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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 _ 장진택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


자동차 디자이너를 만날 때마다 물었다. 요즈음 트렌드가 뭐냐고. 예전에는 헤드램프가 이러저러해 지고, 라디에이터 그릴은 이렇고 저렇고, 사이드 라인은 어쩌고 저쩌고 등, 뭔가 일련된 경향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신통한 대답이 없는 가운데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라는 모호한 답변이 들린다. 원인은 인터넷, 세계 교역, 그리고 자동차 포화다.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나올 차까지 볼 수 있고, 그게 마음에 들면 배나 비행기로 들여와 탈 수 있고, 게다가 차 만드는 회사는 많고 살 사람은 점점 줄어드니, 세계를 무대로 모두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사람들은 개성, 취향, 자기 표현 등을 내세우며 보다 특별한 차를 찾고 있다. 그래서 모든 차들이 점점 특이해 지는 거고,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라는 얘기까지 나온 거다.


작금의 자동차들은 특이해지기 위해 ‘그들만의 무엇’을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우선 자신을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문장(紋章)이 점점 커지는 걸 볼 수 있다. 볼보의 경우 전면에 붙은 아이언 마크의 크기를 2배 정도 늘렸고, 후면에 ‘VOLVO’라고 쓰인 영문을 띄엄띄엄 널찍하게 붙였다. 렉서스도 이전보다 크고 윤이 나는 앰블럼을 앞 뒤에 붙이고 있다. 알고 보면 혼다의 H로고나 현대의 H로고도 이전보다 약간이나마 커졌다.



그림 1. (왼쪽) BMW 739Ld, (오른쪽) BMW 7 시리즈 뒤

자신만 할 수 있는 것, 자신만 갖고 있는 것이 많은 브랜드들은 더욱 강하게 ‘그들만의 무엇’을 내세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BMW다. BMW만의 둘로 나뉘어 있는 키드니 그릴은 최근 몇 년 사이 크기가 커지고 있다. 둥근 헤드 램프를 좌우에 각각 두 개씩, 그것도 모자라 각 램프에 코로나 링이라 불리는 둥근 원형 램프를 넣었다. 밤에도 BMW라는 걸 강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측면에는 부메랑 모양으로 뒷 문짝 뒷 부분을 날렵하게 꺾은 호프마이스터 킥이 역동감을 살리고 있다. 뒷모습으로 넘어가면 이중으로 덩어리를 잡은 뱅글 부트와 L자형 테일램프가 있다. 물론 BMW만의 원형 앰블럼은 앞과 뒤에 꾹 박혀 있다. BMW는 새로 나온 7시리즈를 통해 길게 뻗은 보닛을 더했다. 보닛이 길다는 건 크고 힘 좋은 엔진이 들어있다는 걸 암시하는 동시에 역동적인 자세를 보여 준다. 이렇게 생긴 보닛은 조만간 나올 소형 SUV인 X1과 신형 5시리즈를 비롯, 모든 BMW에 신형 유전자처럼 퍼질 예정이다. 



그림 2. (왼쪽) 벤츠 S, (오른쪽) 벤츠 S 시리즈 뒤

벤츠는 BMW와는 다소 다른 방향이다. BMW처럼 많은 디테일을 갖기 보다는 우아하면서 역동적인 느낌을 은근하게 표현하는 쪽이다. 그 중심에는 벤츠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삼각별 앰블럼과 장중한 사각 라디에이터 그릴이 있다. 특히 그릴에는 배기량을 의미하는 가로선이 그어 있는데, 2리터급 엔진이 들어 있으면 두 개의 선이, 5리터 급 엔진엔 다섯 개가 그어지는 식이다. 또한 역동성을 강조한 벤츠에는 그릴 가운데 삼각별 로고가 커다랗게 들어와 얼굴에서부터 젊고 역동적인 성격을 표현했다. 특히 벤츠의 소형 로드스터인 SLK는 F1머신을 그대로 닮은 얼굴을 통해 F1에서 쌓은 고성능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림 3. (왼쪽) 아우디 S4, (오른쪽) 아우디 A4 SE 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판매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 나홀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아우디는 가진 것이 참 많다. 일단 아우디의 디자인은 완벽하다. 라인 하나만 약간 흐트러져도 와락 무너질 것 같은 온전함, 완벽함, 긴장감 등이 아우디의 느낌이다. 당대 자동차 중에 가장 큰 싱글 프레임 라디에이터 그릴을 중심에 내세우고 좌우의 사각 헤드램프 속에는 LED를 줄지어 박아 진보적인 성격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중심에 네 개의 원이 겹쳐진 아우디 로고를, 옆으로 약간 치우쳐진 콰트로 마크도 아우디만의 DNA다. 측면에는 아치형으로 생긴 지붕 라인을 비롯, 풍만하면서도 군살 없이 매끈한 몸매를, 후면에는 오각형 테일램프가 새로운 DNA로 추가됐다. 아우디만의 완벽한 사륜구동 시스템인 콰트로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휠도 주목해야 한다. 아우디만의 별 모양 휠캡이 붙은 단단한 휠을 차체 바깥쪽으로 몰아서 네 바퀴로 힘차고 안정되게 밀고 나가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 4. (왼쪽) 포르쉐 파나메라, (오른쪽) 포르쉐 파나메라 뒤

포르쉐는 당대 자동차 중에 가장 강력한 DNA를 갖고 있다. 한 번도 각진 차체를 가진 적 없는 포르쉐는 오는 22일 한국에 출시될 4인승 세단, 파나메라에서도 물방울처럼 유연한 포르쉐 몸매를 디자인했다. 낮게 깔린 보닛 양쪽에 개구리처럼 튀어 올라온 헤드램프도 포르쉐가 늘 해오던 것이었고, 매끈하게 깎아 내린 풍만한 엉덩이도 명백한 포르쉐다. 실내에는 중심을 향해 다섯 개의 원이 겹쳐진 계기반이 있고, 데시보드 중앙에는 원형 초시계가, 콘솔박스 위에 숨겨진 컵홀더 등도 모두 포르쉐가 익히 해오던 디테일이다.



그림 5. (왼쪽) 볼보 XC60, (오른쪽) 볼보 XC60 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동차 볼보도 그들만의 무엇이 꽤 많다. 사각형 그릴 가운데를 버릇없이 가로지르는 사선, 그 가운데 원형 아이언 마크만 보는 이들이 많지만, 그릴이 바짝 세워져 있는 이유를 아는 경우는 드물다. 볼보의 그릴이 그렇게 선 이유는 역시 안전에 있다. 공기역학을 위해 뒤로 누운 그릴은 동물을 치었을 때 보닛을 타고 올라와 유리창을 뚫고 운전자에게 또 다른 상해를 입히기도 한다. 볼보의 그릴은 이런 사고를 방지함과 동시에 보행자 안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사람과 부딪히는 면적이 넓기 때문에 충격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측면 철판이 두툼하게 부푼 것은 측면 안전을 고려한 볼보만의 배려다. 그 외에도 스웨덴 전통 목마에서 따온 테일램프의 곡선,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서 출발한 얇은 센터 스텍 등에 볼보만의 디자인 철학이 숨어 있다.



그림 6. 렌드로버 레인지로버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에디션

영국 전통 사륜구동 자동차인 랜드로버는 험로 주행을 가장 잘 하는 차로 꼽힌다. 디자인에서도 다르지 않아서 특유의 낮은 벨트라인(측면 유리창이 시작되는 선)이 특징이다. 바위길이나 웅덩이를 지날 때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운전하기 편하도록 벨트라인이 낮은 것이다. 최근 SUV들이 역동적인 디자인을 위해 벨트라인을 높이고 있지만, 랜드로버는 여전히 낮고 넓은 유리창을 갖고 있다.



그림 7. (왼쪽) 폭스바겐 골프 SE, (오른쪽) 폭스바겐 골프 SE 뒤

폭스바겐 그룹의 디자인 디렉터인 발터 드 실바는 말했다. “오버하는 디자인의 시대는 끝났다.” 한 동안 자동차 브랜드들이 자신을 강하게 표현하려는 욕심으로 갖기 시작했던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 매서운 눈, 칼로 확 자른 듯 과격한 라인 등이 사라진다는 얘기였다. 한 마디로 과장된 디자인은 한낱 껍데기일 뿐이고, 이제 그들만의 특징을 진실하고 착실하게 표현한다는 의미였다. 그의 철학대로 폭스바겐이 먼저 나서고 있다. 이달 21일 한국에 상륙할 골프 신형(6세대)은 이전보다 진실된 외모가 특징이다. 램프는 램프답게 앞을 잘 밝히게 생겼고, 범퍼는 범퍼답게 충격을 잘 흡수하게 생겼다. 골프는 원래 이런 차였다. 실용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단단하게 만든 최초의 골프가 명백한 증거물이다. 어떤 이는 새로운 골프를 심심하다고 평할지 모르지만, 골프는 골프만의 그것을 향해 착실하게 진화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차들이 그러는 것처럼.



장진택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졸업, 한 때 기아자동차 디자이너, 한 때 월간 [디자인] 기자, 한 때 [모터트렌드] 기자,  좀 전까지 [GQ]기자. 참 많이 옮겨 다녔고, 얼마 전에 회사를 또 옮겼는데, 얼마나 오래 다닐 지 의문이라고 한다. <한겨레> 신문에 '디자인 옆차기'라는 이름으로 다소 삐딱한 디자인 칼럼을 쓰고 있으며, <중앙일보>에는 자동차 칼럼을, 그리고 여기저기 매체에 다수의 글을 기고하거나 출연하면서 여기저기 강의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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