘조립’이라는 두 가지의 상황을 설정하여 오브젝트들의 기능과 아름다움을 재조명해 본다.
침묵하는 기계 #02 는 크게 다분히 기계적인 행태인 조립과 분해의 두 가지 장면으로 보여진다. 먼저 기계를 분해해서 늘어놓은 듯한 부품들의 집합이 있다. 정교한 디테일과 완벽한 조합이 이루어낸 기능의 온전함은 사라지고, 순수한 형태로 남아있다. 개별 오브젝트들은 그 자체만의 형태와 컬러, 질감으로 존재한다. 기하학적인 패턴과 수학적인 디테일은 장식적이기 보다 기계적이며, 엄격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조립되고 있는, 또는 조립된 모습이 있다. 하나하나의 개체들은 제자리를 찾아 합체되고 비로소 완전한 기능을 부여 받은 듯 하지만, 사실 이들은 설계에서부터 그 기능에 최적화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조립과 분해의 기계적 행동은 차를 마시며 이루어지는 내면의 경험과 관계하여 새로운 유희로서의 가능성을 잠재한다. 단순한 기물이 아니라 차를 마시는 시간을 통한 ‘소통’과 ‘나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티 세트인 침묵하는 기계 #02는 다분히 기능적인 형태들을 미학적으로 해석하여 다시 기능을 부여한 제품이다. 분해된 기계의 부속품 나열과 같은 이미지 속에서 개별 오브젝트들은 기능을 상실한 채 부품 하나하나의 형태와 질감, 색감으로만 보여진다. 직선, 원 등 반복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과 수학적인 디테일들은 기계가 아닌 수작업으로 재현되었다. 각각의 개체가 독립적으로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드러내지만, 제자리를 찾아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속으로 기능할 때 비로소 그 아름다움도 정체성을 찾게 된다. ‘조립’된 개체들은 차를 마시기 위한 器기로서의 기능을 하며 형태는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Δ 이정은 (1984-) / <누에 #02 – 선> / 2013년 / 혼합 합성섬유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거쳐 널리 보급되어 있는 방법인 직물을 패턴조각으로 잘라내어 봉제과정을 거치는 것이 가장 실용적이고 효율적이다. 누에#02는 이러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개량된 방법이라기보다는 '옷'이라는 제품을 만드는 하나의 또 다른 생각과 시도를 보여주기 위한 접근법이다. 섬유 그 자체가 곧바로 자유로운 형태의 2차원, 3차원 형태의 옷 또는 사물로 탈바꿈한다. 텍스타일의 전혀 다른 성격을 통해 제작된 이 의상은 단일섬유와 열만으로 완성될 수 있다. 이 기술은 섬유에서 직물을 만드는 과정과 패턴제작, 재봉 등 직물에서 옷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단축시키기 때문에 재료가 남거나 손실되는 일이 덜하다. 이정은 (1984-)은 일본에서 제품디자인을 공부할 당시부터 의상을 만드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 왔었으며, 누에 작업을 위해 기초원료인 섬유에서부터 의상을 만드는 과정을 다시 생각했다. 주로 플라스틱 성형과정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액체 상의 플라스틱은 틀에 주입 할 수 있고, 그 후 3차원적인 모양으로 자유롭게 변형시킬 수 있다. 작가는 현재 천연 소재 등을 이용 할 수 있는 성형방법과 보다 다채로운 표정과 감촉을 가지는 소재의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 그림을 그려나가듯이 더해져 가는 길고 짧은 실들은 옷이라는 하나의 형태에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열처리된 합성섬유들은 열과 압력을 가하는 과정을 통해 프로젝트의 이름처럼 누에가 스스로 실을 토해 제 몸을 둘러싸서 짓는 누에고치와 같이 이음매가 없는 한 벌의 옷으로 완성된다. 새로운 디자인의 결과물로서의 옷이 아닌 누에 #02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나타내고, 남겨지고 겹쳐진 실들의 선적인 요소는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누에 #02 시리즈는 사람이 입지 않은 상태에서도 옷으로 보여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추구하고 다른 옷에서는 볼 수 없는 불가능한 곡선까지 살려 만들어졌다. 조금은 과장된 듯한 크기는 신축성이 덜한 소재의 특성상 착용시 몸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도록 옷과 인체의 사이에 공간을 남기기 위함이다. 겉보기에는 딱딱해 보이는 질감과는 달리 착용시 예상치 못한 부드러운 촉감과 그에 따른 실루엣은 의외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이러한 기술은 기본적인 제작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방법과 연구가 바탕이 되었으며, 창조적인 제품까지도 적용이 가능하여 여러 가지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Δ 이제석 (1982-) / 숨지 마세요 (마약 치료 상담 전화 129) / 2013년 / 인체모형

 

이제석 (1982-)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그것을 표현하는 오브젝트와의 연관성, 예상치 못한 반전의 역습을 통해 관람객들과 소비자들에게 시각적인 충격에서 논리적인 합리성으로의 변환을 보여준다. 잘 다듬어진 이미지보다 원초적이고 대중적인 이미지들의 활용과 시적인 은유를 통해 감각과 논리를 교차시키고 새로운 자극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평범한 한 장의 이미지가 어디에 어떻게 걸리는가에 따라 평면이 입체가 되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평면에서 입체로 풀어내는 대입법, 다른 사물들끼리 부딪히는 과장법을 통해 은유적인 텍스트를 머릿속에 상기시킨다. 이는 곧 3차원 입체물이 전달하는 새로운 형태의 메시지이다. 하나의 더미가 누추하게 웅크리고 있는 ‘숨지 마세요’ 작품은 마약치료상담 129를 위한 작품으로 테스트 과정 속에서 실제 행인들에 의해 파손이 되고 예기치 못한 공간 속에서 사람의 형태를 지녀 문제가 되었었다. 이 마네킹이 던져주는 자극과 이야기들은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는 인간의 피폐함과 감정 조절을 못하는 사람의 심리를 3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또한 ‘에너지’ 라는 쓰레기통과 심슨화분처럼 하나의 고정관념과 기억된 이미지가 실제 모델로의 변이과정을 통해 유머러스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가상과 실제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텍스트를 논리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특히 작가는 만들어진 작품들의 결과물을 그대로 재현해 보여주는 것 보다는 대중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대표작들 속에서 어쩌면 일반 대중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이미지들을 더 부각시켜 보여주고자 한다. 산, 총, 양, 새, 입 등 작업에 쓰인 소스들을 단순히 모아서 단순히 나열하고 있을뿐이다. 단순한 그림 한 장이나 사물이 늘 어딘가에, 즉, 벽에, 계단에, 문짝에 놓여질 뿐이다.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작품 밖의 외부 공간과 소통하며 새롭게 만들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이다. 평범한 한 장의 이미지는 어디에 어떻게 걸리는가에 따라 평면이 입체가 되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쉽게 대상에 대한 편견을 갖기 마련이고, 종종 그 시각이 절대적이라고 믿는다. 작품에서 말하는 '가치' 나 '의미' 라는 것은 결국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점과 주어진 환경에서 어디에서 어떻게 활용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Δ 잭슨홍 (1971-) / <슬래시 체어> / 2013년 / 금속판, 분체도장

 

슬래쉬 체어는 다양한 휴식공간에 놓이는 라운지 의자(lounge chair)로서, 비스듬한 선 모양의 문장 부호인 ‘슬래쉬(slash)’에서 착안하여 사선의 형태 및 구조가만들어졌다. 또한 슬래쉬 체어는 1.6mm 두께의 얇은 강판을 절곡하고 교차시킨 형상을 갖는데, 이는 사람의 몸이 닿는 의자이기에 피해야하는 속성인 ‘예리함’ 과‘서늘함’의 정서를 제공하며, ‘슬래쉬(slash)’가 지닌 다른 의미인 ‘베어서 자르다’의 의미와 상응하기도 한다. <슬래쉬 체어>는 기계에 의해 절곡 가능한 한계치를 각 부품 간의 용접 분할선을 통해 반영하는데, 이는 대량생산의 흔적기관으로서, 기술자 개인의 숙련도 같은 덕목과는 정일한 거리를 두고 있다.
미니멀리즘 미술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는 “좋은 전등 찾기 참 힘드네 (It’s Hard to Find a Good Lamp, 1993)”에서, 가구를 디자인함에 있어서‘미술가적 태도’가 야기하는 문제를 제기하며 디자인과 예술의 근본적인 차이를 주장했다. 이에 디자인 평론가 릭 포이너(Rick Poynor)는 “예술의 동생(Art’s Little Brother, 2005)”에서 반론을 제기했는데(엄밀히 말하면 반론이라기 보다는 보충이다), 이 시대의 다양한 미술 분과 중에서 전통적인 조각과 같은 ‘구식’ 미술의 영역이야말로 앞으로 디자이너들이 점령해야 할 영토이므로 저드와 같은 원론적인 입장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이너는 디자인 가구들이 미술상품들의 대체재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는데, 현재 우리의 실내 환경의 추이를 관찰하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모자상이나 목재 말구유보다는, 이를테면, 콘스탄틴 그리치치(Konstatin Grcic)의 의자가 집주인의 ‘동시대적인’ 취향을 과시하기에 적당하며(물론 기품있는 취향과는 거리가 있다), 심지어 가격도 비교적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결국 ‘의자’라는 호칭은 사물 분류의 한 항목을 벗어나 조각품을 실내에 들여놓기 위한 알리바이로 기능한다. 사물의 유용함을 강조하는 준엄한 전후의 관행은 해당사항들이 기술에 의해 평준화되면서 자취를 감추고, 실내 혹은 실외의 특정 ‘분위기’의 질서에 쉽게 편입될 수 있는 장식적 소품으로서의 역할이 중시되고 있다.
<슬래쉬 체어>는 이러한 경향 –장식미술로서의 가구 –에 충실히 순응한다. 이 의자의 기본 형태는 사람이 적당히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물리적 수치를 알리바이로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했고, 그 구성은 재인용의 계보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그리고 세부적인 부분에서 약간의 시각적인 탐닉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몹시 잉여적이고 비언어적이기에 충분히 동시대적 가구로 불리울 수 있을 것이다.

 

 

 

 

 

 

Δ (우측 뒤)최정유 (1982-) / <습관 – 선의 반영> / 바구니 / 2013년 / 대나무
Δ (우측 앞)최정유 (1982-) / <습관 – 선의 반영> / 바구니 / 2013년 / 실, 수지
Δ (좌측)최정유 (1982-) / <습관 – 선의 반영> / 바구니 / 2013년 / 황동, 벼과 식물
Δ (하단)최정유 (1982-) / <습관 – 선의 반영> / 러그 / 2013년 / 실, WSDO Nepal과 협업

 

최정유 (1982 -)는 다름과 새로움을 찾아 떠난 네팔의 생경한 환경과 시간에 맞춰 석 달 동안 나름의 일상과 리듬을 찾아가며 그만의 언어를 다듬어 갔다. 무의식 중에 불쑥불쑥 자신의 습관들, 자신과 가까운 색, 자신과 가까운 선, 자신과 가까운 형태, 감정, 그리고 그 동안 자신을 표현해온 익숙한 방법들이 바꿔져야 하는 습관이 아닌 지켜야 하는 습관임을 인정하고, 이를 낯섦에 녹여 친근한 습관으로 풀어내는 연결고리를 찾아간다. 그 연결 고리 중 하나는 '선'이다. 오브제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인 점, 선, 면은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이다.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그 선들이 모여 면이 되고, 그 면들이 모여 오브제를 이루는 규칙과 불규칙 안에서 수많은 변형이 이뤄진다. 이런 반복은 작가의 일상과 닮아있다. 선에 집중한 부분은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며, 차곡차곡 실들이 쌓여가고, 규칙을 만들며,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것이 지금의
작가와 가장 닮은 소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습관 – 선의 반영>은 오브제의 구성요소인 점, 선, 면 중 선을 반복적으로 이용하여 작업한 결과들이다. 친근한 자연에서 시작된 부드러운 선은 여럿이 포개져 볼륨과 힘을 가지며, 또 다른 재료가 되어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표현한다. 유기적인 선은 드로잉과 같은 회화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하고, 규칙적인 선의 집합은 면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된다. 작가는 네팔 현지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그들의 기술, 즉 인간의 기술을 빌어 기능을 창출한다. 하지만 네팔의 전통 색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한국의 전통기법을 응용하지도 않았다. 습득한 논리와 감성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자연재료의 특성만을 응용하였다. 디자이너의 습관이 녹아 든 오브제는 결국 사용자에 의해 완성될 그들의 습관이 반영될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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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디자인 또다른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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