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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GINA, 판도라의 상자 01 _ 박해천

지나GINA, 판도라의 상자 01


글  박해천


그림 1. 2008년 소개된 BMW의 콘셉트 카 지나 라이트 비저너리 모델(GINA Light Visionary Model)’

일견 그것은 요즘의 전형적인 BMW 스포츠카처럼 생겼다. "팽팽하게 조각된 근육질"로, "오목면과 볼록면이 상호작용하는 역동적인 표면들의 흐름"을 전시한다. 최근 BMW가 대중들에게 남긴 브랜드 이미지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어딘지 조금 이상하다. 일단 차체 표면의 질감이 낯설다. 금속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확실히 강철도, 알루미늄도 아니다. 탄소섬유도 아니다. 게다가 헤드램프가 윙크를 하기도 한다. 그저 불빛만 깜빡거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눈꺼풀을 감듯이 차체 표면이 헤드램프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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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8의 섀시를 뼈대로 삼은 BMW의 컨셉트카 지나GINA는 1년 전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낯선 첫인상의 이유는 곧 밝혀졌다. 차체를 감싼 표피가 폴리우레탄을 코팅한 스판덱스였던 것이다. 천으로 만든 자동차? 이 천은 알루미늄 프레임 위로 팽팽하게 잡아당겨져 있었고, 프레임의 개별 요소들은 제 각각 움직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전기-수압 방식으로 제어되는 프레임이 움직이면, 신축성 있는 직물 표피도 새로운 모양으로 '모핑'된다. 그것은 마치 살아 숨쉬는 유기체 같다. 이전의 자동차들처럼, 운전자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차체 전면부가 인간이나 동물의 얼굴과 그 표정을 흉내내는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인상을 찌푸렸다가 미소를 띄우기도 하고, 으르렁대다가 침묵하기도 하고, 납작하게 엎드렸다가 양어깨를 곧추 세우기도 한다.

일견 지나의 외형은, BMW로 이적하면서 크리스 뱅글이 줄곧 실험해왔던 것, 즉 역동적인 표면의 스타일링을 통해 '형태'의 개념을 '피부'의 개념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의 연장선 상에 있는 듯 보인다. 실제로 호불호의 강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X 쿠페와 Z4의 컨셉트가 지닌 공통분모에 대해 뱅글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과거의 자동차들은 문 손잡이나 핸들 같은 부분에서조차 ‘위대한 모더니즘의 시대’의 규율을 그대로 따랐다. 20세기 기하학에 순응한 디자인이었던 셈이다. 마치 선반(lathe)이 기계 시대를 대표하듯,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5축 밀링 머신이다. X 쿠페는 5축이 가져온 표현의 자유를 과감하게 보여주었다. (...) 마치 피부를 잡아당겨 긴장을 주는 골격구조처럼, 표면을 따라 교차하는 스플라인(spline)은 Z4의 하부 구조를 암시한다.

X 쿠페와 Z4까지만 하더라도, "표면을 따라 교차하는 스플라인"은 금속 재료로 고정된 상태였다. 여기에서 디자이너의 임무는 금속조각가에 가까웠다, “제아무리 잘 달리는 BMW라도 생애 80%는 정지해 있다. 그래서 자동차는 그 자체로서 아름다워야 한다”라고 믿는 디자이너 말이다. 그런데 지나의 모습으로 역추론해 보건데, 사실 인터뷰 당시 뱅글이 염두에 두었던 것은, 사물의 성형외과 전문의로서의 디자이너였던 듯 하다. 골격 구조를 조정하고 피부를 잡아당겨 차체의 표면에 탱탱한 표면장력의 긴장감을 부여하려는 디자이너 말이다. 아마도 이를 위해선 금속 조각의 정지된 이미지에 시간성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적어도 CAD 스크린 상에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CG 시뮬레이션을 통해 얼마든지 자동차를 다양한 표정으로 '모핑' 될 수 있었을 테니까. 이미 90년대 초반에 제임스 카메룬이 <어비스>와 <터미네이터 2>에서 실증한 바 있지 않은가? 문제는 그 자동차가 사각 평면의 스크린이 아니라, 현실 세계로 튀어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를 위해선 이전의 금속 재료라는 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지나가 보여주듯이 결과적으로 뱅글이 선택한 신재료는 특수 천이었다. 

그렇다면, 뱅글의 디자인 실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마도 가장 표준적인 해석은, 재료의 혁신이 디자인의 조형적 잠재력을 자극했다거나 디자이너의 상상력이 신재료의 사용을 견인했다는 식의 관점일 것이다. 재료가 달라지면 조형의 방향도 달라지고, 따라서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형태 표현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사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우리는 1851년의 영국만국박람회 당시 건설된 조셉 펙스턴의 수정궁에서 1930년대 모더니즘 건축에 이르는 일련의 연대기적 서사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당시 전통에 목매던 보수적인 건축가들 상당수는 강철, 유리, 철근 콘크리트 등의 신재료를 활용해 "고대 그리스풍의 고전주의"를 부활시키는데 재능을 낭비한 반면, 과학기술의 발전에 주목한 일군의 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은 그 신재료들에서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을 보았다. 수정궁은 그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70-80년이 지난 후, 루이 설리반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나 미즈 반데 로에의 "적을수록 많다" 같은 아포리즘이나, 지그프리트 기디온의 "현대 건축의 투명성" 같은 개념이 등장해, 수정궁으로부터 출발한 이 '혁신'의 연대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실 지나에게 쏟아지는 찬사의 상당 부분은 위와 같은 모더니즘적 기대가 상당히 반영된 결과이다. 그 관점에 따르면, 지나는 21세기의 수정궁이다. 재료를 비롯한 테크놀로지와 디자인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조형적 '혁신'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실험의 결과물로서, 지나! 그런데 이런 류의 논리를 반복하는 것이 지나를 해석하는데 적절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 반복 속에서 동일성과 차이는 무엇일까? 혹시 거기에는 좀 더 근본적인 변화의 계기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 글에서는 좀 더 세밀하게 파헤쳐보도록 하자.

(계속)


[참고기사]
뱅글이 말하는 BMW 디자인, 디자인플럭스
'뱅글 엉덩이'를 남기고 떠난 사나이, 한겨레신문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한국 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학과의 박사 과정에 '아직도' 재학 중이며, 홍익대, 국민대 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여전히' 강의한다. <디자인앤솔러지>(공역),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 등을 번역했고, <한국의 디자인: 산업, 문화, 역사>, <한국의 디자인 2: 시각문화의 내밀한 연대기>, <디자인플럭스 저널 01: 암중모색>등의 책을 기획·편집했다. 단행본으로는 <인터페이스 연대기: 인간, 디자인, 테크놀로지>를 펴냈다.

 

Tag
#BMW #신소재 #크리스 뱅글 #지나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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