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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구를 보면 식문화가 보인다 : 젓가락 디자인
2015.03.12 poploser 조회(9464) 추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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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 삼시 세끼 밥을 먹는다. 끼니때마다 무엇을 먹을지는 고민해봤어도 무엇으로 먹을지를 고민해 본 일은 없을 것이다. 음식의 종류가 달라져도 식도구는 바뀌지 않는다. 밥상 위에는 항상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 있다. 심지어 밥을 먹는다고 하면 가장 먼저 밥상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는다. 이들의 주 임무는 음식을 입으로 나르는 일. 하루 세 번 밥을 먹는 동안 젓가락은 얼마나 다른 종류의 음식을 집어 나르며 몇 번이나 밥상 위를 가로지를까? 어쩌면 젓가락은 하루 중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그리고 먹고 사는 일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도구’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디자인한 도구 말이다. 밥을 먹는 것처럼 너무 당연해서 의식하지 못했던 젓가락 디자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새삼 생활 속 디자인의 중요성을 느낄 것이다.

 

어렸을 적 따라 부른 동요 가사처럼 우리는 젓가락 두 짝이 항상 똑같은 것으로 알고 자랐다. 젓가락을 놓을 때면 언제나 짝을 맞춰 놓았다. 한 쌍의 젓가락이 있을 뿐, 한 짝만 있는 젓가락은 있을 수 없었다. 짝을 잃은 젓가락은 그저 가늘고 긴 꼬챙이일 뿐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젓가락을 사용해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 두 짝으로 이뤄진 젓가락은 음식을 누르고 찌르고 자르고 집고, 웬만한 식도구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 국물만 아니면 어떤 음식이든 젓가락 사이에 끼워 먹을 수 있다. 이보다 더 단순한 디자인은 없다. 단지 가늘고 길쭉한 한 쌍의 막대에서 시작한 젓가락 디자인의 원형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젓가락의 모양새를 갖추기까지, 가장 적절한 길이와 두께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나무, 쇠, 플라스틱 등 재료 역시 다양하다. [포크를 생각하다: 식탁의 역사]라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부엌에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도구들은 기나긴 역사와 수많은 발명들이 쌓인 결과”이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우리가 가진 도구와 기술에 의존”한다. 이처럼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오래전부터 젓가락을 사용해온 한국, 중국, 일본의 젓가락이 제각각 다르다는 사실은 젓가락이 각기 다른 식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중일의 젓가락 디자인이 다른 이유

 

일본 무사시노 대학에서 젓가락 디자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정미선은 젓가락 문화를 가진 한·중·일의 각기 다른 식문화가 젓가락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했다. 젓가락의 모양, 두께, 길이에 각각 변화를 주어가며 부드러운 음식, 딱딱한 음식, 무거운 음식 등 다양한 형태의 음식을 종류별로 나누고 직접 집어보며 실험했다. 일본의 젓가락은 끝부분이 뾰족하면서도 동그란 것이 특징인데, 생선 뼈를 발라내거나 얇고 부드럽고 작게 잘려 조리된 음식에 최적화된 것이다. 중국의 젓가락은 3개국 중 가장 두껍고 모양마저 동그랗고 통통한데, 기름진 음식을 집어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한국 젓가락은 길이와 두께는 중간 정도이고 끝부분이 약간 납작한 네모인데, 무거운 반찬을 옮기기 좋다. 한국에서 쇠로 만든 젓가락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물이 있는 면용 젓가락’
젓가락 끝부분에 갈고리가 있어 국물에서 면을 건져 돌돌 말아 걸기 편하다. 기존 젓가락으로 집는 것보다 훨씬 쉽게 면을 집을 수 있다. 특허를 받은 디자인이다. 

 

 

‘두부 젓가락’
부드러워 부서지기 쉬운 두부나 묵을 집기에 적합하게 디자인한 젓가락이다. 젓가락 길이의 반 정도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어 결국 네 개의 막대로 집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어 더욱 안정적이다.

 

‘음양 젓가락’
젓가락 두 짝은 항상 똑같아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난 디자인. 음과 양의 이치에 따라 한쪽은 올록하고 다른 쪽은 볼록하게 만들어 음식이 잘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현대 우리 음식에 맞는 젓가락 디자인

 

“젓가락 문화를 공유하지만, 디자인이 각기 다른 이유는 뭘까?”에서 시작한 연구는 식문화와 젓가락 디자인의 관계를 입증하는 한편, 또 다른 물음을 낳았다. “그렇다면 음식의 특징에 따라 최적화된 젓가락 디자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결과 ‘국물이 있는 면용 젓가락’, ‘두부용 젓가락’ 등 지금껏 사용한 밋밋한 젓가락으로는 집기 어려웠던 음식을 공략한 젓가락 디자인이 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젓가락은 두 짝이 똑같다는 틀을 깨고 서로 맞물리는 형태로 디자인해 음식이 잘 미끄러지지 않게 한 ‘음양 젓가락’을 디자인했다. 손으로 잡기 편하고 음식을 더 정확하게 집을 수 있도록 젓가락 끝부분을 마름모꼴로 디자인하고, 마름모 꼴을 꽃 모양으로 발전시킨 것은 조형적인 면은 물론이고 젓가락의 본래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젓가락 박사’ 정미선은 “먹는 문화가 달라지면 먹는 방식도 먹는 도구도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한국의 주류 문화를 반영한 폭탄주 전용 잔도 나오는 세상이 아닌가. 국물이 있는 면용 젓가락은 특허를 받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제품화되지 않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음식의 특징을 고려해 가장 편하게 젓가락질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 정미선의 디자인은 젓가락질이 서툴러 몇 번이고 음식을 집었다가 입에 가져가기에 실패했던 이들, 특히 젓가락 문화가 생소한 외국인들도 음식을 편하고 재밌게 즐기는 데 큰 도움이 될 법하다. 

 

음식과 함께 문화도 나르는 젓가락 디자인 

 

우리나라의 젓가락 디자인이 아직 실험 단계에 머무는 동안, 일본의 젓가락 브랜드 하시쿠라 마츠칸(Hashikura Matsukan)은 디자인 회사 넨도(Nendo)와 함께 2013년 젓가락 컬렉션을 선보였다. 숟가락 없이 젓가락만을 사용하는 일본은 밥공기를 들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기 때문에 식기구로 가벼운 나무 소재를 선호한다. 젓가락 역시 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옻칠과 젓가락 공예로 잘 알려진 지역인 후쿠이 현 오바마 시에서 1922년 창업한 하시쿠라 마츠칸은 오랜 시간 축적해온 독자적인 기술력에 넨도의 디자인을 더해 일본다움이 묻어나는 나무 젓가락을 완성했다. 특히 나선형으로 깎은 두 짝의 젓가락이 하나로 합쳐지는 ‘라센(Rassen)’은 숙련된 장인의 솜씨와 첨단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음식을 집는 부분이 테이블에 닿지 않도록 끝부분을 얇게 깎은 ‘지카오키(Jikaoki)’나 젓가락 두 짝을 블록처럼 딱 들어 맞게 디자인하고 안쪽에 자석을 넣어 한 세트로 쉽게 휴대하고 수납할 수 있도록 한 ‘카미아이(Kamiai)’는 본래 젓가락 기능은 물론이고 음식을 먹지 않는 순간까지 고려한 젓가락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일 것도 없이 무명씨가 쓰임에 맞게 만들었을 사소한 젓가락 디자인이지만, 하시쿠라 마츠칸은 매일 먹는 음식을 다루는 식도구에 가장 적합한 재료에 대한 끈질긴 연구와 새로운 도전으로 일본의 식문화와 공예를 시대에 맞게 잘 버무려냈다. 

 

 

 

 

‘라센(Rassen)’
나선형으로 깎은 두 짝의 젓가락이 하나로 합쳐진다. 하시쿠라 마츠카가 쌓아온 기술력과 도전 정신, 그리고 넨도의 디자인이 모여 완성된 젓가락. 젓가락 하나만으로도 일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사진 ⓒ Akihiro Yoshida

 

 

 

‘지카오키(Jikaoki)’
음식을 집는 부분이 테이블에 닿지 않도록 끝부분을 얇게 깎아 만들었다. 젓가락 받침대 없이도 위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사진 ⓒ Akihiro Yoshida

 

 

 

‘카미아이(Kamiai)’
젓가락 두 짝을 블록처럼 딱 들어 맞게 디자인하고 안쪽에 자석을 넣어 한 세트로 쉽게 휴대하고 수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 Akihiro Yoshida

 

일상에서 쓰이는 평범하고 단순한 물건일수록 디자인하기 어렵다. 젓가락도 그중 하나다. 조형적인 면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면은 물론이고 우리의 식문화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 눈에 띄지 않아도 쓸모에 의해 사용하는 평범한 물건일수록 디자인이 더욱 중요하다. 밥 먹듯이 매일 사용해야 하는 물건인데 불편하면 쓸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너무 오랫동안 그 모습으로 사용해왔기에 불편함마저 익숙해져 디자인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처럼 작고 사소한 것들이 개선되었을 때의 효과는 기대 이상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어렸을 때부터 젓가락질을 했던 우리조차 제대로 못 하는 젓가락질인데, 포크와 나이프가 익숙한 외국인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식을 알리는 노력만큼이나 식문화를 잘 반영한 식도구 디자인 또한 생각해봐야 할 때다. 훗날 한식이 세계에 널리 알려질 때, 그에 걸맞은 식도구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글: 김영우

대학에서 실내 건축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로 일했다. 현재 영국에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 컬처에 대해 공부하며 월간 <디자인> 영국 통신원으로 디자인에 관한 글을 계속 쓰고 있으며, 한국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 ‘헬로 레시피(www.hello-recipe.com)’의 영국 컨트리뷰터로 활동하고 있다. 

 


본 연재물은 (주)NHN과의 제휴로 기획되었으며, 네이버캐스트 [매일의 디자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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